™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497

눈이 밝아지고 깨어 있다면

지난 주 수요일 이후(10.26)부터 오늘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련한 뉴스 시청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내 일상을 잠식했다. 날마다 놀랐고, 밤마다 내일을 희망했다. 희망은 번번히 깨졌다. 검찰은 귀국한 최순실에게 31시간의 자유 시간을 주었고, 청와대는 사태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늘(11.04)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담화(전문 클릭)는 허망함의 백미를 장식했다. 취임 하시기 전부터 이미 대통령의 인식 능력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오늘 담화는 나의 낮은 기대마저 박살냈고, 주도적이지 못한 화법은 복장을 터지게 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

한가위 연휴를 어떻게 보냈나

1. 영화 를 보려고 극장에 갔다. 표를 사서 밥을 먹고 왔더니, 대기실에 90년대 가수 K가 앉아 있었다. (K가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일 확률이 높다.) 영화 입장을 알리는 안내를 따라, 그도 나도 함께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K와 나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로 곁에 앉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는 곧장 나갔고, 나도 따라갔다. “저기 가수 K 씨 아니세요? 제가 지금도 이 세 곡을 가사를 외워 끝까지 부릅니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예요.” 이렇게 할 말을 생각해 두었지만,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극장을 나와 교정을 걸어가는데, K의 자동차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는 차창을 열어 창턱에 왼팔을 걸친 채로 내게서 4~5m 떨어진 곳을 느린 속도로 지나치고 있었다. “저기, 잠깐만..

저를 도와주세요, 엄마

1.어제는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오후엔 더 많은 비가 올지 모르니 일찌감치 엄마 묘소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식구들을 아침잠에 빠져 있었다. TV를 보시는 할머니를 넌지시 채근했다. 할머니 엄마에게 언제 출발할까요? 니 시간될 때 가자. '저는 지금 당장 가고 싶어요'라는 말은 못했다. 잠시 뒤, "전 아침을 안 먹어도 돼요. 어젯밤에 너무 많이 먹어서 한끼를 건너 뛰려고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나 혼자 먹으면 되나?"고 받으셨다. 할머니는 밥 생각이 없으시다며 라면을 끓여드셨고, 나는 송편 3개를 먹었다. 2.할머니와 나를 태운 자동차가 보슬비를 맞으며 출발했다. 아침 8시 남짓한 시각이었다. "할머니, 일단 한 번 가 봐요. 도착했을 때 갑자기 비가 많이 오면 산에 올라가지 못하겠..

오늘을 살아야 삶이다

1.한 달쯤 지났으려나.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불쑥 연락이 왔다. 상욱이 기일을 물었다. "7월 6일이야. 음력으로는 6월 10일이고." 친구가 전한 말은 이랬다. 어려울 때 상욱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상욱이 가족이라도 한 번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고, 아직도 그 사실이 안 믿긴다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상욱이 생각할 때마다 너도 생각한다." 의외의 얘기에 "나까지?"라고 반문했다. "응, 상욱이가 너는 마누라 같다고 했었지." 불쑥 그리움이 몰려왔다. "그 얘길 너한테도 했구나." 마누라 얘길 여기저기에다 많이도 했음을, 녀석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더 잘 알게 되었다. 2.문득 섬세한 그녀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 섬세함으로 인해 폭풍처럼 힘든 젊음을 보냈을지도 모를 그녀는 잘 살고 ..

일상의 풍요로운 순간들

1.문학 수업을 하고 나면, 건강하면서도 맛난 음식을 먹은 기분이 든다. 정신을 위한 식사로 건강하게 배부른 느낌이다. 풍요로운 양식에 영혼이 춤을 춘다. 오늘의 작품은 이었다. 카뮈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그의 작품 세계에 들어서기 위한 현관문 격의 소설이다. 학생은 회사로 가고, 나는 카페에 남았다. 창밖의 도심 거리를 사람들이 오간다. 하늘이 파랗다. 나는 경쾌하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카뮈의 '부조리' 개념과 그가 제시한 '반항인'이라는 비전 덕분일까, 아니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공부를 해서일까, 내면의 에너지가 풍성했다. 하루치로는 충분했다. 배터리는 콘센트에, 내 영혼은 고전 문학에! 이런 유치하고 문학적이지 않은 슬로건을 떠올리다가... 피식 웃었다. 사랑에 빠지면 ..

원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

2016Aug 2. 원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 OO 출판사 편집2팀과의 미팅이 안긴 결실 [요약] 출판사로부터 온 메일은 나를 기쁘게 했다. 미팅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안겼다. 조바심을 내려놓으니 길이 보인다. 글 쓰는 과정의 행복과는 별개로 작가로서의 결실도 놓치지 말자! 2016년 4월, 원고를 갈라파고스와 사계절 출판사에 보냈다. 반가운 소식은 돌아오진 않았다. 8월 초에 다시 세 출판사에 투고했다. 며칠 뒤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희 기획2팀의 내부 논의 결과, 인문학을 오래 연구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깊은 통찰이 담긴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직접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2주 후, 동교동의 어느 카페에서 편집장님과 편집자분을 ..

고전 독파에 박차를 가하다

2016Aug 1. 고전 독파에 박차를 가하다 - 서양문학사 강연에 대한 몇 분의 극찬 [요약] 한 회사에서 서양문학사 강연을 진행했다. 특강이 아닌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된 대장정(?)이었다. 강사로서 아쉬움이 남지만, 전반적인 반응은 좋았다. 몇 분들의 극찬으로 안도감도 느꼈다. 지성을 향한 열의에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전 독파에 더욱 매진하리라! 2주차 강연 후, 여러 교수님들이 흡족한 반응을 보이셨고, 질문도 이어졌다. “니체가 근대철학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구체적으로 더 듣고 싶습니다.” 나는 아는 만큼 대답을 드렸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후 3시, 졸릴 수도 있는 시간대였지만 지루해하거나 졸음에 빠진 청중은 한 분도 없었다. (5주차 1교시엔 몇 분이 조셨는데, 나의 강연이 다소 지..

주급 2,300만원짜리 알바

1.6시에 눈을 떴다. 날은 이미 밝았다. 겨울이면 어둑할 시간이다. 지금은 여름이다. 나는 여름의 긴 낮이 좋다. 낮의 생산성과 함께 밤의 낭만도 사랑한다. 일과 낭만은 적대적이지 않다. 서로를 빛내고 서로를 돕는다. (우리나라의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는 싫지만.) 요즘 6시간 수면을 못 다 채우고 깨고 만다. 일찍 일어나는 건 좋지만, 부족한 수면은 아쉽다. 때론 찜찜한 기분도 든다. 더 자고 싶지만 잠이 달아났다.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자기경영 수행자로서 2~3페이지의 책을 읽었다. 당근과 배 반쪽, 사과와 바나나 하나, 브로콜리와 오디를 갈아 만든 주스를 마셨다. 홈트레이닝, 안지만에 관한 인터넷 서핑을 잠시 했고 국카스텐의 노래를 들었다. 전자기기 코드선을 정돈했다. 아침시간인데도 더웠다. 샤..

슬프고 고통스러운 역설

친구야, 잘 있었냐? 니가 여기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갈 데가 없으니 여기로 온다. 만날 수가 없어서 슬픈 건지 그나마 갈 데라도 있으니 다행인 건지 나도 모르겠다. 분명 슬픔이지. 생각하면 고통이고. 이런 감정과는 별개로 일상은 흘러가고 세상은 돌아가니, 사람의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 싶다. 이 곳에 선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무슨 삶과 죽음 타령인가 싶기도 하고. 이 자리에 서서 네 사진을 쳐다보고 있으니, 심경이 복잡하다. 서글픔이 느껴져 '내가 여길 왜 왔나' 싶은데도, 나도 모르게 찾아오게 되는 것 같다. 너에게 수없이 던졌던 원망을, 오늘 또 내뱉는다. "니가 왜 여기에 있냐? 니가 왜 여기에 있냐? 니가 왜 여기에 있냔 말이다!" 후회도 밀려든다. '네가 아플 때, 억지로 너를 데리고..

하나의 별빛이 되기 위해

정신이 맑아야 할 오전 시간인데도 멍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여러 버전의 '삶은 여행'을 들었다. 고마운 인터넷 세상이다. 몇 개월 사이에도 이상은 씨는 어디에선가 노래를 불렀고, 유투브에는 새로운 영상이 올려져 있다. 내게는 여신 같아 보이는 영상을 여러 번 보고 들었다. 아름다운 노래다. 영혼을 적시고,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 (첫번째는 영상미가 아름답고, 두번째 영상은 가사 자막이 있고, 세번째 영상은 '저기 갈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수많은 저 '별빛'의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 봐!" (원 가사는 불빛임)다른 구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마지막 이 노랫말에서도 위로를 얻는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기 힘든 인생길이지만(이리 말하면 '내세관을 몰라 그런 거야'라고 측은하게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