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278

음악이 위로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것을 검토해 보아도, 바그너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내 유년 시절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음악이 위로다. 음악은 종종 사람의 영혼을 치유한다. 나는 과장과 기만 없이 말할 수 있다. 이상은의 '삶은 여행'을 들으며 위로를 얻었다고, 노래 한 곡이 나를 깊이 위로했다고 말이다. 상실의 아픔을 겪을 때마다 이 노래를 수백 번 들었다. 니체는 자신의 치유자에 대한 요구도 밝혔다. "나는 음악이 10월의 오후처럼 청명하고 깊이 있기를 바란다." 나 또한 음악을 비롯한 예술을 향한 기대와 바람이 있다. 나는 유미주의를 좋아하지만, 유미주의자를 지지하진 않는다. 예술이 삶의 지혜와 인류의 비전을 담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에게 바란다. "당신이..

깨달음이 위로다

"고통에 사로잡혀 의미를 찾기 시작하는 소수가 인류의 의미를 결정 짓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힐데 쟁어에게 보낸 편지(1931)에 담긴 말이다. 고통 속을 헤매던 나는 이 말에 깊은 위로를 얻었다. 깨달음이 위로다. 나는 삶이 고통스럽고 힘겨울 때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아무 책이나 읽었던 건 아니다. 선별은 하되, 읽고 또 읽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깨달음을 통해 내 삶을 견디려는 안간힘이었다. 헤세는 1920년의 일기에 이런 글도 썼다. "훗날에 돌아보니, 겉보기에 순조로웠던 시기보다 힘들고 어리석었던 시기가 내게 더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성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자라나는 가지만 건드리지 말고 더 깊이 뿌리 내려야 한다."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리라. 내게 필요한 것은 인내, 용기..

더 나은 하루를 위한 여행

여행이 끝났다. 편도 항공권을 예약하여 제주에 와서 5박 6일을 지냈다. 어떤 여행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소비된 비용보다는 지나간 시간이 더 아깝다. 세월은 다시 벌어들일 수도 없으니까. 삶이 소중하다면, 하루야말로 삶의 소중함을 실현하는 장(場)이다. 나는 더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여행한다. 제주에서 꼬박 다섯 날을 보내고 나니 시간의 대차대조표를 생각하게 된다. 여행에서 얻은 의미와 배움을 헤아리며 시간을 들일 만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1.가장 커다란 결실은 ‘금능으뜸원해변에서의 다짐’이다. 11월 18일, 시간은 저녁이지만 해가 저물어 캄캄한 바닷가를 걸었다. 나는 의식을 떼어내어 해변을 거니는 삼십 대 후반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내면도 들여다보았다. 그는 슬픔에 빠진 표정이었고, 자신의 ..

서른여덟 살의 유언장

슬퍼 마세요. 나는 고통과 슬픔, 외로움이 없는 곳으로 갑니다. 다만 행복을 누릴 기회마저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나의 죽음이 여러분께 슬픔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떠나니까요. 제가 조금 일찍 간다고 생각하시면서, 나의 죽음을 통해 삶의 진실과 비밀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회한과 원통함 속에서 한 줄기 평온이라도 누리기 위해 평생동안 나를 위로했던 노래 '삶은 여행'을 들으며 이 글을 씁니다. 삼촌과 숙모의 은혜가 바다처럼 깊어요. 내 어린 시절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의 배려가 없었다면 제 삶에는 또 다른 그늘이 드리워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결혼을 했더라면 두 분께서 저를 키운 보람을 더 느끼셨을 거라는 생각에 늘 죄송했어요. 이를 생각할 때면 눈..

내가 꿈꾸는 죽음

60세까지는 살고 싶다. (물론 더 오래 살면 좋지만, 일차적 바람이 60세까지는 사는 것이다. 희망 최고령은 87세다. 삶의 후반부를 함께 살아온 여인과 함께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과 87이라는 숫자는 너무 이상적이어서 이렇게 괄호 안에다 묶어둔다.) 화장을 하여 가루가 된 유골은 병산서원 앞 낙동강에 뿌려졌으면 좋겠다. 그 날, 낙동강변에는 비발디의 곡을 재해석한 막스 리히터의 이 흘렀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준 이들이 열 명은 되었으면 좋겠다. 죽은 후 영혼의 눈으로 강을 따라 안동, 김천, 대구를 둘러보고 싶다. 바다에 이르면 영혼의 눈도 감았으면 좋겠다. 단 하루도 아프지 않고 죽으면 좋으련만, 그런 축복이 나를 찾아줄지는 미지수다. 외할머니는 딸의 묘에 갈 때마다 이리 말..

다시, 행복유통업자 되기!

서른여섯 살 때의 일입니다. 운전 중에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날의 통화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주로 농담조로 이뤄지는 우리의 통화인데, 그 날 친구의 목소리는 유난히 차분했습니다. 친구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습니다. “일단은 너만 알고 있어라. 내가 몸이 많이 안 좋네. 나도 이겨내려고 노력할 텐데…… 암일 수도 있단다.” “병원에서는 뭐래?” 친구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고, 나는 화를 내면서 다그쳤습니다. 한참 후에나 대답을 들었죠. “췌장암일 가능성이 있다는데, 정확한 건 큰 병원에 가야 알 수 있다네.” 1990년부터 이십 오년 동안 우정을 이어온 절친한 친구가 췌장암일 수도 있다는 말은 나를 충격에 몰아넣었습니다. 통화를 끊고 나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22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엄마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1. 어디에도 삶의 의미가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기억조차 희미하고, 가장 편하고 친했던 친구는 그리움이 됐다. 부모님은 내가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세상을 떠나셨고, 37살의 친구는 췌장암에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말았다. 존경하던 스승은 폐암으로 예순이 되기 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움이 나를 외면한 느낌이 드는 내 삶의 실존들이다. 고통은 그치지 않았다. 작가를 꿈꾸는 내게 글쓰기는 일상이다. 메모와 기록은 습관이다. ‘노트북 데이터 유실’은 엄청난 불운일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일이 내게 벌어졌다. 어제까지 쓰던 자기경영 일지와 십년 동안 기록해 왔던 와우스토리랩 수업 노트가 없어졌다. 스무 살 이후 매일같이 써 왔던, 언젠가 책으로 내고 싶었던 글들도 나를 떠났..

잠깐의 그윽한 여행

삶은 한 잔의 커피다. 처음으로 맛보면 쓰고, 급하게 들이키면 뜨겁다. 커피를 즐기게 되면 그윽한 향기에서부터 빠져든다. 적당하게 식으면 느긋하게 한 모금씩 음미하면 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젊은 날엔 이상에 취해야 아름답다. 성인이 되면 실존에 눈을 떠야 멋지다. 서른, 마흔... 예순이 되더라도 한 걸음씩 꿈꾸는 세상으로 차근차근 다가서면 된다. 커피는 자유다. 한 잔의 커피는 일상을 떠나는 잠깐의 여행이다. 삶도 자유여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은 이상을 향해 춤을 추며 걸어가는 자유로운 몸짓이다. 커피는 그윽하다. 어린아이는 그윽한 맛을 모른다. 미숙한 어른들이 인생을 모르듯이. 커피 맛을 모르면 마키아또와 바닐라 라떼에 미혹된다. 찰나의 달콤한 욕망은 늘 우리를 엿본다. 자유와 그윽함은 그렇게 멀어..

[서울 이곳은] 넓고 자유로운 마음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1994년에 방영된 드라마 의 테마곡 의 첫 소절이다. 살다보면 때때로 위로를 주는 노랫말이다. 도전적인 경험 앞에서 망설일 때, 고향보다 서울이 낯설게 보였을 때, 삶을 잘못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 나는 이 소절을 부르곤 했다. 종종 영화 의 명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도 떠올리면서.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열차를 타고 서울에 접어들 때, 특히 서울역을 앞두고 한강을 건너갈 때 낯섬에서 오는 서글픔이 들었다. '내가 타지에 왔구나...' 사는 곳이 낯설 때의 서글픔은 평생을 고향에서만 사는 사람들이 이해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낯섬이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

용기의 전사 라케스처럼

“나를 가르치는 사람이 나보다 더 젊은가 또는 아직은 유명하지 않은가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소이다. 소크라테스님, 나는 그대에게 나를 맡길 테니 그대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나를 가르치고 내 의견을 반박하시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나한테 배우시오. 그대와 내가 함께 위험에 빠졌을 때 자기가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그대가 자신의 용기를 입증한 그날부터 그대는 내게 그런 분이었으니까요. 그러니 그대는 좋으실 대로 말하고 우리의 나이 차이 따위에는 개의치 마시오." (『라케스』, 천병희 역)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라케스』에 나오는 말이다.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은 하나씩의 미덕을 다룬다. 『라케스』는 용기를 주제로 하는 대화편이다. 라케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