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278

회한의 레퍼토리를 딛고서

카페에 앉았다. 카페 구석에 앉은 여인, 친구의 스무살 시절 옛 애인과 닮았다. 친구의 젊은 날들을 함께했던 그녀였다. 세월은 흘렀고 췌장암 투병을 하던 친구가 죽은 후, 그녀에게서 메일이 왔었다. 오래 전부터 내 블로그를 읽어왔다는 그녀는, 한때 자신의 연인이었던 내 친구의 부음 소식을 읽은 그 날, 한밤중에 가족 몰래 숨죽여 울었단다. 나는 회신을 보냈고, 다시 메일이 왔다. 한번쯤 만나 슬픔을 나누고도 싶었지만, 내게 그런 용기는 없었다. 울기만 할 뿐이리라. 세월은 여전히 잘도 흘렀다. 다시 7개월이 지나, 앉은 모습이 닮은 여인을 보니 그녀가 떠올랐다. 잘 살겠지? 가끔씩 슬프기도 할까? 그럴 것이다. 명징한 건, 때때로, 여전히, 내가 슬퍼한다는 사실이다. 온갖 마음의 심란함을 딛고서 『인문주..

<토토가>로 떠난 추억여행

1. 나흘에 걸쳐 무한도전 를 시청했다. 나흘이나 걸린 것은 의도적 '노력'이었다. 아껴보고 싶었고, 그래서 하루에 두 세 가수만을 만끽했다. 정말 행복한 시청이었기에, 다음 가수의 공연을 더 시청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행복을 극대화하고 싶었고, 내일도 이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만족지연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인내가 즐겁기도 했다. ‘행복’과 ‘좀 더 짙은 행복’ 사이의 선택이었으니까. 2. 90년대의 음악을 사랑‘한다’. 최초로 좋아했던 가요는 이선희의 (1986)이었고, 이후에도 이정석의 (1987), 등을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가요에 빠져든 것은 1990년이었다. 변진섭의 를 운명적으로 들었고, 90년대 초반부터는 조정현, O15B, 김원준, 푸른하늘, 김건모,..

필로스이기를 꿈꾸다

나는 애호가다. 애호가와 전문가는 다르다.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가진 사람’이고 애호가는 ‘어떤 사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애호가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다. 지식은 위대한 애호가가 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보통 수준 이상의 애호가가 되는 데에는 좋아하는 마음의 정도가 중요하다.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만, 만남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을 눈앞에 대하다’는 뜻도 가졌다. 기실 우리는 사람들보다 사물을 훨씬 많이 만난다. 일어나자마자 안경을 만나고, 음식을 만난다. 출근하기 위해 옷을 만나고 가방을 만난다. 책과 볼펜을 만나고 교통수단을 만난다. 집과 사무실, 아니 세상은 온갖 만남의 장이..

봄꽃은 어찌 그리 아름다울까

어제 받은 두 통의 메일이 한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사실 조금 울먹이기도 했다. 전자우편을 보내신 분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사셨지만, 메일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는 이틀 전 "너를 빨리 잊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친구 잃은 상실감을 담은 글을 썼다. 두 분은 나의 상실감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셨다. 비결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분들 역시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으신 분들이셨다. 한 분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 내 친구"를 사고로 떠나보냈다. 다른 한 분 역시 "마음에 늘 첫째였고 유일함이었던, 많이 사랑했던 친구"와 어느 날 갑자기 사별하셨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사람은 두 문장을 읽고서 울컥하거나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우정의 상실이 얼마나 크고 어떠한 고통인지 잘 알기에. (지..

너를 빨리 잊어야 한다

“제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에 없다고 상상하니 무서워요.” 그녀가 말했다. 우린 인생에 대해,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고, 나는 존경했던 분과 사랑했던 친구와의 사별 이야기를 막 마쳤던 터였다. 카페에는 손님이 많아져 시끄러워졌고, 커피잔은 비워진지 오래였다. 나는 무섭다는 표현이 반가웠다. 한동안 나를 뒤흔든 감정이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으니까. “맞아요, 무서워요.” “뭐가 무서웠어요?”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은 지독한 슬픔인데, 살다보면 그보다 더한 일도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이 무섭죠.” “그런 일이 뭐가 있죠?” “절대로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내 아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내 눈 앞으로, 이십 이 년 전에 세상..

언제 마음이 든든해지세요?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죽마고우 여섯 중 하나를 빼앗긴 그 사건은 남은 다섯에게 크고 작은 충격을 안겼습니다. 절실한 깨달음 중 하나는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과 소중한 사람끼리는 자주 만나야 한다는 교훈이었습니다. 우리 만남을 더 이상 미루지 말자! 그렇게 다섯 친구들은 일년에 두 번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친구의 49재를 지낸 후, 우리는 카페에 모여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의미 있는 결정을 했습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동안 여행 이야기를 나눴지만, 막상 정해진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첫째, 다섯 명이 번갈아가며 여행을 주최한다. 둘째, 모든 결정은 주최자가, 참가자는 무조건 따른다! 두 가지가 끝입니다. 결론은 고작 두 가지에 불과했지만 정해지는 과..

2014 변산반도 가족여행

우리 가족은 10월의 마지막 이틀을 부안 변산반도에서 보냈다. 2014년 가족 여행이었다. 대구에서 변산반도는 왕복 9시간 동안 차를 달려야 하는 먼 곳이다. 할머니까지 모시고 가기엔 퍽이나 장거리 여행이었지만, 가족들이 국립공원다운 변산반도의 풍광들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신은 깨졌다. 가족끼리 공유할 수 있는 추억 하나가 쌓였지만 꽤나 아쉬웠던 여행이었다. 그 날을 더듬어 본다. 1. 가족 모두가 만족스러워하는 여행 다녀오기, 와우투어처럼! 올해 가족여행의 목표였다. 와우투어는 어떻단 말인가. 최근 여행은 10월 3일부터 7일까지 전주, 대전, 부안으로 이어졌던 2014년 와우그랜드투어였다. 와우들은 음식, 분위기, 풍광에 만족했고, 나는 그네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에 흡족했..

따뜻하게 보낸 어느 주말

주말을 고향에서 보냈다. 친구의 49재를 지냈고 가족들과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눴다.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토요일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섬으로 시작된 주말 일정은, 일요일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만남과 대화로 채워진 주말, 의미와 보람으로 가득 찬 주말이었다. 1. 토요일이 친구의 49재였다. 대구 시외의 어느 절에 유명을 달리한 친구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였다. 산 자들과의 만남이 반가웠고, 죽은 이와의 이별이 슬펐다. 49개가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던 건 아니다. 눈물은 낯선 의식에서보다는 익숙한 일상에서 더욱 자주 나는 법. 참석한 이들은 스님과 함께 기도문을 읽기도 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내외 안위 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도로 도로 ..

나의 초상 (8)

1. 외눈박이 거인족 퀴클롭스의 나라에 도착한 오디세우스 일행은 폴리페모스라는 거인의 동굴에 갇힌다. 오디세우스는 기지를 발휘해 폴리페모스의 눈을 찔러 부상을 입히고 동굴을 탈출한다. 배를 타고 떠나면서 오디세우스는 눈을 잃은 거인을 향해 득의양양하게 외쳤다. "왜 눈이 멀게 되었는지 누군가가 묻거든 그대를 눈멀게 한 것은 이타카에 살고 있는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라고 말하시오." '도시의 파괴자'라는 말을 오디세우스는 좋아했다.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를 파괴한 것이야말로 그의 삶의 가장 빛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파괴자'야말로 그를 그답게 만드는 말이었다. 나를 제대로 소개해 주는 말은 무엇일까? - 나의 사명은 실용적 글쓰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하고 ..

면회에 관하여

몇 번이나 아산병원을 다녀왔을까? 얼추 계산해도 60~70회다. 한번 면회에 길게는 대여섯 시간 이상 있기도 했으니, 참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낸 셈이다. 배우고 느낀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생각하며 사는 이들에겐 체험하는 시간 자체가 선생이니까. #. 면회 목적도 다양하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환자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위로파)과 체면 때문에 발걸음 하는 사람들(체면파). 위로파들은 다시 안절부절형와 실속형으로 나눠진다. 안절부절형은 무언가 돕고 싶은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느껴진다. 실속형은 도움을 주기 위해 미리 조사하고 준비하여 환자나 보호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 체면파, 다시 말해 체면을 위해 병원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