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대재앙이 다가온다면 당신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1922년, 파리의 저명한 신문 이 여러 인사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생기는 갑작스러운 삶에 대한 애착을 설명함으로 답변을 대신했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삶은 갑자기 놀라운 것으로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살아있음은 얼마나 많은 계획, 여행, 연애, 연구거리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지! 언젠가 할 거라는 확신으로 끝없이 미루는 우리의 게으름은 진실을 숨겨 버립니다. 만약 미루기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위협이 생기면 세상은 다시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아, 대재앙이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의 새로운 갤러리를 방문하고, X양의 발아래 우리를 던..

11월을 향한 뜨거운 기대

이제 막 카페에 와서 100개에 달하는 카톡을 모두 읽었어요. 집에선 인터넷이 안 되니 이런 수고를 해야 하네요. 차를 타고 5분을 달려 양수리 카페에 오는 ‘수고’ 말이죠. 조금 불편하지만 재밌는 일상이에요. 월말 며칠 동안만 겪는 불편함이니 일시적이고요. 물론 카톡을 하러 카페에 온 건 아니에요. 오늘은 인문정신 수업이 있는 날이니 외출해야 하죠. 창밖 풍광이 아름다워요. 초록, 연두, 주황, 노랑, 붉음이 어우러진 단풍들이 고즈넉하게 한강을 바라보고 있어요. 정말 그래요. 내가 단풍을 바라보는지, 단풍이 나를 바라보는지 순간 혼동될 만큼 저네들이 사람처럼 느껴지네요. 이런 표현은 과장이나 의인화가 아닌 지금의 제 감상이에요. 이곳에서 우리 셋이서 대화를 나누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울까요? 중고 도서로..

고마운 가을 아침

같은 풍광을 보고도 때마다 반응이 달라요. 기분이 좋을 때에는 감탄사가 나오고, 마음이 아플 때에는 한탄이 나오더군요. 오늘 아침의 가을 풍광은 여전히 아름다웠죠. 서정주의 가 떠오르는 아침이었습니다. 가을이 산에 부린 마술에 감탄하기보다는 그리운 시절을 회상했다는 말이에요.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었습니다. 이라는, 10여 년 전에 읽은 자기계발서를 어젯밤에 침대 옆 테이블에 두었거든요.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었어요. 처음 읽었던 당시, 나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저는 내게 필요했을 내용을 은근슬쩍 회피하면서 읽었거든요. 그리고는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다시 읽은 소감은 ‘후회막급’입니다. 책에 대한 후회가 아닙니다. 왜 그때 나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입니..

세상과 조화를 이루려면

-『그리스인 조르바』 유재원 역, p.238 세상과 조화를 이루고, 육체와 영혼은 합일에 이르고, 세속적인 것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우주와 다정하게 지내는 조르바의 정신! 비결이 뭘까? 사나이다운 기백과 단순함이 충분조건인가. 1) 자기답게 사는 이가 세상과 조화를 이룰 것이다. 자기를 잃은 채로 세상과 조화를 이룰 수는 없다(조화는 온전한 두 개별성의 어우러짐이다). 자기다워지려면 자신의 욕망에 진솔해야 하리라.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은 삶을 외롭게 만들고 때로는 분노로 표출되니까. 2) 육체와 영혼의 합일은 이원론에 빠지지 않아야 가능해질 것이다. 세속과 영성이 구분되어 있다는 믿음으로는 합일에 이르기가 힘들다. “영적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세속적인 것도 얕보지 않을 것이다.” 조지프 캠벨의 말이다. (..

잠시 평온했다는 것으로

아침 햇살이 거실 바닥에 드러누운 모습을 봅니다. 가을의 평화, 주말 아침의 여유, 햇살의 따사로움 등을 슬쩍 느끼면서도 마음의 중심부에 자리한 쓸쓸함과 공허감을 토닥거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허전한 마음들이 가시겠지만 2018년의 여름과 가을은 혹독하네요. 거실 창문을 열고 책상에 앉았어요. 쌀쌀한 공기와 함께 까마귀와 까치 소리가 번갈아 거실을 방문하네요. (양평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포스팅하진 않았군요. 저는 지금 양평에 삽니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수면 시간부터 체크했죠. 그제처럼 푹 자지는 못했지만 나쁘지 않은 성적입니다. 이만하면 이틀 연속으로 숙면을 취한 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누군가가 보내 준 '만남'에 관한 글을 읽었어요. 사별과 상실이 많은 제게 위로를 건네기 위함이겠지만 저보다..

하룻밤 숙면에도 감사해요

어젯밤엔 무려 7시간을 잤습니다. 최근 열흘 동안 2시간 넘게 잤던 날이 딱 하루 뿐이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아니, 7월 23일 이후로 이렇게 많이(7시간을 말함입니다) 잔 적이 처음입니다. 잠을 제대로 잔다는 것! 참 좋은 일이더군요. 눈이 개운했고 몸이 가벼웠습니다. 푸석했던 피부도 나아졌고요. 무엇보다 하루를 살 만큼의 신체적 에너지가 채워졌음을, 오늘을 보내는 동안 줄곧 몸으로 느꼈습니다. 기뻤습니다. 마음이 회복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여전히 슬픔과 원통함이 남아 있으니까요. 숙면은 어젯밤에 먹었던 감기 약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몸살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고 자연스레 잠들었거든요. 무엇 덕분인지 몰라도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저는 긴 잠을 잤고 덕분에 하루를 잘 살았으니 그걸로도..

눈부신 영혼을 만드는 것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그리스인 조르바』 8장 中 (이윤기 역) 유재원 교수님과의 대화는 너무나도 지적이어서 설렘과 흥분을 맛보곤 합니다. 내 안의 지적 욕망이 모두 기립하여 춤을 추거든요. 잠시 ‘지성인’이 된 느낌입니다. 오늘 아침에 누린 한 시간의 모닝 리추얼은 잠깐이나마 나를 ‘수행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독과 침묵의 시간 덕분입니다. 창밖을 바라보니 가을비가 내리네요. 이예은의 를 듣기에 맞춤한 날입니다. 지금의 난 재즈를 감상하는 ‘예술 향유자’입니다. 카잔자키스의 말처럼 인간의 영혼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지나 봐요. 짜릿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또 다른 무엇이 내 영혼을 ..

절실한 바람만 있을 뿐

“마흔이 되어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왜 그런지 잘 몰랐다.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흐릿한 밤이 며칠 계속되면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몸은 피곤에 전다. 긴 잠 속으로 죽은 듯 빠져들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쉽던 일이 더 이상 쉽지 않게 되었다.” - 구본형 분명치 않은 이유라고는 했지만 구 선생님은 ‘모호함’과 ‘불안’이라는 단어로 마흔의 불면을 회상했다. 불면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어느 정도는 불면을 즐겼다. 한밤중에 일어나 음악을 들었고 고독을 즐겼다(그때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때때로 미래를 구상했다(마음 속 가장 먼저 떠오른 모습이 저술가였다). 불면이라는 불청객을 창조의 시간으로 전환시키는 선생님의 모습은 ..

오늘 선택한 행복

행복하게 ‘사는’ 일은 만만치 않지만 행복을 ‘맛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내면에 가득한 슬픔에 침잠하는 대신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창조하면 된다. 상실과 고통이 무슨 의미인지 묻는 대신 서랍 하나를 열어 깨끗이 정리하고, 대충 온 몸에 물을 끼얹는 대신 뽀득뽀득 비누칠 샤워를 정성스레 하는 일은 내게 행복이다. 행복이 깃들면 그 기쁨의 감정을 잡아채어 잠시 음미한다. 맛난 디저트나 그윽한 차를 맛보듯이 온 몸의 감각을 열어 향유하는 것이다. ‘아! 좋다.’ 내 안에 슬픔과 외로움이 가득한데도 하루에 한 번은 이렇게 기쁨을 만끽한다. 행복한 삶이라고 해서 눈물이 없지 않듯 힘들고 불행한 삶이라 해서 웃음이 없지 않다. 오늘 선택한 행복은 조식이다. 할 일이 많은 날이라 간편하게 아침을 먹을 법도 했지만 ..

교감하는 작가가 생겼다

“인생이 진정으로 꽃피는 시기는 마시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실컷 술을 마실 수 있는 기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다. 그의 진지한 인생론은 아니다. 젊은 날 회상을 기록한 짧은 글에서 지나가듯이 던진 문장이니까. '젊은 날의 정열과 체력'을 향한 그리움이랄까 애틋함이 느껴진 글이었다. (그는 다른 글에서 자신의 첫 번째 좌우명은 “건강”이라고 썼다.) 진지한 발언이 아닌 줄 알면서도 짚어 두고 싶다. “어느 연령대를 살든 인생이 꽃필 수 있다!”고. 내가 이 말을 실제로 믿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제 막 반평생을 살았을 뿐이니 정말 모르겠기도 하고, 한편으로 하루키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도 있어서다. 오십 대에도, 칠십 대에도 인생이 꽃필 수는 있겠지만 노년의 활기와 정열은 젊은 날의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