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216

통찰과 식견을 얻으려면

높은 관점을 얻으려면 산을 오르자. 산행의 목적이 무엇인가. 산 아래에서의 신선한 공기인가. 산에 올라서 획득할 높은 관점인가. 조금 오르다 말고 자리를 펴고 먹고 마시는 이들에게도 고유한 재미와 목적 그리고 들려 줄 스토리가 있다. 정상에 등정하여 산맥을 살펴보려는 이들에게도 그들의 기쁨과 의미 그리고 들려 줄 스토리가 있다. 당신은 무엇에 끌리는가. 이는 교제 VS 고독과 같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어느 길에나 벗과 동행이 존재하니까. 오를수록 동행이 줄어들지만 최정상이 아니라면 벗이 있기 마련이다. 돗자리에도 산행길에도 고유한 의미와 기쁨이 존재한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면 되리라. 꿈꾸는 자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여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여기를 떠나 길을 나서는 것이다. 새로운 벗이 기다릴 여..

지적 위로에 눈물을 흘리다

1.'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 책에 대해.' 『인간성 수업』이 안긴 생각이다.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연초에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읽다가 감탄과 전율을 수십 번이나 느꼈다. 책을 읽다가 이런 생각도 했다. '공부 인연들과 함께 강독회를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네. 아... 루크레티우스!' 『인간성 수업』은 루크레티우스 읽기에서 한 가지가 더 가미된 독서 여정이다. 감탄, 전율 뿐만 아니라 '울음'마저 안긴 것! (지적 희열은 나를 춤추게 하지만 지적 위로는 타자를 향한 깊은 공감 만큼이나 울컥하게 만든다. 마사 누스바움은 내게 지적 희열과 지적 위로를 모두 선사한다.) 나를 위로하고 지지하고 나아갈 길을 넌지시 보여주는 책을 만나다니! 독서가의 지복이다. 2. 책의 메시지..

세상의 시간이 멈췄으면

읽고 싶은 책들이 차고 넘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내가 사는 공간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는데 어찌 외면할까! (르 클레이조 『빛나 : 서울 하늘 아래』) 카프카를 찬미하는 이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를 두고 ‘나의 카프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번역서 제목이긴 하지만.) 그냥 친구도 아니다. 막스 브로트다. 카프카 애호가로선 당연하고 마땅한 필독서다. 책의 내용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카프카를 이해하는 길이 될 중요한 텍스트! 『나의 카프카』는 브로트가 카프카에 관해 쓴 중요한 텍스트 세 개를 합권한 책이다. (막스 브로트 『나의 카프카』) 동업자들의 작업 현장은 어떨까? 작업 비밀이라도 캐내겠다는 야심은 아니다. 위로(지난한 일상은 매한가지일 테니), 휴식(책상과 서재가 있는 사진을 보..

바꿀 수 없는 즐거움

10년 전에 읽었던 다산 산문집을 펼쳐 들었다. 밑줄이 쳐진 장들만 골라 다시 읽었다. 조만간에 여유당 답사를 갈 계획이라 마음의 준비를 해 둔 셈이다. 족히 열 번은 넘게 방문했을 여유당이지만 갈 때마다 감상(感想)이 조금씩 깊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가장 먼저 읽은 글은 유명한 였다. 둘째 형님 약전과 함께 ‘만연사’라는 절에서 서책을 읽었던 일화를 기록한 짧은 글이다. 전라도 화순의 그 만연사(萬淵寺)이고 동림사는 절의 동쪽에 위치한 “중이 수도하는 집”이었다. 다산은 동림사에서의 일상부터 전한다. “둘째 형님은 『상서』를 읽었고 나는 『맹자』를 읽었다. 이곳에 올 때는 첫 눈이 가루처럼 뿌리고 산골 물은 얼어붙을 하였다. 산의 나무와 대나무의 빛도 모두 새파랗게 추워서 움츠린 것 같았다. 아침저녁..

뜻밖의 독서여정 점검

이틀 연속으로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 지난주 감행했던 책 주문으로 고삐가 풀린 것이다. 어제는 뇌과학 책 3권이었다. 박문호 선생의 신간 『뇌과학 공부』와 해외 연구자들의 책 두 권이다. 스탠퍼드대 신경과학과 부교수인 데이비드 이글먼의 『더 브레인』과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스타니슬라스 데하네의 『뇌의식의 탄생』! 후자의 책은 에릭 캔델의 추천사 덕분에 결정한 책이다. “지금까지 읽은 의식 관련서 중 최상이다.” 오늘은 빈센트 반 고흐의 책 3권과 칼 바르트가 모차르트를 예찬한 책을 주문했다. 영화 를 보고서 빈센트에 더 알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는 힘들었다. 서점을 둘러보니 18년 전에 읽었던 가 스페셜 에디션과 새로운 판본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새로운 에디션으로 구입하고 싶은 마음을 어..

[책]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김진호, 갈무리, 2017)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여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들이다. 살면서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사람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그렇다. 책은 작곡가들도 작곡가이기 이전에 호모 사피엔스임을 알린다. (모차르트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고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일은 음악의 주된 기능이다. 음악의 저력은 그에 그치지 않는다. 책은 그 음악을 창조한 작곡가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음악으로 사유하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요컨대, 음악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음악 청취에서 ‘작곡가의 마음’을 생각함으로써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저자가..

[책] 미국의 반지성주의

『미국의 반지성주의』(리처드 호프스태터/ 유강은 역, 교유서가, 2017) 1.반지성주의는 어디에나 있다. 정치권, 리더십, 일상사 곳곳에 반지성주의가 있다. 조금만 깊어지면 “아, 어려워” 하고 사유를 기피하는 태도 역시 반지성주의의 모습 중 하나다. 일상에서 반지성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이다. 머리 쓰기를 싫어함, 편안함이나 안일함만을 추구하는 모습 등이 반지성주의가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다 건너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멀게 느껴지더라도 일상에서의 반지성주의는 고민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2.누구나 지성주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모두가 반지성주의에 빠져 있는 것도 문제다. 결국에는 지성의 힘과 한계를 모두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겠다. 지성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

손택과 조르바 만큼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마음이 괴롭지는 않으니 자책은 아니다. 얼마간의 부끄러움을 동반한 현실 인식이다. 겸허함도 아니다. 오만과 겸손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그보다는 이미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앞으로 알고 싶은 것들에만 시선을 둠에서 생기는 지적 열망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자의 눈에는 나아갈 길만 보이는 법! 문득 이렇게 모르는데 강연을 하며 살아가는 삶의 관용이 고마워진다. (누군가에게 속삭이고 싶다. 저기요, 강사들의 얄팍한 지성을 주의하세요! 예외는 아주 드물 거예요.) 물론 내게도 열정이란 게 있어서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왔고, 꾸준히 글을 썼다. 공부한 내용을 긴 글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몇 가지의 ..

어떤 날은 3분이면 족하다

아침에 신문을 들고 오는 시간은 3~4분이다. 빈 손으로 나간다. 핸드폰도 필요치 않다. 한 시간 외출에도 핸드폰을 두고 가기도 하니, 잠깐의 외출이야! 책을 들고가는 일도 거의 없다. 시간이라면 찰나까지 아끼고 싶긴 해도 틈새 시간에 할 일들은 많다. 잠시 멍 때리기, 체조하기, 콧노래 부르기, 아무도 몰래 춤 추기, 하루 일정 돌아보기 등. 엘리베이터를 한참 기다린다고 해도 괜찮다. 스트레칭을 길게 할 수 있으니 좋다. 내가 오가는 시간대에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웬일인지 오늘은 책을 들고 나갔다. 조셉 캠벨의 산문집 『신화와 인생』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무렇게나 펼쳐 한 문단을 읽었다. "우리가 과학적 진리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 -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 항상 ..

밤과 낮의 책읽기

어느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었다. 전날 밤, 침대 맡에 미리 놓아두었던 책이었다. 책 선택은 즉흥적이었다. 계속 읽어오던 책이 아니었고 수개월 전에 몇 편의 에세이를 골라 읽긴 했던 산문집이다. 요즘의 독서테마와 연결되지도 않았고, 계획된 강연과도 연관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지금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었다. 삶의 소소한 습관이 지적 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그것도 막강한 영향이다. 이 책을 읽는 바람에 휴일 아침 시간이 나의 학창시절 회상과 한 작가의 젊은 시절을 정리하는 일로 채워졌다. 눈을 떠서 읽은 글이 헤르만 헤세가 1923년에 쓴 ‘자전적인 글’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던 것. 사실 어제 저녁만 해도 이튿날 오전 시간을 이렇게 보내리라고는 생각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