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216

독서 행진과 독서 내공

독서 행진과 독서 내공을 위하여 - 요즘의 독서생활 단상 (1) 1. 모처럼 며칠 만에 책 한 권을 읽었다(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 쉽고 얇은 책이었기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내용이든 부피든 묵직한 책을 읽어온 요즘인지라, 한 권의 책을 마지막 장까지 읽어낸 건 오랜만이다. 약간의 성취감을 느꼈다. 성취감은 노고에 비례하는 법이다. 쉽게 읽었기에 기쁨이 크지는 않았지만, '다음 책도 끝까지 읽어야지' 하는 정도의 욕망을 부추기는 데에는 충분한 성취감이었다. 책상에 '읽다 만 책'을 쌓아두어도 압박감을 받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독서생활을 역동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종종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책의 마지막 장까지 완독(完讀)하고 싶은 네 권의 교양서다. 『..

양평 아카이브에 대하여

스무살이 되면서부터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주 책을 읽었고, 돈이 생길 때마다 책을 샀다. 때때로 책 구입비가 버는 돈을 초과하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3~4천 권의 책을 소장하게 되었고, 취업하고 수입이 늘면서 책 구입에 들어가는 돈도 규모가 커졌다. 장서가 1만 권에 이르고부터는 책 구입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20일이 지나고 있는 이번 달에도 구입한 책은 딱 두 권이다. (한병철『에로스의 종말』,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적지 않은 장서는 골치 아픈 문제를 동반한다. 장서의 보관 말이다. 장서는 자신이 머물 공간을 요구한다. 습기가 많으면 안 되고, 바닥이 튼튼한 공간이어야 한다. 장서의 공간은 곧 비용이다. 열렬한 독서가로 산다는 것은 결국 얼마간의 비용을 지불..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최고의 책읽기 방법은 슬로리딩이다. 천천히 읽을수록 독서의 효과가 향상된다. 많은 현대인들이 냉면을 들이키듯 후루룩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조사하지 않는다. 모르는 단어조차 그냥 건너 뛴다. 조사하거나 사전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2. 진중하게 시간을 내어놓은 이들이 학습에 성공한다. 벼락치기에 성공한 이들은 손에 쥔 단기기억에 잠시 만족하지만, 감(感)하고 동(動)하지 못한 지식은 모래알처럼 움켜쥔 손을 빠져나간다. 현대는 속도전을 벌이는 시대다. 소중한 이에게 느긋하게 편지를 쓰는 기쁨,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 행복을 앗아간 시대다. 최고의 독서를 하려면 분주한 마음부터 컨트롤해야 한다. 고대든, 중세든, 현대든 시계의 속도는 똑같다. 다른 것은 우리 마..

세 권의 책을 구입해버렸다

내가 책 구입을 이리도 자제했던 적이 있던가.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고, 두뇌는 조종종 지금의 순간을 과장하기 십상이니까. (『뇌 마음대로』라는 책은 자기를 기만하기 일쑤고 착각에 허덕이는 뇌에 대하여 두 챕터를 할애했다.) 나는 지갑이 가벼워질 때마다 서점을 멀리했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수입이 생기면 책을 샀고, 덕분에 다른 살림살이가 늘어날 기회는 없었다. 책 구입에 돈을 많이 쓴 것에는 내 나름의 전략은 없었다. 일관된 방향도 없었다. 장서에 대한 철학과 공부 키워드가 있기는 했지만, 얼마간은 지적 욕망의 노예였다는 말이다. (노예는 과장된 단어지만, 확실히 내 구매욕을 다스리지는 못했다.) 이번 여름부터 시작된 책 구입 자제는 꽤 오래 갈 것 같다. 지금까지 살..

탈고를 앞둔 막바지 고민

최근 인문학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출간 되기 전이니 '원고'라고 해야겠군요. 집필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글을 쓰면서 짜릿했고, 감격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날들입니다. 보름 후면 탈고를 마치고 출판사로 보낼 것 같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말이죠. 예정을 방해할 요소는 많습니다.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고, 제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죠. 개연성이 낮은 일들이니 헛소리라 치부될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인생사는 개연성이 아닌 필연성으로 벌어집니다. 우리의 생로병사는 그 필연성 중에서도 확연한 사실입니다. 그렇더라도 높은 개연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합리적 인생살이라는 점에서, 출간의 실제적인 장애물을 따져보자면, 아무래도 저의 완벽주의입니다. 이번 원고는 꽤 흡족합니다. '내가 다시 ..

깊은 지성의 3가지 특징

1. 지성이 얄팍한 사람들은 책을 많이 산다. 책을 많이 읽으면 깊어지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생각은 결과를 낳는다. 여러 가지 시시한 책들을 읽느라 훌륭한 책을 진득하게 파고들 시간이 없다. 시간을 들이지 못해 사유하는 힘을 키우지 못한다. 사유의 힘이 느슨하니 고전의 단단한 지성 세계로 침투해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타협한다. 빈약한 지적 생활의 악순환이다. 반면 깊은 지성을 갖춘 사람들은 소수의 고전을 독파하면서 최고의 인식을 만난다. 2. 지성이 얄팍한 사람들은 자주 안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같은 주제의 강연을 두 번 듣지 않고, 중요한 텍스트도 두 번 읽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자신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발터 벤야민의 을 읽..

칸트의 식사 시간은 길다

“칸트는 오후 1시에 그가 초대한 손님을 맞았습니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식당으로 안내되었는데 식당에서는 평균 4시까지, 손님이 많은 때는 6시까지도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뒤 약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합니다. 처음에는 ‘철학자의 길’을 산책하다가 아무데고 앉아 사색을 하고 때로는 중요한 착상을 수첩에 적기도 했습니다. 산책은 항상 혼자 했습니다. 산책한 후 나머지 시간을 독서로 보냈는데 그 시간에 또 친구가 찾아오면 그 친구랑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칸트는 정확히 10시에 취침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칸트의 제자 제자 야하만의 전언인데, 칼같이 정확하게 생활했던 칸트에게도 지적 교류를 위해서는 융통성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칸트는 3시간 동안이나 식사를 했다. 통상적으로 세 시간,..

나는 왜 공부하는가

1.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를 많이 하는 요즘이다. 천성이 치열하지 못해 매일의 공부량은 들쑥날쑥하다. 익힌 것도 있지만, 여전히 지성에 목마르다. 깊이 알고 싶고 제대로 알고 싶다. 본격적인 공부는 이제부터인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서양철학사의 얼개와 문예사조의 흐름을 잡은 공부였다. 지성사의 맥락을 잡은 것만으로도, 공부 갈피를 잡고 통합적 관점을 취했다는 점에서 유익했지만, 앞으로는 그 유익을 더욱 절절히 느낄 것 같다. 새롭게 배운 지식을 정돈하고 정리할 지식 아카이브를 만들어 둔 셈이니까. 지적 아카이브를 세우는 일은 3년 정도 걸렸다. 그리스 - 로마 - 영국 - 미국 - 이스라엘 다섯 나라를 중심으로 서양사의 거시적 흐름을 잡았고, 역사적 명장면과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얼개를 세웠다. 연표와 지..

어떤 텍스트를 읽어야 할까

20년 가까이 적지 않은 책을 읽어왔다. ‘앞으로 몇 권을 더 읽을 수 있을까?’ 인생의 유한함에서 기인한 자조적 질문이 아니다. 독서에 할애한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열망에서 온, 정열의 질문이다. 하지만 지혜롭지 않은 질문이다. 몇 권을 읽느냐보다 무엇을 읽느냐가 중요하고, 읽은 것들을 얼마만큼 살아내느냐가 성장의 관건일 테니까. 무엇을 읽을 것인가? 다시 말해, 한 개인의 조화로운 성장을 위해 어떤 텍스트를 읽어야 할까? 이 질문으로 한동안 고민했다. 세 가지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일차적 결론을 얻었다. 주체적 텍스트, 인문적 텍스트, 시대적 텍스트가 그것인데, 자기 삶의 발전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둔 이들이라면 세 가지 텍스트가 모두 중요하다. 주체적 텍스트는 세상 ..

벤야민 공부와 우정의 추억

눈을 뜨자마자 벤야민이 떠올랐다. 누운 채로 잠시 벤야민을 생각했다. 벤야민의 삶에 대한 생각이기도 했고, '아침부터 왜 벤야민일까'를 묻는 성찰이기도 했다. 잇달아 떠오른 이는 숄렘이다. 게르숌 숄램, 그는 『한 우정의 역사 :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의 저자로 벤야민의 절친한 친구였다. 두 학자 모두 유대인이었고 지적 정신적으로 깊은 유대를 나눴다. 생각의 연쇄는 내 친구 P에게로 가서 멈췄다. 나는 몸을 일으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제 외출하고 나갔던 가방 속 내용을 꺼내 정리하고 책상에 앉았다. 아침 첫 생각은 무의식이 내게 보내는 인생살이의 작은 표지가 아닐까. 눈을 뜬 직후에 의식과 무의식이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교차한다면, 아침 단상은 의식이 달아나려는 무의식을 붙잡은 셈이다. 표지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