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꿈이기를
내가 왜 그랬을까? 괴로울 정도로 후회했다. 그래, 그것은 후회의 감정을 훌쩍 뛰어넘는 괴로움이다. 나는 몹시 괴로웠다. 노트북에 담긴 글들, 블로그에 올리지 않은 책 원고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혹시라도 다른 저장매체에 옮겨 둔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행운은 없었다. 지난 달에 선물 받은 소니 Nex 5D를 잃어버린 것은 노트북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지하철 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는 역사 내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가방을 화장실에서 조금 떨어진 의자 위에 올려 두고 갔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연유로 그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살짝 걱정은 했지만, 별일이야 있을까, 생각했다. (종종 이런 생각으로 곤란을 겪었음에도 또 이런 일이 생긴 걸 보면, 고질병인가 보다.) 볼 일을 보고 나왔더니, ‘별 일’이 생겼다. 가방이 사라진 것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기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아주머니 손에 내 가방과 같은 녹색 가방이 들려 있었다. 확인해 보기 위해 뛰어갔다. 내 가방이었다. 노트북도 들었으니 조금 무거운 가방인데, 불길하게도 아주머니는 가방을 너무 가벼운 기운으로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 이게 제 가방 같은데요. 자상하게 나를 돌아보신다. 그리고 반갑다는 투로, 아 그래요? 의자에 주인 없는 가방이 있길래. 근데 내용물이 없어서…
몇 마디를 더 나누었지만, 내용까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분명한 것은 아주머니는 선의를 가졌던 듯 하고, 가방의 내용물들은 사라진 것이다. 가벼워진 그래서 서글퍼진 가방을 들고 다시 잃어버린 장소로 돌아왔다. 어떤 이가 가방의 내용물만 훔쳐갔나 보다. 없어진 물건들을 하나 둘 확인해 보았다. 지갑, 노트북, 핸드폰, 카메라였다. 읽고 있던 책은 가방 속에 그대로 있다. 으아아아아악!
노트북 속의 자료들, 특히 지난 해 말에 구상해 두었던 새 책의 아이디어와 목차 그리고 수개월 동안 썼던 글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속이 쓰렸다.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꿈이기를 바라며 몸을 더듬더듬 만져 보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져 걸을 수가 없었다. 몇 분이 흘렀는지 나는 그렇게 괴로움 속에 앞날을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
눈을 떴다. 상체를 일으켜 책상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작업했던 노트북은 내 책상 위에 그대로 있었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노트북을 잃어버린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눈을 찡그려 노트북에 제대로 초점이 맞춰지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꿈이구나. 다행이다. 아니, 다행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꿈은 현실 같았다. 천만다행이다.
놀라운 것은 꿈 속의 나는 분명히 ‘꿈인지 생시인지’를 따져 물었고 현실이라는 결론을 내렸었다는 점이다. 그래! ‘꿈속의 나’에게는 꿈이야말로 현실이겠지. 꿈과 현실이 헷갈릴 정도로 꿈은 강렬한 현실감을 동반했다. 색감으로 따지면 파스텔화이 아니라, 원색의 포스터화 같은 꿈이었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다룬 영화와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떠오른다. 너무나도 현실 같은 꿈 앞에서 나는 지금 당황하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종종 꿈을 꾼다. 그리고 꿈을 잊는다.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잠자는 동안에는 기억하는 물질이 뇌에서 덜 분비되기 때문이란다. 왜 어떤 꿈은 희미해진 기억력을 뚫고 현실 세계에까지 침투하여 기억되는 걸까?
삶을 살다가 글을 쓸 때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글을 쓰지 않은 까닭은 글을 쓰지 않고도 그 사건을 해결했거나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의문을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글쓰기는 고민을 마음 속에 기록해 두는 의미가 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을 여유는 없다. 브라질 여행 이후로 미뤄두자. 그 때에도 여전히 호기심이 남아 있다면 그때 읽자. 2011년은 호기심을 따라가며 지적 세계를 확장하는 때가 아니라, 몇 가지의 주제를 깊이 파고 들며 전문 지식을 쌓기로 한 해니까.
와! 이처럼 현실 같은 꿈이 있다니! 그렇다면 정말 꿈만 같은 현실도 있겠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자기경영이란, 꿈처럼 환상적인 현실을 만드는 것이다. 매우 완벽해서, 꿈꾸어왔던 나의 이상과 너무나 흡사해서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현실 속으로 나를 몰아가는 것! 그것이 자기경영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이 말, 참 좋다. 네 삶이 부디 꿈과 같기를. 그리고 너무나 현실같은 이런 악몽은 다시 꾸지 않기를.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