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 부담감을 아시나요?
2월 10일은 이번 브라질 여행에서의 첫 강연이 있는 날이었지요. 코윈(KOWIN, 세계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이란 단체에서 주최한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을 진행시킨 결정적인 역할은 솔개 와우분들이 해 주셨지요. 자주 올 수 없는 곳인 만큼, 솔개와우들은 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을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겁니다. 동시에 너무 많은 강연 일정이 될까 봐 적절하게 조절하시느라 애를 쓰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맙고 기쁜 일입니다. 이것은 조금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싫지 않은 부담감입니다. 오히려 반갑고 고마운 부담감입니다. 내가 너를 믿는다, 라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기분 좋은 부담감이니까요. 어쩌면 기쁜 책임감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담감이라 표현한 것은 강연이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고 난 후에는 이런 저런 피드백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오늘 강연 참 좋네, 라는 호평에서 에이 시간 아까웠어, 라는 악평 사이의 어떤 피드백을, 강연이 끝나고 듣게 됩니다.
그러니 강연은 다소 긴장되는 일입니다. '책임감 + 긴장 = 기분좋은 부담감'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별로 느끼지 않는 부담감이 이곳에서는 조금 더 진해집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은 제가 한국에서 왔다는 그 단순한 사실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주변에 있는 것보다, 멀리 있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단지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막상 가 보면, 내 주변의 것보다 별로인 경우도 있지요. 만약 멀리서 온 어떤 것이 훌륭했다면, 멀리 있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훌륭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훈 하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귀한 것이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드물기에 귀한 것이 아니라, 고귀해서 드문 것입니다. 그러니 고귀함을 찾으려면 멀리 갈 것이 아니라, 고귀한 것을 알아채는 눈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멀리서 왔으니 잘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지요. 이곳 상파울로에도 강연을 잘 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만약 제 강연이 훌륭했다면 그것은 제가 한국에서 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강연을 잘 하기 위해서 재능을 부지런히 갈고 닦았기 때문일 겁니다.
부담감의 또 다른 원인은 제가 와우팀을 대표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코윈에서 강연이 시작되기 전, 코윈 회장님께서 솔개 와우분들을 일으켜 세워 청중에게 소개해 주셨습니다. 공을 나누는 따뜻한 배려였지요. 그 순간에 저는, '어이쿠야, 오늘 강연 잘 해야겠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혹여나 강연을 말아 먹으면(저는 이렇게 표현한답니다) 제 이름 석자를 흐리는 것이 아니라, 솔개 와우분들에게도 죄송한 일이 되니까요. 그래서 강연을 시작하며 농담 반, 진담 반의 말로 다음과 같이 시작했지요.
"여러분들은 여기에 왜 오셨습니까? 무지 더운 날에, 식사도 제대로 못 드시고 오셨을 이 시각에 무엇을 얻고자 여기에 찾아 오셨습니까? (몇 분께서, 행복해지려고요, 라고 대답하셨지요.) 저는 원래는 별다른 목적이 없다가 회장님께서 와우팀원들을 소개하신 것을 보고서 목적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와우팀원 분들이 강연 끝나고 이 강연장을 뿌듯하게 빠져나가도록 만드는 강연을 해야겠구나, 하는 목적입니다."
많이 웃으셔야 하는 순간에, 1/3 정도만 웃으셔서 다음 이야기로 얼른 넘어갔지만, 절반 정도는 제 진심이기도 했지요. 브라질에서의 강연은 늘 와우팀원들이 함께 해 주시고, 실제로 그 분들의 주최로 강연이 열리는 것이기에, 저는 와우팀을 대표한다는 느낌으로 연단에 섭니다. 한국에서의 강연은 모두 제 이름을 보고 의뢰한 것이니 부담이 덜합니다. 허나, 와우팀장의 이름으로 하는 강연은 부담감이 팍팍 느껴집니다. 분명 부담이 되는 일이지만, 으것은 신뢰의 다른 이름임을 알기에, '기쁘고 기분 좋은 부담감'입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이런 부담감을, 유치하긴 하지만 '기기 부담감'이라고 하죠.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키우는 힘이 아닐까요? 한 가정의 가장이 느끼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빠를 신뢰하고 따르는 아들 딸을 보는 것은 행복인 동시에, 녀석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어떤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기기 부담감인 것입니다. 기기 부담감은 주고받음의 관계에서 옵니다. 신뢰와 애정을 받을 때, 기기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더 좋은 것을 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좋은 것을 준 사람이 멋진 일을 한 것인지, 신뢰와 애정을 준 사람이 멋진 일을 한 것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사실, 서로가 서로를 도운 것이지요.
어제 코윈 강연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제 발음이 몇 번 버벅댄 것을 제외하면, 저도 만족스러웠고 오셨던 분들도 흡족해하신 듯 합니다. 매우 기뻤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강사로서, 브라질 교포들은 청중으로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도왔던 날입니다. 기기 부담감을 주신 솔개와우분들과 몇 분의 지인들 덕분에 제가 보다 좋은 강연을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어제 제가 받은 모든 칭찬과 영광은 사실, 여러분들과 나눠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를 신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참 고맙습니다.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