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잃은 채 보낸 하루
오늘은 포시즌즈 호텔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 날이다. 이런 날엔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하고, 새로운 숙소로 이동하여 체크인을 하느라 오전이 훌쩍 지나간다. 체크아웃을 하고서 짐을 맡겼다. 아직 오늘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기에 근처 카페에 가서 해결하고 짐을 찾아가면 된다. 아직 오전이니 숙소를 예약할 시간은 많다. 호텔 2층으로 가서 글을 조금 썼다.
포시즌즈 호텔의 2층과 3층에서는 글을 쓸 수 있는 테이블도 많고, 차 한 잔을 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눌 소파도 많다. 이야기를 나눌 만한 동행은 없었지만, 언제든지 앉아서 글을 쓸 꺼리는 많았다. 나는 테이블에 앉았다. 어제도, 그제도 앉았던 곳에. 그리고 글을 조금 썼다. 많이 쓰지는 못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부산했다.
호텔을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멋진 공간에 앉아서 책도 읽고 글도 오랫동안 쓰고 싶었지만 부산한 마음에 일어섰다. 아마도 숙소를 에약해 두어야 글을 쓰든, 여행을 하든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부산한 마음도 오늘 밤에 머물 숙소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호텔 앞 스타벅스의 무료 와이파이는 음료 주문 하나당 30분만 허용된다.
호텔을 나서서 처음부터 스타벅스로 향하는 길과는 반대편 길을 택했다. 먹을거리도 먹으며, 여유롭게 예약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중심가에는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을 할 만한 카페보다는 음식을 들기 위한 카페가 많았다. 배가 고파 마틴플레이스 근처의 푸드코트에 들어갔다. 호주 대도시의 푸드코트에는 정말 다양한 세계 각국의 음식이 있다.
치킨 브리또
아메리칸 스타일 음식은 물론이고, 인도, 중국, 일본, 이탈리안, 멕시코 등의 음식이 잇다. 이것이 이민의 나라 호주의 특징 중 하나일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의 특징이 조금씩 무여서 만들어진 나라, 호주. 거리 이름은 유럽에서 건너온 서양인들의 이름을 딴 것이 많다. 호주에서 세계를 느끼며, 나는 멕시칸 식당에서 치킨 브리또를 시켜 먹었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 중에 빠진 대륙도 있다. 아프리카여 서운해 마시라. 그대의 대지에서 태어난 이들도 호주에 있더라. 오늘 택시를 탔을 때, 나는 도무지 기사의 발음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운전하면서 경쾌하게 떠들어댔다. 그도 기본적인 영어만을 쓰는 듯 했다. 그에게 물었다. 어디 출신이냐? 신나게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콩고!
나는 결국 한 시간여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호텔 앞의 스타벅스로 왔다. 조지 스트리트 - 마틴 플레이스 - 맥콰이어 거리 - 시드니 하우스 - 서큘러 키를 돌아서 왔다. 마지막으로 시드니 하우스를 본 것으로 위안 삼아야겠다. 나는 사진 속의 저 자리에 5분 동안 누워 있었다. 잠들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오고 가서 그러지는 못했다. 폐가 될까 봐.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르바처럼 자유인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엔 나는 용기가 부족하고,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 오늘 같은 경우도 폐가 될까 봐 잠을 못 잔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웠다. 폐가 될 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 곁에는 실제로 누군가가 벌렁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었고, 그걸 두고 현지인들은 전혀 폐라고 생각치 않을 수도 있고.
스타벅스에서 모카라떼를 시켜서 인터넷을 할 때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30분이라는 시간 제한, 느린 인터넷 속도, 당일 예약' 이라는 3중고를 넘어 27분 만에 예약에 성공했다. 하마터면 차 한 잔을 더 마셔야 할 뻔 했다. 새롭게 예약한 곳은 센트럴역 부근이다. 처음 시드니에 온 날, 머물렀던 숙소와 도보로 10분 거리다. 처음과 시작이 연결되는 느낌이 좋다.
오늘 밤 묵을 메트로 호텔은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10만원이 채 못되는 가격(할인가에 예약했다)에 비하면 시설도, 위치도, 서비스도 좋았다. 와이파이 사용료도 바이브 호텔보다 저렴했다. 다시 시드니에 온다면 그리고 하룻밤 숙박료 예산이 12~15만원 정도라면 센트럴 구역에서는 메트로 호텔도 괜찮겠다. 킹스크로스에서는 바이브 호텔이 좋고.
객실에 들어와 나는 잠부터 잤다. 조금 피로했다. 20여분을 자고 나니 좀 나아졌다. 오후 6시가 다 되어갔다. 이동일은 이렇게 시간이 훌쩍 지난다. 오늘은 카페를 찾느라 보낸 시간도 꽤나 걸렸다. 카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걸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걸으면서 다양한 것들을 관찰하고 구경하지 못했다.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시간 동안 걸어도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인식되고, 나는 다른 것들을 본다.
이 사실이 꽤나 중요하게 다가왔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현재를 살면, 당일 숙소 예약이라는 과업을 위해 카페를 찾으면서도 여행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구경할 수 있을까? 미리 예약해 두는 것도 해결책임을 알지만, 어떤 순간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싶은 나는 이런 화두를 품게 된다.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미리 염려하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