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호주 여행을 성찰하다
오후 6시, 호텔을 나섰다. 20분 즈음 눈을 붙인 덕분에 몸은 조금 나아졌다. 어딘가가 아팠던 것은 아니다. 다만 눈이 조금 시렸다. 오늘 오전부터 생긴, '통증'까지는 아닌 조금 불편한 '증상'이다. 20분은 시린 눈을 달래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었다.
점심은 거리에서 '치킨 브리또'로 떼웠으니 저녁식사는 조용한 곳에 앉아서 먹고 싶었다.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식사를 하며 여행을 정리하기 위해 펜과 수첩을 들고 나왔다. 비스트로(bistro)는 시끌할 테고, 어두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나 거리의 테이블에서는 뭔가를 끼적이기가 힘들 것이다. 호텔을 나서면서 생각해 둔 곳이 있었다.
택시를 타고 우회전을 할 때, '바이브 호텔'을 보았다. 킹스크로스에 머물 때 묵었던 호텔이었다. 시드니 곳곳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호텔인데, 호텔 1층에 있던 레스토랑 'CURVE'에서 식사를 했었다. 친절함과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다. 이곳 역시 비슷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대안이 될 만한 곳을 찾다가 결국 'CURVE'에 들어갔다.
사실 커브 앞에 다다라서 많이 갈등했었다. 킹스크로스 지점의 커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곳이 훨씬 고즈넉했고 아늑했고 세련됐다. 이곳은 호텔 레스토랑과 간이 음식점의 중간 즈음 되는 분위기였다. 더 돌아다니기에는 시간도 아깝고 피곤해질 수가 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냥 들어갔다. 비프 버거와 와인(메를로)을 주문했다.
식사를 하며, 이번 여행을 성찰했다. <2013 와우그랜드투어> 최고의 장면을 뽑기도 했고, 개인적인 명장면을 꼽기도 했다. '여행'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무엇이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지, 여행 도중 어떠할 때에 영혼없는 순간을 맞게 되는지, 여행의 장애물과 여행을 빛내는 것들은 무엇인지 등을 생각했다. 생각이 쏟아졌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색이 너무 늦었기에 얼마간은 후회도 들었다. 이번 여행에 대한 나의 결론이 '아쉬움'이기 때문이다. 2002년에 38일 동안 배낭을 메고 중국 전역을 여행했던 때, 나는 상하이 공항을 날아오르며 가슴이 울컥했다. 중국이 사랑스러웠고 내 여행이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2009년 54일 동안의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고 오면서도 짜릿함이 있었다.
이번 여행보다 3배 가까이 길었던 54일을 여행하면서도 더욱 오래 머물고 싶었다. 내내 혼자 있었지만 외롭지 않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머물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이번 호주 여행은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행여더 머문다고 해도 '재정비'를 하고 난 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여행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나는 다시 떠날 것이다. 그때엔 오늘 저녁식사를 하며 수첩에 정리해 둔 단상과 교훈, 그리고 여행의 의미를 잊지 않고 실천할 것이다. 여행에 관한 단상은 차차 정리하기로 하고, 우선은 내게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뽑아 낸 3가지만 적어본다.
- 이곳은 내게 무슨 의미를 주는가?
-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나는 지금 기쁨을 누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