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이 힘든 한가지 이유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고, 나는 눈을 떴다. 줄리 런던과 왁스의 음악을 들으며 마지막 짐 정리를 했다. 아침 식사로 딸기와 오렌지 그리고 호주 배를 먹었다. 크래커에 치즈를 발라 먹은 것도 기분 좋은 포만감을 준다. 창 밖을 바라보았다. 3층이라 시티의 전망이 보이기보다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상점들이 보인다. 시력이 좋다면 사람들의 표정도 보이겠지.
길 건너편에 있는 백패커하우스 'WESTEND BACKPACKERS'가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식사를 하기 위해 오가면서도 보았던 곳이다. 무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고, 하룻밤 숙박료는 30불 내외일 것이다. 이곳은 하루 인터넷 사용료가 15불이다. 이곳의 가격이 터무니없다거나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저곳은 인터넷 스피드가 터무니 없을지도 모르니까.
멜버른에 있을 때에는 '그린하우스'라는 백패커하우스에서 5일밤을 보냈다. 인터넷은 정말 느렸다. 특히 투숙객들의 사용량이 집중드는 저녁과 밤시간은 최악이었다. 느린 게 아니라, 불통인 경우도 많았다. 나는 일찍 자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사용하기로 최악을 벗어나며 그곳에서 묵었다. 더욱 불편한 것은 따로 있었다.
5일을 지내는 도중에 방이 한 번 바뀌었다. 두번째로 묵은 방은 정말 지저분했고, 소지품 정리가 엉망이었다. 5인실이었는데, 내 침대 위에서 생활하는 서양 청년은 놀라운 정도의 매너를 지닌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벗어놓은 양말과 신발에서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잠을 자야 했다. 나는 눈만 뜨면 방을 나와서 생활하는 것으로 마지막 3일을 잘 버텼다.
시드니에 와서는 줄곧 호텔에서 묵었다. 호스텔(=백패커하우스) 생활에 진저리가 나서는 아니었다. 나는 유럽 여행을 할 때에도 90% 이상을 호스텔에서 묵었었다. 장기 여행 때, 호스텔에서 숙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비용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시드니에 있는 9일 동안 호텔에서 살았으니, 카드 청구서가 걱정이다. ^^)
호텔에서 묵은 것은, 내가 그리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시드니에서는 배낭여행 스타일을 접고 싶었다. 나는 호스텔에서 생활하면 궁색해진다. 배낭 안의 옷을 다 꺼내지도 못하고 빨래도 덜하게 된다. 반면 호텔에서는 모든 짐을 꺼내어 서랍과 옷장에 정리해 둔다. 뭔가 단정해지고 쾌적해진다. (하지만 내 친구는 블로그 사진을 보더니 꾀죄죄하다고 했다. ㅜㅜ)
나는 모드 전환에 능숙하다. 오늘부터 다시 호스텔 생활을 하라고 하면, 호스텔 모드로 전환하면 된다. 세면도구와 잠자리용 의류를 금방 꺼낼 수 있는 곳에 배치하여 가방을 재정리하면 그만이다. 호스텔 모드는 비용 절약이 되니 좋다. 호텔 생활을 하라고 하면, 다시 모드 전환을 하면 된다. 이것은 더욱 쉽다. 잘 쉬고 서비스를 적당히 누리면 된다.
문제는 인간 생활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나는 시드니에서의 첫번째 숙소를 예약할 때에 호스텔부터 검색했었다. 이미 5일 동안 호스텔에서 생활하며 숙박료를 최저로, 여행경비 역시 알뜰살뜰을 이어가고 있었다. 여행경비 내역서의 숙박료 칸에 적힌 28불이이라는 숫자가 100불 이상으로 바뀌는 게 싫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여행을 왔는지, 어떤 방식의 여행을 하고 싶은지 하는 의도보다는 그저 지금까지 이어온 것을 계속 이어가려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려고 했다. 이것은 호텔에서 호스텔로 전환하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앞서에는 비용의 절감에 초점을 맞춰 변화를 거부하더니, 이번에는 아늑함에 초점을 맞춰 변화를 거부했다.
균형은 어디에나 필요하다. 장기 여행을 할 경우, 적절하게 숙박료를 조절할 수 있으면 여러 모로 좋다. 다양한 경험을 하기를 좋아하는 나같은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해 오던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변화는 단절을 요구하지만, 나는 단절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며 이유없이 종종 이전 방식을 고수하려 했다.
이것이 균형이 힘든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균형은 서로 다른 극단을 왔다갔다 하며 자신만의 건강한 중간 지대, 지혜로운 지점을 찾는 것이다. 왔다갔다 하려면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날 수 있어야 하는데,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떠남이 쉽지 않다. 때로는 줄곧 이어져온 숫자를 포기하기 싫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진짜 의도를 잊어버리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