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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여, 잘 있거라!

카잔 2013. 8. 29. 16:40

 

1.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어젯밤부터 생각했다. 나는 맨리(Manly) 비치에 가고 싶었다. '본다이'가 젊은이들을 위한 비치라면, 맨리는 가족을 위한 비치 휴양지란다. 나는. 하지만 가족을 위한 휴양지를 좋아할 만한 나이도 되었다. 맨리로 가고 싶은 이유다. 하나의 이유가 있다. 본다이가 유명하다. 그것이 이유다. 나는 너무 유명한 곳에 가는 곳보다 나만의 장소가 될 만한 곳에  좋다.

 

11, 체크 아웃 시간이다. 나는 체크아웃을 할 때까지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지 못했다. 갈등했다. 맨리로 것인지, 아니면 호텔에서 가까운 달링하버에서 시간을 보낼 것인지. 전자의 유익은 페리를 타고 오페라하우스를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비치에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빠듯할 있다. 후자의 유익은 숙소에서 가까우니 여유롭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른 점심을 먹으며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East Ocean Restaurant으로 향했다. 걸어서 5분도 되는 거리에 위치한 중국 레스토랑이다. 12 이전까지 먹고 나오면 얌차 타임이 적용되어 저렴하다. 걸어가면서 결정을 내렸다. 달링하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사실 마음은 맨리로 향해 있었다. 호텔을 나설 때만 해도 맨리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재촉, 이것이 맨리를 포기한 이유다.

 

맨리로 가려면 서큘러키로 가서 페리를 타야 한다. 페리로 30분이면 도착하지만, 선착장으로 가야 하고 얼마간은 기다려야 것이다. 기다리는 싫은 아니다. 맨리로 가려는 동기가 나의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호주 여행기를 들려줄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맨리는 좋은 스토리텔링 꺼리였다. 마지막 날에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여 다녀왔다는 것도, 페리에서 바라본 오페라하우스도 좋은 이야기꺼리가 터였다.

 

맨리로 가려는 목적이 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다시 말해 여행자로서 두루 많은 곳을 잘도 다닌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은 욕망때문임을 인식하자마자 나는 맨리행을 포기했다. 어젯밤 여행의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한 덕분이다. 나는 맨리 인증샷을 찍어 포스팅을 하는 것으로 마지막 날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의 여행지를 다녀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삶에 무슨 도움을 준단 말인가.

 

그것은 소유지향적 태도다. 여행 경험을 가졌다는 것을 추구하는 방식 말이다. 오페라하우스의 건축학적 의미를 살펴보거나 오페라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슬쩍 지나가면서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사진 찍어서 " 여기도 다녀왔어" 보여주는 것은 존재지향적 여행을 추구하는 내게는 깊은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유혹을 받는다.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은 강한 유혹이다.

 

2.

식사를 마치고, 달링하버로 향했다. 식사한 곳에서 5~10 거리다. 달링하버 쿼터의 어느 벤치에서 나는 책을 읽었다. 얼마 읽지 못하고 낮잠에 빠졌다. 깨어나니 달콤했고 개운했다. 다시 책을 조금 읽었다. 여행에 관한 작은 책인데 내용이 허접하다. 물론 일부는 좋은 단상이 담겼지만 전반적으로 문장이 조악하고 내용은 평범했다. 돌아가면 알랭 보통과 롤프 포츠의 <여행의 기술> 읽어야겠다. 여행에 관한 좋은 책들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구입한 론리 플래닛 여행책들도.

 

3.

CYREN 왔다. 맨리를 포기하게 되면, 식사를 하든, 와인을 마시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지난 21일에 달링하버에 왔을 때에 눈여겨 곳이었다. 그때, Nicks CYREN 눈에 들어왔는데 이후에 곳에 모두 들렀다. 닉스에서는 Sydney Rock Oyster 캥거루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오늘 사이렌에서는 Calamari Ring(오징어를 튀겨 소스에 찍어먹는 요리, 양파링처럼 생겼음) 먹었다. 와인 잔과 함께.

 

와인 잔을 마셨더니 기분 좋게 취했다. 알딸딸한 기운이 몸을 감돈다. 나는 책을 잠시 읽다가 노트를 꺼내,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 일들을 적기 시작했다. 여행에서의 동기부여를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다. 가지 항목을 나누어 적었다.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 해야 , 존경 받는 삶을 위해서 해야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공부할 주제를 작성하기도 했다.

 

사실 뭔가를 끼적이기보다 테이블에 있는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조금 취한 기분에 여행의 마지막 순간의 이방인과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보다. 그는 혼자였다. 내가 다가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불쾌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행하지 못했다. 나의 영어 실력으로는 시드니 멋지다느니, 달링하버는 무엇 때문에 좋다느니 식의 수준으로만 말할 테니까.

 

그런 식의 상투적인 대화는 노인이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대화가 아니다. 나는 호주의 삶에 대해, 잠시나마 노인의 관심사와 고민에 대해 듣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영어실력이 짧다. 벌서 번째인지 모른다. 블로그에서 영어일력을 한탄한 것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의 목록 중에 당연히 영어공부도 포함되어 있다.

 

4.

나는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적기도 했다. 연구원 명이 리스트에 포함되었고 내가 아는 작가도 포함됐다. 그러다가 문득 '구본형'이라는 사람이 떠올랐다. 이번 여행에서도 날마다 떠오른 사람, 구본형. 그는 한때 나의 선생님이셨다. 그러다가 문득 떠나셨다. 나를 떠난 아니라,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은 또 하나의 그리움이다. 이상 만나죌 없다는 사실에 순간 허망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썼다. "아… 구본형."

 

5.

나는 이제 CYREN 나설 것이다. 시간 후면, 호텔 앞에서 Airport Shuttle 타야 한다. 10 전에 도착하여 맡겨 짐을 찾고 기다리면 것이다. 호텔 까지는 넉넉하게 20분이면 도착할 터이니 여유롭게 걸어가면 된다. 지금으로부터 시간은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시간이다. 다시 시드니에 테지만, 다시 온다는 생각으로 여행하지는 않았다.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여행했다.

 

언젠가 다시 거야, 라는 생각으로 여행하는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추구하는 태도는 아니다. 다시 오기보다는 오지 못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다시 텐데 ' 하는 생각이 침투하여 마음을 다해 여행하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짧고, 여행할 곳은 많다. 다시는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은 나로 하여금 지금의 여행지를 사랑하게 만든다. 거리 곳곳을 애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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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34분만에 쓰다니, 이런 신바람이다!

맨리 포기는 좋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