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미용실이 무서울까?
미용실에 들어섰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인기척을 들은 직원이 달려왔다. "예약하셨어요?" 딱딱한 말투다. 나는 예약을 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했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말투였고, 난 '위축'되었다. 다시 물어온다. "담당하시는 선생님 있으세요?" 자신감이라고는 조금도 갖지 못한 소년처럼, 오른손으로 왼팔을 쓰다듬으며,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예약 안 했어요. 컷팅은 강희 선생님께 했었어요."
얼마 후, 나는 의자에 앉았고 강희 선생님은 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정황을 보아하니, 강희 선생님은 고참 대열에 속하나 보다. 나를 맞은 그 직원은 고참에 대한 예의를 다한 것일 테지.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이리 말했어야 했다. "지금 스케줄 어떠신지 확인해 드릴께요." 근데 내가 그녀에게 열 받은 게 아니라면, 왠 참견인가?! 내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호주 여행을 하느라 35일 만에 미용실에 왔다. 헤어 상태는 내가 봐도 지나치게 덥수룩하다. 헤어스타일, 이것은 나의 콤플렉스다. 곱슬머리라 지저분해지기 일쑤고, 머리를 감아도 오해받을 때가 있다. MT를 떠날 때 종종 이런 말을 들었다. "머리 감았어요? 안 감을 줄 알았어요." 사실 내가 봐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다.
콤플렉스가 있더라도 전문가에게 맡기면 관리가 되고 보완이 이뤄진다. 문제는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이 대개 자신의 콤플렉스를 스스로 감춘다는 데에 있다. 더욱 보살피고 관리해야 할 텐데, 반대로 행동한다. 감추거나 외면하거나 포기해 버린다. 나도 그랬다. 2011년 봄, 처음으로 JUNO HAIR에 갔다가 생각을 바꾸게 되기 전까지는.
헤어디자이너들은 과연 달랐다. 그들 덕분에 스타일이 조금 나아졌다. 한동안 깔끔하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2년의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졌다. 탈모가 시작되어 당시의 스타일을 할 수가 없다. 새로운 헤어디자이너는 M자형 탈모를 가리기 위해 머리를 내리자고 제안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디테일은 전문가에게! 나는 동의했다.
머리에 왁스를 바른 경우, 헤어컷을 하기 전에 샴푸를 한다. 나의 경우, 머리가 곱슬해져 있어서 제품을 바르든 그렇지 않든 샴푸를 하는 게 컷팅하기에 좋다. 헤어컷이 끝나고 난 후에도 머릿칼을 제거하기 위해 머리를 감는다. 두번째는 여자 직원이 감아줬다. 내가 이 미용실에 오는 이유 중 하나는 남자 직원들이 많아서 그들이 머릴 감아주기 때문이다.
여인이 머리를 감겨주니 머리숱이 걱정되었다. 그냥 넘어가주면 좋은데... 아니면 내가 먼저 '머리숱이 좀 적죠?'라고 말을 걸까 하며 생각하는 사이 그녀가 말했다. "두피가 딱딱해져 있으시네요. 브러쉬로 자주 두드려 주세요. 고객님, 앞머리 숱이 좀 약하시잖아요. 두드려서 두피가 부드러워지면 탈모에도 도움 되세요."
으악!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숱이 '없다'고 하지 않고, '약하다'고 표현해 주어 고마웠다. 자기 딴엔 배려였을 것이다. "머리숱 약한 게 바로 보이나봐요?" "그럼요, 저희는 보면 바로 알지요." 이 말에는 별 대답을 못했다. 사실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그것도 봤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요즘 이런 사람 많아요."
"많아요? 그래도 저는 조금 빨리 시작된 것 같아 부끄러워요."
"몇 살이신데요?"
와! 그녀, 성격 한 번 시원하다. 초면에 몇살인지를 묻다니. 그리고 난 나보다 열 살은 어린 여직원에게 순순히 대답하다니! "여섯시요. 서른 여섯." 시원한 그녀도 이 말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빠르긴 하네, 라고 생각한 걸까. "미용실에서는 부끄러워 마세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진솔해서 좋았고, 시원해서 통쾌했다. 그래, 뭘 부끄러워하고 난리야.
요즘엔 곱슬머리여도 좋으니, 머리숱이 풍성하기를, 아니 지금 수준만이라도 꾸준히 유지되기를 바란다. 친구들과 비추어보면 항상 나는 조숙했다. 꿈을 찾은 것도 빨랐고, 삶에 대한 이해도 빨리 찾아왔다. 그것까지는 좋았으나, 탈모도 빠를 줄은 몰랐다. (아마도 노안도 그들보다 빠를 것 같다.) 받아들이고 있지만, 처음엔 조금 울적했다.
처음으로 두피관리를 받을 즈음에는, 갈 때마다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하는 자조보다는 '마음은 청춘인데 피부엔 주름이, 머리엔 탈모가 꾸준히 진행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삶의 유한함과 세월의 속절없음에 울적했다. 지금은 '이것이 인생이지' 하며 받아들여가고 있다. 인생은 끊임없이 결별의 연속이니까.
젊은 날의 자신과의 이별에서부터 소중한 사람들과의 사별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물건들의 분실에서부터 소중한 것들의 상실에 이르기까지, 인생은 헤어지는 것이고, 그 빈자리를 의미와 자기 존재로 채워가는 것이다. 결국엔 자신과도 헤어진다. "삶의 무상함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시작하는가 아닌가는 우리 책임이다"고 헤세는 말했다.
나는 생각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고 강희 선생님은 계속 내 머리를 만지고 있다. 그녀는 조금 바쁘다. 내 자리에 있다가도 다른 곳에 다녀오기도 했다. 미안했다. "다음엔 예약하고 올께요." 그녀가 수줍게 대답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정중한 대답이다.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예약을 하고 오시면 더 편하게 서비스 받으실 거예요, 라고 말했을 법도 한데...
그녀의 말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꽤나 긴장하고 있었다. 나를 강하게 맞은 직원 때문이 아니라, 이곳이 미용실이기에 그렇다. 미용실은 늘 내가 가기 힘들어하는 곳 중의 하나다. (다른 하나는 치과다.) 십대 때부터 그랬다. 미용실에 가는 것을 마치 어려운 과제 하듯이 치러냈다. 이런 식이다.
우선 손님이 적은 미용실을 찾는다. 지나가면서 동태를 살펴 손님이 많으면 그냥 돌아간다. 손님이 적을 때, 때마침 미용실을 찾은 것처럼 들어간다. 학창 시절 때에는 화려한 미용실에는 가지 못했다. (이건 지금도 그렇다.) 비용도 신경 쓰였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뭔가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2년 전에 주노 헤어를 갔던 게다. 내겐 화려한 곳이었다.
미용실에서의 주눅은, 어릴 적 나의 문화적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다니던 이용소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버렸고, 어머니는 생계을 유지하느라 나를 데리고 어딜 다니신 적이 없다. 게다가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미용실에 대해 들은 바가 전혀 없다. 누나도 없었고, 여자친구도 없었던 십대였다. 미용실 문화는 내게 다른 세계였다.
'미용실 가는 법'이라는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보고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죽'이라는 단어와 반대편에 있는 단어들과 가까워지지 않을까? 이를테면, 익숙함, 편안함, 만만함 등. (내게 그러한 곳은... 서점이다.) 그러다 보니 미용실은 어색하고, 늘상 다니던 이용소는 사라졌고, 그런데 머릿칼은 자꾸 길고... 마지못해 미용실에 가야 했다.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의 견해가 떠올랐다. 그에 따르면, 부르주아가 부르주아인 것은 그들이 특유한 생활양식을 발전시켜 그것을 소유했기 때문이란다. 중산층과 프롤레탈리아 사이에도 생활양식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중산층의 문화적 경험에도 낯설어 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내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논했던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문화적 경험의 차이"라는 단턴의 견해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도 비슷한 주장이 나온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 4장의 내용인데,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는 오펜하이머가 아닌 랭건에 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의 미용실 콤플렉스 혹은 미용실 증후군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빚어낸 것이다. 이것이 현재 나의 결론이다. 해결책? 물론 있다. 나는 한번도 미용실을 주제로 하여 여인들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미용실에 가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헤어컷을 받을 때 무엇을 요청하는지 등에 대해서 충분히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미용실'을 주제로, 미용실에 관한 나의 여러가지 궁금증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감추었던 바람에 지금까지 갖고 온 문제이지,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강희 선생님의 손질이 끝났다. 내 단상도 여기까지였다. "다음에 뵈요," 라는 말에 "네"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면서 카운터로 향했다.
이만 이천원을 건네고 돌아서며 든 생각,
'비싸지만, 브러쉬질에 대한 동기부여를 실천하면 본전은 뽑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