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아침 풍경
1.
아침에 눈을 떴지만, 몸이 무거웠다. 어젯밤 1시가 넘어서야 병원에서 나왔다. 자정을 넘겨 새벽 한 시까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경우가 일 년에 몇 번이나 될까? 약간의 피로감은 이 드문 일상이 안겨다 준 것이겠지. 이불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킨 것은 몇 분 후였다. 병원에 있을 친구와 그 친구에게 들이닥친 암이라는 무서운 질병에 생각이 이르자,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어서 할 일들을 하고, 병원에 가야지'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지요."
어젯밤에 받은 문자 메시지다. 친구 병문안을 핑계로 내 할 일을 못 다 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었다. "네 말이 맞다. 미안." 짧은 문자를 보냈다. 불쾌함은 없었다. 정말 미안했으니까. 마음 한 구석엔 친구 아내의 말을 품고 있다. "내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웃으며 살아야지요." 현명한 지어미였다. 나는 내 할일을 못하는 있는 어리석은 친구고. 밀린 일에 대한 부담감이나 답답함도 없었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신명나게 일을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구획을 지어 일상을 지내기가 아주 쉽지만은 않다.
쉽지 않으니 노력해야 한다. 내가 친구라면 그래 주기를 바랄 테니까.
2.
일을 하려지만, 에너지가 많지 않은 아침이다. 에너지가 충분치 않을 때에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낼 수가 없음을, 나는 안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안다. 이론은 간단하다.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언제나 실천이 관건이다. 이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기본이다. 여기서는, 나의 에너지를 채워 주는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글쓰기와 독서. 하나 더 추가하자면, 신체적 컨디션이 살짝 떨어졌을 때 오침.
모파상의 단편 두 개를 읽었다. <걸인>과 <불구자>. 비슷한 범주에 속할 만한 제목이지만,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걸인>은 19세기 말의 프랑스 시골 사회의 한 단면을, <불구자>는 인간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불구자>의 주인공이 보여준 태도가 인상 깊었고 감동적이었다. 이타적인 사랑, 소유하려 들지 않는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는데, 최대한 덜 이기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최대한 폐를 덜 끼치려 살아가려는 내게 감동을 줄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조금씩 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에너지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3.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20분 단잠을 통해 신체적 에너지까지 채우기 위해서다. 잠들기 전까지 누워서 책을 읽는 것은 달콤한 행복이고, 오침을 위한 즐거운 의식이다. 영국 소설에 대한 글 하나를 읽고서 잠을 청했다. 눈을 감았는데, 친구를 둘러싼 여러 상황(아내와 형이 면회 오기 전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나 등)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잠에 빠져들어야 할 텐데, 잠이 달아났다. 5분 즈음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다가 그냥 일어났다.
일단, 친구에게 갔다가 와야겠다. 오전에는 병원에 혼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