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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수술시작 & 신화

카잔 2013. 10. 24. 10:02

 

 

나는 이기적인 사람인데... 이리도 자주 병원에 드나들다니!

'난 이렇게 의리 있는 친구다'라는 숨은 의도를 안고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

이리도 애타는 마음으로 매순간을 친구 생각으로 보내다니!

 

요즘의 내 일상은 병원 방문으로 점철되었다. 하루에 두 번씩, 한 번에 서너시간을 있다가 오면 하루가 지나간다. 시간을 의식하는 습관 덕분에 어느 장소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느끼고 있을 뿐, 어느 곳에 머무는 시간을 아까워하지는 않는 편이다. 내가 머물 곳을 신중히 선택하고, 내가 현재 머무르는 곳에 마음을 흠뻑 주며 살아가려고 애쓴다.

 

친구의 병원에는 현재에 머무르려는 노력이 필요없다. 병원에 있으나, 일상으로 돌아오나 친구 녀석이 현재를 잠식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병원에 조금이라도 더 있으려고 하다가 일할 시간을 갖지 못해 오늘 강연 준비가 촉박해진 상황이다. 어제 아내와 친형이 대구에서 올라오셔서 가족이 있는 동안에는 병원 출입을 자제하려 했다.

 

블로그 포스팅도 자제하려 했다. 내 친구이지, 블로그 방문객들의 친구는 아니고... 벌써 여러번 언급도 했기에,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어떻게 읽혀질까 걱정되었다. 블로그의 컨셉이 일관되지 못하고 그저 '주인장의 삶과 생각'이긴 하나, 그래도 최소한의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애를 쓰기도 해 왔으니까. 매우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이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접고, 그냥 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방금 전 날라온 문자 하나 덕분이다. "오늘이 친구분 수술날이지요?! 마음 보태어 기도합니다. 희석님도 힘내시고요." 뜻밖의 문자다. 고마웠고 눈물이 났다. 내 친구들이 아니어도, 소식을 듣고 기도하고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내 직업이 작가이니, 글을 쓰며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 테고.  

세 가지 일상의 단면을 적어 본다.

 

1.

일어나자마자 친구 생각이 났다. 그리고 몸이 무거움을 느꼈다. 20분 동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떨림, 염려 등이었을 텐데, 마치 꿈을 꾸고 잊은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은 강연이 있는 날. 공부를 많이 한 주제라 자신 있지만, 그래도 청중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을 해야 하는 부분은 있는데 전혀 준비를 못했다. 업무 모드로 전환하기 위해 레싱의 예술비평서 『라오콘』을 조금 읽었다. 많이 읽지 못했다. 집중은 했지만, 길게 가지 못했다.

 

인터넷을 열었다. 밀린 메일에 회신하기 위해서다. 포털사이트에서는 프로야구 기사가 많다. '오늘이 한국시리즈 1차전이구나.' 이승엽에 관한 기사 둘을 읽었다.


-한국시리즈 개막을 하루 앞두고 있다. 현재 컨디션은 어떠한가.

▲그저 그렇다. 3주간 열심히 노력했는데 경기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노력했던 결과가 한국시리즈에서 나올지 안 나올지 하늘에 맡기겠다. 나는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와 비교한다면.

▲나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다. 더 잘 해야 한다. 경기할때 한 타석 한 타석 더욱 집중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국시리즈 3연패라는 건 야구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잘 해야 한다. 그 생각 뿐이다.

 

이승엽의 답변마다 내 마음이 오버랩되었다. 수술을 앞두고 가족들이 올라오기 전까지 자주 병원에 가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수술 결과는 하늘에게 그리고 두일이는 가족에게 맡기고 오늘, 내일은 병원에 가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있도록 하는 계획! 그리고 어젯밤 병원에서 돌아오며 내게 이렇게 읊조렸다. '정말 최선을 다했구나, 자식'

  

지금은 이 생각 뿐이다. '수술은 무조건 잘 돼야 한다. 그 이후부터의 함암치료야말로 투병의 시작이긴 하나, 일단 무조건 수술부터 잘 돼야 한다.' 그 생각 뿐이다. 

 

2.

친구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두일에게도 연락하기가 쉽지 않네. 수술은 들어갔는지, 수술 시간만이라도 알려줄래?" 초조함에 태연히 기다리려 했는데, 실패다. 사실 친구들이 모두 궁금해하니, 한 명이라도 수술시간만이라도 알아내어 친구들 카톡창에 공유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모두가 같은 질문을 아내에게 물을 수는 없으니. (그걸 물을 내 친구들도 아니지만.)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친구 아내다. 7시 30분 병실 나섬, 8시 수술 시작, 10시 경 수술이 끝남, 2~3시간 회복실에서 회복 후 12시 30분 이후가 되어야 병실로 이동. 이것이 문자를 통해 받고 있는 수술진행 상황이란다. 지금 어디에서 기다리느냐는 물음에 병실에 있단다. 목소리가 떨리는 듯 했다. 씩씩하던 그녀도 막상 수술이 시작되니 초조해졌을 것이다.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그녀는 나보다 강인하다.) 나는 위로나 힘을 전하기는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 떨리는구만, 떨려. 오후 강의인데... 달려가고 싶은데... 너희들도 마찬가지일 테지. 달려간다고 도움 되는 일도 없으니... 강의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수 밖에. 모두들 일들 열심히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때가 오면 또 달려가자." 친구들과의 카톡창에 남긴 말이다. 지금에라도 가서 형님과 아내랑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갈까 말까? 나는 참 생각이 많은 사람임을 느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방금 나도 모르게 형님과 아내에게 응원 문자를 보냈는데, 내가 너무 성가시게 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성가시게, 는 두 사람에게 미안한 표현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나보다.

(수술일과 같은 중요한 날에는 예민해지기 마련이고, 그런 날을 전후해 가족은 친구 면회도 불청객일 수도 있긴 하겠지, 이런 생각들이 생각을 많아지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다른 요소도 있냐고? 무지 많지. 말하지 않았나?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3.

화제를 돌려야겠다. (서서히 블로그 독자를 의식하기 시작해서다. 또한 나도 강연 준비를 해야 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없더라도 인문학 공부에 관심이 있다면 관심을 가져 볼 주제다. 서양 문명의 뿌리 중 하나이니까.

읽을 만한 저자들을 추천한다. 갑자기 추천하는 거지만, 즉흥적인 추천은 아니다.

 

1차 자료 :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원천이니, 가장 중요한 텍스트다. 다만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읽기가 지루할 수 있지만, 해석할 수 있는 지력이 생기면 거듭거듭 볼 수 밖에 없는 중요한 텍스트!

 

2차 자료 : 지금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해석한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지만, 그 중에 대중과의 매개에 가장 성공한 작가들은 다음의 세 명이다. 구스타프 슈바브(독일), 토마스 불핀치(미국), 조셉 캠벨(미국)이다. 입문하기에 가장 좋은 책으로는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다. 외국 서적이 싫다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도 괜찮다. 

 

중요한 책들만 소개했다. 기회가 되면 하나씩 리뷰도 쓰겠지만, 과연 기회가 올까?! ^^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생뚱 맞은 줄 나도 안다. 3번 글에 들어서면서, 나의 문체도 바뀌었고 주제도 갑작스럽다. 하지만 생뚱맞기는 내 친구의 췌장암도 마찬가지고, 친구를 둘러썬 상황도 갑작스럽긴 매한가지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것이 답답함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완전히 엉뚱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친구가 췌장암 4기를 이겨내어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을 펼쳐나가리라 믿으니까. 친구야, 너만의 신화를 창조해 가시게. 박두일 신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