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돕는 선율과 노랫말
나는 54일 동안의 유럽 배낭여행 중이었다. 행복한 50여 일을 보냈고, 2박 3일 파리 여행만을 남겨둔 때였다. 불상사가 발생했다. 줄곧 내 등에 달라붙어 유럽을 함께 여행했던 배낭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차역 보관함 앞에 내려놓고 자리를 비운 사이 가방이 사라진 것이다. 처음 겪는 도난 사건이었다. 가방을 두고 5~6미터 걸어가다가 뒤돌아보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보관함에 넣을까?’ 잠시 고민했다. 2유로라도 아끼자며 ‘괜찮을거야’라고 속삭였다. 그것이 가방과의 마지막 눈맞춤이었다.
당장 저녁에 입을 외투조차 없었다. 지갑과 돈도 모두 가방 속에 들었다. 한동안 주변을 뛰어다니며 찾았다. 소용없었다. 역사 주변을 헤매는 나의 뜀박질을 보면서 생각했다. ‘사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노력도 있겠구나.’ 이어폰과 여권은 살아남았다.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아 다행이야, 라고 생각했을까. 모르겠다. 몹시 안타까워했던 기억뿐이다. 여행의 추억과 기념품 그리고 곳곳에서 얻은 책자와 인쇄물을 몽땅 잃어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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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라도 헤아릴 수가 있을까. 태어난 직후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내가 받아 온 도움을.
예전엔 도움의 기원과 출처를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사람과 세월과 세계가 온 힘으로 나를 도왔다고 느낀다. 돕는다는 것의 가치와 실상을 속속들이 안다는 뜻은 아니다. 혼자서는 내 삶을 온전히 떠받치기가 힘듦을 인식한다는 의미다. 도움이 절실했던 날들을 잊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끔은 몹시 궁금해진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을까? 나를 도왔던 것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때마다 사람이 도왔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인간의 유아기와 청소년기는 그런 말을 하기도 전부터 부모의 도움으로 존재하리라.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는 외삼촌 내외가 나를 거두었다. 만으로 열세 살 때의 일이다. 학창 시절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인식조차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공부라는 지난한 의무를 친한 친구들 덕분에 견뎠다.
때로는 좋은 시절 덕분에 살았다. 데모의 연기가 꺼진 이후에 대학을 다녔기에 캠퍼스의 낭만에 검지를 찍어 맛볼 수 있었고, 마지막 연기의 내음이 존재했던 무렵이라 피가 끓던 시절에 5·18과 6월 항쟁의 민주 의식을 엿들을 수 있었다. 첫 책이 선사해 준 경험도 시절을 잘 만난 덕분이었다. 열심히 썼지만 졸고였고, 책 읽는 이들이 지금보다는 많던 때라 제법 팔렸다.
때로는 음악이 인생살이를 도왔다. 음악의 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내 삶에 등장했다. 때로는 가슴에 열정의 불씨를 피웠다. 때로는 내 엉덩이를 때리며 박차를 가했다. 쓰라린 마음을 위무하는가 하면, 인생살이의 요모조모를 돌아보라고 권한다. 오늘은 그간 받았던 음악의 도움을 들여다보자고 생각했다. 가장 중대해서가 아니라, 가장 이해하기가 쉬워서다. 머잖아 사람과 세월로부터 받은 도움도 살피기를 기약하며, 음악이 미치는 영향력을 헤아려 본다.
음악과의 인연 중 가장 선연한 기억은 두 장면이다. 하나는 내가 입학했던 캠퍼스였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추억이다. 먼저 파리로 날아가련다. 글을 시작했던 불상사의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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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막바지에 벼락처럼 떨어진 사고였다. 배낭 하나를 잃어버렸을 뿐인데, 눈앞의 세계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애타는 마음을 자제하면서 경찰관에게 도움을 구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경찰서 내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한 줌의 기억조차 없다. 눈에 보이는 유실물은 50리터들이 배낭이지만, 50일 간의 추억이 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달랑 여권 하나를 든 빈털터리 여행자가 되었다. 가장 아쉬운 분실물은 ‘한 권의 책’이었다. 여행 내내 손에 쥐고 다녔던 절친한 길동무 『괴테와의 대화』! 틈날 때마다 책을 펼쳤다. 가슴을 치며 읽은 구절이 수두룩했다. 여백의 메모는 또 얼마나 빼곡했던가. 책과 나는 길 위에서 숱한 대화를 나눴다. 함께한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새 인생책이 되었다. 나는 소중한 길동무를 잃었다는 사실에 한동안 망연했다. 유럽 스타일로 돌아가겠다며 장만한 옷가지보다, 이십 만원 조금 넘는 돈보다, 여행기 집필을 기대하며 장소마다 구입했던 자료보다 길동무와의 이별이 더 아쉬웠다.
마음이 허전해지고 쓸쓸해졌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몇 시간 동안 파리를 걸어다녔다. 배가 고팠지만 먹을 수 없었고, 다리가 아팠지만 버스도 지하철도 탈 수 없었다. 주머니에 동전 한 푼 없었다.
이름 모를 거리를 걸었다. 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도로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보행자 전용공간에 머물 때 음악을 켰다. 운명처럼 이상은의 <삶은 여행>을 택했다. 서쪽 하늘에서 태양이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사위로 자동차들이 쌩하고 달리고 있었다. 햇살이 사거리에 늘어선 낮은 건물들을 작별 인사하듯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때 노랫말이 선연하게 들려왔다.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첫 소절을 듣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시엔 도난 사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의미란 게 있기나 할까. 피할 수 있었던 불운을 나의 불찰이 빚어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던 터라 첫 소절의 노랫말이 반가웠다. 노래가 속삭이듯 권했다, 하얀 태양을 바라보라고! 나는 신호등 아래에 서서 건너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한 채 한동안 태양을 바라보며 노래를 거듭거듭 들었다.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헤어지고 나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드넓은 저 밤하늘 마음속에 품으면
투명한 별들 가득
어제는 날아가 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
마음이 여전히 쿵쾅거렸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느꼈다. 벌어진 사건을 내게 유익한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나는 그 과제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 아니, 과제를 직시하지도, 과제 앞에 나를 세우지도 못했다. 귀국 후 추억이 가득했던 유럽 여행을 돌아보지 않았고, 다시 찬찬히 읽었어야 할 『괴테와의 대화』는 구입하지도 못했다. 노트북과 함께 날마다 기록했던 여행기도 사라졌으니 잘 뛰어가다가 막다른 길에 들어선 셈이었다. 나를 새로운 길을 찾아내지 못했고, 그렇게 유럽 여행기를 쓰겠다는 계획도 일그러졌다.
경찰서에 도난 신고는 물론이고, 보험회사에 구제 요청도 했지만, 끝내 가방은 되찾지 못했다. 노랫말처럼, 없는 걸 아쉬워하지 말고 내게 남은 것들을 끌어안아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꾸만 잃어버린 것들이 떠올랐다. 남은 여행만이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결심했다. 이튿날 에펠탑을 찾았다.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이 스쳐갔다. 나는 그들처럼 명소를 즐기지 못했다.
마음이 헛헛해질 때마다 <삶은 여행>을 들었다. 음악을 들어도 위로가 되진 못했다. 대신 무언가가 영영 사라졌음을 진하게 느꼈다. 씁쓸한 상실감이 내가 통과해야 하는 의례라고 생각했다. 그때 파리의 낯선 거리에서 <삶은 여행>이 없었더라면, 그날 밤이 더 쓸쓸하고 추웠으리라.
*
음악에 깃든 또 다른 추억을 만나려면 스무 살 시절의 캠퍼스로 날아가야 한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희망 학과에 진학하진 못했지만, 앞날이 창창하고 가슴이 푸릇푸릇한 청춘이었다. 꿈과 이상이 가득했던 시절에도 눈앞의 현실은 엄연했다. 나의 성향과 적성을 모른 채로 주변의 권고로만 진로를 선택했던 지난날의 행위가 내게 대가를 요구했다. 1학년 첫 학기부터 전공필수 과목으로 고전해야 했다. ‘공업수학’과 ‘정역학’ 수업이 있는 날이면 마음이 어두워졌다. 고등학생 시절엔 인문학이 내게 더 어울리는 학문임을 몰랐다. 우리 과의 옆 건물이 인문대학이었던 대학생 때도 나의 적성을 깨닫지 못했다. 전공 공부로 괴롭고, 인문학의 희열을 몰랐던 시절을 나는 어떻게 견뎠을까.
책과 음악이 구세주였다. 나는 전공 공부 대신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음악을 즐겼다. 나는 음악과 동행하며 삶을 살았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면 언제나 내 귀에서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나는 리듬과 선율을 타고서 세상을 유영했다. 문학적 상상을 펼치며(노랫말은 한 편의 시가 아니던가) 새로운 인생을 꿈꾸었다.
특히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전공 수업을 들으러 학과 건물을 향하던 길이었다. CD 플레이어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듀크 엘링턴과 콜맨 호킨스가 협연한 <Limbo Jazz>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피아노와 베이스, 심벌즈와 테너 색소폰의 함성과 속삭임이 영혼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듀크의 피아노는 명랑하게 뛰어다녔고, 호크(호킨스의 애칭)는 색소폰은 하늘로 솟아올랐다. 봄날의 나른한 기운을 우주로 날려버리겠다는 듯이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재즈였다. 나는 경쾌한 선율에 온 마음을 실었다. 한없이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구름 위를 걸어 강의실에 도착했다.
“호크는 테너 색소폰을 재즈 악기로 만든 장본인이다. 든든한 뱃심으로 거칠고 큰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이 악기를 새롭게 정의한 사람도 호크였다. 뮤지션들은 그와 같은 소리를 내야 했고, 그렇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호크처럼 연주하지 못한다면, 알토 색소폰으로 바꾸라고.”
훗날 제프 다이어의 이 글을 읽던 때, <Limbo Jazz>를 상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Limbo Jazz>는 나의 ‘인생 재즈’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이 있다면 나에게는 <Limbo Jazz>가 있다! 이 곡을 듣는 즉시 나는 스무 살로 돌아간다. 캠퍼스를 거닐던 희망찬 걸음걸이가 떠오른다. 서른 살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명랑한 기운으로 일상을 채우고 싶을 때면 <Limbo Jazz>를 듣는다. 가령, 마음이 괴로운 와중에도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면 나는 이 곡을 들으며 약속 장소로 향한다. 만남을 나의 우울함으로 물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기대한 대로 <Limbo Jazz>는 이내 즉효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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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목마다 음악으로부터 기운을 얻었다. 예술가들처럼 영감을 얻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쪽은 아니다. 위로를 얻거나 기운을 받아 인생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는 쪽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일상의 과업을 마주했고 음악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예술적인 마법에 빠져들 때면, 음악은 선율과 노랫말이라는 두 손으로 나를 번쩍 들어서 우주로 날려 보낸다. 우주여행은 때론 감성적이고 때론 이성적이다. 종종 의지적일 때도 있다. 밤 11시를 넘기며 와인과 함께 듣는 음악은 낭만이다. 음악 덕분에 빠져드는 사유의 세계는 이성의 선물이다. 가끔은 음악으로 인해 생의 의지를 다질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렇게 음악에서 기운을 얻어 생활에 집중한다. 음악의 세례는 지정의(知情意)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 셈이다. 때론 선율로 때론 시어로 우리에게 치유와 감동과 사색을 안긴다. 문득 그간 내가 감동한 선율 그리고 가슴을 쳤던 노랫말을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나의 삶을 돕는 선율>
명랑한 활력이 샘솟는, 듀크와 호크의 <Limbo jazz>
낭만적 감성이 그리우면, 존 콜트레인의 <Say it>
일상의 희열이 가득해지는, 폴 데스먼드!
거룩한 영성에 연결되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우주의 생기를 선사하는, 막스 리히터의 <Spring>
<내 삶을 돕는 노랫말>
인생살이가 고단해질 땐, 이상은의 <삶은 여행>
경쾌하게 살게 되는, 푸른하늘의 <혼사 사는 세상>
소유한 것들의 가치를 잊는다면, 와이낫의 <내게 있는 건>
친구가 그리운 날이면, 찰리 푸스의 <See you again>
주머니가 가벼워도 명랑하려면 김광석의 <나의 노래>
어느 원두커피 전문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커피전문가인 사장에게 동행이 물었다. 어떤 커피가 맛있어요? 나는 잠시 민망했고, 사장은 태연히 대답했다.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지요. 어떤 커피 좋아하세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 내게 맛난 커피도 누군가에겐 쓰다. 삶을 돕는 음악도 궁합이 있기 마련! 어떤 음악이 좋냐고 묻지 마시라. 사장처럼 대답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삶이 밝을 때도 어두울 때도 나는 음악과 함께 인생길을 걸었다. 어둠을 모르는 ‘가짜 빛’은 사위가 어두워지면 자취를 감춘다. 어둠으로 빚어진 ‘진짜 빛’은 어둠이 내려오면 비로소 찬란해진다. 더욱 환히 빛난다. 음악은 진짜 빛이다. 인생의 어둠 속을 걸을 때도 길을 환히 밝힌다. 앞으로의 인생도 음악과 동행한다는 사실이 사뭇 든든하다. 희망 하나를 품는다면, 음악을 자기 영혼을 제련하는 연금술로 삼았던 위대한 예술가들의 음악 사랑법을 조금씩 익혀가는 것이다.
지난날들을 돌아볼수록 느낀다. 음악의 도움이 지대했음을! 중요한 것은 '동행'이다. 홀로 짊어지기엔 삶의 무게가 힘겨울 때가 있지 않은가. 혼자 해내는 삶보다 함께 해내는 삶이 더욱 그윽하고 한층 드높다. 가치 있는 것들과 함께 걷고, 힘과 마음을 합하고, 연대하는 능력이 멋진 인생살이의 요체인 것이다. 내가 음악과 동행하는 이유다(음악을 모르는 인생이여, 부디 삶의 화를 잘 면하시기를)!
이 글은 시종일관 음악을 예찬했지만, 세상엔 다른 길동무도 많다. 배우자, 반려동물, 문학, 친구, (우리의 정신이 강하다면) 고통이나 부채도 길동무가 되리라.
누군가는 묻는다. 삶이 괴로운데 음악 들을 여유가 있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삶이 괴로우니 음악을 듣는다고! 누군가가 또 묻는다. 세상이 이리 아름다운데 음악 따위가 필요 있냐고? 나는 대답한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없이 고양하기 위하여 음악을 듣는다고!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가 깃든 미장센은 음악으로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장만옥이 골목길을 걸을 때, 양조위와 장만옥이 좁은 계단을 비켜갈 때 흘러나오는 <Yumeji’s theme>가 빚어내는 애틋함의 극치를 떠올려 보라. 나는 외치고 싶다. 인생을 최상의 미적 경지로 승화시키는 마술이 음악이라고!
이번 생, 부디
혼자 힘으로 살지도 말고
지상 최고의 구세주도 놓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