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손택에 관하여
다큐멘터리 <Rerarding Susan Sontag> 리뷰 (1/2)
1.
마음산책, 참 고마운 출판사다. 손택의 인터뷰 집 『수잔 손택의 말』을 출간하더니 이번에는 출간을 기념한 다큐멘터리 상영회라니! 손택에 관한 다큐멘터리이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미국 아마존에서도 DVD 판매는 없어서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던 터라(Audio CD만 있어서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상영회 소식은 무척 반가웠다. 한글 자막으로 이번 상영회를 준비했으니, 반갑고 고마울 수밖에. (참고로, 마음산책 출판사는 ‘마음산’과 ‘책’으로 떼어 읽는 게 설립 취지에 맞지만, 마음 + 산책으로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을 터이고, 나는 두 표현이 모두 마음에 든다.)
다큐멘터리를 본 직후에는 소감이 여러 가지였지만, 열흘 남짓 지나니 증발한 생각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더 기억을 회상해 볼 요량으로 글렌 굴드의 연주곡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굴드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손택이 글렌 굴드를 들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는 손택과 굴드에게서 공통점 하나를 느낀다. 지독한 고집, 참으로 지독하여 장인정신에 이르거나 걸작을 창조하거나 생에 굵은 획을 긋고야 마는 고집 말이다. 굴드가 무아지경의 경지로 건반을 연주하듯, 손택은 자신의 삶에 열렬히 몰입했다. 무아지경이 아니라면 황홀경이라도 창조해내겠다는 기세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y 글렌 굴드
www.youtube.com/watch?v=N2YMSt3yfko
2.
손택 또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십대 시절에는 예술적 삶과 일상생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고, 자신의 예술적 소명을 방해하는 것들을 거추장스러워했다.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이에 대해서는 손택의 일기 『다시 태어나다』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손택을 다루지는 않지만, 가까운 지인들과의 불화나 주변인들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손택의 작가적 헌신과 생활인으로서의 헌신에는 온도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손택의 친구(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왈, “손택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쪽은 아니었어요.” 손택을 회상하는 에세이를 쓰기도 한 작가이자, 데이비드(손택의 아들)의 여자 친구인 누네즈(Sigrid Nunez)는 손택의 괴팍한 성격을 묘사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자신의 에세이에서도. 요컨대, 손택은 자의식이 강한 이들이 지닐법한 최고 경지의 확고함과 열정을 지녔는가 하면, 그들의 보편적인 약점도 지닌 인물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매우 강인하여 평범한 이들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였고, 자기확신은 지나치게 단단했다.
3.
다큐멘터리의 7할 이상은 이미 알던 내용들이었다. 손택의 한국 수용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한가, 그렇다면 번역사)가 이제 15년이 되어가는데 초창기 번역본이 소개한 손택의 연보는 오기가 많다. 이를 테면, 손택 아버지의 사망년도는 1938년이 맞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나 Jerome Maunsell의 평전에서는 1938년으로 소개하는데, 『은유로서의 질병』 국역본에는 1939년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런 지엽적인 사실들을 확인하면서 감상했다. 물론 이런 지엽적인 정보 확인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다큐멘터리는 다음과 같은 개인적 유익을 주었다.
- 손택은 생전에 8권의 에세이집과 6편의 소설을 출간했다. 에세이는 모든 책이 번역되었고(국내 번역된 에세이는 7권인데, 이는 후에 ‘은유로서의 질병’과 ‘에이즈 그 자체’가 한 권으로 묶였기 때문이다), 소설은 번역이 늦다. 어쩌면 모두 번역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 『In America』와 같은 책은 전미도서상을 수상(2000)했는데, 나는 왜 손택의 소설이 상대적으로 덜 읽히는지 궁금했다. 인터넷 공간에도 소설에 대한 리뷰보다 에세이에 대한 글들이 압도적이다. 영화는 전미도서상 수상에 대한 한 평론가의 말을 들려주었다. “어떤 경우는 작품이 아니라 그 간의 경력에 상을 주기도 합니다.” 이 역시 다큐 감독의 관점이겠지만, 의문의 일부가 풀렸다.
- 책을 통해 느꼈던 손택의 강인한 성격과 독단적 면모를 재확인한 것도 유익이었다. 손택은 생전에 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데(아마 두 편인 것 같다), 손택의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는 가혹했고 그들에 대한 손택의 반응은 강렬했다. “그들이 틀렸어요.” 손택의 어떠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어떠한 면모일까?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깊은 자기확신과 자신감이라 할 수 있겠고, 달리 표현하면 독단적이라고도 표현되겠다. 일기나 책에서 자주 최상급을 들먹이는 점도 이러한 면모와 상통할 것이다. 그녀는 “이제껏 읽은 것 가운데 가장...” 이란 표현과 “최고의 작품”이란 말을 서슴없이, 자주 던진다. (개인적으로, 자기 감상에 대한 그러한 확신이 내게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보스니아 내전 당시, 사라예보를 방문한 손택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 계기가 손택의 사전 계획만이 아니라 그곳 상황과의 합작품이라는 점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 손택이 불어를 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다큐 속에서 보았던 손택은 예상보다 훨씬 능통했다. (내가 불어를 모르니 조금만 잘 해도 그리 보이겠지만) 기억하기로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꽤나 능통하다는 말인데, 손택의 외국어 실력은 큰 자극을 주었다. 내 마음 한켠에 어학에 대한 아쉬움과 욕심이 자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