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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창원에 갈까

카잔 2015. 12. 5. 22:19

1.
긴 하루였다. 새벽에 일어나 5시 45분 서울발 마산행 열차를 탔다. 마산에서 맞은 아침 기운이 상쾌했다. 겨울치고는 포근한 날씨였다.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중 나온 차를 타고 9시 25분에 작은 강의실에 도착했다. 푸짐한 간식과 미소가 나를 반겨주었다. 커피향이 그윽했다. 9시 30분부터 시작된 글쓰기(플로라이팅 5기) 수업은 오후 1시 남짓한 시각에 끝났다. 우리는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5시까지 대화를 나눴다.

 

어둑해질 무렵, 수강생 중 한 분의 배우자가 오셨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또 다른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저녁 7시 30분, 마산역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 분들은 집으로 가셨고, 나는 역사로 들어섰다. 11시간 만에 도착한 마산역에서 만난 5분의 여유시간에 양치질을 했다.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추어탕은 맛났고 카페 분위기가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온 종일 주고받았던 배움과 대화들이었다. 오늘은 올해 말을 가장 많이 한 날이다.

 

2.
아무래도 피곤하긴 하다. 열차에 몸을 실으면 곧바로 잠들 줄 알았는데, 아니 그러고 싶었는데, 단잠을 자지는 못했다. 어렵게 잠들었고 이내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고작 20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아직 2시간 30분을 더 달려야 한다. 문득 순간적인 갑갑함이 들었다. 얼른 이 열차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찰나이긴 했지만, 열차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생경한 기분이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피로한 일정이네.’ 뇌리를 스쳐간 생각이다.

 

생각이 잇달았다. ‘3~4시간 강연 + 대여섯 시간 대화 + 왕복 8시간 이동하는 일정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무리다’, ‘대화 시간을 줄이기는 힘들 테니(그러고 싶진 않다), 다음 수업 때에는 수업 전이든 후든 하룻밤을 자야겠다.’ ‘하루에 열차를 한 번만 타면 여행처럼 즐길 수 있겠지. 덜 피곤할 테니’, ‘내일 오전에도 피로감이 남는다면, 전혀 남는 장사가 아닌데...’ (머릿속 떠오른 생각들을 표현까지 그대로 썼다. ‘장사’라는 표현은 수업료에 대한 이해타산이 아니라, 매일 소중한 하루를 힘차게 맞이하고 싶은 개인적 가치의 발현이다.)

 

3.
내 잇속만 챙기며 사는 편은 아니지만, 나의 실리를 포기하며 살지도 않는다. 강의마다 나의 실리가 다르다. 홀가분하게 다녀와 강연료를 두둑이 받는 강연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많이 투자하되 수입이 훨씬 적은 강연도 있다. 강연료를 계산기가 아닌 마음으로 책정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다. 누군가에겐 불합리하게 보여도 좋다. 나는 내 식대로 받으면 그만이다. 불공정하지만 않으면 좋겠다. ‘내 식대로’가 ‘내 맘대로’의 이기심이나 편견과는 달라야 할 테니까.

 

오늘은 강연가로서 실리가 크지 않은 날이다. 예상했었지만, 첫 수업을 다녀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좀 더 확연해진다. 그런데도 나는 이번 결정이 좋다. 자기기만도 긍정적 조작도 없이 말하건대, 열 번이나 장거리를 오가야 하는 이번 강연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알아주어서가 아니다. 서울에도 내 강연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계신다. 경력을 쌓고 싶어서도 아니다. 1,400회의 강연 경력이 적지 않고, 점점 지방 강연은 꺼리게 된다(특히 대전 이남은).

 

4.
나는 왜 창원에서, 그것도 열 번이나 강연을 하기로 결정했을까. 분명한 이유가 있다. 참 좋은 분들이 나의 수강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연은 고작 한 달이다. 한 달 전, 나는 창원의 작은 독서모임 1주년 기념일에 참가했었다. 그 날의 토론 도서는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마침 나도 읽은 책이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니 수업을 했다. 여러 분들이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셨다. 그들은 지속적 교육을 원했고, 글쓰기 수업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수업 결정을 하기까지 갈등이 있었다. 순간의 열정은 아닌지, 무리한 결정은 아닌지, 일을 벌여두고 훗날 후회하지는 않을지 고민했던 것이다. 드문드문 고민하며 며칠을 보내고서야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의 결과로 오늘 첫 수업을 다녀오는 길이다. 내 선택의 결정적 배경은 두 가지였다. 1) 수업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보니 ‘이 분들 참 좋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2) 무엇보다 그들 중 한 분이 나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5.

그녀는 와우스토리랩에서 열심히 배웠다. 나의 지성과 그녀의 열정이 협력하여 새로운 삶의 단계로 성장했다. 그녀가 그의 사람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꾸려가는 현장을 보았다. 대개의 독서모임이 그렇듯이 독서력이 두드러지기보다는 열정이 남다른 분들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소재로 양면성과 독서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모두들 열광했다. (좀 뻔뻔한 발언이지만) 청중의 열광은 내게 자주 있는 일이다.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열광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내 결정을 이끌었다. 그녀처럼 심성이 곱고 배려할 줄 알고, 삶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번 보았는데 애틋했다. 나는 프리랜서로서의 그녀의 삶을 돕고 싶었다. 그녀가 창원에서도 지적 동학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서울에 있는 동학들과 대화하듯 조금 더 깊은 책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었다. 창원 플로라이팅(글쓰기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애틋한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선생으로서의 제자를 향한 선의로.

 

☆.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 아직 40분을 더 달려가야 한다. 창밖은 한밤중이다.
웃으며 생각한다. ‘여섯 분이 올라오시는 것보다는 한 명이 움직이는 게 낫지.’
이제 아홉 번의 수업이 남았다. 아홉 번의 행복이 남았다.
아홉 번의 피로조차 개의치 않을 행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