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갈매기와 언어적 환대
1.
오후 4시의 햇살은 따뜻했다. 와우들과 함께한 1박 2일 MT를 마치고 일행들과 헤어진 직후였다.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져 화사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흐린 날씨도 어느새 개어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귀여운 에피소드들로 출발선에 함께 서진 못했지만, 우린 같은 시간을 달렸다. 꽃은 거리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새벽 3시까지 우리 숙소에서도 대화의 꽃이 피었다. 작은 소란들로 삶이 분주했던 와우도 먼 걸음을 달려와 함께해 주어 더욱 뜻깊었다. 표현을 하진 못했지만, 한분 한분께 참 고마웠다.
2.
이번 MT의 핵심은 마라톤이었고, 귀가하는 길에 택한 원픽 여정은 무의도 해상관광탐방로였다. 느긋하게 거닐다가 갈매기를 말없이 관조했다. 활짝 펼친 두 날개로 활공하는 모습을 시샘하듯 바라보았다. 양파링을 던져주는 관광객을 제지할 수는 없어서 - 내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라는 생각만 하다가 - 건강치 못한 먹거리를 집어 삼킨 그네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어느 개체 한 마리와 교감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방적으로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갈매기 무리도 그들만의 언어로 끼욱끼욱거렸다.
3.
한 시간 동안 리처드 카니의 《급진적 환대》를 43~59쪽을 읽었다. 카니는 환대의 다양한 층위를 언어, 이야기, 신앙, 육체라는 네 키워드로 전개하는데, 오늘 읽은 대목이 '언어'였다. 자신의 언어에 충실하면서도 이방인의 언어를 환영한다는 것! 내가 늘상 하는 표현으로 전환하면, 화자는 적확한 기표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청자는 기의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상호협력이 곧 언어적 환대다. 이로써 나 또한 타자의 절대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차이를 주장하는 타자성의 현상학(데리다)에 반기를 드는 셈이다. 카니는 이렇게 썼다.
"레비나스와 데리다가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유사성은 필연적으로 그 어떤 형태의 차이보다 더 적대적이라는 가정은 현명한 논지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