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Nova/단상

씻고 달리고 쓰는 하루

카잔 2026. 4. 14. 17:35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과를 시작하기 전, 세안을 위해 손에 물을 받으며 생각했다. '눈앞의 오늘을 잘 살아보자!' 얼굴을 씻을 때마다 자주 『소학 小學 』이 떠오른다. 조선의 학동들이 유학에 입문하면서 가장 먼저 공부한다는 주자학의 기초 교재 말이다. 칠팔년 전 『소학』을 정성스레 읽었다. 당시 얻은 숱한 배움 중에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부터 쓸고 세안을 하고서 책상에 앉으라는 가르침을 참 좋아했다. 요즘엔 그리 못하지만, 아침마다 마당 쓸기와 세안하기를 오랫동안 실천했었다.

 

칠팔 년 전의 세월이 그립기도 하고, 몇몇 구절을 복기하고 싶기도 해서 책장에서 『소학』을 찾아서 펼쳤다. 찾으려던 구절은 '이른 아침에 해야 할 일'이라는 제목 하에 달린 글이었다. "안팎의 사람들은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을 입는다. 베개와 대자리를 걷고 방과 마루, 틀에 물을 뿌리고 청소한 다음 자리를 펴놓는다. 그런 다음에 각자가 맡은 일을 한다." 책의 여백에는 이 구절의 주요 한자어 관수, 의복, 침구, 쇄소, 포석이 적혀 있었다. 『소학』을  경건하게 읽던 내 모습이 그려졌다.

 

돌이켜보면 세안은 내게 작지만 정성스러운 의례요, 살뜰한 하루 경영을 위한 기도였다. 작은 일상도 소중히 여기면서 마음을 기울이면 의미로운 의식이 된다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세안을 하다가 『소학』을 떠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책을 펼쳐 구절을 음미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소학』의 저 구절에 공명한 것은 어느 것 하나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한 일상은 없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하는 세안부터 의례를 거행하는 마음으로 행하자고 생각했다. 오늘부터 당장 말이다. 

 

일상의 의례화는 내가 중요히 여기는 인생경영의 정수다. 세안처럼 경건하게 행하는 일상들이 늘 있었던 까닭이다. 한동안 발 씻기가 그러했고, 근년엔 달리기가 소중한 의례이자 기도였다. 빚을 갚아가는 생활이 고단하여 삶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면, 밖으로 나가 5km 정도를 죽도록 달렸다. 절망이 떠미는 기운이 강렬한 때는 5km를 4분 30초에 뛰었다. 나의 능력만으로는 결코 달릴 수 없는 기록이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인생이다. 고통의 추동이 신기록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나를 구원하던 시절이었다.

 

죽기살기로 비타 노바를 결심한 만큼 새로운 의례가 필요했는데, 세안과 달리기 그리고 일지쓰기를 발판 삼으면 되겠구나 싶다. 세안으로 하루를 열고, 달리기로 마음을 다잡으며, 일지를 쓰면서 오늘을 돌아봄으로 인생경영의 리듬을 창조하려는 생각이다. 의례는 전통을 향한 맹목적인 찬양도 아니고, 개인의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습관 또한 아니다. 더 높은 목적의식을 향한 여정을 지속하도록 의미와 방향와 기운을 제공하는 정신의 식사와 같은 같은 것이다. 함께 먹는 식사가 즐겁듯이 의례는 공동체 의식을 고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