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Nova/일지

어쩐지 뿌듯한 귀갓길

카잔 2026. 4. 16. 23:57

궁궐 답사를 다녀왔다. "계절은 봄인데, 가을 하늘 같아요." 일행 중 한 분이 말했다. 그야말로 화창한 날씨였다. 공기는 맑았고 하늘은 푸르렀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북악산도 희미한데, 오늘은 북한산 비봉 능선이 선연히 보였다. 설명을 위해 사진을 찍어 확대했더니 비봉 위의 진흥왕 순수비가 식별될 정도였다. 하늘의 축복 아래 따뜻한 봄볕과 함께 답사가 시작됐다. 

 

육조대로, 광화문, 경복궁을 걸으면서 '세종의 문화 혁명'에 집중하고자 기획한 답사였다. 종업원이 7천 명쯤 되는 회사의 임원단이 참여했고, 나는 설렘 반 부담 반을 느끼면서 답사를 준비했다. 준비라고 하니 거창한 느낌이 든다. 실상은 1) 늘 진행하던 콘텐츠 중에서 강조하고 싶은 주제를 선정하여 관련 내용을 선별하고, 2) 동선에서 만나는 문화재에 관한 설명의 디테일을 보완하는 정도였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말이지, 준비가 부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으로는 답사 때마다 서너 권의 책을 읽으며 나의 의식과 설명할 내용을 충실히 살찌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삶이 그리 만만하진 않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책상에 올려 둔 책들은 반의 반도 읽지 못한 채로 답사일이 다가왔다. 어제 귀가하는 길에 답사 동선대로 예행 연습을 했던 것이 나름의 최선이었다. 

 

답사는 무탈히 끝났다. 후일 참여하신 분의 피드백을 전해 받을 때까지 당신이 어느 정도 만족하셨는지는 나의 감에 맡길 수밖에 없는데, 그 감이라는 것이 어긋날 때도 많기에 홀로 예측하진 않는 편이다. 눈에 띄는 실수 없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하늘이 여전히 푸르렀다. 그제야 여유롭게 광화문과 하늘을 사진에 담았다. 푸르른 하늘 덕분인지, 무사히 마친 일과 덕분인지, 어쩐지 뿌듯한 귀갓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