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 4

그가 물었다. 사는 게 뭐냐고.

"사는 게 뭐냐?"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며 흐느끼던 형이 내게 물었다. 형은 존경하던 스승의 병문안을 다녀온 터였다. 스승은 위독하셨다고 한다. 그는 스승을 만나온 십수년 동안 성실한 제자였고 스승의 진실한 우정이었다. 그는 스승을 존경했고 스승을 그를 사랑했다. 나는 종종 두 분의 아름다운 사제지간을 부러워하곤 했다. 조금 전, 그는 내게 이런 질문도 했었다. "너네 부모님이 언제 돌아가셨다고 했지?" 나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고 대답했다. 형은 살아오면서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스승이 계신 병원을 나서며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 순간, 한때 나의 소중한 분들이었던 어머니, 배수경 선생님, 친구 재민이가 떠오른다. 형이 말을 이었다. "인..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바쁘셨다. 학교 어머니회 일원으로서 학교 행사를 돕거나 교회 집사님으로서 결혼식 피로연 준비 등의 교회 행사에 참여하거나 회사에서 긴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와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바쁘셨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가 생활비를 집으로 가져다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고단하셨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200원 짜리 '스콜'이라는 음료를 배달하셨다. 판자촌의 골목엔 비탈길이 있었고, 우리가 살던 허름한 집의 대문은 작았다. 100cc 짜리 오토바이를 대문 밖으로 내었다가 들이는 일은 힘겨웠을 것이다. 지아비는 심리적 안정을 주지 못했고, 생활고는 어머니께 육체적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나는 가난..

4월의 슬픔

#1. 어머니 기일 며칠 전, 4월 2일은 어머니 기일이었다. 올해로 열일곱 번째가 되었다. 세월은 지체함이 없다. 나는 청도 인근의 남성현 고개, 어느 작은 산으로 갔다. 엄마가 잠들어 계시는 곳, 앞에 서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 곳. 망자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기에 (그래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망자를 그리는 이들은 그의 뼈가 묻힌 곳을 찾는다.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기에 항상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그리움이 절절해지거나 특별한 날이 되면, 발걸음이 그 곳을 향한다. 묘하다. 지난 해, 출간한 책을 엄마 묘 앞에 두고 왔는데 아직까지 있을까? 책은 없었다. 궁금했지만, 의붓아버지가 가져가셨나, 하고 생각했다. 올해 기일에는 외삼촌, 외숙모, 외할머니와 함께 엄마에게 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生의 막다른 길에 막혀 답답하고 고통스러우셨겠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도 아셨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귀의 여행을 떠난 당신의 힘겨움을, 아픔을 느끼고 싶네요. 生을 향한 당신의 열심이 빛을 보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人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아픔으로 남아 마음이 슬픕니다. 당신의 아내가 이 슬픔을 잘 견뎌 내고 다시 밝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기력을 회복하고, 삶에 대한 기쁨을 되찾기를. * 나는 사별이 참 슬픕니다. 사별의 소식을 들으면 충격과 슬픔이 몰려 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어딘가 마음이 짠해지고 유족들에 대한 기도의 마음이 듭니다. 내 생에 ..

카테고리 없음 2008.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