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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의 서하당 선생처럼

카잔 2011. 9. 2. 12:13

[담양 2일차]
식영정을 지은 서하당 선생처럼

담양군에는 2개의 호수가 눈에 띈다. 담양군 금성면에 속한 담양호와 고서면에 있는 광주호다. 나는 물이 좋은가 보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호수나 강이 보이면 정차하여 잠시 바라보곤 했다. 사철 낚시를 즐기기에 좋은 담양호라지만, 나는 낚시를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윽한 풍광의 호수 너머로 개인 묘소가 보였다.

담양호


내 어머니가 계신 곳보다 자리가 좋아 샘이 나기도 했고, 수위가 높아져서 물이 차오르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가 들기도 했다. 수량이 지금의 상태로만 유지된다면 잠들어 계신 분은 참 좋은 풍광과 함께하는 셈이다. 허나, 글을 쓰는 지금에 드는 생각은 이렇다. '죽은 후에야 무슨 소용인가. 좋은 것이라면 살아서도 누려야지.'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오늘을 희생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을 살자, 자기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자, 효제를 다하고 이웃사랑에 힘쓰자, 등의 오래가지 못할 다짐을 해 본다. 여행 2일차에 맞이한 첫 풍광이 담양호였고, 해질 무렵에는 광주호 물가에서 석양을 감상했다. 소쇄원에서 명옥헌으로 가던 길에 차를 멈춰 한동안 석양을 바라보았다.

식영정 앞 국도변에서 바라본 광주호


일몰은 황홀하다. 낮 동안 열심 내었던 일을 마무리하고 쉼과 여유를 누리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하루 일과의 끝을 알리는 일몰에는 낭만이 있고 여유가 있다. 나는 일몰과 함께 일을 마감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알며, 생각한 대로 살아내는 의지력이 필요할 것이다. 일몰이 하루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처럼 하루를 매듭짓고 싶다.

석양을 맞이한 광주호

 

찬란하고 장엄한 일출처럼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기를!
아름답고 황홀한 일몰처럼 하루를 평온히 갈무리하기를!
 
일출과 일몰 사이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일을 조각하는 것이 하루경영이다. 담양 여행의 2일차 일정은 식영정, 전남대 강연 그리고 소쇄원, 명옥헌 여행이다. 너무 더운 날씨로 인해 주의 깊에 둘러보지 못한 2일차다. 그나마 식영정은 오전 시각에 도착하여 비교적 생기넘치게 돌아다녔다. 내실있게 둘러보지 못한 2일차에 대한 아쉬움이 지금에서야 느껴진다.

문득, 2009년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생각한 '멋진 여행의 3요소'가 떠오른다. 좋은 날씨, 체력 그리고 여유로움이다. 우선 날씨가 좋아야 한다. 맑고 쾌청한 날씨가 여행하기에 제격이지만, 비오는 날이 어울릴 때도 있다. 건강은 물론이고 쉬이 피로하지 않을 정도의 체력도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여행할 때마다 나의 튼튼한 체력에 감사해한다.

그리고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시간과 돈의 여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시간과 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갖지 못한 것에 신경쓰기보다는 가진 것에 집중하며 현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30분이라는 여유 시간이 주어져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그것을 제대로 쉴 수 있는 이치다.

여행의 3요소에 하나를 더한다면 '마음 맞는 동행'이 될 것이다. 나는 종종 홀로 떠나기도 하고 여행의 요소를 선정할 때에도 혼자였기에 동행을 제외했던 것이지, 동행이 결코 덜 중요해서가 아니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마음 맞는 이와 떠나는 여행이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즐거울 수 있다. 담양 여행 2일차를 여행의 3요소로 가늠해 보았다.

우선 날씨는 꽝이다. 너무 더워 조금만 걸어도 쉬이 지쳐 버렸다. 다행하게도 마음의 여유는 있었다. 여행 도중 3시간짜리 강연을 다녀와야 했지만, 미리 준비를 해 둔 터라 편안했다. 그 덕에 주어진 시간 동안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더운 날씨에 얼른 차로 돌아오긴 했지만 예상했던 여행지는 모두 돌아보았다. 다녀온 여행지를 하나씩 되짚어 본다.

식영정 입구를 지키는 노송


식영정은 마음에 쏙 들었다. 저 유명한, 하지만 내용은 전혀 모르는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탄생한 곳이 식영정이다. 내가 매혹당한 것은 이런 역사적 의미가 있는 명소여서가 아니다. 식영정(息影亭)의 뜻처럼 정말 그림자도 쉬어갈 만한 아름다운 정자였기 때문이다. 전남기념물 제1호에 걸맞게 노송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광주호의 풍광이 일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여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고 싶어한다. 하지만 질 높은 성공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고, 사회에 진입한 후에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삶의 질이 떨어진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대신 다른 목표를 추구할 순 없을까? 식영정을 지은 서하당 김성원 선생의 삶을 보며 든 생각이다.

식영정은 조선 중기의 문인 서하당 김성원(1525∼1597) 선생이 장인이자 스승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곁에는 자신의 호를 딴 서하당도 지었다. 김성원은 36세였던 1560년에 담양군 창평면의 성산에 식영정과 서하당을 지었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생각만 하고 있는 일을 서하당 선생은 행동하여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생애의 대부분을 성산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서적을 연구하며 지냈다고 한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는 것은 사회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살았다는 말이다. 한 때 천거를 받기도 했지만, 노모의 봉양을 이유로 잠깐 동안 머무르다 물러났다. 효제에 힘쓰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던 것이다. 그의 학문적 교류는 어떠한가?

식영정은 송갈 정철의 성산별곡(星山別曲)의 무대일 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문인들이 출입하여 시단을 형성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서하당은 하서 김인후와 임억령을 스승으로 모시는 한편 기대승, 고경명, 정철 등과 사귀었다. 하서 김인후 선생은 종묘 18현 중에서 유일한 호남인이다. 담양에서 멀지 않은 장성에서 김인후 선생이 강학했던 필암서원이 있다.

자연과 벗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출세보다는 사람됨을 택한 선비 정신을 흠모하면서도 나는 세속적이기도 하다. 돈을 벌기를 원하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싶다. 물론 16세기 사람의 생활 방식으로 21세기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치 말아야 할 풍요로운 가치나 정신이 있다면 그것을 닮고 싶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부모형제를 사랑하여 효제를 실천하는 일, 배움을 흠모하여 독서와 경험에 힘쓰는 것, 눈 앞의 이익보다 영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 스승과 동학들과 함께 어울리며 덕을 쌓는 일을 실천하고 싶은 것이다. 내 마음 속에는 늘 이런 학습과 덕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문명에 대한 비판 정신을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러분, 서하당 선생처럼 식영정을 짓고 자연 속에서 책과 벗하며 사십시오"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에 이끌린다. 모든 사람들이 서하당 선생처럼 사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저러한 삶에 끌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식영정에 얽힌 서하당 선생의 이야기가 내게는 자극과 떨림을 준 것이다.
<정송강 유적>
정송강 유적은 조선시대 문신 송강 정철과 관련된 유적지를 말한다. 식영적, 환벽당 그리고 송강정을 일컫는 말이다. 환벽당은 식영정 앞에 보이는 광주호 위에 있는 정자다. 송강정도 멀지 않다. 식영정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송강 정철은 식영정에서 <성산별곡>을, 송강정에 머물면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썼다.

 

식영정 앞 송강 정철 가사의 터

 

식영정을 나와 <들풀 산채정식>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전남대학교로 향했다. 오후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있었다. 전남대에서 식영정까지 25~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강연을 마치자마자 식영정에서 1km 떨어진 소쇄원으로 갔다. 조선 중기의 문인 양산보는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목숨을 잃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소쇄원을 지었다.  

조광조는 중종에 의해 등용되어 급진 정책을 펼쳤다. 그는 중종 반정 때 참가하지도 않고 부당하게 공신이 된 사람 78명을 가려내어 공신록에서 지워버렸다. 이에 앙심을 품은 훈구파가 중종의 총애을 받는 희빈 홍씨의 아버지인 홍경주와 짜고 일을 도모했다. 그들은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 肖 爲 王)'이라는 글씨를 써서 벌레가 먹게 했다.

'走'자와 '肖'자를 합하면 조(趙) 자가 된다.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라 하여 조광조를 겨냥한 것이다. 중종 역시 조광조와 신진 세력들의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배타적인 태도에 염증을 느끼던 터라 이들을 조정에서 몰아내었다. 조광조는 능주로 귀양가서 한 달 만에 목숨을 잃었다. 조광조가 38세 때인 기묘년에 일어난 이 사건이 기묘사화다.

조광조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이렇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급진적인 개혁자다. 이상을 현실에 실현하려고 목숨걸고 노력한 점은 높이 평가되나, 율곡 이이 선생의 비판처럼 너무 일찍 출세하여 경세치용의 학문이 아직 숙성되지 않았던 점이 아쉽다. "학문은 세상을 다스리는 데 실익을 증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상이 경세치용이다.

소쇄원 내 제월당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는 담양 창평면에서 태어나 15세 때 상경했다. 당시 사림들의 우상이었던 조광조의 문하생이 되어 공부했다. 17세 때 현량과에 합격하였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벼슬에 나가지 못했던 그해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유배지까지 스승을 모셨지만, 그해 겨울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사망하자 이에 충격을 받고 낙향한 것이다.

나는 양산보에 관한 안내문을 읽고서 그가 스승의 뜻을 잘 헤아린 것인지 의아했다. 소쇄원을 지은 나이가 17세였는데, 그 이후의 학문적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세속과 멀리하고 성리학에 몰두하였다는데, 왠지 조광조는 세속을 멀리하라고 권고하지 않았을 것만 같다. 조광조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으니 양산보의 행적에 대한 내 고민은 결론이 없었다.

다만, 사회 참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세속을 멀리하며 이론을 설파하는 소극적인 사회 참여보다는 혹 과오를 한 두 번 저지르더라도 평생 현장에 머물며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인물을 더 좋아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양산보의 행보가 마뜩잖게 여겨졌던 게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성향에 따른 개인적 선호도의 정도를 말함이다.

양산보 선생에 대한 단상을 글로 쓰니 이리 길어졌지만 실제로 생각한 것은 3~4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구체적인 시간을 밝힌 것은 소쇄원에 머문 시간이 그만큼 짧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앞서 밝힌 대로 날씨가 너무 더워 셔츠가 축축해질 정도였다. 소쇄원에 들어온지 30~40분 만에 나왔던 것 같다. 그저 성의없이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나왔다.

명옥헌


마지막 목적지는 명옥헌이다.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는 8월에 가야 좋다는데, 다행히도 나는 8월의 마지막 날에 갔다. 명옥헌은 정자 이름이다. 인조반정에 기여한 오희도의 아들 오이정이란 분이 꾸민 정원에 지어진 정자다. 명옥헌 원림에 들어서면 만개한 배롱나무 꽃으로 인해 입구에서는 명옥헌이 보이지도 않았다.

명옥헌 앞에는 연못도 있어 배롱나무와 함께 아름다운 정원을 이룬다. 연못을 한 바퀴 도는 데에는 여유롭게 걸어도 15분이면 족하다. 사실 이곳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라 생각했다. 여행객이 많지 않았지만 남자라고는 나 혼자였고, 모두 여성들이었다. 아마 다음 담양 여행에서는 명옥헌이 제외될 것이다. 명옥헌에 걸터앉아 내려다 보이는 원림이 아름답긴 하여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날이 어두워졌다. 

명옥헌에서 내다보이는 배롱나무


담양은 죽녹원, 관방제림 등 관광 명소가 많은 매력적인 여행지인 동시에 송강 정철을 위시한 가사문학의 고장이다. 슬로시티 체험을 통해 문명이 주지 못하는 삶의 방식과 철학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 대통밥, 떡갈비, 죽순요리 등의 별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치고 힘이 들 때 그리워질 담양이다. 다음 번 여행에는 성산별곡을 외워 가야겠다. 풍류 여행을 꿈꾸며!

들풀 산채정식의 담백한 반찬


<담양여행 추천코스>
찍고 턴 관광 사절! 기본적으로 1박 2일 일정을 권한다. 찍고 턴하는 식의 관광으로는 담양 여행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1일차는 담양읍 근처의 명소를, 2일차는 남면과 고서면의 명소를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1일차 추천코스 (담양읍내 주변)
: 죽녹원 - 점심식사 (국수의 거리 내 진우네국수집) - 관방제림 -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 간식 <김순옥 대잎 찹쌀도너츠> - 대나무골 테마공원 - 저녁식사 <한상근 대통밥>
2일차 추천코스 (담양군 고서면/ 남면)
: 식영정 - 환벽당 - 취가정 - 한국가사문학관 - 점심 <들풀 산채정식> - 소쇄원 - 송강정 

먹거리. 광주호 가는 길목에 있는 <들풀 산채정식>(061-381-7370)의 정식이 가장 흡족했다. 15,000원의 착한 가격에 담백한 반찬이 맛깔스러웠고 작은 떡갈비도 반찬으로 나온다. 담백한 맛의 들풀 반찬이 기억에 남는 곳이다. <한상근 대통밥>도 추천하고, 특히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에 위치한 <김순옥 대잎 찹쌀도너츠>는 꼭 맛보시기를.

숙박. 담양읍 북쪽의 용면에 펜션이 많고, 담양호 동쪽에 위치한 담양리조트(조금 비쌈)도 좋다. 용면이나 담양리조트에 묵으면 아침에 담양호를 잠시 산책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운이 좋드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걸 볼 수도 있다.

여행을 동행해 준 나의 애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