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책을 이야기하는 졸바 25

사다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사다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종인 역, The Saviors of God(카잔차키스 전집 『향연 외』에 수록) 1.강력한 책이다. 사유의 깊이와 너비가 비범하기에 그렇다. 감히 선언하자면, 향상심이 강하고 자기 성장을 위해 실제적인 고민과 노력을 해 온 이들에겐 위로와 자극 그리고 달려갈 푯대를 선사하리라. 부연 설명 없이 선언과 명제만 나열되어 있기에 모호하게 읽힐 대목이 많지만, 두어 번 읽어도 이해되지 않을 만큼 난해하진 않다. 내겐 곱씹어 새길 문장이 한 둘이 아니었다. 거듭하여 읽고 싶은 책이 됐다. 사실 두 번째로 읽는 중인데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면 대체 한 번은 읽을 필요가 무어란 말인가! 2. 는 카잔차키스(1983~1957)가 1923년에 ..

우아한 선동이 더 강렬하다

[서평] 우아한 선동이 더 강렬하다앙투안 콩파뇽 『인생의 맛』 Antoine Compagnon, Un Ete Avec Montaigue 1.이리도 품격 있는 선동이라니! 몽테뉴의 삶과 사상을 40개의 에세이로 풀어낸 책 『인생의 맛』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의 ‘최종적이고 유일한 목표’가 독자들을 몽테뉴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라고 썼다. 1592년에 사망한 몽테뉴는 에세이의 원형인 『수상록』을 남겼다. (인문주의와 개인주의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 문학을 대표하는 저술이다. 책을 읽으면서 『수상록』을 펼치고 싶었던 순간이 도대체 몇 번일까! 마흔 번에 가까웠으리라. 모든 글을 읽을 때마다 몽테뉴가 궁금해진 셈이다. (수년 전 ‘몽테뉴 스터디’도 했기에 전혀 모르진 않지만 더 깊이 알고 싶..

칭찬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한다

-『어떻게 의욕을 끌어낼 것인가』를 읽고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 / 토리 히긴스, 한국경제신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캔 블랜차드의 책 제목이다. (물론 본래의 의도대로라면 문장 끝에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붙였으리라.) 고래는 차치하고, 칭찬은 정말 사람을 춤추게 할까?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칭찬이 모든 사람들을 들뜨게 하지는 못한다. 물론 사람의 내면에는 인정 욕구가 존재하고 많은 이들이 칭찬에 행복감과 에너지를 얻지만, 누구나 칭찬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을 받으면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을 받은 마냥 어색해하고 당황해한다. 심지어 칭찬의 내용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동기를 부여받는 이들은 이 말을 믿지 않으려 든다. 누구나..

감동과 깨달음의 이야기보따리

감동과 깨달음의 이야기 보따리- 레이첼 나오미 레멘의 『할아버지의 기도』 나는 자주 글을 씁니다. 메모도 많이 하는 편이고, 어딘가를 여행할 때 사진도 적잖이 찍어대는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시집을 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고(실제로 80여편의 시를 쓰기도 했지요), 대학생부터는 언젠가 책을 내겠다는 목표로 꾸준히 글을 썼습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일도 즐겼습니다. 10년 동안 와우스토리랩의 리더로서 수업을 진행한 기록들, 수백 번의 강연을 하며 작성한 PPT 자료들, 책을 내기 위해 꾸준히 써 왔던 9편의 원고도 노트북의 폴더로 가지런하게 정돈해 두었지요. 그러다가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2011년 1월 19일, 노트북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겨 저장된 데이터를 모두 날려버린 겁니다. 복구를..

300년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진지하게 답변하셔야 합니다. 몇 살입니까?" "삼백서른일곱 살이에요." 답변을 한 에밀리아는 무려 337살입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발명한 묘약을 마신 후 영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체코의 국민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의 주인공 말입니다.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은 동요합니다. 묘약은 그녀의 후손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비테크라는 청년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그 약을) 공공의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인에게, 전 인류에게 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생명을 누릴 권리가 있단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 삶은 너무 짧아요! 인간으로 지낼 시간이 이토록 짧다니! 상상을 해 보세요, 이 인간의 영혼, 지식을 향한 갈망, 사람의 두뇌, 과업, 사랑과 창..

이런 책을 읽어야 할까

개인이 인류 공존의 담론까지 읽어야 할까 -『문명, 그 길을 묻다』를 읽고 "쉴 틈 없이 일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도 그랬고, 2만 달러에서 IMF와 함께 곤두박질칠 때도 다시 그 고지를 넘어야 한다고 힘을 모았다. 이제는 2만 5천 달러를 넘어섰다. 그런데 성장의 열매인 행복한 미래는 만기가 자동 연장되는 이상한 적금 통장이 된 것 같다. 질 높은 교육 혜택, 쾌적한 주거 환경, 맑은 공기, 푸른 공원의 시대는 언제 오는 걸까? 아니면 이런 숫자와는 상관없이 서로 비슷비슷하게 고생도 하고 절약도 하고 먹을 걱정을 덜어냈다며 조금씩 여가를 즐기던 20여 년 전이 더 실질적인 풍요를 누렸던 건 아닐까?" 『문명, 그 길을 묻다』의 저자 안희경 씨가 프롤로그에서 던진 물음입니다...

선택을 돕는 6가지 질문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분들로부터 카페 운영을 함께 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서, 나는 그렇게 몇 주 동안을 고민했습니다. 고민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떤 선택이 현명한 것인지 몰랐으니까요. 나는 선택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살폈습니다. 선택과 결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갖고 있으니까요. 헤아려 보니 일곱 권이더군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잘못된 선택은 대가를 치른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선택에 관한 좋은 책을 모아 온 덕분입니다. 좋은 선택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관해 이론적으로 설명한 책이 있는가 하면, 선택의 기술을 실용적으로 다룬 책도 있습니다. 『넛지』는 행동경제학의 이론으로,『탁월한..

균형과 깊이를 갖춘 비평가

저는 요네하라 마리의 를 읽고서, “설명하거나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마리의 매력”에 빠졌다며 호들갑 떠는 서평을 썼습니다. 그것은 서평이 아닌 감상문이었습니다. 해석은 하지 못한 채로 마리에게서 느낀 친밀감과 감상만을 잔뜩 늘어놓았으니까요. 사실은 찬미였습니다. 에세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형식미에 대한 감탄! 인물을 그려내는 표현력과 서사를 꾸려가는 감각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감탄하고 찬미하느라 해석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탄탄한 서사에 몰입하느라 생각하고 음미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긴 에세이인데, 라면 면발처럼 후루룩 마셔버린 느낌입니다. 어쩌면 나는, 서평은 가급적 (혹은 반드시) 해석을 포함해야 한다고 믿어왔기에 글을 쓰는 게 힘겨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64년, 수잔 손..

내 삶에 흥이 필요할 때

허균의 제2권을 읽었습니다. 노장의 학문을 좋아하여 예법을 무시하고, 속세를 피해 죽림에 모여 제멋대로 살았다 해서 ‘죽림칠현’이라 불렸던 이들의 고사(古事)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책의 첫머리에 다짜고짜 등장합니다. 이야기의 전문을 옮겨 봅니다. 혜강, 완적, 산도, 유영이 죽림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왕융이 늦게 왔다. 완적이 이죽거리며 말하였다. “속물이 또 와서 흥이 깨졌다.” 그러자 왕융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도 흥이 깨질 때가 있는가?” 이야기는 끝입니다. 이게 뭐야? 나의 첫 반응입니다.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책 내용은 계속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고사도 짤막한데, 나를 황당하게 만들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혜강은 성품이 대장장이 일에 잘 맞았다. 집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어 매..

가볍게 만나는 퇴계 선생

퇴계 선생의 시 한 수를 읊어 드립니다. 선생은 1548년 48세 때 충북 단양의 군수로 부임했는데, 백성들을 섬기면서도 자주 시를 지었습니다. 지금의 단양군 장회리 아랫마을에 있는 여울을 바라보며 지은 시랍니다. 힘을 써야 겨우 조금 앞으로 가고 손 놓으면 대번에 떠내려가지. 자네 만약 뜻이 있거든 잘 봐 두게 여울물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편역자의 해설처럼 “마음을 닦는 데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며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당부로 읽히기도 하고, 공부를 시작했으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괴로운 과정도 끝내 이겨내야 한다는 엄중한 조언으로 들리기도 하네요. 저의 해석도 그리 틀리진 않을 겁니다. 제자 이함형에게 보낸 편지에 아래와 같은 글도 있으니까요. “이제 겨우 공부를 시작했으면서 대번에 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