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Just Like Jesus'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0.05.11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친구에게
  2. 2010.03.19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꿈꾸며 (2)
  3. 2010.01.18 사랑 (2)
  4. 2009.12.29 삶에서 당위성 걷어내기 (2)
  5. 2009.10.22 고난을 이겨내는 지혜 (4)
  6. 2009.07.26 큐티 (행 20:1~12) (8)
  7. 2009.02.16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울다 (12)
  8. 2008.12.18 특별한, 아니 아쉬운 새벽기도회 (4)
  9. 2008.10.11 하나님의 뜻 (8)
  10. 2008.06.15 오늘 예배를 위한 기도 (4)

친구야, 며칠이 지났구나.
너에게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며칠이 말이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슬픔이 너를 짓눌렀을 터이고,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정신도 없었을 테지.
愛쓰느라고 수고 많았다. 오늘은 푹 쉬기를.

그 며칠 동안 난 그저 많은 시간을 네 곁에 머무르고 싶었다.
일이 끝나고서 매일 찾아가긴 했지만,
정작 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아 미안하구나.

찾을 때마다 잠시 무릎꿇어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너의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앞으로도 기도 동역자로 설께.

너의 꿈 이야기를 들었지.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나와 함께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너의 꿈은 나를 움직였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어서,
나를 향한 신뢰가 있어서.

우리 멋진 인생을 살자.
아름다운 우정이 되자.
신실한 주의 제자가 되자.

그 며칠 동안 너 앞에 설 때에도
네 아내를 볼 때에도, 네 아버지를 뵐 때에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런 말도.

발인예배 때 목사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부활 소망이 있다고,
그러니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소망하라고 하셨지.

인간적인 슬픔이야 어떤 말로도 네게 위로 되지 못하겠지만,
오늘은 그 말씀이 퍽이나 가슴에 와 닿더라. 네게도 그랬기를 바란다.
나의 어머니를 뵐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에 기뻤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듯
죽음 역시 영생으로 부르시는 또 하나의 선물이겠지.
우리 선물을 풀어 마음껏 누리자. 두 번째 선물이 주어지기 전까지 한껏.

친구야, 부탁 하나 하자.
부모를 먼저 떠나 보낸 친구의 노파심이니
네가 이해하여 들어 주기 바란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아버지의 효성 지극한 아들이 되어 다오.
시간이 좀 지나면 아버님께 식사 한 번 대접할 기회를 다오.

난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기뻐하시지 못할 일을 많이 한 것 같아 부끄러워서.
너는 어머님을 생각할 때마다 기뻐하기를.
자랑스러워하실 일만을 날마다 해냄으로 말이다.

친구야. 평안한 밤 되길.
너의 벗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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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큐티나눔] 2010. 3. 19  요한복음 20:1~10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20장은 예수님의 부활 장면을 묘사한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녀는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끝까지 곁을 지킨 신실한 제자였다.)
마리아는 무덤 입구의 돌이 옮기워진 것을 보고,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한 제자와 베드로가 달려오고, 먼저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갔고 제자도 따랐다.
그들은 빈 무덤과 잘 개켜진 수건, 그리고 한쪽에 놓여진 세마포를 확인하고 떠난다.

오늘 묵상한 말씀의 줄거리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시신을 옮겨 갔을 것이라 생각했던 마리아는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가 무덤 안에 그대로 있음을 보고 당황했을 것이다.
이 정황을 보고서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어떤 이들은 이 상황을 제자들의 믿음 없음, 혹은 얼핏 보고 아무렇게나 믿었다고 해석했다.
나는 그러한 해석이 상황으로의 몰입이 조금 결여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몰래 카메라를 당한 경험이 있다면
몰래 카메라를 지켜보는 것과 실제로 당하는 것은 차이가 있음을 알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은 '어떻게 저걸 모를까? 저 정도면 알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뭔가 이상하긴 한데, 그것으로 종합적인 상황 판단을 하여 눈치채기는 힘들다.
우리가 늘 상황을 분석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지는 않으니까.
 
그런 점에서 제자들의 상황을 한 번 더 상상해 보며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어떻게 저걸 보고도 부활을 모를 수 있어?' 라는 해석과 함께
사람이 늘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을 분석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님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자면, 제자들을 믿음이 없었다고 보는 해석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한 사람의 형편을 고려치 못했거나
몰래 카메라를 지켜보는 시청자의 견해에 가깝다는 말이다.

오늘 말씀에서 내가 받은 은혜는 '막달라 마리아 제자'의 연대의식이다.
비록 상황 판단이 정확하지는 못했지만 저들은 상황을 서로 전했고, 함께 움직였다.
한 사람이 소식을 전했고, 소식을 전해 들은 두 명의 제자들은 달려갔다.
기독교는 외톨이 신앙이 아니다. 공동체성은 기독교의 중요한 본질이다.
삼위가 하나되신 하나님에게서도 공동체를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 사랑과 공동체 섬김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언젠가부터 나는 영적 고민과 거룩한 비전을 동역자에게도, 리더에게도 나누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그 경향이 짙어졌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함께 움직이는
3명의 제자들을 보면서 나의 영적 문제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간 나는 소중한 기도제목을 친구에게 나눈지도 꽤 오래 되었고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영적 우정과 상의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함께 움직이는 제자들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은혜였다.

(2절) (마리아가)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4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6절)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10절)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적용>
- 4월의 기도제목 나누기 : 주동, 건수, 그리고 와우팀원.
- 승현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기
- 독서 <에베소서>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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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누군가를 최고의 상태로 돕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
팀원이 나와 다른 업무 스타일로 일하더라도, 속도가 느려 내가 끼어들고 싶어도,
혹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것이 팀원의 성장에 필요한 것이라면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랑의 격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서로의 다른 점을 바라보기 시작한 연인들이
더욱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기 욕심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하나님과 가까워질 때, 나는 비로소 사랑을 지닌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바꾸시어 보다 지혜로운 결정, 누군가를 섬기는 결정을 선택하게 하신다.
거의 모든 경우, 내가 할 일은 정의와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했다.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에는 사랑과 정의로 결정하는 것의 유익을 잊어 버리거나,
혹 기억하여 그런 결정을 하더라도 결정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힘겹다.
그 때 나는 느낀다. 사랑이 내 안에 없었던(혹은 많지 않았던) 것이구나, 하고.

생각해 보면, 좋은 성품이 내 삶에 드러났을 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찹으로 탐스럽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내 삶에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랄수록, 좋은 나무가 되도록 힘써야 함을 떠올린다.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마태복음 7:17

사랑의 성령의 첫번째 열매요, 은사 중 제일의 은사다.
요즘 나는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아니, 사랑이 필요한 건가?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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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절망과 욕심 (1)
- <복음과 상황> 강영안 교수님의 인터뷰를 읽고

수원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복음과 상황> 1월호를 읽었다.
2010년부터 신설된 코너 '그 사람의 서재'가 관심을 끌었다.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을 만나 그들의 신앙과 세계관을 형성해 온 책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
책에 얽힌 사연, 그들의 사역에 영향을 미친 책 등에 관한 인터뷰다.
첫번째 주인공은 서강대 철학자 강영안 교수님.
집에는 언젠가(사실 기약이 없는) 읽겠다는 욕심으로 구입해 둔 강교수님의 책 두 권이 있다. 
『강교수의 철학이야기』와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

인터뷰는 흥미로웠다.
2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아쉬울 정도로.
2월호에 인터뷰가 이어진다는 안내글이 얄미울 정도로.

지난 해였던가. 어느 학자의 말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나는 읽지 않은 책에서는 인용하지 않는 것을 글쓰기의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말이 학자의 태도로써 옳은 것인지, 지적 생산의 방법론으로써 효과적인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나는 그 학자를 얼마간 닮아 있었다. 학자 이름을 기억해 둬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미심쩍은 기억이지만, 그 학자가 강영안 교수님이 아니었나, 하고 짐작된다.

인터뷰는 책과 학문, 신앙 이야기로 어우러졌다. 
책과 독서로부터 받은 영향을 위주로 전개되어 무척 흥미로웠다.
몇 가지의 대목을 소개한다.
먼저,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기보다 생각의 확인에 도움을 준 구절.

삶에서 당위성을 걷어내기

"신앙의 진지함을 위해서는 신앙에 대해서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자크 엘룰의 『뒤틀려진 기독교』 같은 책은 교회와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잖아요.
어떤 일이든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자명한 것은 없다." 모든 것에 대해 다시 물어봐야 한다는 거죠.
내가 신앙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그런 책을 통해 배웠던 것 같이 말이죠."

나의 신앙에서 당위성을 걷어내기 시작한 것은 내가 관념적인 사람을 깨닫고 나서부터다.
내가 믿고 있는 신념들은 나의 이성에 의해 걸러진 것들이 아니라,
그건 당연한 거니까, 그 사람은 권위자니까, 라는 당위성이나 지적 권위에 굴복한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에는 '믿음으로 거듭난 이성'을 한껏 활용하기 시작했다.
믿고 있던 것들에 물음표를 던져 회의하거나 반박했다.

회의는 확신을 더해 주거나. 관념을 걷어내고 삶에 구체성을 더해 주었다. 
'생각으로' 믿던 시절을 끝내고, '삶으로'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신앙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새롭게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 듯 했다.
스스로에게 물음표들은 점점 느낌표로 바뀌었다.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미구엘 드 우나무노'의 시를 인용하곤 했다.

신을 믿는 것

아무런 열정도
마음의 갈등도
불확실한 것도, 의심도
심지어는 좌절도 없이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신에 관한 생각을 믿고 있을 뿐이다.

강교수님이 소개한 자크 엘룰의 책은 20대 초반부터 관심에 두었던 책인데,
10년이 지나도록 읽고 있지 못하니 나의 삶이 참... 산만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언제 읽을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으련다. 그건 스스로 나의 목을 조르는 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천국에서 나를 만나면 『뒤틀려진 기독교』를 읽었냐고 묻지 마시기를.
읽었다면 내가 먼저 자랑을 해댈 테니 당신께선 내가 그 책을 읽었는지 아닌지 알게 되시리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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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고통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기뻐했다.
그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였고, 목적을 이루는 과정이라면 고난도 즐거워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광신 혹은 금욕주의로 이해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것은 지혜다.
다만 종교를 향하는 것인지라 심리적인 거부 반응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면 그것은 아름다움이라, 예술이라 일컫고
신앙인들이 신앙에 몰입하면 그것은 광신이라, 맹목적이라 일컫는다. 
균형을 상실한 점에서, 맹목적이라는 점에서는 둘이 똑같다. 
사단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의 감탄할 만한 총명함까지도 믿어야 하리라. 
예술가들의 몰입과 신앙인들의 광신을 이리도 절묘하게 착각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고난을 이겨내는 것은 분명 지혜다.
고난을 통해 인생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이 주는 교훈을 깨닫고 의미를 부여하며
결국에는 고난의 터널을 지나서 더욱 밝은 빛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우리를 성숙시킨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고난의 유익을 알기에.
영혼이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진실과 고난을 피한다. 아픔을 동반하기에.

고난을 반기며 슬기롭게 이겨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지혜롭다 하고,
고난을 반기며 즐거워하는 신앙인들을 우리는 광신이라, 금욕주의라 한다.
당신이 신앙인이라면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잘 다루어야 할 것이다.
당신이 무신론자라면 고난을 이겨내는 신앙인들의 지혜에 대하여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다. 삶의 모든 것들로부터 배울 수 있을 때 우리는 크게 성장한다.

나도... 지혜로운 신앙인이고 싶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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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3절)

어디에나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앞에 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
지혜롭게 물러나서 더 중요한 일을 찾아야 할 때는 언제인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없는가?

오늘 본문에서의 바울은 그들을 피해 마게도냐로 계획을 변경했다. 
아마도 주님의 뜻을 살피었을 것이다. 그 뜻에 복종했을 것이다. 
혹은 잠시 기도한 후에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께 둔 자는 자유하게 된다. 
본질에 깊이 뿌리박은 사람은 비본질적인 것을 뛰어넘는 자유를 지닌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본질은 그것을 더욱 그것답게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살아 있는 관계, 날마다 깊어지는 관계. 
내 삶의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 생활은 본질에 이상 신호가 생겼다는 뜻이리라.
미지근함은 현상이다. 현상에 드러나는 문제는 본질에 접근함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오늘 큐티를 시작하며 하나님께서 내 안의 한 가지를 터치하려 하심을 느꼈다. 
난 그것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드리려는 것으로 타협하려 했다. 아..!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 바울이 존경스럽게 느껴진 오늘 큐티다.
어쩌면 반대하는 사람을 어떻게 할까, 는 좋은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나 반대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을 변화시켜 더 깊은 영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9절)


말씀 듣는 중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바울은 그를 안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바울은 침착했다. 바울이 말했다. "He's alive"
본문만으로는 유두고가 잠시 기절했다 깨어났는지. 정말 죽었다가 회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유두고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12절)

그들에게 위로가 주어졌다.
상상컨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확신케 되는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이 더 큰 줄 아는 사람들도
위로와 흥분을 얻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곳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서' 이 사건을 간증했을 것이다. 불미스럽고 불행했던 사건이 변화되었다. 축복의 사건으로.

2006년 어느 예배를 드리던 중이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의 설교에 위로가 깃들어져 있음이 느껴졌다.
예배를 드리던 신자들은 자기 상황에 맞게 위로를 받았고, 회복과 용기를 얻었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 때 이런 기도를 드렸다. 
나의 강연과 글에도 위로와 희망, 용기를 깃들게 해 달라고.
  
이 기도가 응답되었는지는 독자와 청중들이 더 민감히 알리라.
유두고 사건을 보면서 오늘의 적용거리를 찾았다.
나는 작은 예수요, 작은 바울이 되고 싶다. 
내 주변의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 
이틀 동안 외로워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 같다.  
답답해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혹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친구, 후배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오늘의 말씀을 살아내야겠다.  


[적용]

1. 할머니께 오랜만에 손 편지 쓰기
 (불쑥 교회에 나가시기를 권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2. 군 복무중인 동생에게 편지쓰기
(그 녀석, 한 번씩 보고 싶다.)

3. 선교중인 L 위해 기도하고 회신하기
(영적 성장을 갈망하고 있는 L이 문득 생각났다.)

4. 친구 K 에게 손 편지 쓰기
(친구야... 마음으로 널 계속 응원하고 있다. 오늘 그 마음을 전할께.)

5. 와우팀원 그에게 연락하여 식사하기
(편안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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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나.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하여
호텔에서 혼자 운다.

만약,
주말에 이뤄진 두 번의 강연 중에
은혜와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계신다면,
전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리라.

온전히 하나님이 역사하셨고,
하나님께서 도우셨기에.

만약,
두 번의 강연이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면
전적으로 나의 죄인됨을 탓하고
진실하지 못한 내 삶을 탓해야 하리라.

말하고 글 쓴 바를 삶으로 행하지 못하여
내 말에 진정성이 떨어졌을 것이기에.

감사하게도
참으로 감사하게도
눈물이 주르르 흐를만큼 감사하게도
강연은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행위가 아닌
저의 존재를 바라봐 주시는 군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시면서도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사랑과 기대를 보내 주시는군요.
 
두 번의 강연 모두 호텔을 떠나기 전,
침대 위에 무릎꿇고 앉아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도와 주십시오.
강연을 아름답게 이끌어 주세요.
아무리 성공적으로 끝나더라도 한치도 제 덕분이라 생각지 않고,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겠습니다.
주님이 영광받으실 자리를 제가 차지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곳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의 위대함을, 인생의 감격을,
삶의 지혜 한 조각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기도를 하다가 가슴 떨림을 느꼈고,
이것이 강연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임을 알기에
평안한 마음으로 성당을 향했다.

강연 시작 전에 또 한 번 주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음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에 접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나마자 다시 무릎꿇을 수 밖에 없음은,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나를 사용하심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아~!
감사한지고.
하나님의 나를 향한 기대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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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어젯 밤, 교회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로 다른 부서여서 교회에서 만나지는 않지만
이렇게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낸다. 편한 사이라는 말이다.
"내가 왜 전화했냐면, 내일 새벽 기도회 나오라고."
이번 주가 특별새벽기도회 주간이니 참석해 보라는 것이다.
"오케이" 내가 생각해도 즉각적이고 시원스런 답변이었다.
누나도 한치의 주저함 없는 답변을 들은 것에 기뻐했으리라.

내 속마음은 이랬다.
기도회,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동했다.
그렇잖아도 기도하고 싶은 요즘이었고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더해지는 날들이었다.
누나 역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했을 것이고
누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긍휼히 여긴 누나의 기도에 하나님이 기뻐 응답하셨는지도.

사실, 오늘은 바쁜 날이다.
정오까지 원고를 업로드해야 하는 날이다.
나의 두 번째 책은 청소년 시간관리를 다룬 책인데, 몇 명과 함께 쓰고 있다.
오늘이 완성된 원고를 공저자들끼리 공유하기로 한 마감일이다.
오전 내내 매달려야 하지만 기도회에 대한 마음의 주저함은 없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이후 시간을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기도하는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의미 있는 일이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되심을 고백하고 지혜를 의뢰하는 순간이니까.

새벽 3시 30분에 눈을 떴다.
차를 마시고, 곧바로 원고 마무리 작업에 임했다.
2시간 가까운 시간을 몰입하여 책을 쓴 후에 기도회 나갈 준비를 했다.
씻고 밥을 먹는 일 말이다. 이른 시간이라 샐러드와 사과를 먹었다.
기도회는 집에서 가까운 커피숍에서 진행된다. 다행이다. ^^
정시에 도착했고, 처음 참석한 곳이라 조금 외진(^^) 곳의 의자에 앉았다.
곧이어 어떤 여인이 잠든 아이를 안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갓난 아이와 함께 참석할 만큼 기도에 간절한 그녀를 바라보며
나의 마음도 더욱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찬양을 했다. 기도하고 싶을 땐 잠시 찬양을 멈추고 기도했다.
깊은 임재는 아니었지만, 평안함과 간절함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찬양 인도자의 자연스러운 진행이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찬양이 끝나고 어떤 형제님이 나오셨다. 목사님인지는 모르겠다.
이 글의 어조가 담담하고 건조한 까닭은 이 분과 말씀을 전하신 목사님 때문이다.
나는 그 분들에게 몇 가지 아쉬움을 느꼈던 것이다.

형제님(?)께서는 대표 기도를 하셨는데 기도가 뜨겁지 않았다.
영으로 기도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기도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았다. 관념적이었다는 표현이 나을 것 같다.
테헤란로를 깨우자고, 비전을 깨우자고 하셨는데
추상적인 기도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도 없고, 인도자로서의 준비도 부족했다고 느꼈다.
테헤란로의 영성 상태에 대한 조사(유흥업소 수가 지난 해에 비해 10% 늘었다는 등의)를
할 수도 있고, 비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들려 주실 수도 있는데....
매일의 기도회가 특별하고 소중한데, 특별한 준비없이 나오셨다면 그건 정말 나태함이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형제님의 인간 이해에 대하여 아쉬움이 컸다.

가장 큰 문제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판단하는 마음을 가진 나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인도함이 없는) 교회 자체에게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교회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믿고 신뢰한다.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를 기대한다. 그분의 능력이 심히 크시기 때문이다.
회의 반, 호기심 반 혹은 
애정 반, 아쉬움 반으로 다가서는 나같은 교인에게도 한껏 친절함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형제님은 이런 말을 하셨고, 그와 동시에 나의 마음은 걍팍해졌다.
"주님을 향한 삶은 넉넉해집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삶은 풍성하지 않고 부족해집니다."
정확한 표현으로 묘사하진 않았지만, 이런 뜻의 말씀이었다.
몇몇 청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넉넉함과 부족함이 물질을 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날의 주제가 <물질을 나누고 사랑을 되받다>였기에 물질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세상을 너무나 단순하게 해석한 건 아닌가. 

하나님은 당신을 믿지 않는 비기독인들도 사랑하신다.
때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청빈(淸貧)으로 이끌기도 하시고,
믿음을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부를 주시기도 하신다.
부자들이 자신이 가진 부에 묻혀 더 큰 가치를 못 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부자들은 빈자보다 훨씬 아름다운 일을 하며 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가능성을 한 마디로 잘라 말하는 것이 불편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방식으로 기독인과 비기독인들을 사용하신다.
나는 형제님의 인간 이해가 풍성해지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들었다.
오! 교만한 보보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지어다.
이렇게 나처럼 맹랑한 청년도 보다듬어 주려면 인도자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이어진 목사님의 설교도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아쉽다.
첫째, 설교가 너무 길었다. 길었다는 점이 아쉬운 게 아니라,
그 자리가 새벽 기도회라는 점에서 아쉽다.
나같이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도 소망하는 자리가 새벽 기도회다.
얼마나 기도하고 싶었으면 새벽을 깨워 그 자리에 나갔겠는가.
충분히 동기 부여된 상태로 참석하는 예배자들이다.
한 소절의 찬양에 마음을 활짝 열고, 한 마디의 말씀에 꿇어 엎드린다.
그런데, 오늘은 말씀이 길어져 기도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내 기억으로는 30~35분 정도 말씀을 전하셨던 것 같다.
참석한 이들의 소원을 헤아리셨다면 조금 줄이셔도 좋았다.
말씀을 듣는 훈련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억울하다.
나는 김남준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좋아 일부러 그 분이 시무하시는 교회를 찾는다.
1시간 50분 예배 중에 90분 이상의 시간 동안 말씀을 전하신다.

둘째, 설교 말씀에 성경이나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았다.
나는 예수님에 대하여 알게 되는 설교가 좋다.
사실 목사님의 설교는 재밌었고 감동이 있었다. 
말씀 중에 등장한 목사님의 친구, 삶에 대한 이야기도 생생했다.
이 점이 아쉽다는 점이다. 하나님보다는 목사님의 삶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오늘 하루 중 서너 번 이상 목사님에 대한 생각이 났다. 
나는 새벽 기도 후에 쭈욱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싶었는데... 아이러니다.

나의 직업은 강사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지만,
종종 교회에서 특강을 하거나 간헐적으로 예배 시간에 강연도 한다.
목사님의 설교 방식이 꼭 내가 강연을 하는 것과 흡사했다.
강연은 나 자신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책 속 이야기보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승리한 이야기들이 더욱 강렬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두어야 한다. 
하용조 목사님은 늘 하나님을 중심의 설교를 하신다. 
이점은 많은 목회자 분들이 숙고해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나는 감동이 아닌 은혜를, 목사님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게다.

오후에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지 일년 남짓 되는 청년을 만났다.
같은 교회를 다니니 우연히 교회 얘기가 나왔고, 오늘 목사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나는 목사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분명, 어떠냐고 물었다. 야, 좋디, 라는 식으로 비꼬듯 묻지 않았다.
허나, 그녀의 입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에요, 너무 흥미 위주세요.
라는 동문서답 식의 답변이 흘러 나왔다.
이것을 뒷담화라 생각해도 좋지만,
일면은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채워지지 못한 거룩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신앙 1년차가 흥미 위주의 설교여서 아쉽다고 느낀다면
분명 그 설교에는 보다 경건한 메시지와 영적 도전이 포함되어야 할지 모른다.

이 글을 누가 읽을까?
목사님이 읽으셔도 좋겠지만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고
기독 청년이 읽어도 좋겠지만 유익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저 이곳을 들러 주시는 분들이 읽으시리라.
이왕 태어난 글이니 한 가지만의 메시지만이라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보보는 맹목적으로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점.
아마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러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머리로 판단하여 이것이 진리라고 하나님을 믿어 왔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지만... ^^) 
얼마 전, 누군가가 내게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을 읽으며 불편했지, 라며 물었다.
강한 기독교 비판이 많이 실려 있는 책이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이 책을 읽은 기독 청년 한 명은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사실을 그도, 나도 안다. 
나에게 어떠했냐고 묻는 그 분에게 많은 얘기를 못했다. "아니오"라고 말 밖에.
엉뚱하게도 이 블로그를 빌어 그 때 못한 나머지 말을 해야겠다.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은 작년에 내가 읽는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불편하기는커녕, 니체의 기독교 비판은 아주 반가웠다.
자신이 믿는 진리에 대한 공격에 열려 있지 않으면 배타적이 된다.
공격에 배타적으로 반응하면 생각이 멈춘다. 심하면 썩는다.
나는 어떤 진리가 정말로 진리라면, 공격을 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온갖 공격과 비판 속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공격이 오면 온 몸으로 맞아 더욱 강해지는 것이 참 진리이리라.
공격을 받고 무너진다고 무서워할 필요가 어디 있겠나.
무너진다면 그 때, 다른 것으로 빨리 갈아타면 그만이다. 

『다빈치 코드』로 공격당했을 때에도 반가웠다.
오히려 기독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만으로 세상을 향해 변호할 때 아쉬웠다.
세상에 대하여 제대로 변호하려면 그들의 언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독인들의 종교적인 언어에 아쉬움을 느꼈던 게다.
니체의 탁월한 비판에 반가웠다는 내 심정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왜 이해받으려고 하나?
기독교가 옹졸하고 배타적이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오직 구원에 대한 문제에서만큼은 양보할 수 없지만,
다른 모든 부분에서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기독교인들은 맹목적인 신앙인이 아니다.
기독교도 신자들에게 지적 자살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다, 싶으면 배교할지도 모른다.
그 배교는 나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거나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거나, 금지령이 너무 많아서, 라는
식의 개인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오직,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거나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거나
내가 믿는 믿음이 다른 진리에 의해 와해되면 나는 곧장 옮길 것이다.

이것이 불신앙인가?
내 신앙의 연약함이거나 부족함일지는 몰라도 불신앙은 아니라고 믿는다.
다만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나의 가슴으로 믿고 싶을 뿐이다.
나를 옹호할 수 있는 시 한 수가 문득 떠올라서 반갑다.
이 시로 관념적인 신앙에 대한 나의 불편한 감정을 대신한다.

신을 믿는 것
                          - 미구엘 드 우나무노
아무런 열정도
마음의 갈등도
불확실한 것도, 의심도
심지어는 좌절도 없이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신에 관한 생각을 믿고 있을 뿐이다.

[덧] 글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스스로도 알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두렵다.
다만, 이 글만은 나의 진심이기에 숨기지 않고 살려 내었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는 않지만 하나님 앞이라 생각하면 두렵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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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주의 뜻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품고 계신 구체적인 비밀 계획인가?
그분은 우리가 몇 날, 몇 주, 몇 년이고 소비해가며 그 뜻을 찾아내기를 원하실까?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뜻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성령의 능력 안에 살아가는 근실한 삶이다.
바울의 일차적 관심은 신자들이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방법에 있다."

"성경의 신앙 인물들에게 고뇌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고뇌가 아니라
그 뜻대로 살려는 고뇌이다."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섬김, 나눔,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미래의 길을 결정하느라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멀리한다면 결코 우리는 하나님을 드높이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가정과 직장에서의 몸가짐, 시간과 재능의 사용, 봉사의 각오,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태도 등 우리가 날마다 내리는 선택으로 결정된다."

"우리가 내리는 가장 힘든 선택은 결코 미래의 두 길 중 하나가 아니라 두 생활 양식 중 하나다.
하나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현 순간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그 계획을 알게 된다."

                                                                                   - 제럴드 싯처, 『하나님의 뜻』 중에서
Posted by 보보
 

하나님, 오늘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 충만히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그저 나아갑니다. 그저 나아갑니다. 그저 나아갑니다. 내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인 일이 기억나지도 않지만, 빛과 소금된 역할을 잘 감당하지도 못했지만, 그저 주님께 나아갑니다. 그저 나아갑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이 단 하나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이 고백만으로도 나를 기뻐 반기시며 맞아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의 사랑 안에 초대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내 안에 거룩한 열망을 넘쳐나게 하시고, 감동의 눈물이 내 영혼을 적시게 하옵소서.

아. 아. 눈물로 예배케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당에 처음 나온, 우리 교회에 처음 온 지체들을 축복합니다. 주의 거룩한 자녀에게 주님의 기쁨과 사랑이 충만하게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God Bless Them. 그들을 향한 우리 온 성도의 사랑과 기쁨이 제 안에도 넘쳐나기를 바라옵니다.


거룩한 성일에 드릴 나의 공적 예배를 주님 홀로 영광 받아 주옵소서. 찬양을 부를 때에 내 안에 어두운 부분들이 모두 사라지게 하시고, 기도를 할 때에 영혼을 전율케 하는 당신과의 소통이 이뤄지게 하옵소서. 말씀을 들을 때에 내 모든 감각을 열어 주님의 음섬을 듣고 삶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책의 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기대함이 세상의 명예를 넘어 당신이 제게 허락하신 소명을 이룸에서 오는 하늘의 기쁨을 향한 갈망이게 하옵소서. 인세의 십일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나의 작은 재능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케 하옵소서. 내가 재능의 주인인양 교만하게 행하지 않도록 나에게 겸양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재능을 나의 안녕이 아니라, 우리의 안녕을 위하여 사용하는 지혜를 함께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 삶에 게으름이 틈타지 않도록 성실함을 회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해같이 빛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러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기를 기대하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예수님, 만나는 예배, 감격이 있는 예배를 소원합니다.
이 모든 말씀을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자녀 이희석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