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497

안녕, 어제의 나여

7년 전, 연인과 함께 안동을 여행했다. 서울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우리는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과 일상을 만난다는 설렘을 매만지기에 적합한 공간을 찾았다. 어디 괜찮은 카페 없을까? 여행자들의 신 헤르메스가 그때 우리를 보살폈다. 마음에 쏙 드는 카페를 찾았던 것! 핸즈커피(안동댐점). 재즈 선율과 그윽한 커피 향에 매료된 카페였다. 한적한 시간대였는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들떴다. 카페에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의 떠들썩함으로 공간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감탄했다. “오빠, 여기 너무 좋아요.” “딱 우리 스타일이잖아.” 둘의 음악 취향은 비슷하다 못해 똑같았다. 그녀를 만족하게 하긴 쉬웠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 죄다 그녀의 취향이었다. 지직거리는 잡음이 포함된 1920~1940년대 녹음판 재즈곡..

일 년의 먼지를 털어내며

일 년이 지났다. 마지막 포스팅 이후 세월이 그리 흘렀다. 눈 깜짝했던 것 같은데, 몇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해가 바뀌었다. 세월의 유속을 절감하며 혀를 내두른다. 나는 여전하다. 홀연히 찾아든 감상에 잠깐 허망함을 느꼈다. 세월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지독히 당연한 일인데, 매년 당황스러워한다. 아직 난 이리도 진부하다. 무감각하거나 무지해서만은 아니리라. 하루하루를 사랑하고 인생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도 있으니. 세월이 '훌쩍' 지났다는 말은 그 기간이 짧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쉽다는 뜻이다. 해 놓은 일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 년 동안 여러 불행을 겪었고 많은 책들을 읽었다. 꽤 힘든 일을 두어 번 겪었다. 며칠은 잠들지 못해 뒤척이며 밤을 지새우..

마지막 불씨만 남은 화로

유투브에서, 언론에서 자주 뵙는 요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된 것이다. 5월 23일을 전후로 바쁘게 보냈다. 와중에도 틈틈이 영상을 찾아 시청했다. 5월이 다 가기 전에 자서전 『운명이다』를 읽고 싶었다. 오늘 그 마음을 좇아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4부 작별’을 읽었다. 두 번 울었다. 2008년에는 국가기록물 사태가 터졌고 이후 대통령에게 나쁜 소식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정치 인연들이 줄줄이 세무조사를 받거나 구속됐다. 형님이 구속된 직후에는 봉하 방문객 인사를 관두었다. 외출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 노짱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겨울 내내 가끔씩 학자들을 집으로 불러 보았다. ..

뵙고 싶어서 왔어요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 후 서촌 밤거리를 걸었다. 스승과 함께였다. 적당한 포만감과 기분 좋은 취기도 동행했다. 스승의 날이었지만 식사하는 동안 감사의 말 한마디 드리지 못했다. 특별한 날 홀로 스승 앞에 있자니, 이 말도 저 말도 쑥스러웠다. 꽃다발을 준비하려다가 꽃바구니를 연구실로 보내 드리기로 했다. 이런 계획도 말씀드리진 않았다. 둘이서 나란히 걷다가 스승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오늘 왜 저를 만나자고 했어요?” 뜻밖의 물음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웃으며 답했다. “뵙고 싶어서요.” (웃으시며) “제일 좋은 말이네요.” 마음에서 우러나오긴 했어도 어딘가 어눌해 보이는 말인데, 스승의 화답으로 우아한 대화로 승화한 느낌이다.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단골 술집을 향해 걸으며 나눴던 이 대..

세 줄 일기

배움여행에서 만난 분들의 에너지가 남달랐다. 서로 즐거움과 유익을 주고받는 관계로 깊어져 가면 좋겠다. 나도 무언가 기여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마음으로 경청했다. 이를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자리였으니. 같이 일하다 보면 난관이나 어려움도 만나겠지만 함께 넘어가는 경험도 해 보고 싶다. 존경하는 후배와 함께 컬처웨이 대표님을 뵈었다. 일상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사업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편안했고 따뜻했고 즐거운 대화였다. 작년부터 회사 행사에 네댓 번은 부르셨는데 인문정신 수업이랑 매번 겹쳐서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지금에라도 뵈어 반갑고 감사했지만 대표님을 이리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문경수 선생님으로부터 비보를 들었다. 홍승수 교수님이 지난달에..

오늘도 난 헤매고 그립니다

양평에도 비가 옵니다. 안개가 자욱하여 거실에서 내다보이던 산 풍광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분명 저기쯤 존재하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네요. 생경한 느낌의 아침입니다. 소멸이 아니니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하고 자꾸 찾게 되네요. 존재함을 알기에 찾습니다. 새삼 그리움이란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감정임을 깨닫습니다. '소멸'이든 '부재'든 여기에 없으니 그리워하고, 존재함을 알고 있으면 찾거나 헤매게 됩니다. 아침 시선이 헤매는 까닭은 제가 찾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절절히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와 깊은 친밀함을 누렸던 응보겠지요. 오늘도... 나는 헤매고 그립니다.

인연이 그리워지는 가을

대화의 희열! (2018년 9월부터 시작된 KBS2 프로그램명입니다.) 이리도 매혹적인 제목이라니요! TV가 없기도 하고 잘 보는 편도 아니라 송해 선생님의 기사를 통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관심이 갑니다. 위로, 희열, 감동, 자극을 얻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송해 선생님 편부터 보고 싶습니다. 아래 기사 때문이에요. 기사 만으로도 위로가 되더군요. 제 인생의 상실을 들여다보면 30~40대의 삶이기보다는 50~60대의 삶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이야 그렇다 쳐도 친한 친구들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갔기에 하는 말입니다. '92세 송해의 그리운 사람들'이란 기사의 마지막 두 문단을 옮겨 둡니다. 너무나도 슬픈데 희망적이어서... 가족이야말로, 특히 자녀야말로 삶의 ..

11월을 향한 뜨거운 기대

이제 막 카페에 와서 100개에 달하는 카톡을 모두 읽었어요. 집에선 인터넷이 안 되니 이런 수고를 해야 하네요. 차를 타고 5분을 달려 양수리 카페에 오는 ‘수고’ 말이죠. 조금 불편하지만 재밌는 일상이에요. 월말 며칠 동안만 겪는 불편함이니 일시적이고요. 물론 카톡을 하러 카페에 온 건 아니에요. 오늘은 인문정신 수업이 있는 날이니 외출해야 하죠. 창밖 풍광이 아름다워요. 초록, 연두, 주황, 노랑, 붉음이 어우러진 단풍들이 고즈넉하게 한강을 바라보고 있어요. 정말 그래요. 내가 단풍을 바라보는지, 단풍이 나를 바라보는지 순간 혼동될 만큼 저네들이 사람처럼 느껴지네요. 이런 표현은 과장이나 의인화가 아닌 지금의 제 감상이에요. 이곳에서 우리 셋이서 대화를 나누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울까요? 중고 도서로..

고마운 가을 아침

같은 풍광을 보고도 때마다 반응이 달라요. 기분이 좋을 때에는 감탄사가 나오고, 마음이 아플 때에는 한탄이 나오더군요. 오늘 아침의 가을 풍광은 여전히 아름다웠죠. 서정주의 가 떠오르는 아침이었습니다. 가을이 산에 부린 마술에 감탄하기보다는 그리운 시절을 회상했다는 말이에요.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었습니다. 이라는, 10여 년 전에 읽은 자기계발서를 어젯밤에 침대 옆 테이블에 두었거든요.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었어요. 처음 읽었던 당시, 나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저는 내게 필요했을 내용을 은근슬쩍 회피하면서 읽었거든요. 그리고는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다시 읽은 소감은 ‘후회막급’입니다. 책에 대한 후회가 아닙니다. 왜 그때 나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