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 후 서촌 밤거리를 걸었다. 스승과 함께였다. 적당한 포만감과 기분 좋은 취기도 동행했다.
스승의 날이었지만 식사하는 동안 감사의 말 한마디 드리지 못했다. 특별한 날 홀로 스승 앞에 있자니, 이 말도 저 말도 쑥스러웠다. 꽃다발을 준비하려다가 꽃바구니를 연구실로 보내 드리기로 했다. 이런 계획도 말씀드리진 않았다.
둘이서 나란히 걷다가 스승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오늘 왜 저를 만나자고 했어요?”
뜻밖의 물음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웃으며 답했다.
“뵙고 싶어서요.”
(웃으시며) “제일 좋은 말이네요.”
마음에서 우러나오긴 했어도 어딘가 어눌해 보이는 말인데, 스승의 화답으로 우아한 대화로 승화한 느낌이다.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단골 술집을 향해 걸으며 나눴던 이 대화가 지금도 마음을 적신다.
가로등이 드물어 어둑한 거리였다. 서촌 카페들이 내뿜는 은은한 조명이 정겨웠다. 내 토트백에는 정성스럽게 쓴 감사 카드와 『그리스인 조르바』 책 한 권 그리고 한정식 집에서 절반쯤 마시고 남은 ‘화요’가 들어 있었다. 이차를 위한 술이었다.
'™ My Story > 끼적끼적 일상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 년의 먼지를 털어내며 (2) | 2020.05.25 |
---|---|
마지막 불씨만 남은 화로 (0) | 2019.05.31 |
세 줄 일기 (0) | 2019.05.14 |
출간 소식을 알립니다 (2) | 2019.05.12 |
오늘도 난 헤매고 그립니다 (2) | 2018.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