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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갈매기와 언어적 환대

1.오후 4시의 햇살은 따뜻했다. 와우들과 함께한 1박 2일 MT를 마치고 일행들과 헤어진 직후였다.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져 화사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흐린 날씨도 어느새 개어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귀여운 에피소드들로 출발선에 함께 서진 못했지만, 우린 같은 시간을 달렸다. 꽃은 거리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새벽 3시까지 우리 숙소에서도 대화의 꽃이 피었다. 작은 소란들로 삶이 분주했던 와우도 먼 걸음을 달려와 함께해 주어 더욱 뜻깊었다. 표현을 하진 못했지만, 한분 한분께 참 고마웠다. 2.이번 MT의 핵심은 마라톤이었고, 귀가하는 길에 택한 원픽 여정은 무의도 해상관광탐방로였다. 느긋하게 거닐다가 갈매기를 말없이 관조했다. 활짝 펼친 두 날개로 활공하는 모습을 시샘하듯 바라보았다. 양파링을 던져주는..

Vita Nova/일지 2026.04.12

죽기 살기로 비타 노바

1. 고단한 삶이 3년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한낱 꿈이길 바랐던 그 일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한 노력도 허사였다. 되돌릴 방도가 없었다. 하릴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야심차게 기획하여 추진하던 일이 순항하다가 뜻밖의 암초를 만나 좌초되고 말았다. 마음의 타격만 입었던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일로 내겐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억 원의 빚이 생겼다. 그때는 몰랐다. 자산 1억과 부채 1억이 어떻게 다른지, 이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1억이 얼마나 큰 돈인지, 단기간에 갚아야 하는 큰 빚이 얼마나 삶을 옥죄는지 정말 몰랐다. 무지의 대가는 혹독했다. 삶이 달라졌다. 한 끼 외식이나 카페에서의 커피조차 사치였다. 3년 6개월 동안 혼자 카페에서 커피..

Vita Nova/일지 2026.04.10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새소리를 들으며 앞마당을 쓸고 왔다. 아니다. 쓸 때엔 새소릴 인식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 쓸고 나니 선연히 들려왔다. 합창이라도 하는 걸까. 십 수 종의 새소리가 일제히 지저귄다. 2주 전 집주인 할머니가 오셨을 때도 마당을 쓸었다. 정오 무렵이었다. “아이고, 땀 나겄어. 해 없을 때 선선해지면 하셔.” 오늘은 어른의 조언을 따랐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쓸었으니. 가을 낙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봄 마당도 사나흘에 한 번씩 쓸어주면 좋더라. 떨어진 낙엽과 꽃가루가 군데군데 뭉쳐 있기 때문이다. 마당과 함께 현관과 계단도 싸악 쓸어냈다. 오늘은 수요일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구별하여 분리 배출도 끝냈다. 내일 아침 일찍 해도 되는 일이었다. 손을 털며 거..

카테고리 없음 2019.05.22

나에게 최상의 책이란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 『자본과 영혼』을 손에 잡았다가 한 시간 가까이 읽고 말았습니다. 김영민 선생님의 산문집입니다. 에서만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로 출간된 작품이네요. 선생의 산문 하나를 읽으려던 계획은 ‘세 개까지만 읽지 뭐’ 하다가 손에서 놓지 못해 급기야 ‘마지막 딱 하나만 더 읽자’는 충동에 무릎 꿇고 말았습니다. 짜릿하니 손에서 놓기 힘들더군요. 10~15분의 시간만 할애하려던 계획은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네요. 선생님의 글은, 이라고 써 두고서 한참을 망설입니다. 글에서 받은 감동과 영감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쉬이 떠오르지 않은 겁니다. 깜냥이 된다면 ‘김영민 론’이라 할 만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렇지가 못하고, 그저 일개 독자로서 감상을 표현하면 그만이다 싶으면서도 자..

카테고리 없음 2019.05.15

길동무를 만난 기쁨

“나는 부끄러움이 많고 수시로 자책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소설가 이응준의 말이다. 부끄러움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늘 자책하고 나를 폄하하는 사람이다. 만난 적 없이 메시지만 주고받는 지인(?) 한 분이 어제는 “책 20권 읽는 것보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정독하고 씹어가면서 읽는 연 선생님”이라고 나를 표현하시더니, 며칠 전에는 이리 물으셨다. “헌데 연 선생님은 무엇 때문에 자기 자신을 낮게 여기시고 폄훼를 하는지요? 누가 비난이라도 합니까?” (폄훼는 아마도 폄하를 뜻하신 것이리라.) 무엇을 보고 그러시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것은 나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호기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가슴이 동의했다. 알고 있던 문제가 아니던가. 다만 일면식도 없는 분도 저리 ..

카테고리 없음 2017.02.06

2017년 5주차 성찰일지

이번 주에는 굵직한 일이나 사건이 없었다. 그런 때에도 내면에서는 이런저런 일이 벌어진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우리 몸속의 심장이 뛰고 혈액이 순환하듯 외부 세계가 잠잠해도 내면세계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니까. 내면 보고로 이 주의 뉴스가 채워진 이유다. 1.소통의 기쁨을 누렸다. 점심시간을 활용한 길지 않은 만남이었는데도 진솔하고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마음이 벅찼다. 한 달에 두어 번의 깊은 만남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가! 그런 만남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음은 행복이다. 2.극도의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그때는 희망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거짓 희망일지라도 구원의 힘은 여전하다. 개츠비를 살아가게 하고 이상으로 추동한 힘도 데이지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이었다. 개츠비의..

카테고리 없음 2017.02.06

나는 왜 창원에 갈까

1. 긴 하루였다. 새벽에 일어나 5시 45분 서울발 마산행 열차를 탔다. 마산에서 맞은 아침 기운이 상쾌했다. 겨울치고는 포근한 날씨였다.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중 나온 차를 타고 9시 25분에 작은 강의실에 도착했다. 푸짐한 간식과 미소가 나를 반겨주었다. 커피향이 그윽했다. 9시 30분부터 시작된 글쓰기(플로라이팅 5기) 수업은 오후 1시 남짓한 시각에 끝났다. 우리는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5시까지 대화를 나눴다. 어둑해질 무렵, 수강생 중 한 분의 배우자가 오셨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또 다른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저녁 7시 30분, 마산역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 분들은 집으로 가셨고, 나는 역사로 들어섰다. 11시간 만에 도착한 마산역에서 만난 5분의 여유시간..

카테고리 없음 2015.12.05

사진

[짧은 소설] “다음 순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입니다. 내빈 여러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매년 5월 19일, 남양주 해유령 전첩지에서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육지전 승리를 이끈 신각 장군 추모 제향식이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카메라에는 큼직한 셔터가 달렸다. 하늘은 잔뜩 흐렸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빛을 들이는 정도를 잘 조절해야 하기에 날씨는 중요한 변수였다. 그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선 이들의 사진을 몇 컷 찍었다. 사회자는 순서를 진행해 나갔다.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는 이들의 모습 두 장을 가까스로 찍어냈다. 그는 디지털 화면을 통해 방금 찍은 사진을 보며 사냥꾼이 느낄 법한 포획감을 느꼈다. 사진 속 주인공이..

카테고리 없음 2015.08.31

손택에 대해 묻고 답하다

다큐멘터리 리뷰 (2/2)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같은 인물을 좋아하는 이들끼리의 정서적 공감대가 느껴졌지만(신형철의 책 제목이기도 한 ‘느낌의 공동체’라는 말이 어울렸다), 관객들끼리 활발하게 여담을 나누기에는 형식과 공간이 주는 무게감이 컸다. (콘서트나 상영회에 적합한 의자 배열도 정중한 분위기에 한몫 했으리라.) '관객들과의 대화' 시간은 주로 관객이 질문하고 사회자(사회학자 노명우 교수)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두 권의 손택 책을 옮긴이(김선형 교수)가 간간히 유익한 설명을 덧붙였다. 사회자와 생각이 다른 일부 독자들은 넌지시 자기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여러 의견이 어우러져 손택 이해에 도움을 준 시간이었다. 나 역시 사회자와 다른 생각을 가진 대목이 많아 마음속으로..

카테고리 없음 2015.06.02

다큐멘터리, 손택에 관하여

다큐멘터리 리뷰 (1/2) 1. 마음산책, 참 고마운 출판사다. 손택의 인터뷰 집 『수잔 손택의 말』을 출간하더니 이번에는 출간을 기념한 다큐멘터리 상영회라니! 손택에 관한 다큐멘터리이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미국 아마존에서도 DVD 판매는 없어서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던 터라(Audio CD만 있어서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상영회 소식은 무척 반가웠다. 한글 자막으로 이번 상영회를 준비했으니, 반갑고 고마울 수밖에. (참고로, 마음산책 출판사는 ‘마음산’과 ‘책’으로 떼어 읽는 게 설립 취지에 맞지만, 마음 + 산책으로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을 터이고, 나는 두 표현이 모두 마음에 든다.) 다큐멘터리를 본 직후에는 소감이 여러 가지였지만, 열흘 남짓 지나니 증발한 생각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더 기억을 ..

카테고리 없음 201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