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단한 삶이 3년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한낱 꿈이길 바랐던 그 일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한 노력도 허사였다. 되돌릴 방도가 없었다. 하릴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야심차게 기획하여 추진하던 일이 순항하다가 뜻밖의 암초를 만나 좌초되고 말았다. 마음의 타격만 입었던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일로 내겐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억 원의 빚이 생겼다. 그때는 몰랐다. 자산 1억과 부채 1억이 어떻게 다른지, 이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1억이 얼마나 큰 돈인지, 단기간에 갚아야 하는 큰 빚이 얼마나 삶을 옥죄는지 정말 몰랐다. 무지의 대가는 혹독했다.
삶이 달라졌다. 한 끼 외식이나 카페에서의 커피조차 사치였다. 3년 6개월 동안 혼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적은 네 번 뿐이다. 모두 얼른 작업해서 누군가에게 보내야 하는 긴급 업무였다. 급하지 않은 일을 하거나 책을 읽어야 하는 경우라면, 멀리 걷더라도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글을 쓸 여유, 라고 쓰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해서일까. 글쓸 여유도 없다, 라고 쓰려다가 멈추고선 시나브로 한 숨을 내쉬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원고를 썼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가끔 조각 글을 끼적였을 뿐이었다. 그렇다, 온전한 식사, 그윽한 커피, 몰입의 독서, 신명나는 글쓰기가 내 삶에서 사라졌다. 늘상 떠나던 혼자만의 여행도 증발했다. 매년 두어 번씩 떠나던 해외여행 또한 코로나 시절부터 7년째 중단됐다.
2.
최우선 목표는 부채를 떨쳐낸 삶이었고, 무조건 최대한 빨리 해내고 싶었다. 전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많이 벌고 적게 쓸 것! 매서운 현실은 나의 간절함을 자주 내팽개쳤다. 나는 뜻한 만큼 돈을 벌지 못했고, 매월 갚아야 할 금액을 채우지 못했다. 은행과 지인에게 돈을 빌릴 때마다 원금과 이자가 조금씩 불어났다. 긴축 재정에는 이력이 쌓였지만, 많이 버는 일에는 무능했다. 매월 가까스로 연명했다. 몹시 힘들 때면, 나도 모르게 두 가지 탄식이 새어나오곤 했다.
'아, 돈이 너무 없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당연한 귀결이다. 돈이 시간이고 시간이 돈일 뿐만 아니라, 돈이 시간을 만들고 시간이 돈을 벌어들일 테니까. 나는 숨 막히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결심했다. 2026년 4월 10일 부로 전환점을 만들어 보자고! 이른바 비타 노바 프로젝트다. 심심한 제목이고, 내용도 단순하다. 읽기와 쓰기에 무조건 시간을 할애하기, 그것이 전부다. 여유 시간이 생겨서가 아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내가 꿈꾸는 모든 것들이 한없이 유예될 것 같아서 죽기살기로 달려들어보는 것이다.
3.
오늘은 리처드 카니의 《급진적 환대 》를 42쪽까지 읽었다. 환대는 내 삶을 수놓은 애증의 키워드인지라 매 장마다 공명하며 읽었다. 다음과 같은 저자의 주장을 깊이 지지하면서.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확실하고 익숙한 도그마에 매달리는 우리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알려지지 않은 것과 내기를 하고, 예상치 못한 것으로 뛰어들며, 낯선 것을 향해 모험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인간의 욕망을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 노출되고, 상처 입을 수 있으며, 타자들과 세계를 공유하는 용기를 가진 - 주인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과 다른 어떤 것을 향한 환대의 성향을 기르는 것이 충만하고 버녕하는 삶의 일부라는 것도 배우게 된다." (40~41면)
'들어가는 말'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마르셀 에나프(Marcel Henaff)라는 학자의 주장이었다. 그는 진정한 선물이 되려면 선물하는 이가 자신의 증여를 인지하지 못해야 하며, 받는 이가 증여자이 정체성을 알지 못해야 한다는 해체주의적 주장에 반박하며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강조했다. "에나프는 우리가 구체적인 사회 인류학에서 선물의 원래 의미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응답한다. 즉, 선물은 자신과 이방인을 한데 모으고 평화의 이름으로 적대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이 이른바 포틀래치의 본질이었다. 적대를 환대로 전환하는 것 말이다. 에나프가 도출한 결론은 진정한 선물의 의례 및 제도의 근원이 '불가능한 무관심성'이 아니라 '가능한 상호성'에 있다는 점이다. 상호성은 경쟁 관계에에 놓일 수도 있는 행위자들 사이에 사회적 정치적 유대를 형성하다." (16~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