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 『자본과 영혼』을 손에 잡았다가 한 시간 가까이 읽고 말았습니다. 김영민 선생님의 산문집입니다. <글항아리>에서만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로 출간된 작품이네요. 선생의 산문 하나를 읽으려던 계획은 ‘세 개까지만 읽지 뭐’ 하다가 손에서 놓지 못해 급기야 ‘마지막 딱 하나만 더 읽자’는 충동에 무릎 꿇고 말았습니다. 짜릿하니 손에서 놓기 힘들더군요. 10~15분의 시간만 할애하려던 계획은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네요.
선생님의 글은, 이라고 써 두고서 한참을 망설입니다. 글에서 받은 감동과 영감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쉬이 떠오르지 않은 겁니다. 깜냥이 된다면 ‘김영민 론’이라 할 만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렇지가 못하고, 그저 일개 독자로서 감상을 표현하면 그만이다 싶으면서도 자꾸 머뭇거리게 되네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몇 번이나 보았는데 별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다루는 주제는 일상적인데 소재를 대하는 태도는 그윽합니다. 깊은 사유, 맑은 감각, 고요한 정취를 풍기는데도 글의 주제는 세속을 떠나 있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를 논하고 재벌 논의를 글 속에 끌어들이고 소비자본주의를 들여다봅니다. 지금 창밖으로 오월의 신록이 보이는데 이에 못지않은 감동이네요. 창밖은 서울이 아닌 양평이 일궈낸 세상인데, 선생의 글은 서울 한복판에 초록 세상을 펼쳐 놓은 셈이니까요.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후에 들른 교보문고에서 『자본과 영혼』을 구입 한 후 매일 조금씩 읽는 중입니다. 한 움큼의 견과류처럼 약간의 양으로도 하루치 섭취량이 충분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책에서 받은 영감이나 감동이 커서 나도 모르게 책을 놓고 사유에 잠기는 쪽입니다. 오늘도 네 번째로 읽은 산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감동하여 거실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와! 일급이다, 하는 유아적 감탄을 읊조리며 나동그라진 겁니다.
탁월한 글을 만나니 할 말이 끊이지가 않네요. 머릿속은 저만치 앞서 가고요. 제가 만난 일급의 글쟁이들도 소개하고 싶고 경지에 오른 분들의 통렬한 사유가 어떤 짜릿함을 안기는지도 풀어내고 싶습니다. 할 일이 많은 오늘인데 책에 대해 할 말은 더 많네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나에게 최상의 책이란 나를 수다쟁이로 만들고, 함께 읽고 얘기하고 싶은 욕망을 안기는 책이구나!’
이제 일하러 가야겠는데 느낌과 감상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아 감탄의 이유 하나를 거칠게나마 적어 둡니다. 높은 관점, 새로운 차원에서 건네는 메시지들이 나를 사유로 이끈다. 선생의 문장은 녹록치 않다.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난해한 글이지만 세속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니 선생을 좇아 읽게 된다. 교양서 독자로서, 술술 읽히지 않는 책을 예찬하는 일이 드문데 김영민 선생은 예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