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일 년의 먼지를 털어내며

카잔 2020. 5. 25. 23:47

일 년이 지났다. 마지막 포스팅 이후 세월이 그리 흘렀다. 눈 깜짝했던 것 같은데, 몇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해가 바뀌었다. 세월의 유속을 절감하며 혀를 내두른다. 나는 여전하다. 홀연히 찾아든 감상에 잠깐 허망함을 느꼈다. 세월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지독히 당연한 일인데, 매년 당황스러워한다. 아직 난 이리도 진부하다. 무감각하거나 무지해서만은 아니리라. 하루하루를 사랑하고 인생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도 있으니. 


세월이 '훌쩍' 지났다는 말은 그 기간이 짧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쉽다는 뜻이다. 해 놓은 일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 년 동안 여러 불행을 겪었고 많은 책들을 읽었다. 꽤 힘든 일을 두어 번 겪었다. 며칠은 잠들지 못해 뒤척이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범상치 않은 일들을 겪었고 나는 글쟁이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글도 쓰지 못했다. 어떤 주제는 잘 쓰고 싶어서 후일을 기약했다. 어떤 소재는 누군가에게 폐가 될까 마음을 접었다. 게을러서 시기를 놓쳐 버린 글도 여럿이다.

 

"인간 세상은 몹시도 바쁜데, 너는 늘 동작이 느리고 무겁다. 그래서 1년 내내 서사(書史)의 사이에 있더라도 거둘 보람은 매우 적다. 이제 내가 네게 『논어』를 가르쳐 주겠다. 너는 지금부터 시작하되, 마치 임금의 엄한 분부를 받들 듯 날을 아껴 급박하게 독책(督責)하도록 해라. 마치 장수가 뒤편에 있으면서 깃발을 앞세워 내몰아 황급한 것처럼 해야 한다. 호랑이나 이무기가 핍박하는 듯이 해서 한순간도 감히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직 의리만을 찾아 헤매고, 반드시 마음을 쏟아 정밀하게 연구해야 참된 맛을 얻을 것이다." - 정약용

 

오늘 아침에 읽었던 다산의 글이다. 제자 초의에게 보낸 당부가 내게도 준엄하게 들려왔다. 지난 일 년 공부의 결실이 초라하거니와 나 역시 동작이 둔하고 느리기 때문이다. '아, 초의는 다재다능하기라도 하지!'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시간을 아끼자고, 임금의 분부를 따르듯이 배우고 익히자고, 마음을 쏟아 정밀하게 연구하자고 다짐하면서 두어 번 다산의 말을 읽었다. 오늘은 꼭 포스팅을 시작하고(그래서 자정을 코앞에 둔 이 시각에 부랴부랴 끼적였다) 정갈한 마음으로 『논어』를 읽자는 다짐도 했다.

 

블로그에 들어와 묵은 일들을 했다. 방명록에 댓글을 달고 새로운 마음을 담아낼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일 년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낸 셈이지만 아직은 손볼 곳이 많아서일까? 상쾌한 마음이면 좋겠는데 덤덤한 기분이다.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부담과 희망이 뒤섞여 공존하고 있다. 일 년 만에 돌아온 집안 구석구석이 편안하면서도 낯선 느낌이랄까. 덤덤함의 이유가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써야 할 글들이 있는데 몹시 부담스러운 주제들이다. 아직은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이 놈의 완벽주의는 대체 언제쯤 날려버릴 수 있을까?

 

부디 이곳을 평온한 보금자리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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