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에서, 언론에서 자주 뵙는 요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된 것이다. 5월 23일을 전후로 바쁘게 보냈다. 와중에도 틈틈이 영상을 찾아 시청했다. 5월이 다 가기 전에 자서전 『운명이다』를 읽고 싶었다. 오늘 그 마음을 좇아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4부 작별’을 읽었다.

두 번 울었다. 2008년에는 국가기록물 사태가 터졌고 이후 대통령에게 나쁜 소식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정치 인연들이 줄줄이 세무조사를 받거나 구속됐다. 형님이 구속된 직후에는 봉하 방문객 인사를 관두었다. 외출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 노짱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겨울 내내 가끔씩 학자들을 집으로 불러 보았다. 이 모임을 할 때는 며칠 전부터 가슴이 부풀어 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읽고 메모하고 또 읽으면서 새벽까지 토론 준비를 하곤 했다. (…)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나를 겨냥한 4월에는 이 작업마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덤덤하게 읽었다. 그러고 싶었다. 바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아래 문단을 읽다가.

“4월 11일 아내가 부산지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같은 날 건호가 귀국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건호가 탄 차와 따라붙은 기자들의 차가 보였다. 공항 입국장에서 사진을 다 찍었는데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자고 밥을 먹어야 다음날 대검중수부에 가서 조사를 받을 텐데……. 건호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흉기로 보였다. 미국에서도 기자들이 건호 집을 포위하는 바람에 손녀가 남의 집에 피신했다고 들었다.”

아비의 심정이 전해져 흐느껴 울었다. 이중의 고통이었다. 당신의 고통 그리고 가족들의 힘겨움을 바라보는 고통.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읽어나갔다. 다시 눈물이 흐른 것은 지난날을 회한 가득한 시선으로 돌아보는 정치가의 마음을 읽으면서였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원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야망이 있어서 스스로 준비하고 단련했지만, 그들은 나로 인해 아무 준비 없이 권력의 세계로 끌려들어 왔다.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들이 고초를 겪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했던 일이 이렇게 끝나리라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했다면 애초에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회한 그리고 체념···. 노짱에게서 강인한 영혼을 느끼고 아모르 파티(운명애)를 생각하며 니체가 떠오르기도 했다. 유시민 지금의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노 대통령의 젊은 날 기록은 의분이 슬픔을 압도하지만, 봉하마을에서 남긴 기록은 회한이 두터워 분노가 잘 보이지 않노라고 썼다. “모든 것이 다 타 버리고 켜켜이 쌓인 잿더미 아래 마지막 불씨가 숨어 있는 화로”와 비슷하다고. 과연 그렇다. 회한에 덩달아 마음이 아파 가까스로 읽었다. 읽었던 챕터 중 하나의 제목은 “수렁에 빠지다”였다.

유시민 이사장은 에필로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함께 고통 받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썼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백(?)을 써 두었더라. “나에게 그는, 그가 하는 일에 힘을 보태지 않고는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청년 윤동주는 시적 언어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삶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윤동주를 좋아하는 바로 그 이유로 인간 노무현을 가슴 깊이 존경한다. 청년 윤동주와 마찬가지로 인간 노무현도 나에게는 일종의 예술가였다. 정치적 행동으로, 아니 삶 전체로 수오지심이 빚어낼 수 있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인생 예술가.

자기 삶에 날선 비판을 던지는 사람. 이리 쓰고서 멈췄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잠시 창밖을 내다본다. 봄바람, 흔들리는 나무, 서서히 흐르는 뭉게구름,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 당신이 떠나시고 이러한 봄의 향연이 열 번이나 반복됐다고 생각하니, 그 속절없는 세월이 야속해진다.

두 문장을 적는 사이에 구름이 저만치 흘렀다. 구름 사이로 보이던 하늘 모양도 달라졌다. 구름 모양과 하늘 표정은 잠깐 동안에 잘도 변하는구나. 십년의 세월에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그대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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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