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수업의 연속입니다. 이 달의 평일 저녁 일정은 일찌감치 꽉 채워졌죠. 한 달 중 쉬는 날은 3월 7일 하루뿐이네요. 월요일과 화요일엔 제가 진행하는 인문정신 수업이 있습니다. 다른 요일은 청강하러 갑니다. 3월 한 달 동안 그리스 문명, 프란츠 카프카, 소설의 캐릭터에 대해 배웁니다. 이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저녁마다 바쁜 요즘입니다.

 

하나의 수업은 산만하고 두 개의 수업은 재밌습니다. 하나가 아쉽다 보니 배움의 자리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함을 느꼈네요. 재밌는 수업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삶의 활력입니다. 이걸 공부해야겠구나, 얼른 저걸 읽어야지 이러는 동안 의욕이 생겨나는 거죠. 제가 다름 아닌 지.성.을 찾아갔음을 감안하면 활력은 보너스요 뜻밖의 습득물입니다.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해하려면 그리스 문명의 전사(前史)를 알아두어야 한다, 트로이 전쟁은 ‘전쟁’ 수준이 아닌 ‘전투’ 정도의 규모였을 확률이 높다, 저명한 카프카 해석자인 게르하르트 노이만은 ‘단편산문’을 카프카의 대표 장르로 꼽았다" 등이 이번 주에 얻은 인식입니다. 새로운 인식을 안고 돌아오는 귀갓길은 얼마간 적적하지만 기쁨도 큽니다.

 

어젯밤의 일입니다. 경향신문사를 나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예민의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라는 곡이었죠. 전혀 뜻밖의 노래였기에 의아했습니다. ‘어?! 신기하다. 왜 이 노래지? 자주 부르지도 떠올리지도 않는 노랜데!’ 의외의 노래였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노랫말과 선율이 예쁜 곡이었거든요. 노랠 불렀습니다.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중학생 때 출시된 곡이거든요.) 그 시절의 장면 몇 가지가 그려졌고 얼굴엔 미소가 피었죠. 하늘나라에 있는 친구도 그 땐 제 곁에 있었네요. ‘지금 녀석이랑 통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네온사인 사이로 밤빛 하늘과 눈이 마주쳤네요.

 

조금은 쓸쓸했지만 충만한 마음이 그보단 좀 더 컸습니다. 내면에선 그윽한 평온이 너울거렸습니다. 그리움도 넘실댔죠. ‘이런 공부를 연인과 함께하면 참 좋겠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 그때까진 혼자만의 삶을 향유하자는 생각, 내가 공부를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들을 매만지면서 서대문역을 향해 걸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흐르는 냇물 위에 노을이 구름빛 물들이고

어느새 구름 사이로 저녁달이 빛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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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지하철에 동승했다. 동작역을 지나 한강을 마주한 순간 빛이 열차 안으로 쏟아졌다. 오후 햇살의 나른함과 편안함 그리고 따뜻함이 차 안을 그윽하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봄볕이었다. 차창에 붙어 햇살을 바라보았다. 핸드폰 카메라도, 나도, 자신만의 시선으로 석양을 감상했다. 보고 또 봐도 감동과 전율을 안기는 일몰이라는 마법!



오후에 읽었던 <안식일>이라는 짧은 글이 떠올랐다. 올리버 색스는 자기 생의 마지막에 쓴 이 글에서 ‘안식일의 평안’을 예찬했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쇠약해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한때 단단했던 근육이 암에 녹아 버린 지금, 나는 갈수록 초자연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 아니라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이 쏠린다. 자신의 내면에서 평화를 느낀다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안식일, 휴식의 날, 한 주의 일곱 번째 날로 자꾸만 생각이 쏠린다. ··)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쳤다고 느끼면서 떳떳한 마음으로 쉴 수 있는 그 날로."


이 글을 발표하고 2주 후에 색스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신경과 전문의로서 자기 몸의 상태를 모르지 않았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글임을 인지하면서 택했을 주제였기에 '안식일'이라는 세 글자는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안겼다. 게다가 그는 정통 유대교의 삶을 살지도 않았다. 색스의 글은 '안식일'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던 터에 지하철을 타서 봄날의 햇살을 만난 것이다. 


‘아! 내 생애 마지막 글은 어쩌면 석양에 대한 찬미와 고마움을 담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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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두 번의 인문학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둘 다 인상 깊은 시간을 보냈네요. 잠시 음미하고 싶을정도로 말이죠. 오전에는 소크라테스 특강이었는데 소수의 인원이었습니다. 지인이 당신의 독서모임에 저를 초대(?)한 거죠. 특강 부탁이라는 말이 더 맞겠네요. 강연료가 아주 적다고 어렵게 부탁하셨지만 저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제 수업에 여러 번 참석했던 그의 진정 어린 태도가 제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는 게 맞겠군요.


소크라테스는 제가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강연도 여러번 진행한 터라 그의 시대, 소크라테스라는 인물, 그의 현재성 등 이야기할 컨텐츠도 다양했죠. 문제는 난이도입니다. 어느 정도까지의 디테일, 정교함, 깊이를 다뤄야 하는지가 고민인 거죠. (사실 일반 강연회에서는 늘 이것이 어려움입니다. 어떤 분들이 오실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어제는 만족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진행하는 보람을 느꼈고 참석하신 분들도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강연 후 식사 자리에서 한 분은 "대학원 수업 하는 느낌"이라고 말하더군요. 저로선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긍정적인 뉘앙스였습니다. 다른 한 분의 피드백도 인상 깊었네요. 제가 소크라테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아주 즐거워하더라는 겁니다. 머릿속에서 뭔가 즐거운 이야기꺼리를 꺼내놓는다는 표현을 쓰셨던 것 같네요. "맞습니다. 사실 제가 소크라테스를 정말 좋아해서 <위대한 인문주의자>라는 책을 쓰는 중인데 첫번째 인물이 소크라테이기도 하거든요."


강사의 즐거움이 청중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인데 진행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내면의 기쁨이 전달된다'는 사실이 생경하고 신기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나를 설레고 황홀하게 만든 콘텐츠로만 강연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뒤풀이 자리였습니다. 무엇이 나를 가장 설레게 만드는가? 이 질문 앞에 나를 세워보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었고요. 인문주의, 리버럴 아츠, 학습조직, 세계문학, 수잔 손택, 니코스 카잔차키스, 카프카 등이 떠올랐네요. 


저녁에는 <연지원의 인문정신> 2주차 수업이 있었죠. 이번 수업의 주안점은 감수성과 전달력 조절이었습니다. 3주차에는 지적인 내용들이 많아 이번 주에는 말랑한 내용을 다루자 싶었던 겁니다. 콘텐츠마다 깊이를 가미하는 것은 당연지사고요. 전달력 조절의 주안점은 유용성에 관한 내용을 대폭 강화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주의 주제였던 철학 쓸모있음과 철학적 사고의 일상적 실천거리들을 전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는 모두 지난 주 수업에 대한 성찰의 결과였죠.


반응들을 보니 지난 주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조금 과장되고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난 주에는 멘붕, 이번 주는 "어?! 인문학이 이런 거였어?" 였습니다. 조금 어려웠지만 도전적이었다는 지난 주와는 달리 어제는 인문학의 재미와 흥미 그리고 의미도 얻었다는 반응이 많았죠. 한 분은 "인문학과 썸타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지난 주와 이번 주의 수업에서, 인문학이 그분께 밀당을 시도했나 봅니다. 내 것 같기도 하던 인문학이 멀어졌다가 결국 내 것이 되는 썸이라면 멋진 일이겠죠.


돌아오는 길이 피곤했지만 마음이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다 어제 일을 기록하면서 다시 한 번 기쁨을 음미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선사해 주셔서. 다음 주 수업도 아름답기를." 이런 기도도 드렸네요. 그리고 다시 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진득하게 공부하고 인문 정신을 실천할 제 삶의 현장으로! '진득하게'라는 말은 페북과 일반 강연은 자칫 진득함을 놓치게 만들 수 있어서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표현입니다. 진득한 공부,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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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를 찾아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집필을 재개해야 하고('그날' 이후 2주 동안 조르바 원고가 멈췄거든요) 집안 정리정돈도 필요합니다.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삶의 활력도 찾고 싶네요. 쓰다보니 집필 재개가 급선무네요.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제게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이건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마음을 열어놓고 열심히 살아보렵니다.) 올해는 와우 TMT와 와우 세미나도 놓치지 않고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제자리를 찾아야 할 또 하나가 있죠. 이 블로그 말입니다.


3년에 걸쳐 두 명의 친구가 제 곁을 떠났습니다. (그 사이 연인과의 이별도 있었네요.) 두번째 친구와의 사별 후였습니다. 이 블로그에 손을 놓기 시작한 때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려 옵니다.) 십년을 꾸준히 이어온 블로그인데 일년 여의 시간 동안 포스팅이 뜸했었죠. 여기 들어오면 자꾸 옛 생각이 나서 힘들더라고요. 시작해야지, 시작해야지,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월이 훌쩍 지났더라고요. 그새 페북에다 글을 쓰긴 해도 거긴 이곳과는 다른 공간입니다.


페북이 광장이라면 이곳은 내 방 같은 느낌입니다. 혼자만의 방은 아니지만 시선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씁니다. 소수의 벗들과 함께 이야기를 노닥거리는 공간이랄까요. 또 하나 다른 점은 포스팅의 길이입니다. 페북 포스팅은 짧게 쓰려고 합니다. 광장에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갑니다. 거기 서서 오래 얘기를 나눌 수는 없죠. 여기에선 글 길이에 대한 부담감이 덜합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느낌도 들고 내 근황을 듣고 싶어하는 친한 벗과 함께 있는 기분도 들어서 참 편안합니다.


당장 활발한 포스팅이 시작될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을 다시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럴 에너지도 조금 있고요. 지인들은 '브런치'를 시작하라고 조언하지만(저도 그 얘기에 수긍하고 요즘 뜨는 매체 활용에 공감하지만) 저의 결론은 다시 이곳입니다. 언젠가 브런치를 하더라도 이곳을을 가꾸는 일은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브런치나 페북 포스팅이 여행이라면 왠지 이곳은 편안하고 즐거운 나의 집과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노트북 하드디스크 손상으로 원고와 강연 자료 등을 모두 유실했을 때 '남은 글은 블로그 포스팅 뿐이구나' 하고 망연자실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와우 3기가 "티스토리 한 번 해 보세요"하고 권하던 순간도 기억나네요. 따뜻하고 정겨웠던 댓글 교류는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방치된 기간 동안 발길이 뜸해졌지만 조금만 가꾸면 다시 누군가의 발걸음이 찾아들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합니다. 아주 소수여도 괜찮습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나 자신과 가장 먼저 대화를 나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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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또 이리 되고 말았다. 올해는 정말이지 수업 홍보를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는데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따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아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그래 수업은 밥벌이보다는 공부와 공헌 위주로 가자.’ 물론 돈은 참 좋은 것이지만 그건 다른 방식으로 벌면 되니깐! 나도 모르게 혼잣말 같은 소리만 늘어놓았다. 독백의 배경은 이렇다.

 

수년 동안 별도 공지를 하지 않고 기존 멤버들과 수업을 해 왔다. 그리스 고전이나 세계사를 거칠게 훑었는가 하면 여러 나라의 문학 작품을 얄팍하게 읽어대기도 했다. 욕심을 내어 철학사 공부에도 도전했다(고대, 중세, 근대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현대철학은 좀 무리였다). 소수의 공부 인연들이 늘 함께 해 주어 가능했던 지적 여정이었다.

 

2014년 겨울부터 기회 닿을 때마다 수업에 참여하신 분이 계신데, 한번은 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자기들끼리(그분 표현대로라면 ‘즈그끼리’)만 하지 말고 밖으로도 좀 알려주지 하고 생각했었죠.’ 투정과 애정이 섞인 말투였다. 왠지 모르게 고마웠지만 수업을 하는 방식이 바뀌지는 않았다.

 

지난달에는 새로운 공부 인연들을 몇 분 만났다. 4주간의 인문정신 수업을 함께 했던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즐겁고 유익했다. 열정으로 경청해 준 덕분이 컸다. “선생님 공부를 계속 이어가면 좋겠어요.” 이런 목소리들이 많아 애초에 없던 수업이 생겼다. 3월에 진행될 ‘인문적 독서와 서평 쓰기’ 특강이 그것이다.

 

블로그나 페북에는 공지하지 않았다. 나를 아껴주는 이들은 답답한 투로 말한다. 수업을 듣고 싶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홍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공지는 해야 한다고! 옳은 말씀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많이들 오시면 나의 자유가 늘어나니까. (나는 종종 ‘돈’을 ‘자유’라 표현하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이리 되고 만다.

 

소중한 내 벗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조금만 답답해하시고 두 가지의 해(解), 양해와 이해를 해 주시길 바래요(이리 썰렁한 표현을 쓰는 건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의미예요). 가끔 너무 답답하면 채근해 주시고.”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면서 올해는 돈도 꽤 벌자고 다짐한다. (돈을 향한 욕심부터 키워야 하리라!)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더 떠오른다.

 

“알고 계시잖아요. 제가 세상의 인정보다는 내면의 만족을, 많은 사람들의 주목보다는 식견 있는 이들의 존중을 그리고 명성보다는 진짜 실력을 추구하고 있음을. 그리고 말이죠. 올해는 함께 공부하는 분들이 조금 많아졌어요. 헤헤.”

 

- 지난달 공부 인연들에게, 새로운 수업을 공지하고서


Posted by 보보

몽유병 환자처럼 새벽에 깨어나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녔다. 이런저런 책들을 구경했다. 괴테와 카프카가 이리 오라 손짓했고 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니얼 퍼거슨의 이야기에 한참동안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훌쩍 세 시간이 지났다. 그새 십오만 원이 사라졌다. 지갑을 홀라당 다 털리기 전에 별안간 뛰쳐나오면서 생각했다. 누가 범인이지? 서점일까, 시간일까 아니면 지름신일까? 더 이상 캐묻지 않고(소크라테스 선생의 양해도 구하며) 다짐과 설렘을 즐기련다. ‘3월엔 열심히 읽어야지!’

 

이것이 '나'라는 사람의 삶인가 보다. 환자처럼 책을 구입하고 멀쩡한 듯 합리화하고 다짐을 난무하는 비이성적인 일상! 그나저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사태 파악을 못한 채로(아니면 제대로 파악해서인지) 나는 지금 배시시 웃고 있다. 아무래도 중한 병이다.




Posted by 보보

일단의 외국인들이 웅성거리며 방향을 찾고 있었다. 일행 중 절반 이상은 ‘IOC’라는 영문이 새겨진 가방을 메고 있었다. ‘선수단 일행들인가? 선수들도 있는 걸까?’ 한 명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그녀는 손에 서울 지도를 들고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두어 마디가 오갔다. 그들은 지하철 서울역을 찾고 있었다. 시청역으로 가려고 했다.


마침 지하철로 향하던 길이라 내가 앞장 서 걸으며 안내했다. 그녀가 내 곁에 섰다. 뭔가를 묻고 싶은 눈치였거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잘 생겨서는 아닐 테고.) 나는 이들의 여정이 궁금했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세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경희궁이었다. 시청역에서 걸어갈 거란다.

 

시청역에서 경희궁까지 걷기엔 어중간한 거리였다. 그렇다고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경희궁에서 가까운 역까지 이동하기에는 동선이 복잡했다. 환승역(복잡한 종로 3가역)에서 헤맬 수도 있으니까. 그들의 계획대로 시청역에서 정동길을 따라 걷는 것도 괜찮으리라. 마침 따뜻한 날씨였다. 1호선 서울역을 향해 걸으며 갈등이 일었다. ‘경희궁까지만 안내해 드릴까?’


일반 관광객이 아니라 한국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의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으시면 제가 경희궁까지만 안내해 드릴까요?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거든요.” 그녀는 반색했고 자신의 일행들에게 나의 의사를 전했다. 그들의 밝은 웃음을 본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한 분이 가방을 열어 평창 올림픽 기념배지를 내게 선물했다. 나는 별 일 아니라는 뜻으로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Just One hour."

 

딱 한 시간만 할애할 생각이었는데 나는 그들과 5시간 동안 함께 여행했다. 얘기를 듣다보니 도와드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튿날 새벽 6시까지 공항에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오후 한나절 동안 서울의 핵심 명소와 쇼핑을 하려는 계획이었는데 동선이나 정보가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다. 다른 궁궐에 비해 볼거리가 부족한 경희궁에 가겠다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경희궁 입구에서 헤어지려던 계획은 점심식사(코리안 스타일의 음식을 원했다)로 이어졌다. 일행의 대장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의 인격적인 태도를 느꼈다. 음식을 다 먹고서 매우 훌륭한 음식 선택이었다고 나를 추켜세웠는가 하면(비빔밥과 돼지고기 쌈을 먹었다) 한국의 음식 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마윈은 “타국의 문화 존중이 친분을 쌓는 지름길”이라 말한 바 있는데 새삼 그 말을 절감했다.

 

일정은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투어로 이어졌다. 경북궁 앞에서 헤어지려고 대장에게 의사를 전했다. 대장이 헤어질 분위기를 잡으려는 찰나 다른 팀원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무산됐다. 대장과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고 나는 살짝 경북궁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다섯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두 명은 나의 가용 시간을 한 차례씩 물어왔다.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어조와 태도에서 고마움과 배려가 느껴졌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긴 하지만 몇 시간 정도는 할애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본의 아니게 나의 직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들이 하는 일도 들었다. 대화와 상호 배려로 우리는 조금씩 친해졌다. 동양인들(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끼리의 구분과 서양인들끼리의 구분법에 대한 얘길 나누며 크게 웃기도 했다.

 

오후 5시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 쇼핑을 위해 강남으로 가려 했다. 그들의 숙소는 서울역이었고 강남의 구체적인 장소를 정해 두지도 않았다. 계획을 바꾸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강남으로 오가는 동선과 종로 지역의 쇼핑 지역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들끼리 잠시 얘길 나누더니 이내 결정했다. 인사동과 명동에서 쇼핑하는 것으로.

 

얼른 헤어져야 한다는 마음과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부딪칠 때마다 후자의 승리로 이어졌다. 3시에 한 번, 4시에 한 번, 이제는 정말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마다 ‘한 시간만 더’라는 생각으로 생각이 바뀌어졌다. ‘이 분들에겐 다시 못 올 수 있는 한국인데…’

 

사실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이었다. 오후 4시에는 동탄에 도착해야 했다. 이튿날 아침 강연을 위해 인근 호텔을 예약해 둔 것이었다. 호텔 투숙으로 컨디션을 조절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만났던 때 나는 안과를 향하던 길이었다. 치료 후에는 헤어컷도 하려던 외출이었다. 안과 치료를 미루면서, 호텔에서의 시간을 포기했는데도 피해의식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한 사람이 나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현하며 물었다.

 

“왜 우리를 이리 친절히 도와줘요?”

“글쎄요. 제 천성인 것도 같지만 무엇보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의 손님이잖아요. 한국에 대한 좋은 추억만 안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뿐이에요.”

 

‘정말 그것뿐일까? 동남아인이라도 마찬가지로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꺼내어진 답변이었다. 모두가 따뜻하게 웃는 표정으로 내 말을 들어주었다(한 명은 조금 떨어져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 의사를 어설픈 영어로 표현해서인지 아니면 자의식 발동이 내 주특기여서인지 모르겠지만, 대답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호기심이 맴돌았다.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것도 애국심일까?’ 그때 김영하의 단편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도 떠올랐다.

 

사실 그 날의 결정과 행동 그리고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나였다. 경희궁 입구에서 일행에게 물었다. “경희궁에서는 얼마동안 머물 계획인가요?” (시간 계획이 나와야 동선이나 관람 속도가 정해지니까.) 식당에서는 내 앞에 앉은 일행의 리더(사진 속 남자)에게 물었다. “왜 맨 끝에 앉은 저이는 식사를 안 해요?” (그녀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으니 마음 쓰지 않다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경복궁 내 경회루 앞에서는 이렇게 물었다. “멤버들에게 컨디션을 물어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기서 경복궁 전체를 모두 둘러볼지 아니면, 중간 길을 돌아 나올지 선택하려고요.”

 

내가 컨디션을 물을 때마다 그들은 “우리는 평창에 다녀온 온 사람들”이라며 자신들의 신체적 건강함을 온 몸으로 표현해 주었다. 우리는 경복궁 주차장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다음 일정으로 인사동을 결정한 직후였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인사동까지 다시 걸어야 하는데 괜찮냐고 했더니 얼마나 걸리는지 묻지도 않고 “Of course”란다. 우리는 안국동네거리까지 함께 이동했고 인사동 쌈지길 입구에서 헤어졌다. 호텔 프런트에 초콜릿을 선물로 남기고 싶은데 찾아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나의 “오브 코스”였다.

 

혼자가 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분주해졌다. 월요일 오후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미뤄 둔 대가는 컸다. 안과 치료는 받았지만 약국 문이 닫혀서 처방약을 구하지 못했고(이로 인해 꽤 고생했다) 이튿날 강연을 위해 완료했어야 할 ‘출입승인’ 절차를 뒤늦게 처리하느라 2시간 가까이 애를 썼다. 호텔에서 보내려던 편안한 오후 시간은 통째로 날아갔고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도 불만이 없었다.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에 만났을까. 한가한 날도 많은데!’ 하는 짧은 아쉬움이 있었을 뿐.

 

나는 지금 낯선 감정에 놀라워하는 중이다.

‘다시는 못 볼 분들인데(연락처조차 모른다)

5시간의 우정으로도 그리워할 수 있구나!’

 

이튿날 그들이 호텔 프런트에 남겨 준 초콜릿을 받아왔다. 커다란 스위스산 초콜릿 두 개였다. 아껴 먹는 즐거움, 줄어드는 아쉬움을 안기는 묘한 초콜릿이다. ‘세상의 맛 중에는 달콤하면서도 따뜻한 맛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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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잘이 침묵을 깨고 말을 받았다. “글쎄요,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요? 뭐라도 쓰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연구 말입니다.”

발터가 그 화두를 곱씹더니 미소를 지었다. “자네 말이 맞을지도. 난 아무것도 못할 거야. 사람한테는 생각거리가 필요한 법이지. 여기도 똑같다. 내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아나? 담배를 끊을 거야. 살아남으려면 어려운 과제에 집중해야 해.”>

- 브루노 아르파이아, 정병선 역, 『역사의 천사』, p.187

 

*

 

책을 뒤적였다. 지난해 말, 엄청난 위로와 공감을 안긴 책이었다. 원하는 구절을 찾는 데에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지금 필요로 하는, 그래서 찾으려고 하는 덕목들이 이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내, 몰입, 아모르 파티 같은 덕목들! '원래 찾고자 하던 구절은 151쪽에 있지만, 오늘은 저 구절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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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5시. 아늑한 실내. 창문 밖 서쪽 하늘의 석양. 흩날리는 진눈깨비.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재즈. 그리고 한 권의 책! 이 정도면 짜릿한 독서가 이뤄져야 했으리라. 독서의 즐거움에 풍덩 뛰어들어 ‘아, 내 사랑 책이여’ 라고 흥겨워했어야 했다.

 

예상은 종종 빗나가기 마련이고 완벽한 상황에서의 결과도 때론 시원찮은 법! 나는 십오 분 만에 손에서 책을 내려놓았다. 눈동자와 주의력이 동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은 문자를 읽는데 머리가 따로 놀았다. 억지 독서는 억지로 먹는 음식만큼이나 맛없다.

 

부실한 독서의 원인은 둘 중 하나일 터! 책이 시시하거나 독자가 산만했거나. 이번엔 완벽하게 독자 탓이다. 지구상에 시시한 책은 무지막지하게 많지만 내 손에 든 책은 독보적인 명저다. (저자가 몽테뉴 급이라고만 밝힌다.) 게다가 이 책의 앞선 내용에서 나는 끊임없이 전율했다.

 

책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의자 등받이에 엉덩이를 바짝 붙였다. 음악도 잠시 껐다.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나는 이제 책을 읽는다.’ 여러 번 되뇌었다. 기분이 차분해졌고 주의력이 충전됐다. 다시 책을 펼쳤고 한 시간 동안 책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세 가지 교제에 대하여’ 라는 장이 있다. 그가 말하는 세 종류의 친교는 우선 사랑과 우정이다. 몽테뉴는 “아름답고 정직한 여성”과의 교제 그리고 “드물지만 귀중한 우정”을 언급하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세 번째는 책과의 친교인데 이것이 가장 확실하고 우리와 가깝다. 앞의 두 가지가 가진 장점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책과의 교제는 꾸준히 그리고 손쉽게 누린다는 장점이 있다.”

 

이 말에 동의하는 나로서는 종종 불만을 터트리는 책의 모습을 상상한다. 연인처럼, 지금 내 말에 집중하고 있는 거야? 또는 친구처럼, 너 오늘 너무 대충 입고 나온 거 아냐? 독서는 일종의 친교다. 책읽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땐 나는 자세와 마음을 가다듬는다.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친구나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그러면 독서력이 회복된다.

때론 형식이 내용을 이끌고

시스템이 마인드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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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아침에 <See you again>을 여러 번 감상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폴 워커를 추모하는 곡이다. 이미 수없이 들었던 노래다. 친구가 그리울 때면 하염없이 듣곤 했다. 가사가 마음을 어루만지면 나는 시공간을 떠난다. 추억에 잠기고, 때론 상상에 빠진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하는 유의 이뤄질 수 없는 상상.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떤 날엔 뮤직비디오를 시청한다. 마지막 장면이 감동과 위로 그리고 슬픔과 아픔을 안긴다. (때론 마음도 손에 박힌 가시처럼 아프다.) 자신의 승용차에 앉은 두 친구! 따스한 눈빛을 교환하고 주행을 시작한다. 도로는 갈라지고 두 대의 승용차도 다른 길로 들어선다. 카메라는 이제 하나의 승용차만을 쫓아가면서 서서히 줌 아웃된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창가에 섰다. 창밖을 바라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하늘이 나를 이끈 느낌이랄까.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눈물인가 보다. 무심하게 표현한 이유는 내 몸에서 나온 액체라 하기엔 왠지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다짐하고 있었다. ‘상욱아, 구정 때 탈고한 원고를 들고 찾아갈게.’ 웬일일까. 신년의 기운 덕분인가.

 

작년 기일에 녀석의 사진을 보면서, 당분간 안 올 거라고 말했었다. 새로 출간한 책을 들고 오겠다는 다짐이었다. 녀석과의 사별로 삼년을 힘들어했다. 그런 모습은 친구도 바라지 않을 터, 나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잘 살고 싶었다. 친구에게 기쁜 소식도 전하면서 살기를 바랐다. “나, 책 출간했어.” 그나저나, 구정에 간다면 약속을 어기는 걸까?


찾아갈 때가 다가오는가 보다.

구정이든지, 어느 봄날이든지.


덧. 친구야, 너가 떠나고 3년 반이 흘렀다. 잘 지내냐?
(20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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