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남자보다 책이 나을 때

카잔 2018. 3. 25. 12:06

휴우. 지난 한 주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네요. 바빴습니다. 세 번의 수업을 진행했고 다섯 번의 강연을 청강했죠. 뒤풀이로 자정을 넘겨 귀가한 적도 두 번입니다. 한 번은 택시를 타야 할 상황인데 기어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귀가하느라 피곤함을 더했네요. 편안한 시간들이긴 했지만 네 번의 만남까지 있었던 한 주였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기다린 날이죠. 사실 오늘도 신청한 수업이 있는데 안 가려고요. 시시한 수업인데다 농도 심한 미세먼지가 제 결정을 지지하네요. 


아침에 나가면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일정도 두 번이었습니다. 갑자기 만남을 많이 잡은 건 아닙니다. 3월부터 청강하는 수업이 무려 일주일에 5개였죠. 여기에 약속 몇 개를 잡으면 강연 일정까지 더해져 벅찬 일정이 되더군요. 결국 종일 일정이 있던 이틀은 약속 하나씩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배려해 준 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했지만 덕분에 잠시 휴식하여 저녁 일정을 잘 소화했죠. 집필은 한 달째 지지부진했고(원고가 아닌 조각글만 몇 편 썼네요) 살도 빠졌습니다. 자그마치 3kg이나.



벅찬 일정! 이는 3월의 두드러진 두 모습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분별한 책 구매'고요. 지난 한 달 동안 정말이지 많은 책을 샀습니다. 한 달 책값이 지난 한 해 동안 구입한 금액을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네요. 작년엔 많이 절제했거든요. 다가 올 카드 결제일이 걱정입니다. 구입할 책을 찬찬히 살피는 과정 자체가 공부지만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썼던 게 사실입니다. 공부거리가 쌓여 든든하고 흐뭇하지만 동시에 조금 더 참아내지 못한 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렇듯 책을 사고 수업을 들으며 3월을 보냈습니다.


책을 왜 그렇게나 샀냐고요?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 한 건을 하고 나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때로는 두어 시간이 지나기도 하죠. 책을 선별하고 주문하는 과정엔 몰입이 절로 이뤄집니다. 잠시 힘겨움을 잊는 겁니다. 지난 주,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눴네요.

"나 요즘 만사가 힘들어." 친구의 말에 저도 화답했습니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요즘이네. 나 역시 괴로워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잖우. 나랑 같이 고대 그리스 문명 수업 듣자!" 
"힘들면 쉬어야지, 공부에 매진하다니 너 답다. 낼 고전 수업 가면 난 듣다가 졸 각. ㅋㅋ"
"내일이 힘들면 금요일엔 조르바 수업을 같이 가든지. ^^"
"아주 그냥! ㅋㅋㅋㅋ"
"난 자꾸 공부하러 같이 가재. 하하."
"넌 왜 날 자꾸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하냐? 나 힘든데. ㅋㅋㅋㅋ"


"수업을 듣자"는 제안과 "아니 나 힘들다는데 무슨 수업이냐"는 의견 사이의 유쾌하고 장난스런 팽팽한 논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국 한 번 같이 들어보는 걸로 귀결됐죠. 이튿날, 친구는 갑자기 집안 일이 생겨 결국엔 함께 가진 못했습니다. 수업은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스 고전기의 전사(前史)가 얼마나 중요한지 재확인한 시간이었죠. 감성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작가 한수희는 "남자보다 책이 더 나을 때가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고 확장하면 내 얘기가 된다. 적어도 3월의 나는 이 문장으로 설명되리라. 

사람보다 혼자 하는 공부가 더 나을 때가 있다.

그것이 책 읽기든 청강이든, 정말 그렇다.

어쩌면 공부는 '더 나은' 정도가 아니라 

'공부만이 구원'인 때가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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