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에 해당되는 글 495건

  1. 2016.12.17 멈춰라 그리고 생각하라 (6)
  2. 2016.12.12 어느 그윽한 만남 (2)
  3. 2016.12.12 올 겨울의 반려 음악 (2)
  4. 2016.12.11 창원, 길들여짐 & 구원의 책
  5. 2016.12.08 마음 한 조각을 덜어내니 (2)
  6. 2016.12.06 노래 한 곡 들었을 뿐인데 (5)
  7. 2016.11.23 11기 와우 모집을 어떡할까
  8. 2016.11.07 아뿔싸! 또 글이라니! (5)
  9. 2016.11.04 눈이 밝아지고 깨어 있다면 (3)
  10. 2016.09.18 한가위 연휴를 어떻게 보냈나 (2)


1.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독립선언문들이 올라왔다. 독립(讀立)이란다! 읽고 선다, 라고 생각하니 독서를 통한 성장과 삶의 변혁을 꿈꾸는 이들이 좋아하는 말놀이겠구나 싶었다. 교보문고에서는 "독서 실천의 뜻을 세우다"라고 단어 뜻의 외연을 조금 더 확장했다. 수많은 선언에 나도 한 줄 보탰다. 과연 2017년은 책 52권을 읽는 해가 될 수 있을까? 

"2017년에는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겠다.
사유하고 실천하는 독서! 배움의 깊이를 더하는 서평!"



2.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게 하나의 경이다. 내 삶도 하나의 경이가 되기를 꿈꾸게 하는 소설이다. 이 책으로 여러 번 수업을 진행했는데, 오늘 또 한 번의 수업을 하게 된다. 설렌다. 나는 열린책들 번역본만 해도 두 권을 가지고 있다. 더 오래된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이 책과의 첫 만남에 관한 짧은 기록이 적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을 바라보며 첫 장을 열다. - 2010. 8. 12" 대작가의 묘와 그 앞에 선 서른세 살의 청년이 눈 앞에 그려진다. 그 날들이 그립다. 더 젊은 그 때의 내가 부럽다. 그립고 부러울수록 잘 살아야지. 그럴 때마다 카잔차키스를 읽어야지.


3.

2016년이 열흘 남짓 남았다. 내게 연말이란, (12월 20일까지는) '올해의 10대 뉴스'를 작성하고 (21일부터는) 매일 뉴스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즌이 왔다는 의미다. 이번에는 작성하고 블로그에 올리든지, 출력을 해야겠다. (성찰이나 일기를 쓸 때마다 과거의 기록이 날아간 게 아쉽다, 그래서 안 썼던 날도 있고.) 지젝의 이 책을 볼 때마다 사유의 힘 그리고 이를 위한 선결 조건이랄 수 있는 '잠시 멈춤'의 중요성을 느낀다. 시국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성찰이 절실히 필요한 연말임을 잊지 말자. 스스로에게 명령한다. 너! 멈추어라 그리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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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지난 주말이었다. 양평 다녀오는 길에 전화가 왔다.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 점심 때 시간 되세요? 진석 오빠도 휴가라서요.” 머릿속으로 다음 주 일정을 떠올려보았다. 화요일은 모 건축회사 인사팀과의 회의가 있는 날이다. “민지야 아마도 월요일이 될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운전 중이라 10~20분이면 도착하거든. 확인해서 연락할게.” 전화를 끊으면서 고마움에 젖어들었다. 휴가 때, 신랑 신부가 함께 선생을 찾아준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다.

 

돌아와서 깜빡 잊었다가 저녁에 메시지를 보냈다. “월요일 점심을 함께 먹자. 장소는 너희 가족이 움직이기에 편한 곳으로 하시게. 내가 움직일게.” 30개월 남짓의 딸이 있는 데다 몸도 무거운 그녀였다. 반면 나는 몸 하나가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신랑과 상의하더니 회신이 왔다. “홍대나 합정 근처의 브런치 카페로 가요. 제가 그쪽에 안 간지 오래되어서 가고 싶어서요.” 합정동은 그녀가 20년 넘게 살던 곳이었다. “그러자. 장소는 내가 알아볼게.”

 

이틀 후, 내가 먼저 브런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핫한 카페여서인지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부부를 알게 된지는 만 7년이 다 되었다. 둘은 내가 진행하는 학습 커뮤니티의 같은 기수로 만난 사이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처녀, 총각이었는데 일 년의 과정이 끝나고 세월이 흘러 부부가 되었다. 동기 중에서 가장 연배가 높으신 분이 결혼식 주례를 맡았고, 나는 하객으로 참석하여 부부의 연을 축하했다.

 

그 부부가 둘이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보낼 휴가에 나를 찾아준 것이다. 작은 마음의 보답이라도 하려고 신부와 신랑에게 어울리는 책을 골랐다. 한참 만에 고른 책이 안도현 시인이 가려 모은 시집 한 권, 재독철학자 한병철 선생의 책 한 권이었다. 부부가 주차 공간을 찾는 시간에 시집을 펼쳐 몇 편의 시를 읽었다. 황인숙의 경쾌한 시를 읽으며 웃었다. 정희성의 ‘태백산행’도 유쾌하게 지혜 한 수를 전했다. ‘내가 먼저 곱게 읽고 다음 만남 때 전할까’ 하고 생각될 정도로 찾아 읽은 시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갈등은 짧았다. 민지에게 어울리는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곧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리코타치즈 샐러드, 오믈렛, 아메리카노 등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눴다. 딸 아이 이야기, 재테크, 새로운 취미(자전거 타기)에 관해 말을 나눴다. 육아 얘기든 부동산을 비롯한 재테크 얘기든, 나는 편안하고 진솔하게 참여했다. 두 사람도 편안해 보였다. 카페는 시끄러웠다. 우리는 보이지 않은 유리 안에서 대화한 걸까. 대화가 은근했고 분위기는 아늑했다. 자기다움이 아닌 재테크 얘기를 늘어놓는 내가 어색했을까, 신랑이 이리 말했다. “많이 바뀌셨네요.” 부정적 뉘앙스가 아닌 놀라움의 어조였다. “나? 원래 이랬어.”

 

“그래도 표현하시진 않았으니까요. 표현을 하고 안 하고는 큰 차이일 테고요.” 생각이 남다른(대개의 경우 깊은) 그였다. 표현의 차이를 짚어내는 대목에서 지금도 여전하다고 느꼈다. “그렇지, 그때는 이런 얘긴 잘 안 했지.” 당시 우리의 공부 화두는 자기이해였다. 그리고 지금은 자기이해는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로 우리의 재테크 이야기는 더 이어졌다. 자연스러웠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모두 우리의 중요한 삶이다. 세월은 그렇게 우리의 다양한 모습들을 서로에게 보여주도록 채근했다.

 

그들의 재정 상황은 양호했다. 그 때문인지 두 사람의 가정생활이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다음 달에 태어날 둘째를 맞는 일에 염려가 없진 않았지만,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처럼 변화란 자연스럽다는 듯이 말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카페를 나왔다. 아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진석에게 말했다. “민지가 정말 오고 싶어했는지, 나를 배려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멀리까지 와 주어 고맙다.”

 

우리는 연남동 골목길을 잠시 산책했다. 딸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가야 해서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다. 헤어지기 전에 준비한 두 권의 책을 건넸다. 작은 선물인데, 고맙단다. 내가 더 고마운데……. 두 사람과의 만남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따뜻했다. 시끌벅적하지도, 배꼽 잡으며 웃지도 않은, 그윽한 만남이었다.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에 한 번 더 시간을 내어 만나자고 한 약속이, 내면이 힘겨운 요즘인데도 부담스럽지 않다.

 

한때는 내게 배운 이들이지만, 배움의 관계라는 것이 삶의 한 영역에서만 유효한 경우가 많다. 다른 영역에서는 내가 배워야 하는 것들이 많다. 오늘은 두 사람에게서, 인생의 선배를 찾아 함께 식사를 즐기는 삶의 여유를 배웠다. 이건 배움은 아니지만, 그들의 평온한 삶이 부럽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여 메시지를 보냈다. “짧게라도 만나니 좋다. 서로 사는 얘기도 나누고, 덕분에 따뜻한 마음으로 남은 하루를 산다.”

 

책 선물 감사하다고, 종종 소식을 전하겠다는 회신이 왔다. 앞서도 말했지만, 휴가인데도 먼 길을 찾아와 주어 참 고맙다. 예전에도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마음이 진하다. 고맙고 또 고맙다. 요즘 내 마음이 매서운 겨울을 보내고 있기에 그런가 보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휑하니, 사소하고 작은 감정도 곧잘 자리를 잡는 걸까. 집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문득 떠오른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을 하염없이 듣고 싶은 날이다.

*

만남 이틀 후, 진석에게서 "연남동 조찬 모임을 마치고"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긴 메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기에 번개라는 가벼운 단어보다는 '조찬 모임'이라는 신문 제목에 나올 법한 단어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직전에 팀장님을 마지막으로 올해 신년회였고, 모임이 아닌 자리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눈 인도에 가기 전에 팀장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후로 처음이 아니었나 기억됩니다. 그런 시간을 자주 갖지 못했다는 점에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세월에도 어색함 없는 만남을 가질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의 마음도 나와 비슷했음에 반가웠다. 그저께 만났던 장면을 돌아보니, 우리는 지난 주에 만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만나, 악수를 했고, 자리에 낮아 커피와 브런치를 주문했다. 어색함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약속한 대로 조만간 뵙도록 하겠습니다"는 끝인사가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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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운명처럼 만난 앨범이다. 속주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곡에서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첫 곡에서부터 평온을 느꼈다. <Line for Lyons>은 우아하고 경쾌하다. 베이스와 심벌즈라는 부드러운 대지가 곡을 받쳐주고, 색소폰과 트럼펫이라는 두 유쾌한 인생이 행진한다. <Walking shoes>에서는 두 인생이 길의 방향을 살짝 바꾸어 새로운 스텝을 구사한다. 춤마저 가미된 느낌이다.


  

이번 겨울은 내게 혹독하다. 내면의 고통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추운 날씨는 안중에도 없다. 불면의 날들이 이어졌고 식욕이 떨어졌다. 그래도 산다. 밥을 거르지 않았고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덕분에 집안이 조금씩 깔끔해졌다. 얼굴 살이 부쩍 빠졌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는 ‘얼른 회복해야지’ 다짐한다.

 

나는 요즘 내면의 짙은 상실감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도움의 손길도 구하면서! ‘서두르진 말아야지.’ 상실감, 무상함과 같은 마음의 상처가 서두른다고 빨리 치유되진 않을 테니까. ‘참고 있지도 않아야지.’ 혼자서 참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니까. ‘미루지도 말아야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들도 치유를 앞당길 노력은 존재하는 법이다.

 

정서 궁합이 잘 맞던 대중가요들도 지금의 내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선율이 좋아도 가사의 내용들이 지혜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분히 감상적일 뿐이었다. 몇몇 지혜로운 노래들(이를 테면 삶은 여행, 커가는 내 모습, 혼자 사는 세상)도 있지만,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노래를 찾아 나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를 집어든 계기다. 18년 만에 다시 읽었다.

 

책이 소개하는 첫 인물은 공교롭게도 ‘쳇 베이커’다. 쳇의 곡은 많이 들었는데…, 하는 마음이 앞섰다. 아쉬움이다. 뭔가 낯선 인물, 새로운 곡을 기대했나 보다. 하루키는 쳇과 게리 멀리건과의 명연이 담긴 초기 앨범을 소개했다. 지금은 판매하지도 않는 자신(과 소수)만이 가진 앨범이었다. (이거야말로 ‘쳇’이로군!) ‘그래도 게리 멀리건의 노래는 오랜만이다’ 싶어 유투브를 검색했다.

 

이렇게 만난 앨범이 <Gerry Mulligan Quartet with Chet Baker>다. 수록곡들을 날마다 듣는다. 지겹지 않다. 매일 한 움큼의 위로, 소소한 행복, 내면의 평온을 얻는다. 몇 곡은 올 겨울 내내 나의 ‘반려 음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오늘밤 친구와의 술자리를 빛내줄 음악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나른한 오후 시간이다. 음악을 들으며 잠시 졸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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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10분 넘게 택시를 잡지 못해, 아슬아슬하게 열차에 올라탔다. 창원행 새벽 기차다. 졸린 눈, 어두운 창밖. <그리스인 조르바> 26장을 몇 장 읽다가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잠들기 전에 읽었던 "우리의 이별은 칼로 벤 듯이 깨끗했다"는 말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객실을 나와 출입문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 앞의 모든 것이 빠르게 스쳐갔다. 우리네 인생처럼! 시선을 먼 산 쪽으로 던졌더니 풍광이 서서히 지나간다. 하루하루의 시간 같다! 어제 오늘의 하루는 눈으로 그려볼 수 있지만, 지나간 10년의 세월은 몇 조각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가?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 봐."(이상은, 삶은 여행) 마산역에 도착했더니, 아침 햇살이 나를 반겼다.  



2.

열차 안에서는 한가로웠다. 그 여유가 좋았다. '거기'에서의 여유를, 내가 머무는 '여기'로 데려올 순 없을까. 무엇이 다를까. 인터넷 연결 여부,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광, 흔들림과 덜커덩거림, 거주자와 여행자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차이?


3.

3시간이라는 이동 시간에 읽거나 쓰고 싶었지만, 졸음이 쏟아졌다. 어젯밤에 일찍 잠들었지만 새벽 4시라는 기상 시각은 만만찮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6시까지는 자야 한다"라는 말로 결론 지어서는 안 된다. 기상 시각이야 길들여지기 나름임을, 먼 나라 여행에서 시차에 적응해가는 몸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누구나 새벽 4시 기상에 자신을 맞출 수 있다. 9시나 10시에 자면 되니까. 그저 절실하지 않거나, 단호하지 않을 뿐.


4.

이 책은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원고 제목이다(아직은 가제다). 매혹적인 글귀로 유혹하고픈 마음도 담았지만, 선동의 마음 없이도 나는 저리 말할 수 있다. 위대한 두 영혼(화자와 조르바)이 만나 예술, 지혜, 감동, 혼란, 성장을 안기는 환상적인 책이니까. 그저께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저를 알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하려고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나에게서도 배움을 구했다. "책 한 권 깊이 읽어볼래요?" 라고 했더니 반색했다. 어떤 책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니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책이 제격일 것 같다.


5.

어젯밤엔 일찍 자야 했고, 일찍 일어나야 했다. 택시를 잡느라 새벽 공기를 마셔야 했다. 창원행이 싫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를 신경쓰기는 해야 한다. 이런저런 수고로움이 마산역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면서 잊혀졌다. 청랭한 공기가 상쾌했다. 아침 8시인데,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마산까지 왔다는 사실이 역동적인 기분을 안겼다. 세상에는 새벽을 깨워가며 일하는 사람들도 무지 많겠지,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역동적인 에너지, 펄떡이는 숨소리, 새벽 공기를 내 일상에도 채워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만이라도! 창원역을 빠져나와 활기차게 걸었다. 이른 아침에 오픈한 스타벅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베이글을 먹었다. 오랜만에 잠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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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드물지만, 강연을 진행하고서 손해보는 경우가 있다. 수강료는 적은데 교재를 그럴듯하게 제작하거나 공지를 느지막이 올리는 바람에 참가자가 적은 경우다. 한 번은 교재비가 비싸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손해가 커지기도 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와우가 답답해했다. '꽤 괜찮은 콘텐츠인데, 선생이 왜 이러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 염려가 고마웠다. "이번만 이런 거야. 나도 생각이 있지."


그때만 그랬던 건 아니다(아마 그도 알리라). 전략이라 부를 법한 대비책 같은 것도 없었다. 내 마음을 따랐을 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긴 하다. 1) 가끔씩 내 수업을 찾아준 이들이 가슴 시리도록 고마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작은 보답 차원의 수업을 기획한다. 2) 누군가가 내 수업을 원하면,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이내 포기한다. 당분간 강의 계획에 없던 수업이라도, 한 사람을 위해 기획하는 것이다.


며칠 전, 1월의 '긍정심리학' 수업을 와우와 인문학 수강생들에게 공지했더니(아직 블로그엔 공지 못했다), 두 분이 질문을 주셨다. "긍정심리학에 관심 있는데 평일 수업이라 좌절입니다." 행간 속에 "주말 수업은 안 하시나요?"라는 물음이 보였지만 차마 묻지 못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다른 한 분은 이리 물었다. "선생님! 강의력, 글쓰기 수업은 개설 예정이 없으신지요? 저는 그 수업도 고대한답니다. 평일 저녁보다 주말 시간대면 더욱 좋고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주말은 나만의 시간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일을 하더라도 평일보다 집중하기에 좋다. 며칠 동안 대답하지 못하다가 오늘 별안간에 결정했다. (돈만큼 아니, 어쩌면 돈보다 시간을 더 따지는) 머릿속 계산기를 던져 버렸더니 간단해졌다. 두 분의 요청에 응하기로 했다. 이번 달에 하나(좀 더 긴급한 분부터), 다음 달에 하나! 나다움을 선택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질문을 주신 분은 올해 하반기에 쭉 수업을 들으신 분이다. 가능한 일정을 여쭈어 날짜를 잡았다. 결정 후에도 다시 계산기가 작동할까봐 나는 반대정신을 밀어붙였다. 더 친절한 자료를 마련하고, 더 견실하게 준비하고 , F-up도 진행하자고 생각했다. 수업 이후엔 글쓰기 피드백도 진행하기로 했다. 글쓰기는 내 수업 중에서 비교적 고액인데, 자존심을 조금 내려 놓고 여느 자기경영 특강 수준으로 낮추었다. 계산기여 물렀거라!


가끔씩 나를 노크하던 마음 한 조각을 덜어내니, 기분이 좋다.



Posted by 보보


왜 이리 기분이 좋지? 노래 한 곡 들었을 뿐인데….

첫 소절의 기타 연주만으로도 사람을 홀리더니

연주하는 내내, 노래하는 줄곧, 전율을 안긴다.


당장 기타를 안고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저이처럼 부르고 연주할 순 없으니,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본다. 황홀이다!


심사위원들은 뭐라 평했을까, 궁금하지만

훌륭한 예술은 비평 없이도 우뚝 존재한다.

신들린 한 소녀가 글망을 불러일으킨다.


* 글망 = 글을 잘 쓰고픈 열망! ^^



Posted by 보보

1.

11기 와우팀원을 어찌 할까? 오랫동안 나의 고민이었습니다. 새로운 와우팀원을 모집할까 말까를 두고 몇달 동안 갈등했지요. 어떤 날에는 '10기를 끝으로 그만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며칠 후에는 '아니지, 새 기수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11기까지는 하겠다고 말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자'며 나의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4/4분기가 되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죠. 급기야 그리스 여행을 떠나면서 "와우 11기를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고 돌아오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미코노스 섬에서 잠시 나만의 시간이 주어져 와우에 관한 여러 가지를 곰곰히 생각했습니다만, 확고한 결정 없이 귀국하고 말았네요. 우유부단은 저의 취약점입니다.


2.

내면에 존재하는 11기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렇습니다.


- 와우는 부담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마음과 시간을 많이 써야 한다. 영업맨이었을 때, 매출 규모가 큰 거래는 그만큼의 많은 노력과 관심을 요했다. 와우는 그런 느낌이다. 친밀함과 수업료가 높은 만큼 부담감도 크다.

- 2017년에는 포틀랜드와 제주에서 한 달쯤 살고 싶다. 와우를 하게 되면 자유로운 여행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 오롯이 글만 쓰며 살고 싶기도 하다. 와우가 글쓰는 삶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점에서는 글쓰기를 돕기도 한다. 동시에 와우를 비롯한 모든 활동을 줄이고, 작가로서 인생의 승부를 걸고 싶은 마음도 크다.


3.

반면, 11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도 있습니다.


- 여기저기 던져 놓은 말빚들이 있다. 그 약속들을 지키고 싶다. 마흔이 되기 전에 삶을 홀가분하게 정리하고 싶은데 그 중 하나는 돈빚, 말빚을 정리하는 일이다.

- 와우를 하면 에너지를 얻는다. 새로운 친밀함을 만날 것이고, 그것은 삶의 커다란 활력이 될 것이다. 11기의 합류가 와우 공동체에 신선한 분위기를 불어넣기도 할 테고.

- 수업료가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 수업료와 와우는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하다. (아니, 자존심인가?)


4.

10월 말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2기, 13기까지 계속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11기까지는 하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11기에 전력을 기울이며 그간의 과정을 글로 쓰며 유종의 미를 거두자!"


와우 TMT(11월 5~6일)에서 누군가가 "11기는 언제 모집해요?"라고 묻길래, 곧 공지를 낼 거라고 말했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누군가가 이리 말했습니다. "공지는 11월 11일 11시 11분에 올리세요." 모두가 웃었고,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1월 11일에 나는 공지를 작성했습니다. 와우스토리랩을 소개하는 웹 브로셔를 업데이트하고 지원 절차를 정했습니다. 1년 360만원이던 수업료를 두고도 적잖이 고민했었는데 기존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죠. 포스팅을 하면 되는 찰나, 또 다시 병이 도지고 말았습니다. 우물쭈물 고민하다가 행동하지 못하는 병통 말입니다. 결국 공지 포스팅은 '비공개' 상태로 유보되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5.

심사숙고와 다차원적인 고려는 저의 강점입니다. 이러한 강점의 이면은 결정력 빈곤이라는 약점입니다. 사람들과 연관되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면 그나마 결정을 하는 편인데, 제 인생의 결정에서는 주저하다가 미루기 십상입니다. 괴로워하다가 악수를 두고 싶진 않아서 그간의 고민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합니다. 더욱 미뤄진다는 말입니다.


때론 결정이 별안간에 이뤄지기도 하나 봅니다. 무관하게 보이는 사실이나 이야기를 읽다가 결정을 내리기도 하니까요. 오늘 나는 '조은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가 와우 11기 운영을 결정했습니다. 속이 후련하지는 않고요, 가슴이 조금 두근거립니다.


나는 수업료를 참가자들의 자율에 맡기기로 했스비다. 예전에도 강의료를 이렇게 하려다가 반대(특강이면 모를까 선생님을 알게 되면, 수업료가 자율이라는 게 더 부담이 될 수 있어요)에 부딪친 적이 있어, 참가자들의 부담감을 덜어낼 나름의 계책도 세웠습니다. 이 생각이 어떤 결과를 이끌까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모험을 해봤아요?" 결정을 내릴 때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오늘 저녁에 읽은 이 질문이 무의식에서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내린 결정인지 헷갈릴 때마다, 잘못된 판단이 타이밍을 놓친 올바른 판단보다 낫기도 함을 인식하고 싶네요.


* 11월 30일까지는 공지를 올릴 겁니다. 이번에는 정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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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핸드폰 전원이 꺼지곤 한다. 37개월째 사용하고 있는 '갤럭시노트3' 얘기다. 증상이 나타난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금방 다시 켜진다면 일시적 현상이라 여기겠지만, 한 번은 대여섯 시간 동안 켜지지 않았다. 조바심이나 걱정은 없었다. 이내 다시 켜질 것 같았고, 켜지지 않더라도 데이터는 구할 거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사망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다. 최근에 찍은 사진들과 핸드폰으로 주고받았던 인간관계의 흔적들이 아쉬울 뿐. (노트북과 두 번 결별한 내게는 경미한 사태다.) 아직은 휴대폰을 다시 살 생각이 없다.

 

최소 6개월, 최장 1년은 더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열흘 전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핸드폰 케이스를 구매했다(사용하던 짙은 파란색 케이스는 봄과 여름용이었다). 가격은 2,500원! 1만원이어도 이 케이스를 선택했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무광의 검은색 케이스가 꽤나 고급스럽다. 무른 플라스틱 느낌의 소재에 스크래치가 쉽게 난다는 점 말고는 마음에 든다. 어젯밤의 일이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케이스 한쪽 모서리가 시멘트 바닥에 찍히고 말았다. 다행하게도 그 모서리에만 흠집이 생겼다.

 

오늘 아침, 최순실 씨 딸 정유라의 입시 비리 의혹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긴 기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이 정권이 자초한 '하인리히 법칙'의 사례 같다는 말로 끝났다. 보험 전문가 '허버트 하인리히'가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대형사고의 발생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 큰 재해,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주장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형사고 전에는 그간 덮여져 온 크고 작은 특혜, 비리, 부정, 범죄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결정과 행동이 무지막지하게 더딘 사람이지만, 기사를 읽고 나서 하루 일과를 준비하던 중 별안간에 핸드폰을 구입하자고 결정했다. 결정의 계기가 뭘까? 전원이 불쑥 꺼지는 사태가 교체시기를 알리는 신호인지(아니면 서비스센터에서의 점검 신호인지), 구입한 핸드폰 케이스에 생긴 생활기스와 모서리 흠집 때문인지, 따져볼 생각은 없다. 섬세한 사고 놀이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 구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남양주 여행의 마지막 대화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행을 갈무리했다. 서로 근황을 얘기하던 중 한 명이 정리수납 강사 과정을 앞두고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원래 뭘 하나 하기 전에 혼자서 공부하는 편이거든요. 인터넷으로 조사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해요. 정리수납에 관심이 있던 차에 어느 날, 그냥 한번 시작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아무 것도 조사하거나 하지 않고 말예요." 인상 깊은 말이었다. '삶의 양식'을 바꾸어버린 사례였기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내 삶의 양식도 바꾸어 버렸네. 자네가 떠나면서 나더러 책벌레라고 했던 말 기억할 걸세. 그 말이 적잖게 마음에 걸렸던 나는 한동안(아니면 영원히?) 종이에다 끼적거리는 버릇을 집어치우고 나 자신을 행동하는 삶 속에다 던져 넣을 결심을 했다네. 나는 갈탄이 매장된 산 하나를 빌렸네. 나는 여기에서 인부를 고용하고 직접 곡괭이, 삽, 아세틸렌 램프, 소쿠리, 손수레를 다루네. 내 손으로 갱도를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 자네 말을 무색케 하려고 이러는 것이야. 갱도를 타고 땅속에다 길을 내는 것으로 책벌레는 두더지가 된 셈이지. 나의 이 변신을 찬성해 주면 좋겠네.” (p.133~134)

 

예비 정리전문가의 말은 조사를 멈추고 행동에 뛰어든 또 하나의 변신 이야기였다. 대화가 열정적으로 이어져 묻지는 못했지만, '삶의 양식을 바꾼 계기나 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도 삶의 양식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인지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도 변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던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책벌레'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나의 목표는 독서가나 서재인이 아니었다. 주변 세계에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읽은 대로 실천해야 했다. 결심하면 행동해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실행이 느렸다.

 

지금 생각으로는 '책벌레라도 되었으면 좋으련만'(지성인에겐 책읽기도 실천일 테니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행동하지 못한 채로 보낸 세월들이 아쉽다. 글을 쓰는 지금, 깜짝 놀랐다. 생각을 정리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평온이 찾아들면, 행동은 다시 미뤄진다. '생각이 정리됐다'는 이유로 핸드폰 구매는 관심에서 사라지고 만다. '행동하는 삶'으로의 변신을 원하면서도 변신으로부터 시나브로 도망가려는 나에게 그물이라도 던지고 싶다. 더 늦기 전에, 나를 포획하여 결정했으면 행동하는 삶으로 던져 넣고 싶다.


결정이 맞는가를 되묻지 않고, 후회해도 좋으니 실행하는 삶! 내게는 이것이 필요하다.

  


책상 앞에 놓인 책이 나를 쳐다본다. 표지가 말한다. "생각을 멈추고 지금 당장 시작하라." 책을 펼쳤더니 이런 말도 들린다. "준비하지 마라. 시작부터 해라." "조사는 재미있고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이 조사의 위험성이다." 생각이 평온을 부르긴 하지만, 삶을 바꾸려면 행동해야 한다. 나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행동주의자들에게도 약점이 있으니까. 그들은 대개 그윽하지 못하다). 자괴감도 없어야겠지만, 안주와 자기합리화도 금물이다. 나는 달라지고 싶다. 행동하는 인생이라면, 일시적 퇴보를 불러오더라도 달려들고 싶다. 핸드폰 구입이든, 운동이든, 출간이든 그 무엇이든 행동하련다.

 

아뿔싸! 이러한 글 따위는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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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수요일 이후(10.26)부터 오늘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련한 뉴스 시청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내 일상을 잠식했다. 날마다 놀랐고, 밤마다 내일을 희망했다. 희망은 번번히 깨졌다. 검찰은 귀국한 최순실에게 31시간의 자유 시간을 주었고, 청와대는 사태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늘(11.04)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담화(전문 클릭)는 허망함의 백미를 장식했다. 취임 하시기 전부터 이미 대통령의 인식 능력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오늘 담화는 나의 낮은 기대마저 박살냈고, 주도적이지 못한 화법은 복장을 터지게 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대통령님! 저 바람이 진정이신가요? 그렇다면 대통령 님의 지적 능력에 서글퍼집니다. "저질렀다고 하니"라는 표현은 어디에서 오신 건가요? 도대체 대통령 각하의 주체적 판단력은 어디로 가신 겁니까? 다시 노년층의 동정심을 바라시는 건가요? 지금 이 자리는 감정의 호소가 아닌 냉철한 사태 파악과 대책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저도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어서 외롭게 지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 잘못을 외로움으로 돌리지는 않았습니다. 국가의 리더께서 이런 담화문을 내어놓았다는 사실에... 정말 슬펐습니다."

국민담화를 생방송으로 보고 난 후 울화가 치밀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늘 담화는 인식 능력에 한숨을 쉬었고(전반부), 감상적인 개인 반성문 같은 내용에 답답했고(중반부), 국민이 기대하는 대책은 없고 '사이비 종교' 논란만 뚜렷이 선을 긋는 무책임에 화가 났다(후반부).

국민담화는 놀라운 파장을 불렀다. 야권은 경악했다. 여권의 비박계 역시 통탄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김성태 의원의 발언이 위안이 되었다. “대통령 측근 인사가 국정운영을 할 때까지 감시해야 할 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데 대해 사실상 ‘친박 해체’ 정도의 진정 어린 용서를 구하는 부분이 왜 빠졌는지 아쉽다.” 대통령 담화를 보고 속으로 펑펑 울었다는 이정현 대표의 말에 울화통에 터지던 차에 김 의원 발언이 반가웠다.

권력은 돈을 좋아하지만, 나라에는 눈 밝은 이들도 많다. "박근혜는 대통령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식견ㆍ인문학적 콘텐츠도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한다. 그녀는 이제 말 배우는 어린 아이 수준에 불과하다." 최측근이었던 전여옥 전 대변인의 말이다. 이제는 작가라는 호칭을 붙이는 유시민 선생은 이리 말했다. "논리가 없고 이치에 밝지 않다. 이치에 밝아야 아랫사람에게 속지 않은데. 정치 경력이라고는 의전 경력 뿐이다. 정책도, 종합적 정치 능력도 없다."

나라의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한 국가가 이리도 흔들릴 수 있구나, 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국민들의 정치 의식이 국가의 수준을 좌우한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셨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지만,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희망을 품고 힘을 내어본다. 국민들의 눈이 밝아지고 정치의식이 깨어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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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보려고 극장에 갔다. 표를 사서 밥을 먹고 왔더니, 대기실에 90년대 가수 K가 앉아 있었다. (K가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일 확률이 높다.) 영화 입장을 알리는 안내를 따라, 그도 나도 함께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K와 나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로 곁에 앉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는 곧장 나갔고, 나도 따라갔다. “저기 가수 K 씨 아니세요? 제가 지금도 이 세 곡을 가사를 외워 끝까지 부릅니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예요.” 이렇게 할 말을 생각해 두었지만,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극장을 나와 교정을 걸어가는데, K의 자동차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는 차창을 열어 창턱에 왼팔을 걸친 채로 내게서 4~5m 떨어진 곳을 느린 속도로 지나치고 있었다. “저기, 잠깐만요! 혹시 가수 K씨 아니세요?” 라고 말할 기회는 불과 2, 3초의 순간이었다. 생각에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내게는 너무 짧은 찰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기를 냈다.”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는 날이 오겠지. 집으로 돌아온 밤에, 그의 노래 3곡을 연달아 들었다. K와 그의 노래를 함께 불렀던 친구를 생각하면서. (9월 14일)


2.
“명절에 내려와도 이젠 만날 사람이 없지?” 거실에서 함께 얘기 나누던 중 삼촌이 물었다. 상욱이의 부재를 염두에 둔 말씀이었다. “네. 예전엔 상욱이가 역까지 마중 나오거나 배웅해 주곤 했는데, 지금은 그러네요. OO이는 명절이면 서울 처가에 가고, 다른 친구들도 애들이나 와이프랑 보내느라 명절에도 바쁘고요. 상욱이는 어떻게든 시간 내어 만났고요...” 잠시 심호흡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재수씨에게 연락하거나 한 번 만나면 좋은데, 제가 핸드폰을 안 가져 왔으니 연락처도 모르네요.”


나만의 강박관념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절이라는 특별한 기간에 누군가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려면 친한 사이여야 한다. 그가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까. 친한 사이가 없지 않지만, 명절 때마다 만났던 가장 친한 친구가 없으니 나의 명절이 조금 한가해지긴 했다. 정말 큰 아쉬움이지만 아쉬움에 함몰되어 지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스펜서 존슨이 알려 준 지혜를 언제나 간직하고 있다. “인생의 절정은 내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순간이다. 인생의 나락은 내가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순간이다.” (9월 15일)


3.
오전 일찍 엄마에게 다녀왔다. 오후에는 상욱에게도 갔고, 친구를 만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를 하면서 술을 곁들일까 말까를 두고 한참을 망설였다. 우리가 원했던 와인은 품절되었고, 주문하려던 음식은 주방장이 나오지 않아 오늘은 안 된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와인은 너무 비쌌다. 술은 후일을 기약하고, 식사만 하기로 했다. 세 가지 음식을 주문해 나눠 먹기로 했다. 나는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좋아하진 않지만 싫지도 않은 음식이다. 다른 음식과 조화를 이룰 만한 메뉴라는 판단이었다. 


테이블에 나온 음식은 보조 주방장의 솜씨가 그리 훌륭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나는 식당 측에 점잖게 한 마디를 건네고 싶었지만, 친구들은 괜찮다고 말렸다. 분위기를 망치지 말자는 의도였다. 나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품위도 잃지 않으면서 의견을 개진할 자신이 있었다. 고급 식당이라 그들에게도 조언을 받아들일 여유와 불평을 받아들일 자신감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참아야 했다. 친구들이 원하지 않았으니까. 매너 없는 '불만'이 아닌 소중한 '의견'을 전하고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아쉽다. (9월 16일)


4.
오늘은 상욱이 생일이다. 한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매년 생일을 맞을 때마다 새로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 희망적인 조언이다. 비록 저 세상의 친구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한가위 전후에 맞이하는 생일이라, 인스펙션 친구들은 명절에 만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상욱이 생일에 만나거나 했다. 어렸을 적의 일이고, 녀석이 살아있을 때의 일이다.


인스펙션 카톡 창에다 "오늘 상욱이 생일"이라고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재수씨에게 연락할까도, 생각만 했지,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 실행하는 게 좋았을까, 관두었던 게 좋았을까? 어느 쪽이 나았을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오늘은 어떤 쪽이 좋았을지 궁금하다. 나의 이런 성향이 누군가에겐 답답하게 느껴질 텐데, 종종 내게도 그렇다. (9월 17일)


5.

오전에 <인문주의를 권함>(가제) 원고를 다듬었다. 내겐 가슴 아픈 원고다. 2014년 9월 2일에 저장된 파일을 2년이 지나고서야 손을 댔다. 그해 9월 22일에 하드디스크 유실로 많은 자료를 잃었다. <인문주의를 권함>은 9월 2일에 지인에게 공유한 덕분에 건졌다. 그간 손을 대지 못한 채로 지냈다. 원고를 다시 쓸 필요가 없는 앞부분만 출간하려던 계획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분량이 적다는 이유였다. 전체 원고를 살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유실했던 부분을 다시 퇴고해야 했다. 이번 연휴에 그 부분의 퇴고를 시작했고,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오후에는 삼성 대 LG 프로야구 경기를 시청했다. 퇴고에 매진하고 싶었지만, 중요한 시기의 경기라 두 시간을 덩어리로 투자했다. 결과는 쓰라린 패배였다. 아쉬움을 안고 카페로 가서 다시 <인문주의를 권함>을 매만졌다. 밤에는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이후에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가수로 재기한 김혁건의 강의 영상을 보았다.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포기하지 않을게요." 이 말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더 이상 슬픈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아요. 행복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나도 다시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글쟁이로서의 행복을 누리고 말아야지.' (9월 18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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