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아뿔싸! 또 글이라니!

카잔 2016. 11. 7. 12:18

느닷없이 핸드폰 전원이 꺼지곤 한다. 37개월째 사용하고 있는 '갤럭시노트3' 얘기다. 증상이 나타난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금방 다시 켜진다면 일시적 현상이라 여기겠지만, 한 번은 대여섯 시간 동안 켜지지 않았다. 조바심이나 걱정은 없었다. 이내 다시 켜질 것 같았고, 켜지지 않더라도 데이터는 구할 거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사망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다. 최근에 찍은 사진들과 핸드폰으로 주고받았던 인간관계의 흔적들이 아쉬울 뿐. (노트북과 두 번 결별한 내게는 경미한 사태다.) 아직은 휴대폰을 다시 살 생각이 없다.

 

최소 6개월, 최장 1년은 더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열흘 전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핸드폰 케이스를 구매했다(사용하던 짙은 파란색 케이스는 봄과 여름용이었다). 가격은 2,500원! 1만원이어도 이 케이스를 선택했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무광의 검은색 케이스가 꽤나 고급스럽다. 무른 플라스틱 느낌의 소재에 스크래치가 쉽게 난다는 점 말고는 마음에 든다. 어젯밤의 일이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케이스 한쪽 모서리가 시멘트 바닥에 찍히고 말았다. 다행하게도 그 모서리에만 흠집이 생겼다.

 

오늘 아침, 최순실 씨 딸 정유라의 입시 비리 의혹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긴 기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이 정권이 자초한 '하인리히 법칙'의 사례 같다는 말로 끝났다. 보험 전문가 '허버트 하인리히'가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대형사고의 발생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 큰 재해,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주장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형사고 전에는 그간 덮여져 온 크고 작은 특혜, 비리, 부정, 범죄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결정과 행동이 무지막지하게 더딘 사람이지만, 기사를 읽고 나서 하루 일과를 준비하던 중 별안간에 핸드폰을 구입하자고 결정했다. 결정의 계기가 뭘까? 전원이 불쑥 꺼지는 사태가 교체시기를 알리는 신호인지(아니면 서비스센터에서의 점검 신호인지), 구입한 핸드폰 케이스에 생긴 생활기스와 모서리 흠집 때문인지, 따져볼 생각은 없다. 섬세한 사고 놀이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 구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남양주 여행의 마지막 대화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행을 갈무리했다. 서로 근황을 얘기하던 중 한 명이 정리수납 강사 과정을 앞두고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원래 뭘 하나 하기 전에 혼자서 공부하는 편이거든요. 인터넷으로 조사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해요. 정리수납에 관심이 있던 차에 어느 날, 그냥 한번 시작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아무 것도 조사하거나 하지 않고 말예요." 인상 깊은 말이었다. '삶의 양식'을 바꾸어버린 사례였기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내 삶의 양식도 바꾸어 버렸네. 자네가 떠나면서 나더러 책벌레라고 했던 말 기억할 걸세. 그 말이 적잖게 마음에 걸렸던 나는 한동안(아니면 영원히?) 종이에다 끼적거리는 버릇을 집어치우고 나 자신을 행동하는 삶 속에다 던져 넣을 결심을 했다네. 나는 갈탄이 매장된 산 하나를 빌렸네. 나는 여기에서 인부를 고용하고 직접 곡괭이, 삽, 아세틸렌 램프, 소쿠리, 손수레를 다루네. 내 손으로 갱도를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 자네 말을 무색케 하려고 이러는 것이야. 갱도를 타고 땅속에다 길을 내는 것으로 책벌레는 두더지가 된 셈이지. 나의 이 변신을 찬성해 주면 좋겠네.” (p.133~134)

 

예비 정리전문가의 말은 조사를 멈추고 행동에 뛰어든 또 하나의 변신 이야기였다. 대화가 열정적으로 이어져 묻지는 못했지만, '삶의 양식을 바꾼 계기나 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도 삶의 양식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인지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도 변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던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책벌레'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나의 목표는 독서가나 서재인이 아니었다. 주변 세계에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읽은 대로 실천해야 했다. 결심하면 행동해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실행이 느렸다.

 

지금 생각으로는 '책벌레라도 되었으면 좋으련만'(지성인에겐 책읽기도 실천일 테니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행동하지 못한 채로 보낸 세월들이 아쉽다. 글을 쓰는 지금, 깜짝 놀랐다. 생각을 정리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평온이 찾아들면, 행동은 다시 미뤄진다. '생각이 정리됐다'는 이유로 핸드폰 구매는 관심에서 사라지고 만다. '행동하는 삶'으로의 변신을 원하면서도 변신으로부터 시나브로 도망가려는 나에게 그물이라도 던지고 싶다. 더 늦기 전에, 나를 포획하여 결정했으면 행동하는 삶으로 던져 넣고 싶다.


결정이 맞는가를 되묻지 않고, 후회해도 좋으니 실행하는 삶! 내게는 이것이 필요하다.

  


책상 앞에 놓인 책이 나를 쳐다본다. 표지가 말한다. "생각을 멈추고 지금 당장 시작하라." 책을 펼쳤더니 이런 말도 들린다. "준비하지 마라. 시작부터 해라." "조사는 재미있고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이 조사의 위험성이다." 생각이 평온을 부르긴 하지만, 삶을 바꾸려면 행동해야 한다. 나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행동주의자들에게도 약점이 있으니까. 그들은 대개 그윽하지 못하다). 자괴감도 없어야겠지만, 안주와 자기합리화도 금물이다. 나는 달라지고 싶다. 행동하는 인생이라면, 일시적 퇴보를 불러오더라도 달려들고 싶다. 핸드폰 구입이든, 운동이든, 출간이든 그 무엇이든 행동하련다.

 

아뿔싸! 이러한 글 따위는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