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고마운 가을 아침

카잔 2018. 10. 28. 18:11

같은 풍광을 보고도 때마다 반응이 달라요. 기분이 좋을 때에는 감탄사가 나오고, 마음이 아플 때에는 한탄이 나오더군요. 오늘 아침의 가을 풍광은 여전히 아름다웠죠. 서정주의 <푸르른 날에>가 떠오르는 아침이었습니다. 가을이 산에 부린 마술에 감탄하기보다는 그리운 시절을 회상했다는 말이에요.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었습니다. <다섯 가지 소원>이라는, 10여 년 전에 읽은 자기계발서를 어젯밤에 침대 옆 테이블에 두었거든요.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었어요. 처음 읽었던 당시, 나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저는 내게 필요했을 내용을 은근슬쩍 회피하면서 읽었거든요. 그리고는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다시 읽은 소감은 ‘후회막급’입니다. 책에 대한 후회가 아닙니다. 왜 그때 나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입니다. 다시 생각하니 '막급'까지는 아니네요. 후회하면서도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도 크거든요. '그래, 문제를 외면했으니 지금 이 모습이 된 거야' 하는 자기 직시의 심정으로 책을 읽었던 겁니다. 이번에는 문제로부터 도망가지 말아야죠.


구 선생님은 당신의 책에 이런 표현을 쓰셨어요. “마흔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힘든 시절이다.” 이 구절의 한참 뒤에는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는 말도 나와요. 전환에 성공하려면 자신의 문제와 적절한 거리 감각이 필요하겠죠. 자기 문제를 모조리 개선하는 사람은 없을 테고, 중요한 문제의 해결 없이는 삶의 도약이 없을 테니까요.


최근 3일 동안 아침마다 긍정적인 기운을 만나요. 창조적인 일에 마구 달려들고 싶은 요즘이네요. 무진장 책을 파고들거나(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늘 독서예요) 의미 가득한 여행을 떠나거나(아, 정말이지 내게 필요한 건 여행인지도 모르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거나(필라테스나 일본어는 어떨까요? 영어부터 잘 하고 싶긴 하네요)! 사랑에 폭 빠져도 좋겠어요.


지금 양평에는 비가 내려요. 가을비에 마음이 조급해졌다가 이내 평온을 되찾았어요. ‘아! 단풍이 더 떨어지겠구나. 추워질 테고. 하지만 괜찮아. 달리 어쩌겠어? 이것이 계절의 순환인 걸. 아쉽게도 마음앓이를 하느라 2018년 가을을 향유하지는 못했지만 여유롭고 우아한 이들은 올 가을을 즐겼을 거야. 세상의 좋은 것들을 언제나 누릴 수는 없지.’


아침 음악은 재즈로 연주되는 캐롤 곡이에요. 흥겨운 리듬을 듣고 있어요. 마음에서는 알싸한 그리움과 경쾌한 설렘이 손을 잡고 춤을 추어요. 사랑하는 연인과 보낼 크리스마스를 꿈꾸면 좋겠지만 지금 난 상실감에 아파하고 있어요. 마음에 들진 않지만 고통스럽지 않음에 감사해요. 어젯밤에도 숙면을 취했거든요. 3일 연속으로 5시간 이상을 잤어요.


열흘 동안 숙면에 성공하면 이렇게 선언하려고요. “연지원 씨, 오늘 부로 이번 불면증은 떠나갔습니다. 땅땅땅!” 내가 나에게 보내는 판결입니다. 이 판결을 받기 위해 숙면을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가려고요. 밤사이 괜찮은 숙면을 취했고, 알싸한 마음이지만 고통스럽지 않으며, 잠깐의 여유에 기대어 글을 끼적였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고마운 가을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