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잠시 평온했다는 것으로

카잔 2018. 10. 27. 09:39

아침 햇살이 거실 바닥에 드러누운 모습을 봅니다. 가을의 평화, 주말 아침의 여유, 햇살의 따사로움 등을 슬쩍 느끼면서도 마음의 중심부에 자리한 쓸쓸함과 공허감을 토닥거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허전한 마음들이 가시겠지만 2018년의 여름과 가을은 혹독하네요. 거실 창문을 열고 책상에 앉았어요. 쌀쌀한 공기와 함께 까마귀와 까치 소리가 번갈아 거실을 방문하네요. (양평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포스팅하진 않았군요. 저는 지금 양평에 삽니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수면 시간부터 체크했죠. 그제처럼 푹 자지는 못했지만 나쁘지 않은 성적입니다. 이만하면 이틀 연속으로 숙면을 취한 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누군가가 보내 준 '만남'에 관한 글을 읽었어요. 사별과 상실이 많은 제게 위로를 건네기 위함이겠지만 저보다는 메시지를 보낸 그에게 더 절실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통찰이란 결국 인간의 개별성을 얼마만큼 이해하는가에 달린 일이 아닌가 싶어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와 함께 말이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물을 한 잔 마시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여섯 번째 읽는 중이죠. (일곱 번째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는 보수적으로 체크하고 싶네요.) 오늘은 11장을 읽었습니다. 오후 특강 준비 탓인지, 쓸쓸함 탓인지 희열을 느끼며 읽진 못했습니다. 11장이 다소 약한(?) 챕터였는지도 모르죠. (아무렴! 정말 그럴지도요.) 가슴을 울린 구절이 없진 않았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라 막연한 단상을 글로 적어보았어요. (별도 포스팅으로 올려 볼게요.)


잠시 일어나 양말을 신고 두꺼운 니트를 걸쳤어요. 거실의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거든요. 창문을 닫기는 싫었고요. 몸은 따뜻하고 공기는 차가운, 이 양극의 조화가 정신을 맑게 하는 것 같아서요. 무엇이든 상반된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최상의 가치를 만들어내겠지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에도 크림 소스와 토마토 소스를 조화시키는 것처럼 말이죠. 방금 까치 한 마리가 테라스에 앉았어요. 작은 소리로 깟깟! 소곤대더니 이내 날아갔어요.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요?


오후에는 강연이 있어요. 좋아하는 책방에서 불러준 강연이라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무 일정 없이 하룻동안 집에서 뒹굴거리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로 아무런 일정이 없다면 '아, 외로운 하루구나' 하고 아쉬워할 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죠. 요즘의 제가 고독을 잘 즐기지 못해요. 스스로도 낯선 모습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은 제게 성취와 낭만의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실제 일정이 없다면 '오늘도 정말 외로울까?' 하는 물음이 드네요. 마음이 얼마나 나아졌나 궁금한 거죠. 


진솔함과 편안함을 좇아 생각나는 대로 끼적이다 보니 기분이 나아지네요. '한결' 달라진 건 아니지만 '쓰는 동안' 잠시 평온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나 같은 글쟁이는 이렇듯 '쓰는 동안' 온갖 보상을 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쓰면서 자기를 만나고, 쓰는 동안 평온해지며, 쓰는 순간에 살아 있는 거죠. 상대적으로 글을 발표하지 않아도 되는 부류들입니다. 저는 아마 이런 부류에 속할 테고요. 이러한 성향이야말로 열 편에 가까운 책 원고를 투고하지 못한 채 끌어 안고 사는 근본적인 이유겠고요.


'가장 힘겨웠던 여름 날들을 이렇게 끼적이면서 살아야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늦진 않았겠지요. 제 삶이 다시 일상적인 궤도를 찾고, 제 마음이 다시 평온해지는 날까지, 다시 부지런히 '글이라도' 써 보렵니다. 나도 모르게 '글이라도' 라고 표현하게 되네요. 자조적인 기분이 자주 저를 휘감기 때문입니다. 책을 쓰기 위한 집필을 하지 않을 때에 종종 느끼는 기분입니다. 해결 방안이 또렷히 보이네요. 진솔한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책을 집필함으로 존재 이유에 다가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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