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신가. 친구.
친.구.라는 단어는 꽤나 맵고만.
두 글자를 쓰자마자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니 말야.
친구는 추상적 단어지만, 그 단어가 너의 모습을 생생히 불러온 탓이겠지.
새해 들어 여러 날을 감기몸살과 편도선염으로 고생했다.
그러다보니 내 거처가 병실이 되어버렸네.
사실 어디 병상이 따로 있겠나. 아픈 이가 몸져 누운 자리가 병상이지 뭐.
병상이라는 자리는 무엇보다 고통의 공간이더군.
몸이 아프니 다른 생각은 아무 것 나지 않고
그저 얼른 낫기만을 바라게 되더라고.
오늘로써 4일째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본의 아닌 칩거가 이틀 째 지속되던 날 밤, 네 생각이 나더라.
네가 시내 서점에 가고 싶다고 했던 12월 28일 말야.
그때가 10월 16일 이후로 맞은 첫 외출이라고 했잖우.
네 말을 들은 나는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짧은 감상에 젖었었지만
막상 그것이 어떤 기분일지는 지금에야 좀 더 잘 느껴.
사나흘을 틀어박혀 지내도 바깥공기가 그리워지는는데
자네야 오죽하겠나, 하는 공감이 생겨난 거지.
그래서 나는 고통이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회복시켜 준다고 믿어.
병상이라는 자리는 잉태의 공간이기도 하더라.
고통, 연대, 인생, 죽음에 대한 사유가 샘솟지 뭐야.
그렇다고 해서 평소에는 내가 사유의 불임자처럼 살아간 건 아니지만
분명 병상은 많은 생각 혹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
가벼운 감기몸살로 이런 말들을 늘어놓자니 심히 부끄럽고 쑥쓰럽지만
모든 개인이 소중한 존재고, 그의 모든 개인사는 인생의 중요한 일부임을 생각하며
내 사유의 흔적들이 낯간지럽더라도 좀 더 읽어주게나.
엄청나게 긴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마르셀 프루스트는
고통스러울 때 우리의 탐구심이 더욱 철저해진다고 말했는데,
그는 우리의 탐구심을 벼리어 주려고 그리도 긴긴 소설을 쓴 걸까?
그거야 모를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의 말이 잘 적용되더라.
어떤 이는 내가 보기에 고통과 탐구심이 전혀 무관해 보였지만,
그건 내 기준이지, 고통 전후의 그 사람을 비교해 보니 프루스트가 옳더라고.
내 경우는 확실히 그 명석한 작가의 말이 맞아. 고통스러울 때 좀 더 철저해져.
이 글은 철저함의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고, 또 너와 나누고 싶어서 쓰는 거다.
첫날, 정확하게는 1월 2일 새벽엔 온 몸이 쑤시고 아팠어.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아, 몸살이 왔구나.
몸은 정직하고 나는 성찰의식이 있는 편이라 변명할 수도, 불평할 수도 없더라.
왜 이런 사람들 있잖아. "왜 나야?" "왜 하필 지금이야?"
감사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은은하게 좋았다.
은은하게 좋은 게 뭐냐고? 사이키 조명처럼 들뜸의 기분이 아닌
어두운 방에 그것도 천정 가운데가 아닌
한쪽 벽면에 달린 희미한 백열등이 내는 빛의 은은함...
방안을 충분히 밝힐 정도는 되는 그런 빛의 은은함처럼 기분좋음이 내 몸을 감쌌다.
새해가 되면, 특히 첫 업무일인 1월 2일이 되면 시작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일들도 당연히 모두 중단!
이 작은 불상사는 내가 초래한 것이라 생각했다.
새해에 대한, 더 정확하게는 내 활동량에 대한 욕심이 느껴지더라.
몸살은 그 내면의 욕심이 불러온 것이지,
외부의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내 집 마당에 돌을 던진 게 아닌 셈이지.
그러니 불평과 변명을 할 겨를이 없었고, 대신에
상황의 인과관계를 따지며 새해를 차분하게 시작했다.
글로 쓰니 열줄, 스무 줄이 되는 일들도 막상 삶에서는 찰나의 일인 경우가 많지.
앞서 내가 언급한 생각들도, 실제로 내가 머리를 굴린 시간은 10분은 될지 모르겠네.
대부분의 시간은 나았으면 하는 생각,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은
오만가지라 부를 만한 잡생각이었고 간혹 정신이 그나마 명료해지면
나는 몇 가지의 생각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애썼다.
아픔의 강도는 주기적으로 세어지더라.
우리 학교다닐 때와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45분 수업 듣고, 10분 간의 쉬는 시간을 갖고 그랬잖아.
수업은 괴롭고 쉬는 시간은 행복한데
아플 때는 괴롭다가도 잠시 통증이 잦아들면 좀 낫더라.
글에 담고자 하는 것은 쉬는 시간에 맛본 찰나의 달콤함들이다.
우리가 10분을 활용해 매점에 달려가서 입에 넣었던 그 군것질거리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 아프면 서러운데"라고
내가 아플 때마다 이렇게 말하는 와우팀원이 있다.
처음엔 그런가 하고 지나갔는데, 자꾸 들으니 그 말이 싫더라.
왜냐면, 서럽거라 외롭지 않거든.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닐 테고 말야.
누군가 곁에 있으면 견뎌내기가 좋음은 말할 것도 없지.
먹을거리나 약을 사다 주기라도 할 테고.
이번에도 밤중에 열이 날 때에는 누가 물수건이라도 찬물에 적셔
이마에 얹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
하지만 나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서럽거나 외로운 것도 아니지.
그랬으면 좋을 상황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 사실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환원되어 버린다면 어찌 인생을 살겠냐.
인생은 불완전과 불확실성이 가득하고 늘 부족한 것들이 많은데 말야.
아플 때의 외로움은 당연한 것이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삼켜버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외로움을 느끼는데도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읜 덕에 세상살이가 허망함에 닿아있음을 일찍 깨달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상황에 매우 유연하게 적응할 줄을 알아서인지
여하튼 나는 아플 때에 그다지 서럽지 않더라. 그저 아.플. 뿐이다.
오히려 그가 혼자서 아프면 서럽다고 말할 때, 외로워지더라. 나를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세상이 자기를 몰라주면 그것이, 때로는 아픈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번에도 씩씩하게 아팠다.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엄살 부리지 않았고, 최소한의 일은 해내려 했다.
(사실 엄살 부릴 이도 없지.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조금 괜찮아질 때마다 간단한 메일 회신이나 와우 신년회 관련 일을 진행했어.
하지만 괜찮아진 상태가 오래 가진 못해서 조금 일어나 있으면
곧 다시 누워서 서너 시간을 잠자야 했다.
그저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움직였다. 밖으로 나갈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혼자서 이겨내는 모습이 내게는 씩씩함이나, 다른 이들은 미련하게 느끼시더다.
하지만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버릇들이지 못해서인지 참 어렵다.
그에게 폐가 되는 것도 같고, 어차피 아픔은 혼자 견디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도움 구할 때를 놓치고, 몸은 다 낫고.
미련하게 보이기는 싫어서 (내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걱정들을 하시니)
이번에는 씩씩함에 약간의 현명함을 더해보았다.
1월 3일 밤에 예정된 수업을 내 병상에서 진행했고
수업 후에는 간호사 분에게 수액도 맞았다.
뭐가 현명한 거냐고? 수업에 참석하는 분들에게 내 거처로 와달라 부탁했거든.
그리고 간호사 분의 호의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지금 생각해 보면 수업할 컨디션은 아니었던 것 같다.
목이 자주 잠기어 헬륨가스 마신 목소리가 종종 나더라고.
학생 분들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려 하는 것도 같았다.
수업을 하다가 화장실로 달려가 가래는 내뱉는 일도 미안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은 새해 첫 수업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에 하긴 해야 했고, 달리 바꿀 일정도 마땅찮았고.
현명하게 아프려는 노력은 약을 먹고 수액 맞는 것만이 아니었다.
몸이 천근 같아도 일으켜서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잘 먹어야 낫는다고 네이버에서 찾아올린 사이버 고수들이 한결같이 말하더라.
4일 동안 (정말 움직이기 힘들 때) 2끼인가 3끼를 거르긴 했지만,
이만하면 잘 챙겨 먹은 셈이지?
마음 속에 할 얘기는 아직 저만치 쌓여있는데,
글을 쓴지 40분이 되어가니 피로감이 왔다.
아직 몸이 완쾌된 것은 아니라 예감했던 일이다.
쓰는 데까지 쓰자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열었던 거고.
사실 4일이 좀 허무하게 지나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들더라.
(이제 오늘부터 조금씩 나아지려는 징조 같다. 아쉬움도 느끼고 말야.)
1월 3일에는, 새 포스팅이 안 올라오네요, 하고 넌지시 묻는 이도 있어서
진작에 글 하나 쓰자고 생각했지만 5일 오후가 되어야 이제 하나 쓰네.
하고픈 말을 못다 하겠지만 말야.
지금 이 순간,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죽고 싶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간 실존으로서의 죽음 혹은 삶의 마지막 과정으로서의 죽음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았지만 앉은 자세로부터 피로가 몰려와
이제 곧 글쓰기를 관두고 오침에 들어야 하는 지금의 상황과
하고 싶은 일이 여전히 남았지만 삶의 종착역이 다가와
이제 곧 모든 일을 내려놓고 영원히 안식해야 하는 상황의 유사함!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아직 쓸것이 남은 작가들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비록 못다 마치더라도 그들은 새로운 작품에 뛰어들지 않을까?
수잔 손택이 그랬고,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랬고, 윌 듀란트가 그랬다.
비단 그들 만이겠냐. 더없이 많은 작가들이 쓰다가 삶을 다했다.
운이 좋아 마무리를 하면 좋겠지만, 그 운을 잡지 못한 이들이 더 많겠지.
그 운이 좋고 나쁨도 내 기준이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잡고 있었던 자체가 축복이라고 여겼을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글을 마무리하면서도 내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궁극의 하나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다.
Favorite List의 최상위에 오를 만한 일이요, 놀이요, 공부다.
그 일을 할 수 있음이, 할 수 있는 삶이 있음에 감사하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흰색 화면에서 새로운 글자들이 융기하는 모니터를 볼 수 있는 눈,
글자들을 불러낼 생각을 가진 마음과 머리가 감사하다.
무엇보다 두어 시간 쉬고 나면 다시 일어나 일상에 복귀할 것 같은 이 느낌!
며칠 동안 아팠지만, 다시 안 아픔으로 돌아갈 몇 시간 후,
아니 넉넉잡아 다음 주의 내 일상도 미리 감사하다.
삶은 생로병사가 아니라, 生生生死면 좋겠지만 그것은 우주의 원칙이 아니지.
생과 사 사이에는 늙음이 있고 질병이 있다. 그것을 없애면 인생이 아니겠지.
'살아있는 동안, 피할 수 없을 이놈의 老와 病을 어찌할까?'
2014년을 몸살로 시작한 나에게 던져둔 화두다.
놈은 원망의 욕이 아니다. 좋진 않지만, 화해해 보자는 친밀함의 표현이다.
삼일째부터는 기침을 심하게 했는데, 기침은 어느 소설을 생각나게 했다.
연신 콜록대며 독거노인의 힘없는 삶의 이야기...
그 얘기를 하며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그건 못 쓰겠다.
4일만의 포스팅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난다.
저녁에 다시 이어쓸 수도 있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미래는 내 소관이 아니니니까.
나는 과거의 미래 사이의 좁은 틈, 현재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살잖우. 아니, 오늘만을 살잖우.
이제 자련다. 아파서 자는 게 아니다.
컨디션을 조절하는 차원에서 자는 거다.
진작 이렇게 살았으면 몸살도 안 만났을 텐데...
이번 교훈을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안녕. 친구.
잠자리에 들때마다 네 건강을 기원한다.
아프니까 기원이 좀 더 진해지더라.
그렇다고 내가 자주 아프길 기도하진 마시게.
아프지 않을 때에도 사람답게 살아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