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Nova/일지

이제 불면과 동침하러 간다

카잔 2026. 6. 17. 23:52

온종일 동분서주했던 하루였다. 분당으로 부친상을 당한 친구의 조문을 다녀왔고, 마포로 넘어가 스승의 번역 교정을 도와 드렸다. 저녁엔 온라인 글쓰기 피드백을 진행했다.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못 되어, 처음으로 카페를 찾아 들어가서 줌에 접속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라 손님이 한 분 밖에 없었고, 그이는 처음부터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카페에서의 줌 활동은 목소리를 크게 내기가 저어됐다. 오늘은 불가피했지만 앞으로는 강의 진행은 물론이고, 일대일 수업 또한 웬만하면 집에서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젯밤엔 잠자리에 들고서 3시간 가까이 불면에 시달렸다. 덕분에 오후 내내 졸음과 싸워야 했는데, 저녁 귀갓길엔 다행히도 그나마 멀쩡했다. 12시 어간에 잠들던 취침 리듬이 깨진 채로 며칠이 흘렀다. 도저히 다시 잠들지 못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자극이 덜한 활동을 하는 편이 낫다는 의사들의 권고가 떠올라 오늘은 책을 읽거나 차분히 하루를 정리하면서 잠을 청하려 한다. 요즘엔 잠자리에 누우면 오히려 걱정이 엄습하여 잠을 쫓아내 버리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자는 행복을 얼른 회복해야 할 텐데···. 
 
9시 넘어 도착하여 늦은 저녁을 먹었다. 뜻하지 않은 불규칙한 식사 시간은 못마땅하나 몸무게를 늘리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그렇다고 야식을 먹거나 과식을 하는 편은 아니다. 저녁 9시 이후에 음식을 먹는 일은 한 달에 하루 이틀에 불과하다. 건강 관리의 첩경이 올바른 식습관이라는 생각으로 매일 식단 관리와 12시간 단식을 꾸준히 실천해 왔는데, 식단과 식사 시간 모두 오늘은 조금 불만족스러운 날이 되었다. 더욱 불만스러운 것은 식사 후 자정에 이르는 이 시각까지 한 시간 넘게 유튜브 시청으로 날려버린 일이다. 

'PD수첩 일베 이즈 벡'을 보았으니 의미 있는 시청이었지만, 지금의 내게 절실했던 콘텐츠는 아니었다. 내일 아침 일찍 고성으로 사전 답사를 떠나야 하는 일정을 생각하면, 방금 코 앞에서 흘러간 한두 시간이 못내 아쉽다. 잠들기는 힘들었을 테니, 한번 더 동선을 확인하거나 답사지 정보를 보완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몸이 조금 피곤할 때면 유튜브를 보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곤 함을 느낀다. 가볍게 산책하거나, 집안을 정돈하거나, 차분히 독서하거나, 음악을 감상하는 등의 창조적 휴식도 많음을 뒤늦게 절감한다. 

끄적이는 사이 자정이 지났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아무 것도 실패하지 않은 하루'라는 순수한 가능성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그 하루를 살아갈 최적의 준비는 양질의 단잠을 자는 것이라는 사실을, 불쾌나 자조 없이 인식하는 중이다. 여느 날이라면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할 시간인데, 며칠째 불면을 겪으면서 오늘은 전략을 바꾸었다. 책을 읽거나 독서하다가 졸음이 눈꺼풀을 뒤덮을 때 잠자리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속절없다. 불면의 시간들의 지나가길 겸허히 기다리는 수밖에.
 
누워서 잠을 청해도 눈이 멀뚱해짐을 며칠 겪다보니, 근육이 나를 죄어오는 느낌이 들더라도 몸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일정이 많아 자야 한다고 세뇌해도 억지 자위를 해도 소용이 없다. 오늘부터 전략을 바꾼다.  근래엔 책을 도통 읽지 못했는데, 불면의 밤엔 책을 잡기로 했다. 스승의 책 중에서 '마흔의 불면'에 관한 내용이 떠올라 찾아 읽었다. 본격적인 주제로 다룬 게 아니라 슴슴히 책장이 넘어갔지만, 한 문장에선 불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면은 내게 또 다른 고독을 즐기게 해주는 방법이다." 
 
저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편함을 느낀 것은 수면 부족은 다음 날에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스승은 전업 작가이자 스타 강연가였으니 직장인처럼 연일 일해야 하는 부담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부러워하진 않으련다. 고독의 시간 중 일부는 자유롭게 책 읽고, 대부분의 시간은 일상 관리나 내일 해야 일을 하면 될 테니까. 방금 전에는 반려견 '오늘이'의 이빨을 닦고, 정리 중이던 책장을 정돈했다. 그러다 보니, 저 인용문을 나에게 점점 더 맞춤하게 변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얼마 후엔 이리 말할 수 있기를. 
 
불면은 내게 생산적인 고독과 창의적인 상념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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