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 23

<나, 다니엘 블레이크> 리뷰

1.예술은 내게 위로자요, 때로는 눈 밝은 안내자다. 망각했던 것들을 일깨워 삶의 모양이나 방향을 제안한다. 추구할 만한 가치와 달려갈 푯대를 보여주어 나를 추동한다. 그러한 일급의 예술을 보았다. 영화 ! 2. 영화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힘겨운 삶 그리고 그들을 섬세하게 돕지 못하는 관료조직의 고루한 위선을 보여준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예순 살 정도의 목수다. 성실하게 살아왔고, 자신에게 떳떳했다.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그만두게 됐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야 하지만 복잡한 절차가 번번이 그를 가로 막았다. 컴맹, 넷맹인 그에게 정부 기관들은 사전 신청을 하지 않았음을 타박한다. 블레이크는 절망의 순간에 우연히 자신보다 더 힘..

어떤 날은 3분이면 족하다

아침에 신문을 들고 오는 시간은 3~4분이다. 빈 손으로 나간다. 핸드폰도 필요치 않다. 한 시간 외출에도 핸드폰을 두고 가기도 하니, 잠깐의 외출이야! 책을 들고가는 일도 거의 없다. 시간이라면 찰나까지 아끼고 싶긴 해도 틈새 시간에 할 일들은 많다. 잠시 멍 때리기, 체조하기, 콧노래 부르기, 아무도 몰래 춤 추기, 하루 일정 돌아보기 등. 엘리베이터를 한참 기다린다고 해도 괜찮다. 스트레칭을 길게 할 수 있으니 좋다. 내가 오가는 시간대에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웬일인지 오늘은 책을 들고 나갔다. 조셉 캠벨의 산문집 『신화와 인생』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무렇게나 펼쳐 한 문단을 읽었다. "우리가 과학적 진리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 -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 항상 ..

2017년 변경연 1차 출간기념회

세 명의 남자가 행사장 입구에서부터 반겨 주었다. 올해의 연구원 대표와 운영진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너,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냐?” 이 말이 식상하게 들리지 않는 사이가 좋은 관계, 아름다운 모임이 아닌가 싶다. 모처럼만에 열린 출간기념회여서일까? 평범한 안부 인사마저 정겨웠다. 선생님이 계실 때에는 잦았던 행사였는데, 언젠가부터 뜸해졌다. 새로운 운영진이 준비한 ‘2017년 변경연 출간기념회(1차)’가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나저나 저 ‘1차’를 괄호 밖으로 해방시켜야 하는데….) 강연장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선후배 연구원들이 반긴다.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눴다. 자리에 앉았고 순서가 진행되기 전까지 옆 자리에 앉은 연구원과 잠시 얘길 주고..

밤과 낮의 책읽기

어느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었다. 전날 밤, 침대 맡에 미리 놓아두었던 책이었다. 책 선택은 즉흥적이었다. 계속 읽어오던 책이 아니었고 수개월 전에 몇 편의 에세이를 골라 읽긴 했던 산문집이다. 요즘의 독서테마와 연결되지도 않았고, 계획된 강연과도 연관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지금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었다. 삶의 소소한 습관이 지적 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그것도 막강한 영향이다. 이 책을 읽는 바람에 휴일 아침 시간이 나의 학창시절 회상과 한 작가의 젊은 시절을 정리하는 일로 채워졌다. 눈을 떠서 읽은 글이 헤르만 헤세가 1923년에 쓴 ‘자전적인 글’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던 것. 사실 어제 저녁만 해도 이튿날 오전 시간을 이렇게 보내리라고는 생각지도 ..

되돌아보고 싶은 어느 강연

1. 어제 ‘그리스인 조르바 특강’은 꽤나 즐겁게 진행했던 강연인데도 만족감은 당일짜리였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아쉬움들이 후두두 쏟아진다. 기분 좋은 느낌을 조금 더 누렸으면 싶은데, 아침에 떠오른 단상을 지켜보며 ‘나는 어쩔 수가 없구나’ 하고 유쾌하게 포기한다. 올해는 ‘어쩔 수도 있음’에 도전하길다짐하면서. - 쉬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이게 가장 아쉽다. 2시간 10분 동안 내리 달렸다. 청중에게 “좀 쉬었다 갈까요?” 하고 두 번을 여쭈었는데, 그때마다 몇 분들이 고개를 저으셨다. 침묵하는 다수가 계셨을 테고, 몸도 한 번 움직이고, 쉬는 시간에 서로들 인사도 나누실 기회였는데… 나의 순간적인 판단 착오가 아쉽다.) - PPT 슬라이드 작성에 좀 더 신경 써야 했는데…(지금까지와는 다른 인..

[특강] 그리스인 조르바

* 15일에 진행했던 특강을 같은 내용으로 한번 더 진행합니다. 조르바 1차 특강의 자발적 앵콜 강연인 셈입니다. 2월에는 1차와는 다른 내용으로 이어지는 2차 특강을 열어볼 생각도 있습니다. 강연을 코앞에 두고서야 알리는 습관은 여전하네요. 어쨌든, 공지 시작합니다. ^^ '미루는 습관을 극복하면 삶이 훨씬 나아질 텐데……' 오늘 아침에 들려온 마음의 소리입니다. 실은 자주 듣는 소리죠. 강연 공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일정을 코 앞에 두고 올린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지난 달, "조르바 강독회를 주말에 한 번 열어 주시면 안 되냐"며 한 와우가 애정 어린 부탁을 해 왔습니다. Why Not? 나는 "1월에 강독회를 열게" 하고 화답했지요. 대답은 시원했지만, 실행은 답답했습니다. 날..

5분 만에 행복해지는 법

즐겁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지요.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던 날의 저녁에도 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인생의 목적을 몰라도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행복감에 빠질 수도 있죠. 행복은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행복감의 본질은 삶에 대한 '만족감'입니다. 우리는 뜻밖의 장소나 상황에서 만족을 느낍니다. 잔잔한 호숫가나 잠자리에서의 평온도 행복감이고, 힘차게 달려간 후의 성취감도 행복감이니까요. 서로 다른 것에서 만족하니, 행복은 다분히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다양한 만족감을 '행복'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어 버리면, 일상 속의 여러 가지 만족을 섬세하게 누리지 못할 겁니다. 단어가 사유를 돕고, 정서를 풍요롭게 하니까요. 긍정적 정서를 10가지로 구분한, 긍..

삶은 울림을 준다

"시장을 방문하는 사진을 찍을 때 다른 정치인들은 사진 찍히는 순간만 포즈를 취하고 가버리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상인들과 소주잔을 부딪치고 그 술을 계속 같이 마셨습니다. 그분의 경우 모든 사진이 '연출'이 아닌 '실제'였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 장철영 대권 주자들의 정치 쇼(Show)를 볼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과 갈증을 잠시나마 날려버리는 말이다. 순도 높은 청량감이다. 장 씨는 노 대통령의 사진을 '가식 없는 삶과 그것이 그대로 반영된 사진'이라고 특징지었다. 한 번은 대통령이 당부도 했단다. “연출 사진은 피곤하다. 있는 그대로를 찍었으면 좋겠다.” 장씨는 말한다. “대통령은 저를 사진사로 존중해 주셨습니다.” 추억과 감상에 젖은 ‘미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 씨의 신간 『대통령님..

이런 건 필요 없는데…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친구는 두 달 동안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로 요양을 해야 했다. 세월의 자비와 인간의 위대한 치유력에 힘입어 꼭 두 달째 되는 날에 녀석은 나와 함께 외출했다. 수술 후 첫 외출이었다. 친구는 감격스러워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 친구는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선물을 하나 사 주고 싶었는데, 그 일을 오늘 하잔다.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들어섰다. 볼펜과 만년필을 파는 몽블랑, 파버카스텔, 파카 매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몽블랑까지는 못 사주지만, 괜찮은 거 골라보자.” 녀석은 나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 펜들을 살폈다. 오늘 꼭 사야 한다며 곧 죽을 사람처럼 구는 녀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친구는 단호했다. “니가 오랫동안 써야..

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내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먼지와 얼룩도 눈에 들어왔다. 신문을 뭉쳐 물을 적셨다. 현관의 붙박이 전신 거울을 닦았다. 더러웠던 거울이 깨끗해졌다. 내가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지저분해진 거울 앞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게 당연지사.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아도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거울을 닦고 나니 ‘내면의 거울이 깨끗하지 않았던 때구나’ 싶다. 누구나 긍정적 착각을 하거나 부정적 왜곡에 빠져 살아가니까. 심리학자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네 가지 긍정적 착각을 하며 산다고 말한다. 1)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2) 미래를 비현실적으로 낙관한다. 좋은 일들이 더 많을 거라고. 3) 삶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과장한다. 4) 실패를 노력 부족보다는 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