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리더십센터에 취업하게 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덧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서울은 고향보다 편안한 곳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요. 첫 몇 년간은 대구에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가 한강대교를 지날 때마다 낯설었지요.
타지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 그대로 온 몸을 감싸곤 했던 시절입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바로 그 한강대교를 지나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내 집에 왔다. 어서 들어가서 쉬자'
2006년, 2007년 어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가물해서 기억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서울 이 곳은, 이제는 완연한 제 일상이 펼쳐지는 곳이고
제 꿈이 이뤄져 가는 내 삶의 터전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내가 타지 사람임을 인식하게 되는 곳이 있습니다. 한강이지요.
한강변에 나가 바람을 맞으면, 서울에 처음 왔을 때의 그 낯설음이 되살아납니다.
낯설은 생경함과 어쩐지 어색한 듯한 느낌이 감돕니다.
그 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드라마 <서울의 달> 주제가였던 '서울 이 곳은'!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고단한 일정) 속에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힘든 건 모두가 다를 게 없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일 뿐이야."
살아가다가 딱 한 번 낯설다는 느낌이 드는 한강, 묘한 기분입니다.
사실, 삶이 힘들다거나 휴식을 필요할 만큼 고단한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도, 늘 이 노래가 떠오릅니다. 한강을 다녀 온 한동안은 이 노래를 부르며 지내지요.
동영상을 유심히 한 번 보시지요.
오른쪽에서 '장고'라는 글이 새겨진 노란 헬멧을 쓰고 미소 짓는 아저씨 덕분에 웃게 되고,
노래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김종서 분위기가 나는 보컬이 매력적입니다.
가사는 어찌 그리 나의 심금을 울리는지요.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한석규의 파란만장한 삶이 오버랩되면서
삶의 고단함,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떠오르는 가사압니다.
마지막 가사는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입니다.
저는 이 때마다 한석규의 눈물이 떠오릅니다. 측은지심입니다.
친구에게 사기도 치고, (기억으로는) 사기 결혼도 했던 그였습니다.
때로는 절망하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했겠지요.
그를 좋아하는 채시라, 채시라를 좋아하는 최민식, 최민식을 좋아하는 김원희.
이네들의 얽힌 사랑 이야기, 김용건 아저씨의 츄리닝이 떠올라 추억에 잠깁니다.
<서울 이 곳은>이 제게 주는 분위기는 이처럼 다양합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은 가사를 음미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내 마음에 각인된 노래여서 부르면 흥겹습니다.
언젠가 노래방에 가면, 이 노래를 불러야겠습니다.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것 같네요. ^^
기분이 좋아집니다.
'2010/07/19'에 해당되는 글 2건
- 2010/07/19 <서울 그 곳은> 장철웅
- 2010/07/19 자기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3가지 태도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객관적이라 함은 우리의 역사를 국수주의 시각에서 보거나,
우리에게 이로운 입장을 유지하며 편향되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우리 역사를 스스로 폄하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있었던 역사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다."
- 『CEO 인문학』, p.118
허성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강연 중에서 인용한 말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3가지의 잘못된 태도를 제시했다.
나름의 용어로 정리해 보았다.
1) 국수주의적 태도
2) 자기기만적 태도
3) 자기폄하적 태도
3가지의 태도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는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3가지의 방식으로 자신의 개인사를 바라본다.
첫째, 국수주의적 태도다.
국수주의란, "자기 나라의 고유한 역사ㆍ전통ㆍ정치ㆍ문화만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믿고, 다른 나라나 민족을 배척하는 극단적인 태도나 경향"을 뜻한다.
자신의 개인사를 뛰어나다고 판단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확신은 강하나 지혜가 결여된 이들이다. 이들은 뛰어난 성취를 달성할 수는 있지만, 훌륭한 리더가 되지는 못한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기만적 태도다.
이것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힘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태도를 말한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음을 아는 개인도, '그래 나는 불행해'라고 살아갈 순 없다.
'그래도, 나는 행복해'라는 자기기만의 방식으로 행복한 척 살아가게 된다.
이런 삶을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나쁜 것은 지속적으로 이렇게 사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지차게 되니까.
진실을 받아들이려면 자신의 잘못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직면할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힘이 없다면 현실 직시를 차단하고, 자신의 몽상으로 도망간다.
현실을 외면한 결과로, 현실은 더욱 고단해진다.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몽상으로 향한다. 이것이 자기기만의 악순환이다.
셋째, 자기폄하적 태도다.
이것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자존감이 없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패턴이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조언을 "그래요, 저는 원래 부족하고, 형편 없는 사람이예요"라는
식의 말로 차단한다. 이것은 주도성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스스로를 자위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나쁜 까닭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아가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적극성과 주도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은 경험으로 미루어 헤아려 볼 때, 국수주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20%
자기기만적 태도와 자기폄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각각 40%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퍼센트에 대한 구체적인 실증적 자료는 없지만,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며 느낀 나름의 결론이다.
3가지의 태도 모두 우리의 객관적 자기 성찰을 방해한다.
객관적인 자기 성찰은 중요하다.
진단이 잘못될 경우, 처방의 효과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건설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