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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가 되고 싶다. 글을 쓰며 살고 싶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깊어지고 싶다. 깊음을 열망하며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 하루를 글쓰기로 시작하고, 하루 중 몇 시간은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취재를 하고 싶다. 이것은 분명 내가 꿈꾸는 삶이다. 내가 음식점이라면, 누가 봐도 그럴듯한 외양과 멋진 간판을 내건 음식점이기보다는, 최고의 요리 실력을 뽐내는 음식점이고 싶다. 남들이 외양과 간판만을 보며 그냥 지쳐버리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후회는 없다. 최고의 실력을 가지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을 터이니, 나 자신에게는 아쉬움과 후회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2. 난 언제나 리더를 꿈꾸었다.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었고, 시너지를 체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와우팀을 시작했다. 2003년 제1기 와우팀이 출범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와우팀이 매년 성장해 왔다. 함께 해 준 와우팀원들도 자신이 누군인지 발견하고, 공동체의 기쁨을 누렸다. 아마도 누구보다도 더 가장 많은 성장을 한 이는 와우팀장이리라. 성장의 크기는 곧 내가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시간의 크기였다. 팀원들과의 가까운 관계는 때로는 부담되기도 했고, 실수를 한 적도 있고, 상처를 치유해 주기는 커녕 상처를 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절대로 포기하지는 않았다.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와우팀에 시간을 주는 것은 작가 다음으로 기쁜 일이다. 작가와 와우팀장을 두고 우선순위를 가리는 것이 힘들 정도다.

3. 강사의 삶도 즐겁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에 다른 이들에게도 적용되는 지혜들을 가려 뽑아 전달하는 일은 보람되는 일이기도 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약간의 수입도 있으니 밥도 해결해 준다. 강사에 대한 열망보다 작가에 대한 열망이 점점 더 커지기는 하지만, 1998년 이후부터 강연은 줄곧 내 일의 중심이었다. 2007년 1월, 독립한 이후로 138회, 146회, 72회 (올해는 진행 중) 를 진행했으니 연간 100회 이상의 강연을 했다. 횟수를 줄여가는 것은 더 깊어지려고 공부하기 위함이지, 강연에 대한 즐거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것이 수년 동안 살아왔던 내 직업의 우선순위다. 글을 쓸 때에는 작가 - 강사 - 와우팀장의 순이었지만, 글을 쓰고 난 후, 내 열망의 순위를 생각하니 작가 - 와우팀장 - 강사로 바꾸어야 했다. 숫자까지 매겨 두었다. 시간 사용의 순위는 와우팀장 - 작가 - 강사의 순서일 것 같다. 아직도 글쓰는 습관은 베어 있지 않고, 완벽주의에 빠져 글쓰기를 시작하기가 함들기 때문이다. 와우팀에게 시간을 주는 것은 무언가 공헌하려는 목적 의식 덕분은 아니다. 와우팀을 진행하는 일이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팀원들의 글을 읽고, 팀원들을 만나고, 종종 피드백을 하고, 함께 MT 를 떠나는 등의 일. 시간이 걸리지만, 그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서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함께 함만으로도 삶의 에너지를 주고 받고, 친밀함의 실체를 알게 되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인생살이의 지혜가 조금씩 생기는 것이다. 더불어 나를 알게 되고~!

우선순위를 한 번 작성해 본 것은 두 가지 이유다. 첫째, 내 삶이 나의 우선순위대로 흘러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 삶이 맹목적으로 흘러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맹목적이 되기 쉬운 것이 삶이다. 우선순위를 되새기는 것은 내 삶을 나의 바람대로 경영하고픈 노력이다. 둘째, 최근 새로운 우선순위가 생겨나서 생각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통하는 몇 사람들과 함께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 여기에 대한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 작가의 삶에 투자했던 시간을 몽땅 여기에 주었다. 내면의 정리가 필요하여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았던 것이다. 과거에 걸어왔던 길을 들여다 보면서 미래를 내다보아야 내 삶의 흐름을 보다 선명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명하지 않다. 그저 60~70 %의 확신이 들면 용기내어 걸어보려고 한다.

살아가면서 100%의 확신을 가지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100% 확신이 들 때까지 아무 일에도 도전하지 않는 것은...
혹시 비겁의 모습이 아닐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굴복한 비겁의 모습.
다른 이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비겁의 모습.
나는 이기심의 노예로 살아가고 싶지도 않고,
비겁한 자가 되어 내 영혼의 목소리를 놓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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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5일이 훌쩍 지났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블로그에 로그인 한 것도, 업무를 손에 잡은 것도 5일 만이다.
날짜를 꼽아가며, 사라진 듯한 5일의 행방을 추적해 보았다.

지난 21일 수요일 정오 무렵, 베이징 출장이 결정되고 난 후
항공권 예약과 도착비자 발급, 출장 준비 등으로  정신없는 오후 시간을 보냈다.
그 날 밤 12시, 나는 베이징 호텔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목요일에는 두 건의 중요한 미팅 덕분에 긴장된 시간을 보냈고,
금요일에는 귀국하느라, 하루를 보냈다.
금요일 저녁에는 7기 와우팀원과의 번개 모임이 있었는데,
모이기로 한 팀원의 몸이 좋지 않아 취소되었다.
대신, 목요일에 만나려고 했던 (하지만 중국 출장으로 연기했던)
다른 기수의 와우팀원을 만났다.

바쁜 일정 중이지만,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하는 시간은
만사를 잊고 만남 자체에 집중하였다.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고, 핸드폰은 꺼 두었다.

금요일 밤, 집에 들어오니 밤 11시.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일 간의 베이징 출장은
MT 강연을 제대로 준비하려고 비워둔 시간까지 잡아 먹었다.
토요일에 있을 4기 와우팀의 MT 준비를 하지 못한 채
한 주가 훌쩍 날아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새벽까지 무리할 순 없었다.
늦게 잠들면, MT 를 즐길 최고의 준비인 '좋은 컨디션'을 놓칠 터이니.
아침 일찍 일어날 것을 다짐하며 일찍 잠을 청했다.

토요일 아침 8시 30분에 나는 4기 와우팀원들을 만났다.
우리는 MT 호흡이 척척 맞았다. 어느 새 5번째 MT를 떠나고 있으니.
1) 양지 파인리조트, 2) 충남 해미 & 태안반도의 몽산포 해수욕장,
3) 여주 영릉, 신륵사와 원주 치악산, 4) 강진의 다산초당과 남해 땅끝마을.
중국 항저우와 황산을 다녀왔던 해외여행까지 따지면 6번째가 된다.

이번엔 안동이었다. 토요일에는 다산초당을 둘러보고 하회마을에서 잠을 잤다.
둘째 날에는 하회마을, 부용대, 병산서원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아름다운 마음을 품은 채 서울로 돌아왔다.
이틀이 훌쩍 지났고, 서울에 돌아오니 밤이 되었다.

4박 5일 동안 베이징에서 이틀, 서울 나의 집에서 하룻밤
안동 하회마을에서 와우팀원들과 함께 하룻밤을 묵었다.
출장과 MT에만 집중했고, 다른 일들은 잠시 밀쳐 두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의 해야 할 일들은 쌓여갔다.
덕분에 이번 주를 신나게 보낼 수 있을 듯 하다.

사라진 듯한 5일을 돌아보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사라지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고, 쌓이기도 한다.
자신의 영혼에 기쁨을 주는 일을 하면 시간이 쌓인다.
와우팀과 함께 한 시간은 친밀함으로, 추억으로 쌓여간다.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하면 물 흐르듯 시간이 흐른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중국 출장으로 보낸 시간들은 자연스럽게 나의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기쁨에도, 책임에도 연결되지 않는 일들을 하며 보낸 시간은 사라져 버린다.
다행히도 지난 한 주간, 그렇게 보낸 시간은 없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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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시간을 덩어리채로 잡아 먹는 일들이 있다.
바닷 속 고래가 작은 물고기를 통째로 집어 삼키듯이.
'1시간'이라는 단위가 매우 힘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일 말이다.
해외 출장이 그렇다. 베이징에 출장을 갔다가 돌아올 때의 시간 사용 내역을 보자.

전체 일정이 아니라, (그럴려면 글이 매우 길어져야 할 테니까)
묵었던 호텔에서 출발하여 비행기가 중국 땅을 뜰 때까지의 시간을 보라.

호텔에서 나온 시각은 오전 11시 40분이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이 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책을 읽기에는 달리는 차 안이라 머리가 아프고
동행과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사업차 잠시 만난 것이니 대화의 주제가 한정적이다.

그저 멍하니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본다.
이따금, 이정표를 통해 택시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기사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방향을 익혀 두는 습관 때문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티켓을 발권 받아 출국 수속을 위해 줄을 선다.

몸에 지니고 있는 물건을 모두 제거하고 짐을 검색대에 올려 둔다.
검색대를 통과하여 짐을 챙겨서 면세점에 들어서니 1시다.
여행에 익숙하여, 불필요하게 기다린 시간은 거의 없었다.
아니, 매우 신속하게 움직인 편이지만, 시간은 1시간 20분이 지났다.

1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은,
홀로 일할 때에는 한 두 가지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공항으로 이동하고 수속을 하면서는 훌쩍 지나가 버리는 시간이다.
그나마 호텔과 공항이 가까워 비교적 적은 시간이 지난 것이다.

이후, 점심 식사를 하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공항내 혼잡으로 인해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비행기가 자신의 동체를 땅으로부터 띄워 낸 시각은 2시 40분이었다.

다시 1시간 40분이 흘렀지만, 이 시간 동안 생산적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공항 내에서 탑승 게이트로 이동하고, 탑승하기 직전에 준비한 옷으로 갈아 입고,
잠시 탑승을 기다리고, 기내 지시사항에 따르는 정도의 일 외에는
아무 것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출국과 입국은 이런 식으로 서너 시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통째로 집어 삼킨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내가 사는 집에 도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긴 복도를 걸어 검역 검사장을 통과하여 간단한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짐을 찾아야 한다.
짐을 찾은 후에는 모든 항목에 "NO"라고 적은 세관 신고장을 제출하며 출국장으로 빠져 나온다.
공항 버스표를 구입하면 10~20분을 기다려야 한다. 1시간 남짓 걸린 서울로의 이동 시간.
서울에 도착하여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도착하면, 다시 2~3시간이 훌쩍 지난 뒤다.

내가 원했던 여행이거나, 의미 있었던 여행이라면
당연히 그런 시간들을 기회 비용이라 생각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여행이라면
그런 덩어리 시간까지도 아쉽고 아깝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나로서는, 출장 전후에 보내는 시간들이 참으로 아쉽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로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만,
삶과 행동으로는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는 듯하다.)
'해외 출장 한 번 다녀왔네'라는 딱지와 바꾸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어떤 이가 돈 적게 들이고, 해외 출장 다녀왔으니 좋겠네, 라고 한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덕분에 비행기 한 번 탔으니 말이다. ^^
하지만, 3일을 통째로 날린 아쉬움도 있었다.
그나마 출장을 갔던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고 왔기에 아쉬움이 덜해지긴 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시 말해,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가야 하는 출장이라면
나는 불만 가득한 채로 돌아오거나,
'그래도 해외로 다녀왔으니 괜찮은 거지'라고 나를 기만해야 했으리라.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원하는 것인가?' '내가 잘 하는 일인가?'를 따진다.
나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인생이 곧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코,  빡빡함으로 여유 없이 살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너무 유유자적히 살아서
젊은이가 치열하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염려하는 편이다.)
무슨 일이든,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며 진행된다고 말하고 싶은 게다.
그리고 '어떤 일'은 우리의 시간을 마구 마구 집어 삼키니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삶을 채워가자고 말하는 게다.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 딱 하루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좋겠다.'
상황에 따라, 그 하루는 '한 시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5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을 생각하면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해진다.

언젠가 이렇게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아~! 나에게 조금만 더 인생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 글은
나의 소원을 따르며 내 삶을 채워가고 싶은 열망이고,
그렇지 않은 일로는 나의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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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나는 이 새를 한 번 보고 싶었다.
새는 선명한 청록색의 몸은 길이가 29.5cm 정도라고 한다.
머리와 꽁지는 검은색을 띠고, 첫째날개깃 중앙에 창백한 코발트색 무늬가 있단다.
부리와 다리는 산호색을 띤 붉은색이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새다. 인도, 보르네오섬,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산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 백과사전을 통해 얻은 정보들이다. '파랑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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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전날 밤, 어린 남매 치르치르(Tyltyl)와 미치르(Mytyl)는 꿈을 꾼다.
꿈 속에서, 요술쟁이 할머니가 나타나 파랑새를 찾아 달라고 말한다.
남매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멀리 여행의 길을 떠난다.
추억의 나라, 죽음의 나라, 과거의 나라를 두루 다니지만, 파랑새를 찾지 못한다.
꿈에서 깨어난 남매는, 자기 집 문에 매달린 새장 안에서 파랑새를 찾는다.
벨기에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마테를링크가 쓴 동화 『파랑새』의 줄거리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메시지다.

나는 행복하고 싶었고, 운이 좋게도 자주 행복했다.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 교훈이 '파랑새'다.
지혜를 담은 수많은 문헌들이 행복은 우리 바로 곁에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애너 퀸들런의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을 통해 '파랑새의 교훈'을 배웠다.
매우 얇은 이 책의 주제는 '파랑새'와 같다.
'뻔'하다고 과소평가 해도 좋을 만큼의 얇은 책이고,
'귀한 지혜'라고 여기어 금(金)과 옥(玉)처럼 여겨도 좋은 만큼 중요한 책이다.
이미 '파랑새의 교훈'을 깨달아 실천하고 있다면 읽지 않아도 된다.
(나는 추천하지 않으련다. 사람들은 '내용의 가치'가 아닌 '분량'으로 값을 매기니까.)
 
'파랑새'는 행복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회, 행운이기도 하고, 감사의 이유기도 하다.
기회도 뒤 뜰에 있고, 행운도 뒤 뜰에 있다. 감사꺼리 역시 주변에 넘쳐난다.
이런 말들이 도덕적, 교훈적이어서, 거부감을 전해 줄 수 있음을 안다.
종교 지도자의 이야기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영적 지도자나 종교적 지도자의 말을 인용하고 싶지 않았다.
비즈니스 리더나, 금융업계의 리더들의 사례를 찾아보고 싶었다.
뱅가드 그룹의 창시자 '존 보글'이 적임자다. 그의 책에서 소개된 '존 보글'을 살펴 보았다.

그는 워렌 버핏과도 비견될 만한 세계 투자계의 거장.
1975년 세계 최초로 인덱스 펀드를 개발하여 매년 30% 가 넘는 수익률 달성.
1999년 <포천>지는 '21세기 4대 투자 거장'으로 선정.
2001년 <타임>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기도 한 존 보글.
그는 자신의 책 『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 지침서』에 이렇게 썼다.

"나는 인생에서 무한한 행운을 맞이하게 되었고,
종종 기적 같은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중략)
나는 이렇게 맞닥뜨리게 되는 행운을 다이아몬드 발견에 비유했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되었다."
(p.18)

그가 말하는 무한한 행운, 곧 다이아몬드란 우리가 기대하는 부와 명예가 아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쓸 돈은 스스로 벌어야 할 책임'도 다이아몬드다.
'수많은 고용주와 계약을 맺고, 기지를 발휘하며 책임을 받아들이는 기쁨'을
배울 수 있으니까, 그에게는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어야했던 상황도 분명 다이아몬드다.
그러니까, 존 보글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의 다이아몬드는 먼 산이나 먼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 뒤 뜰에 있으므로 파기만 하면 된다."


'파랑새의 교훈'과 같다. 이제 나는, '땅을 파는 법'을 전하고 싶다.
만약 뒤 뜰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파랑새』의 한 대목을 들려 드리고 싶다.
"너희가 파랑새를 찾으러 가 줘야겠다."
"파랑새요? 우리는 그 새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걸요."
"나도 모른단다. 그러니 찾아 봐 달라는 거지."

- 꿈에서 만난 할머니와 치르치르, 미치르의 대화 中


"여러분 생각에는 파랑새가 어디에 있을 것 같냐?"고 반문하고 싶은 게다.
모른다고 한다면 잠시 멈춰 서서 가설을 세워서 다시 전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연히 성공해도, 그 성공을 반복할 수 없다.
맹목적으로 추구하지 말고, 우리의 머리로 사고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맹목적인 추구가 실패하면 우리는 정신적인 공황에 빠진다. 갈 길을 잃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대로 실험하다가 실패하면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만,
성공을 위해 필요한 하나의 배움과 가지 말아야 할 하나의 길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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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객관적이라 함은 우리의 역사를 국수주의 시각에서 보거나,
우리에게 이로운 입장을 유지하며 편향되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우리 역사를 스스로 폄하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있었던 역사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다."
- 『CEO 인문학』, p.118

허성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강연 중에서 인용한 말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3가지의 잘못된 태도를 제시했다.
나름의 용어로 정리해 보았다.

1) 국수주의적 태도
2) 자기기만적 태도
3) 자기폄하적 태도


3가지의 태도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는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3가지의 방식으로 자신의 개인사를 바라본다.

첫째, 국수주의적 태도다.
국수주의란, "자기 나라의 고유한 역사ㆍ전통ㆍ정치ㆍ문화만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믿고, 다른 나라나 민족을 배척하는 극단적인 태도나 경향"을 뜻한다.
자신의 개인사를 뛰어나다고 판단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확신은 강하나 지혜가 결여된 이들이다. 이들은 뛰어난 성취를 달성할 수는 있지만, 훌륭한 리더가 되지는 못한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기만적 태도다.
이것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힘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태도를 말한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음을 아는 개인도, '그래 나는 불행해'라고 살아갈 순 없다. 
'그래도, 나는 행복해'라는 자기기만의 방식으로 행복한 척 살아가게 된다.
이런 삶을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나쁜 것은 지속적으로 이렇게 사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지차게 되니까.

진실을 받아들이려면 자신의 잘못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직면할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힘이 없다면 현실 직시를 차단하고, 자신의 몽상으로 도망간다.
현실을 외면한 결과로, 현실은 더욱 고단해진다.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몽상으로 향한다. 이것이 자기기만의 악순환이다.

셋째, 자기폄하적 태도다.
이것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자존감이 없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패턴이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조언을 "그래요, 저는 원래 부족하고, 형편 없는 사람이예요"라는
식의 말로 차단한다. 이것은 주도성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스스로를 자위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나쁜 까닭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아가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적극성과 주도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은 경험으로 미루어 헤아려 볼 때, 국수주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20%
자기기만적 태도와 자기폄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각각 40%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퍼센트에 대한 구체적인 실증적 자료는 없지만,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며 느낀 나름의 결론이다.

3가지의 태도 모두 우리의 객관적 자기 성찰을 방해한다.
객관적인 자기 성찰은 중요하다.
진단이 잘못될 경우, 처방의 효과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건설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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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하늘처럼 푸르게, 나무처럼 드높게!


우리는 자주 과소평가 당한다. 
가끔 그들의 판단이 옳을 때에도, 최소한 그렇게 느낀다.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것들로 저울질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평가할 때에는 앞으로 이뤄갈 일들로 가늠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가능성'으로 평가해 주는 이를 만나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의 미래를 기대하고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먼저 나를 신뢰하기로 했다.

나는, 내가 지닌 이기적 본성을 인정한다.
내가 신뢰하기로 한 것은 이기적 본성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선한 의지다.
 
믿을 만한 것은 두 가지다. '이기적인 본성을 인정하고 욕망에 진솔한 나'와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힘껏 추구하려는 '미래의 나'.
믿을 게 못 되는 것도 두 가지다. 
인간적인 길을 벗어난 고상함을 추구하려는 '거짓된 나'와
그리고 추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나를 내맡겨버리고 마는 '현재의 나'다.

2010년 7월 12일, 나는 소망했다. 좀 더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나는 늘 잠을 지나치게 충분히 자는 편이다.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잠들 시간이면 일은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을 하다가도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으면 할 일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만났다.

이제는 성실함과 열정을 한껏 드높이고 싶다.
일하는 게 즐거우니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잠을 줄여 일에 미치는 것도 좋으리라.  
깨어 있는 시간에 나의 시간과 열정을 비전에 바치고 싶다.
업무 시간이 지나더라도 흠뻑 일에 젖어보고 싶다.

그리고 결심했다. 막연함 바람보다 구체적인 결심이 행동을 일으키기에.
- 그 날 계획한 일은 반드시 그날 마무리하고 잠들기로!
- 날마다 독서와 영어공부, 글쓰기를 반드시 실천하기로!
-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 습관으로 활력있는 삶을 창조하기로!

나의 미래가 아름다울 것이라 신뢰한다.
내가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
날마다 하루만큼의 성장을 창조하면서 살아가자!
지금까지의 정의롭지 못하고 불성실한 삶을 청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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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베트남 여행 후, 바쁘게 한 주를 보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매일 강연이 있었고,
금요일 오전까지는 새마을금고 8월호 사보 원고를 보내야했다.
이렇듯 강연이나 원고를 보내야 하는 일은 약간의 긴장감을 동원한다.
긴장감은 실제 일의 크기보다 좀 더 큰 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것은 부담이지만, 즐거운 부담감이다. 이런 부담감이 싫지 않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나 역시 부담감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긴장감과 부담감이 없으면 발전이 없음을 알고 있다.
매일 강연이 있다면 나는 강연이 주는 부담감과
빡빡한 일정이 주는 갑갑함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저 편안하게 살고 싶지만, 성장하고 싶기도 하다.
나는 새로운 도전과 시도 없이 성장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은 늘 부담과 긴장을 동반하다.
보보는 내 삶을 사랑하기에 기꺼이 부담감을 맞닥뜨리는 것이지,
결코 부담감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난 저녁 약속이 하루도 빠짐없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 불안해진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미리 일정 하나를 비워 '후배와의 약속'이라 적는다.
나는 그 날, 어떤 다른 이가 아닌, 나 자신을 만난다.
그 날은 '어제까지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어제의 나, 그는 오늘의 나에게는 인생의 후배다.
'후배와의 약속'은 다름 아닌, 어제까지의 나를 만나는 시간, 즉 성찰하는 시간이다.
물론, '선배와의 만남'도 있다. 이것은 미래의 나를 만나는 시간, 계획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나를 만나는 시간을 정해 두고는 지켜내려고 노력한다.

이렇듯 혼자 노는 것을 즐긴다.
이것은 부담감이 전혀 끼어들이 않는 평온하고 안정감이 넘치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날마다 이렇게 살면 나태해지고 무력해지는 사람이다.
또한 나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도 없고
내가 꿈꾸는 '리더의 삶'을 창조해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휴식하며 홀로 지내는 시간이 창조적이고 달콤한 까닭은
약간의 부담감을 이겨내며 열심히 일한 덕분이기도 하리라.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좀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좀 더 깊은 평온함을 만끽하기 위해서 다시 부담감을 선택한다.
하지만 내가 견딜 수 있는 부담감만을 창조하기 위해
나에게 적합한 강연 횟수를 정해 두었다.
월 6회, 이것이 실험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적절한 강연 회수다.
한 때, 연 144회까지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내게 많은 횟수였다.

늘 하는 강연이지만, (나의 직업은 기업교육 강사다.)
또한 스스로 선택한 부담감이지만
이번 주에 있었던 강연이 조금 더 부담이 되었던 것은
강연하는 장소가 서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월요일은 경기도 용인에 소재한 숙명여대 연수원,
화요일은 강원도 횡성시 둔내면에 있는 숲체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국군방송 녹화였다.
서울 용산에서 진행되었지만,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를 마주하고 진행하는 거라
(정작 준비에 열심을 내지도 않으면서)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

이 모든 강연이 지난 지금은 무척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강연 결과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내 삶이다.
오늘 나는 와우팀원과 함께 식사를 했고
지금은 카페 데 베르에서 여유를 즐기는 중이다.
주말의 휴식과 여유가 달콤한 것은 주중의 열심 덕분이리라.
일주일 내내 일하지 않고 맞은 휴일을 상상하면
지금의 달콤함보다는 매너리즘에 빠진 나태함이 떠오른다.

다시 월요일이 시작되면,
나 열심히, 매우 성실히 일해야지.
주말의 달콤한 휴식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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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2010년의 절반이 훌쩍 지났다.
하반기가 시작된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며칠 전, 지하철 안에서 나의 <2010년 목표>를 떠올려 보았다.

올 한 해가 6개월이 훌쩍 지나갔으니
목표들도 절반 정도씩은 달성되었어야 한다.
혹은 실현을 향하여 절반 정도의 과정을 지나고 있어야 한다.

실상을 들여다 볼 것도 없다.
많은 목표들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났지만, 나의 꿈들은 연초의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6개월은 분명 내 삶이다. 짧지 않은 내 삶이다.
그 기간 동안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면, 나는 내 삶을 혁신해야 한다.
6개월 혹은 1년이라는 시간에도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이라면, 내일을 기대할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2호선 열차가 성내역을 지나 강변역을 향하는 즈음 들었던 생각이다.
지상으로 올라온 지하철 안에는 햇살이 쏟아졌고,
나는 그 햇살들처럼 내 삶이 빛나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소망을 쫓아 내 삶을 변혁하기로 결심했다.
올해의 목표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달성한 세부 목표도 더러 있었지만, 6개월 성과치고는 미흡했다.

오늘은 연간 목표 중에 7월에 집중해야 할 것들을 골라 7월의 목표로 정리해 두었다.
7기 와우팀원 3명과의 만남, <그리스의 신과 인간> 전시회 관람,
와우페스티발 기획, 독서리뷰 6개 작성 등이 7월의 목표로 세워졌다.

이런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것은 블로그 방문객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꿈이 있다. 그 자신만의 유토피아로 함께 떠나자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순 없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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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시간은 참 빠르다.
놀라울 정도로.

잠시 생각하고 글 하나 썼을 뿐인데
한 시간 십오 분이 지났다.
삼십 분 정도 지난 줄 알았는데... 와 빠르다.

내게 주어진 휴식이
훌쩍 떠날 시간이 되었다.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일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냈을 때에는 위로가 된다.

왜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까?
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떠맡아 의무감으로 살까?
왜 몇 시간 후면 후회할 일을 하며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낼까?

이렇게 보낸 하루와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이 연합하여
우리의 인생을 아쉽고, 허전하고, 무상하게 만든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
원하는 꿈을 실현하기에 겨우 알맞은 길이의 인생이다.
미워할 시간이 없고, 게으름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마음 가는 곳에 머물라.
그것만이 오래 오래 남을 것이다.
우리 가슴에. 사람들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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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예전의 저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줄 알았고,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생각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종종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 생각의 결과는 현명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부정적인 상황만을 상상하며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거나, 자신이 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제 생각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기를 열망합니다.

명상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도록 돕습니다. 명상은 눈을 감고 고요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되,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생각이 아니라 하나의 생각을 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명상은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 레슬리 가너 『서른이 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생각을 비우는 것은 명상의 과정이고,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 명상의 목적입니다. 그 하나의 생각은 생산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근거 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자신을 향한 가혹한 비판을 멈추고 자신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생의 진실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을 구원시킬 하나의 화두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인생의 진실은 이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으며, 우리 모두에게는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인생의 진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신은 우리를 사방이 꽉 막힌 곳에 가두는 법이 없습니다. 이 쪽 문이 닫혔으면 주위를 살펴 볼 일입니다. 저 쪽 문이 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신은 우리를 질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성장시키기 위하여 시련을 주는 것입니다. 인생의 진실에 집중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자신을 구원시킬 화두에 집중해야 합니다. 명상은 우리에게 고요함과 안정감, 자신감을 선물해 주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를 묻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신이 정말 생각해야 할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명상의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처음이 조금 힘들 뿐입니다. 모든 시작은 두려움과 약간의 힘듦이 동반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먼저 조용하고 방해받지 않는 장소를 찾는다. 그리고 똑바로 앉는다. 무릎에 손을 편하게 올려놓는다. 눈을 감는다. 숨을 인식한다. 숨을 컨트롤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숨에 집중하라. 숨이 코끝, 목구멍, 갈비뼈와 배로 차례로 들어오는 감각을 느껴라. 숨을 내쉬려는 충동이 느껴지면 반대로 같은 과정을 자연스럽게 관찰하면 된다. 숨의 감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저 관찰하는 것 그게 전부다. 숨에 집중함으로써 깨어나라.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삶을 생각하라."

- 레슬리 가너 『서른이 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생각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은 행동입니다.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다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더 강해져서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사실을 주입하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투입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명상이 효과적이었다면 새로운 행동을 시도하게 됩니다. 새로운 행동을 함으로 얻게 된 사실들로 생각을 창의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생각을 깊게 합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1) 부정적인 생각을 멈춤 → 2) 인생의 진실과 중요한 화두에 집중함 → 3) 새로운 행동을 시도함 → 4) 생각의 변화와 성숙을 체험, 이 4단계의 반복을 통해 더욱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이런 저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때, 할 일이 쌓여 숨 돌릴 틈도 없을 때, 마음 깊숙이 걱정에 사로잡혀 감히 멈추지 못할 때가 바로 명상을 시작할 때"입니다. 명상은 정말 생각해야 할 일만을 생각하기 위해 걱정과 잡다한 생각을 멈추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명상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잡다한) 생각의 멈춤입니다. "나는 지금 생각이 너무 복잡해. 그래서 명상을 할 수가 없어"라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명상이 시작되어야 할 곳은 고요한 호숫가가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이 넘쳐나는 사무실, 불안과 초조함이 깃드는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순간, 잡다한 생각들이 넘쳐나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상들이, 바로 명상이 필요한 순간들입니다. 바로 지금일지도 모르지요.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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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명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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