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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해당되는 글 28건


마음을 나누고 영혼을 교감했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간다.
쌓이고 쌓여 우정이 되고 사랑이 된다.

마음이 닫히고 서로를 공감하지 못했던 시간은
흘러가기라도 해야 할 텐데 고여 썩는다.
쌓이고 쌓여도 가슴이 답답하고 영혼은 외롭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다
공감에서 오는 충만함, 소통에서 오는 기쁨,
표현에서 오는 후련함, 경청에서 오는 배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가슴 답답한 일이다.
오해에서 오는 실망, 단절에서 오는 절망,
그와의 관계에서 희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연인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할 때,
생애 처음으로 독신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남자를 (혹은 여자를) 두려워하게 되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이 슬퍼진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슬픈 일이다.
우리 모두 삶의 파트너에게 슬픔을 안기지 않도록 노력하자.
파트너에게 가슴 벅찬 사람이 되도록 한껏 애쓰자.

파트너가 힘들어하는 나의 어떤 모습을 이겨내고
그(녀)가 바라는 어떤 모습이 되기 위해 힘써 살아가자.
자신과의 이 선한 싸움은 이기지 못하더라도 싸움을 거는 것부터가 멋진 일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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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햇빛이 화창한 날,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저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올께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의 여행을 돕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아무 것도 도와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리노야, 엄마가 항상 너를 지켜 줄께."

돌아가신 아빠 대신 홀로 아이를 키워 오느라
아들에게 쥐어 줄 여행비가 없었던 게지요.
아이는 이해했습니다. 엄마의 가난을.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지난 일 년 간 열심히 일해서 벌어 둔 돈을 챙기고
엄마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이는 이제 여행자입니다.
새로운 도시, 비엔나를 향하는 기차 안에서,
아이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내가 잘한 것일까? 이 도시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에서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야...'

걱정과 두려움으로 도착한 비엔나의 기차역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씁니다.
집이 그리워졌습니다.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 때, 엄마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지켜 줄께.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렴.'

기차역을 나와 거리를 걸었습니다. 
꼬마여행자를 본 비스트로의 점원이 Hello 라고 인사해 주었습니다.
아이도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아저씨, 혹시 근처에 제가 묵을 만한 저렴한 숙소가 있나요?"
아이는 소개 받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편안히 묵었습니다.

"안녕? 난 리노야. 넌?" "난 JJ. 반가워."
비엔나에서의 둘째 날에 아이는 친구 JJ를 만났습니다.
둘은 함께 밥을 먹고, 자유롭게 여행하다가 함께 잤습니다.
대화가 통했고, 즐겁게 식사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JJ와 오래 함께 있을 순 없었습니다. 가야 할 길이 달랐습니다.

"JJ, 잘 가. 건강하기를 빌께."
아이는 슬프지 않았습니다. 각자 여행을 하다가
프라하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비엔나 시내가 편안하게 느껴지고, 익숙해졌습니다. 
문득, 이 곳에 도착한 첫날이 기억났습니다.

'아, 그 땐 참 두려웠는데 지금은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하네.'
햇살이 아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거리의 악사는 아이에게 살짝 윙크해 주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리노에게만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리노는 황홀감에 취해 예정보다 비엔나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마냥 그곳에 있을 순 없었습니다.
엄마에게 한 약속은 출가가 아니라, 여행이었으니까요.
여행은 떠남 - 만남 - 돌아옴으로 이루어지니까요.
아이는 지금 새로운 사람과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는 중이었습니다.
그것은 엄마에게 더욱 성장한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이는 다음 여행지로 길을 떠났습니다.  
다시 두려워졌습니다. 두려움은 익숙해져도 역시 두려움이었습니다.
'내가 잘한 것일까? 이 도시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에서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야...'
아이는 비엔나 여행에서 배운 교훈을 기억했습니다.

'두려움은 실체가 아니다.'

함부르크는 항구가 있는 큰 도시였습니다.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흥가 레퍼반도 있고
지하철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길 찾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번화한 거리를 가다가 그만 3만원을 잃어 버렸습니다.
놀란 아이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살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울었습니다. 엉엉 많이도 울었습니다.
3만원은 여행을 하기 위해 일년 동안 모은 아이의 전재산입니다.
하룻밤을 묵고, 3번의 맛있는 식사를 하고,
미술관을 구경하고, 저녁에 음악회를 관람하는 데에는 100원이 필요했습니다.
3만원은 그런 식으로 300일을 여행할 수 있는 큰 돈이었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했습니다. 긴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아이가 작성한 서류를 받아들며 경찰관이 한 말은 실날 같은 희망을 날려버렸습니다.
"잃은 돈은 찾지 못할 거야. 이 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하면 약간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단다."
아이는 두 가지를 직감적으로 깨달았습니다.
돈은 찾을 수 없다는 것과 문제의 해결은 깨어진 마음의 회복에 있다는 것.

'리노야, 엄마가 항상 너를 지켜 줄께.'
이번에는 엄마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이는 엄마 품이 몹시도 그리워졌습니다. 다시 울었습니다.  
흠뻑 울고 나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가 들려 주신 말이 기억났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단다. 상실은 아픔이지만, 상실 없이는 성장도 없단다."

지금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엄마의 말을 믿었습니다.
믿는다고 해서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믿고 나니 다시 여행할 힘이 생겨났습니다. 
주머니에 남은 몇 푼으로 숙소를 찾아 몸을 뉘었습니다.
또 눈물이 났습니다. 결심을 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절대로 울지 않을꺼야.
내 영혼의 강인함으로 이겨낼꺼야.'


다음 날, 햇살이 화창한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아이는 3만원이 생각났지만, 잊기로 노력했습니다.
'이건 어렸을 때, 엄마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썼기 때문에 받을 벌이야.'
라는 죄책감이 들 때마다, 신의 성품이 옹졸하지 않음을 기억했습니다.
신은 보복하시는 분이 아니라, 용서하기를 즐겨하시는 분임을.

분명한 것은 여행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넘어지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일어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야.'
힘을 내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으니 갈 곳이 없었습니다.
눈 앞에 공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갔습니다.
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아이는 물었습니다. "아저씨 무얼 하세요?"
머리가 들러 붙어 있고, 얼굴인 꾀죄죄한 아저씨였지만 무섭지 않았습니다.
누런 이빨 사이로 흘러 나오는 말은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오신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글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간혹 '알라'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의 바디 랭귀지를 이해한 바에 따르면, 아저씨는 아침을 먹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가지고 있던 쵸코렛과 빵을 주었습니다.
돈을 잃어버리기 전에 사 두었던, 그래서 지금은 귀한 식량이었습니다.
아저씨가 참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엄마가 손을 흔들며 했던 마지막 당부가 이해되었습니다.

"리노야,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거라."

그 사랑으로, 아이는 다시 여행을 시작할 힘을 얻었습니다.
여전히 3만원이 간혹 생각나긴 했지만
그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아무는 상처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상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그리고 여행을 통해 하나 둘씩 깨달아가는 배움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여행을 떠난 목적은 엄마를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이전과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 떠날 때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당부한 것들을 많이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두 가지의 꿈을 품었습니다. 여행의 과정에서 많이 배우는 것과
엄마에게 돌아가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 것입니다.

"리노야 참 잘했구나. 착하고 성실한 내 아들."

길 위의 꼬마여행자 리노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프라하에서 만날 친구와의 약속도 있고,
언젠가 되돌아 갈 본향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환히 비추는 태양이 아이 뒤를 쫗아 다녔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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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힌두인들은 그들의 신, 비슈누를 사랑한다.

비슈누식 사랑은 다섯 단계로 나눠진다.


1) 주인 대 하인

2) 친구 대 친구

3) 부모 대 자녀

4) 배우자 대 배우자

5) 절대적인 사랑


힌두인들은 번호가 커질수록 높은 수준의 사랑으로 여긴다.

주인을 향한 하인의 사랑은 가장 낮은 단계의 사랑이다.

"주인이시여,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지 말해 주시면 제가 따르겠습니다."


친구 간의 사랑은 (첫 단계의 사랑보다) 자주 서로를 생각하는 사랑이다.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 사랑을 경험한다.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눔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단계보다 친밀함을 누린다.


힌두교 전통 사고에서 나온 이 다섯 가지 척도를 통해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이 생각들은 내게 중요한 생각꺼리를 안겨다 주었다.


첫째, 헌재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첫 단계 수준이라는 점이다.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사랑은

힌두인들에게 가장 낮은 수준의 사랑이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발적인 실천이 지속적으로 결여된다면

순종은 부담스런 의무로 전락할 것이다.


신앙 훈련 = 하나님의 사랑 체험 + 책임감 있는 순종,

이라는 등식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던 바였다.

나는 알고 있던 것일지라도 한 번씩 되새겨 주어야 한다.


사람은 스스로를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기에

되새김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과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대해 돌아본 것은 유익이었다.


둘째로 하게 된 생각은 절대적인 혹은 열렬한 사랑에 대한 단상이다.

이러한 사랑에 도달하면 사랑 이외의 것들은 모두 잊게 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주인공이 보여 준 사랑이 떠오른다.


열렬히 사랑할 때에는 대상에 대한 생각 뿐, 다른 영역에서는 균형을 잃는다.

여러분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인생의 지혜를 발견한 이들은 하나 같이 사랑을 고귀하게 여겼다.


삼십 대일지라도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처럼

매일같이 만나고, 수십 만원의 휴대폰 요금을 지불할 정도로

정열적으로 연애하는 연인들은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

인생의 가장 귀한 순간을 누리고 있음에 자랑스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한 20대 청년의 고백보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30대 성인의 고백에서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더 많은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것이니까.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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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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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개봉일 : 2008. 2. 28
감독 : 김정권
출연 : 차태현, 하지원

관람 : 2008년 3월 7일, 최창연

평점 : ★★★★

간단평 : 바보 승룡이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순수했다. 승룡이는 동생 지인이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친구 지호, 이 두 사람을 좋아했다. 동생 지인이를 바.보.처.럼. 사랑했다. 동생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늘 지켜주었다. 그리고 지호를 순수하게 사랑했다. 승룡이는 행복했다.


줄거리 : 승룡이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혼자 토스트 가게를 하며 동생 지인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동생의 학교 앞 작은 토스트 가게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승룡이는 동생이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늘 행복하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승룡이는 매일 저녁이 되면, 동네가 한 눈에 보이는 토성에 올라 ‘작은 별’ 노래를 부르며 10년 전 유학간 짝사랑 지호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호가 10년 만에 귀국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승룡이는 지호를 첫 눈에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처음엔 기억을 못하던 지호도 살며시 살아나는 추억과 함께 자신의 곁을 맴도는 승룡이의 따뜻함에 점점 다가가게 된다. 늘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동생 지인이와 10년을 기다린 첫사랑 지호를 매일 보게 된 승룡이는 생애 최고의 행복함을 느끼며 더욱더 즐겁게 지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상하게 대하다가도 자신의 자녀에게는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하는 부모님들. 친구들에게는 친절하다가도 자신의 애인에게는 툴툴거리고 매정하게 대하는 젊은 청춘들. 대부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사랑의 능력을 표현하고 전하는 것에 서툴다. 마치 사랑애 어떤 장애를 느끼는 것처럼.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번 사랑의 실체를 눈으로 보았다. 그 중 하나는 군에 입대하던 날에 외할머니가 보여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외할머니의 손자에서 막내아들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딸을 먼저 하늘에 보낸 깊은 슬픔과 손자를 향한 가련함을 수없이 느끼셨이리라. 나를 향한 외할머니의 사랑은 지극했다.

만 25의 나이에 입대하던 날, 나는 밤새 친구들과 보내다가 아침해와 함께 집에 들어갔다. 외할머니는 밤을 지새우며 나를 기다리셨다. 군대에 입대하는 전날 밤, 손자와 함께 이야기라도 하시려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할머니는 "야 이 무정한 놈아.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냐"고 소리를 지르실 만도 했다.  화가 나실 만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왔냐고, 잘 왔냐고 맞아주셨다. 부드러운 걱정으로 화를 표현하셨고 할머니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밤새 나를 기다리셨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손자의 늦은 입대를 염려하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은 지극했지만 극성의 선을 넘지 않았다. 십대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한 세심한 사랑이어야 한다. 부모님의 십대 자녀를 향한 사랑은 쉽지 않다. 안내라고 해 주면 거절당하고, 도와 주려고 하면 간섭이라고 오해받는다. 민감한 십대를 향한 사랑은 정서적으로 지원해 주고 말없이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외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이런 사랑을 보여주셨다. 외할머니는 "너를 믿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나는 외할머니께서 나를 신뢰한다는 것을 안다. 신뢰는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태도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외삼촌과 외숙모도 나를 신뢰해 주셨다.) 영화 <바보>를 보며 말없이 신뢰해 주고, 정서적 지원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에서 항상 나를 지켜봐 주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승룡이가 그렇게 자신의 동생을 사랑하였고,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승룡이와 할머니가 오버랩될 때마다 나는 울었다. 사랑은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멋지게 차려 입고 함께 식사하는 것도 아니다.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고 신뢰해 주는 것이고, 늘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다. 신뢰와 애정어린 관심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지금쯤 할머니도 내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할머니의 행복이리라. 오늘이 소중해지고, 내 존재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창조자다. 사랑 받는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안녕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그들은 모두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나 역시 바보가 되었다

옷을 사지 않은지 일 년이 넘었다.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양말 하나도 사지 않았다. 얼마 전, 운동화를 보니 군데 군데 떨어졌는데 구입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옷은 늘 그녀와 함께 구입했었다. 잠실 롯데마트에서 우리는 자주 쇼핑을 했다. 그런데, 늘 나와 함께 옷을 골라주던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나는 옷을 구입하는 법을 잊어버린 마냥 그냥 가진 옷을 입고 산다.

인천으로 강연을 갔더니, 언젠가 그녀와 근처의 교회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와 보았던 곳이었다. 그녀가 생각났다. 참여 정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잠깐 2006년 월드컵 얘기가 나왔다. 2006년 월드컵 경기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그녀의 회사 동료들과 함께 보았다. 그녀가 생각났다. 사당에서 4호선을 타고 안산 방면으로 갈 때마다 관문체육공원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산책했던 날이 떠올랐다. 역시 그녀가 생각났다.

어디 과천 뿐이랴, 코엑스몰가 그렇고, 잠실역이 그렇고, 성남이 그렇고, 교회가 그렇다.
어디 월드컵 뿐이랴. 무한도전이 그렇고, X맨이 그렇다. ... 아!

그녀와 함께 있을 때에는 사랑을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고,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을 몰라주었으며, 화난 감정대로 그녀를 힘들게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헤어지고 난 후부터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불필요하다면 참는 법을 배웠고, 그녀의 마음이 어떠한지 깨닫기 시작했으며,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러나, 이 배움은 너무 늦은 것이리라.

헤어진 후, 참 많이 보고 싶었지만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열 번은 생각했지만 메일도 보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를 잊지 못하는 나를 보며 '집착'인가 싶기도 해서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진단해 보기도 했다. 집착하는 이들은 기다릴 줄 모른다고 했다. 연락을 참을 줄 모른다고 했다. 옛 연인이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못 견뎌 한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참고 기다리는 나를 보며 '집착은 아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친구들은 내게 애정 공세를 퍼부으라고 조언했다. 나의 마음을 전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내 마음을 전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멀리서 지켜보고 싶었고,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소식도 알지 못하여 꼭 한 번만이라도 얼굴 한 번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그녀로부터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했고, 나의 애정공세는 그녀에게는 힘겨울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다가 눈이 오면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나는 그녀를 보러 갔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다. 첫눈이 오는 날, 그녀의 집 앞에서 밤 늦게까지 기다렸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홀로 그 날의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퍽 쓸쓸했다. 올해 초에는 새해 선물을 준비하여 가까스로 전해 주기는 했지만, 역시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나는 사랑할 때 사랑을 몰랐던 바보였다. 승룡이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길 줄 모르는 순수한 바보였고, 나는 뒤늦게 깨달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어리석은 바보가 된 것이다. 영화를 보며 바보 같은 승룡이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엉엉 울었다. 나의 어리석은 사랑 때문에 울기도 했나 보다. 언젠가 다시 사랑이 오면, 그 때에는 바보 같지 않기를...

- 2008. 3. 7


2년 전, 썼던 영화 리뷰를 공개글로 바꾸며 드는 생각은
내가 인생을 참... 둘러 가고 있구나, 하는 회한이다.
대중가요 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인생길을 둘러가는 것 같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아 헤맨다.
연인을 떠나 보내고 나서야 사랑을 배우고
젊음이 속절없이 지나간 뒤에야 젊음의 소중함을 발견하다니.
80세의 지혜로 18살까지 서서히 젊어지는 인생이라면 좋으련만. 허허.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 성육신 :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성령에 의해 마리아의 태내에서 사람으로 잉태된 일. (네이버 국어사전)

(당신이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는 글입니다.
교양 하나 쌓는다는 생각으로 '성육신'에 대해 알아 두는 것도 좋을 거예요.
저의 이 말에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간혹 소통의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럴 때엔 예수님의 성육신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은 저 높은 곳 하늘 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친히 인간이 되셨다는 점에서 소통의 비결이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게지요.

신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무력한 어린아이로 오신 예수님.
그렇기에 슬픔과 기쁨, 고통이 있는 그야말로 인간의 삶을 사셨지요.
완전한 신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

소통은...
'완전한 나'를 추구하면서도
'완전한 그'가 되어보기를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 나는 그의 개성과 고유성을 파악하고 있는가?
- 그것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있는가?
-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나의 개성에 맞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고통과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제가 다른 이의 삶까지 직접 체험할 순 없지만,
성육신의 본질만큼은 묵상하고 실천하려 노력해 보는 겁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통해 자기다움과 소통의 원리를 모두 알게 됩니다.

나의 자기다움을 포기하고 다른 이를 섬기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자연스럽지 못하니 오래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요.
처음에는 어느 한 쪽이 편하고 좋을 순 있지만, 한 사람은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소통은 답답한 것이 아니라, 시원한 것이지요.
가슴이 시원한 청량함과 깃털같은 가벼운 마음이 소통의 표지겠지요.

나의 자기다움을 추구하다가 다른 이의 연약함, 고유함, 기질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온전한 소통을 방해하는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자기다움이 만나 서로를 더욱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 소통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나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나에 대해 알아 주기를 바라고, 그것이 사랑의 표지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주고 이해해 주기란 무척 힘듭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니까요. 참으로 많이 다른 점을 가진 고유한 개별적 존재들이니까요.

종종 나에 대해 말하기보다 먼저 그에 대해 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겠지요.
그가 자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해도, 나와 생각이 달라도 사랑과 오래 참음으로 들어야지요.
그래요. 필요한 것은 사랑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입니다.
대화 그 너머의 마음을 느끼려는 노력, 상황 그 너머의 진짜 문제를 이해하려는 노력.

당신은 주도적인 사람을 꿈꾸지 않습니까?
상황이나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책임감을 갖고 헤쳐 나가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보보님! ^^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보보 이희석 Dream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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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스물 한 살 나에게 사랑은...
가슴 떨리는 감정이었고, 두근거리는 설레임이었다. 
감정과 설레임이 잦아들면 사랑이 식은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사랑에는 배려도, 책임감도 없었다.
설레임과 떨림을 주는 여인과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믿었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다.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스캇 펙의 명저 『아직도 가야할 길』 덕분이다.
사랑은 선택 가능한 길이고, 감정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
사랑이라 불릴 만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사랑하지 않으렵니다"라고.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까지도 사랑이었다. 
사랑은 분명 가슴이 시키는 것이지만, 책임과 배려로 완성하는 것이다.

스물 한 살, 나에게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아야 하는 초능력과 같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면, 내가 원하는 것 정도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치사하게 일일이 얘기하지 않아도 나의 기대를 채워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는 때로 소통의 어려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자기 성격대로만 대한다면, 그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사랑의 방식을 파악해야 한다.
어떤 이는 '함께 하는 시간'으로, 어떤 이는 '상대방의 신뢰'로 사랑을 느낀다.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겠지'라는 비합리적인 기대를 거두고
지혜롭게 나의 속내를 보여 주어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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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친구와 함께 마포에 있는 이모네 가게로 갔다.
이모는 고깃집을 하는데, 친구와 함께 찾아가기는 처음이다.
2008년 가을, 외출나온 동생(군 복무중)이랑 함께 이모네서 고기를 먹었고,
2009년 겨울, 이모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것이 최근 일이다.
이리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내가 자주 찾아뵙는 것은 아님을 알리는 게다.
그런데도, 묘하게도 나는 이모가 무척 편하고 좋다. ^^

'이모가 편안하고 좋은 것은 당연하지. 엄마랑 다른 없는 사람이 이모인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엄마의 친자매가 아니라 사촌 여동생이고, 이모와는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살았기에
최근에 저렇게 두 번 뵌 것이 이모와 나와의 거의 첫 만남이기 때문이다. 
'거의'라고 한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결혼식 등 가족 잔치 때에 
많은 이모, 삼촌들과 함께 만났던 기억은 있기 때문이다. 

우정은 반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는 쌓일 리가 없고,
같이 어울려 다니며 함께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함께 떠들어야 쌓이는 법이다.
이것은 인생사도 마찬가지여서 잔치 때 함께 결혼을 축하는 것보다는
이모와 함께 밥 한 번 먹는 것, 이야기 한 마디 나누는 것에서 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친구와 만나 이모네 가게로 들어가기 전, 지갑을 들여다 보고 친구에게 말했다.
"종준아, 잠깐만! 저기 편의점에 잠깐 다녀오자. 현금을 좀 찾아야겠다.
카드 결재를 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아. 안 받으실 것이 뻔하거든."
나는 모처럼만에 찾아 뵈었으니, 고깃값을 꼭 내고 싶었다.
그래서 현금으로 책에 끼워서 드리든, 이모 주머니에 넣고 달아나든지 할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모의 입장을 전혀 고려치 못한 그저 내 생각이었다.)

고기는 퍽이나 맛있었다. 목살의 두께는 내가 먹은 고기 중 최고였고, (친구도 동의했다. ^^)
안창살의 부드러운 맛은 캬,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절대, 소주 먹고 난 뒤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모는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사랑을 내놓으셨다.
"어, 석이 왔어? 뭐 먹을래? 일단 쇠고기부터 순서대로 내줄께. 많이 먹어라."
"네. 이모. 그럼 안창살부터 먹을께요."

안창살 뿐 아니라, 곧이어 목살 2인분이 나왔고, 찌개와 계란찜 그리고 공깃밥 두 개가 나왔다.
마지막은 오리구일로 할래?, 다시 이모의 권유에 우리는 오리구이까지 먹었다.
배만 부른 게 아니라, 마음이 어찌나 포근하고 따뜻해는지... 정말 엄마 같았다.

2시간 동안,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사이다와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일어났다.
"이모, 나 이모에게 부탁 하나 해도 돼요? 이모 들어주실거죠?"
당황하실 만한데, "그래. 말해. 이모가 들어줄께" 하신다.
"들어준다 하셨으니까 말할께요. 오늘 고깃값 계산하고 가려구요. 그래야 다음에 또 오지요."

혼만 났다. 그러는 거 아니라고. 이모가 먹이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왜 그러냐고.
그 말을 듣는데, 아차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다. 서운하실 것도 같았다.
입장을 바꿔, 내 누이의 아들이 찾아왔을 때의 반가움을 상상해 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돈은 다시 내 주머니로 집어넣어야 했고, 준비한 두 권의 책을 전해 드리고 나왔다.
이모의 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하하, 사실 내 책이다. 호호. (이거 부끄럽구만.)

다음에는 선물을 하나 드리고 싶다. 내가 이렇게 고마워함을 이모에게 전하고 싶다.
거리만 가깝다면(선릉에서 마포구청역까지는 쬐금 멀다) 자주 갈 텐데 그게 어렵다.
자주 가야 이모도 포기하고(^^) 고깃값을 계산하도록 허락하실 테니 말이다.
친구도, 나도 이모의 사랑에 기분 좋은 식사와 대화 시간을 즐겼다.

생각해 보면 이모의 언니들도 참 그렇게 나를 따뜻히 맞아준다. (그 집안, 뭔가 있나 보다.)
모두 엄마의 사촌 여동생들인데, 이모들은 만나고 나면 엄마가 떠오르곤 한다.
'엄마, 잘 계시죠? 엄마 생각하면 잘 살아야 하는데, 좀 더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부끄럽네요. 그래서, 이렇게 엄마 동생들을 만나게 하시나 봐요.'

플래너를 뒤적여 본다. 또 언제 한 번 갈까, 날짜를 꼽아보기 위해.
선물은 뭐가 좋을까? 일단 손편지 하나는 꼭 써야지, 라는 것으로 정했다.
선물은 자문을 구해야겠다. 근데, 누구에게 구하지? 하하. 어쨌든 기분좋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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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최고의 상태로 돕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
팀원이 나와 다른 업무 스타일로 일하더라도, 속도가 느려 내가 끼어들고 싶어도,
혹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것이 팀원의 성장에 필요한 것이라면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랑의 격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서로의 다른 점을 바라보기 시작한 연인들이
더욱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기 욕심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하나님과 가까워질 때, 나는 비로소 사랑을 지닌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바꾸시어 보다 지혜로운 결정, 누군가를 섬기는 결정을 선택하게 하신다.
거의 모든 경우, 내가 할 일은 정의와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했다.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에는 사랑과 정의로 결정하는 것의 유익을 잊어 버리거나,
혹 기억하여 그런 결정을 하더라도 결정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힘겹다.
그 때 나는 느낀다. 사랑이 내 안에 없었던(혹은 많지 않았던) 것이구나, 하고.

생각해 보면, 좋은 성품이 내 삶에 드러났을 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찹으로 탐스럽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내 삶에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랄수록, 좋은 나무가 되도록 힘써야 함을 떠올린다.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마태복음 7:17

사랑의 성령의 첫번째 열매요, 은사 중 제일의 은사다.
요즘 나는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아니, 사랑이 필요한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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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 최승호 <오징어 3>

내 연인을 숨 막히게 했던 전적이 있다.
사랑은 구속이 아닌 자유를 주어야 함을
그렇게 실패의 경험 후에서야 깨닫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슴에 새긴다.
사랑은 자유로운 친밀함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한 쌍의 매가 보여주는 자유로움.
오징어 부부가 상대의 뜨거운 심장을 껴안는 친밀함.

사랑은 배우자의 꿈을 꺾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도와야 한다.
배우자가 잠시 길을 잃어도 그것 또한 꿈을 향한 과정임을 이해하고
신뢰하며 기다려야 한다. 자유로운 실험과 모색을 격려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퍽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배우자'를 통해 다짐해야 한다.
"그래, 저 사람을 통해 사랑과 기다림을 배우자!"

일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그 사람이다. 스타일이 곧 그 사람이다.
스타일의 독재는 저마다가 지닌 고유성을 망친다.
와우팀장으로서 어려운 일은 그의 방식을 존중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가장 적절한 때에 피드백을 던지는 일이다.

통제하려는 마음에 조급하게 피드백하면 상처를 준다.
서로간에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 발생하는 일이다.
때를 알지 못하여 지체하다 너무 늦은 피드백을 하면 무용지물이다.
그가 마음을 다칠까 두려워하다가, 혹은
나의 인기를 생각하다가 발생하는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 그 이상이다.
꿈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고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랑을 하기 위해, 혹은 사랑을 배우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

결혼하는 마음, 이것이 와우팀장이 가져야 할 마음이다.
그래도 결혼은 어떤 '여인'과 해야 할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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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것은 쉬운 일이다.
공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돈 버는 것은 좀 더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며 사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장승수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맞는 말로 여겨지지만,
돈을 벌 일도 없고, 사랑하며 살 일도 없는 학생들에게는
"공부가 가장 어려운 일"일 게다.

(학생들은 사랑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살 일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그와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노는 것이 쉽다는 말도
공부하다가 놀거나, 일하다가 노는 것을 말한다.
놀기에 지속성을 더하면 이것도 권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놀기, 공부하기, 돈 벌기, 사랑하기 모두를
적절한 조화로 삶에 조각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구나, 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곤란한 결론이다.

(좋은 통찰을 지녔으면서도
삶의 힘겨움을 강조하고 인내를 강조하는 고난주의 책이 있다.
나는 희락주의자다. 이것은 힘겨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지혜와 건강한 생각으로 즐거움으로 전환시키는 정신이다.)


사는 것이 힘든 일이구나, 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묘하게도 힘들지도 않고, 절망이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노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고
공부는 놀이에 즐거움과 신남을 더하는 일이다.
돈벌이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스릴 넘치는 놀이다.
사랑하며 살기는 함께 놀고 공부하며 돈벌이에 뛰어드는 일이다. 

사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다만, 이 과정이 힘들 수도 있음을,
그 힘듦은 세상이 불공평해서 내게만 그러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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