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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인들은 그들의 신, 비슈누를 사랑한다.

비슈누식 사랑은 다섯 단계로 나눠진다.


1) 주인 대 하인

2) 친구 대 친구

3) 부모 대 자녀

4) 배우자 대 배우자

5) 절대적인 사랑


힌두인들은 번호가 커질수록 높은 수준의 사랑으로 여긴다.

주인을 향한 하인의 사랑은 가장 낮은 단계의 사랑이다.

"주인이시여,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지 말해 주시면 제가 따르겠습니다."


친구 간의 사랑은 (첫 단계의 사랑보다) 자주 서로를 생각하는 사랑이다.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 사랑을 경험한다.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눔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단계보다 친밀함을 누린다.


힌두교 전통 사고에서 나온 이 다섯 가지 척도를 통해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이 생각들은 내게 중요한 생각꺼리를 안겨다 주었다.


첫째, 헌재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첫 단계 수준이라는 점이다.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사랑은

힌두인들에게 가장 낮은 수준의 사랑이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발적인 실천이 지속적으로 결여된다면

순종은 부담스런 의무로 전락할 것이다.


신앙 훈련 = 하나님의 사랑 체험 + 책임감 있는 순종,

이라는 등식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던 바였다.

나는 알고 있던 것일지라도 한 번씩 되새겨 주어야 한다.


사람은 스스로를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기에

되새김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과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대해 돌아본 것은 유익이었다.


둘째로 하게 된 생각은 절대적인 혹은 열렬한 사랑에 대한 단상이다.

이러한 사랑에 도달하면 사랑 이외의 것들은 모두 잊게 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주인공이 보여 준 사랑이 떠오른다.


열렬히 사랑할 때에는 대상에 대한 생각 뿐, 다른 영역에서는 균형을 잃는다.

여러분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인생의 지혜를 발견한 이들은 하나 같이 사랑을 고귀하게 여겼다.


삼십 대일지라도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처럼

매일같이 만나고, 수십 만원의 휴대폰 요금을 지불할 정도로

정열적으로 연애하는 연인들은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

인생의 가장 귀한 순간을 누리고 있음에 자랑스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한 20대 청년의 고백보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30대 성인의 고백에서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더 많은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것이니까.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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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개봉일 : 2008. 2. 28
감독 : 김정권
출연 : 차태현, 하지원

관람 : 2008년 3월 7일, 최창연

평점 : ★★★★

간단평 : 바보 승룡이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순수했다. 승룡이는 동생 지인이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친구 지호, 이 두 사람을 좋아했다. 동생 지인이를 바.보.처.럼. 사랑했다. 동생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늘 지켜주었다. 그리고 지호를 순수하게 사랑했다. 승룡이는 행복했다.


줄거리 : 승룡이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혼자 토스트 가게를 하며 동생 지인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동생의 학교 앞 작은 토스트 가게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승룡이는 동생이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늘 행복하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승룡이는 매일 저녁이 되면, 동네가 한 눈에 보이는 토성에 올라 ‘작은 별’ 노래를 부르며 10년 전 유학간 짝사랑 지호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호가 10년 만에 귀국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승룡이는 지호를 첫 눈에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처음엔 기억을 못하던 지호도 살며시 살아나는 추억과 함께 자신의 곁을 맴도는 승룡이의 따뜻함에 점점 다가가게 된다. 늘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동생 지인이와 10년을 기다린 첫사랑 지호를 매일 보게 된 승룡이는 생애 최고의 행복함을 느끼며 더욱더 즐겁게 지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상하게 대하다가도 자신의 자녀에게는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하는 부모님들. 친구들에게는 친절하다가도 자신의 애인에게는 툴툴거리고 매정하게 대하는 젊은 청춘들. 대부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사랑의 능력을 표현하고 전하는 것에 서툴다. 마치 사랑애 어떤 장애를 느끼는 것처럼.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번 사랑의 실체를 눈으로 보았다. 그 중 하나는 군에 입대하던 날에 외할머니가 보여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외할머니의 손자에서 막내아들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딸을 먼저 하늘에 보낸 깊은 슬픔과 손자를 향한 가련함을 수없이 느끼셨이리라. 나를 향한 외할머니의 사랑은 지극했다.

만 25의 나이에 입대하던 날, 나는 밤새 친구들과 보내다가 아침해와 함께 집에 들어갔다. 외할머니는 밤을 지새우며 나를 기다리셨다. 군대에 입대하는 전날 밤, 손자와 함께 이야기라도 하시려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할머니는 "야 이 무정한 놈아.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냐"고 소리를 지르실 만도 했다.  화가 나실 만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왔냐고, 잘 왔냐고 맞아주셨다. 부드러운 걱정으로 화를 표현하셨고 할머니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밤새 나를 기다리셨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손자의 늦은 입대를 염려하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은 지극했지만 극성의 선을 넘지 않았다. 십대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한 세심한 사랑이어야 한다. 부모님의 십대 자녀를 향한 사랑은 쉽지 않다. 안내라고 해 주면 거절당하고, 도와 주려고 하면 간섭이라고 오해받는다. 민감한 십대를 향한 사랑은 정서적으로 지원해 주고 말없이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외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이런 사랑을 보여주셨다. 외할머니는 "너를 믿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나는 외할머니께서 나를 신뢰한다는 것을 안다. 신뢰는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태도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외삼촌과 외숙모도 나를 신뢰해 주셨다.) 영화 <바보>를 보며 말없이 신뢰해 주고, 정서적 지원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에서 항상 나를 지켜봐 주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승룡이가 그렇게 자신의 동생을 사랑하였고,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승룡이와 할머니가 오버랩될 때마다 나는 울었다. 사랑은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멋지게 차려 입고 함께 식사하는 것도 아니다.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고 신뢰해 주는 것이고, 늘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다. 신뢰와 애정어린 관심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지금쯤 할머니도 내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할머니의 행복이리라. 오늘이 소중해지고, 내 존재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창조자다. 사랑 받는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안녕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그들은 모두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나 역시 바보가 되었다

옷을 사지 않은지 일 년이 넘었다.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양말 하나도 사지 않았다. 얼마 전, 운동화를 보니 군데 군데 떨어졌는데 구입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옷은 늘 그녀와 함께 구입했었다. 잠실 롯데마트에서 우리는 자주 쇼핑을 했다. 그런데, 늘 나와 함께 옷을 골라주던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나는 옷을 구입하는 법을 잊어버린 마냥 그냥 가진 옷을 입고 산다.

인천으로 강연을 갔더니, 언젠가 그녀와 근처의 교회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와 보았던 곳이었다. 그녀가 생각났다. 참여 정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잠깐 2006년 월드컵 얘기가 나왔다. 2006년 월드컵 경기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그녀의 회사 동료들과 함께 보았다. 그녀가 생각났다. 사당에서 4호선을 타고 안산 방면으로 갈 때마다 관문체육공원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산책했던 날이 떠올랐다. 역시 그녀가 생각났다.

어디 과천 뿐이랴, 코엑스몰가 그렇고, 잠실역이 그렇고, 성남이 그렇고, 교회가 그렇다.
어디 월드컵 뿐이랴. 무한도전이 그렇고, X맨이 그렇다. ... 아!

그녀와 함께 있을 때에는 사랑을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고,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을 몰라주었으며, 화난 감정대로 그녀를 힘들게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헤어지고 난 후부터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불필요하다면 참는 법을 배웠고, 그녀의 마음이 어떠한지 깨닫기 시작했으며,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러나, 이 배움은 너무 늦은 것이리라.

헤어진 후, 참 많이 보고 싶었지만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열 번은 생각했지만 메일도 보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를 잊지 못하는 나를 보며 '집착'인가 싶기도 해서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진단해 보기도 했다. 집착하는 이들은 기다릴 줄 모른다고 했다. 연락을 참을 줄 모른다고 했다. 옛 연인이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못 견뎌 한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참고 기다리는 나를 보며 '집착은 아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친구들은 내게 애정 공세를 퍼부으라고 조언했다. 나의 마음을 전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내 마음을 전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멀리서 지켜보고 싶었고,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소식도 알지 못하여 꼭 한 번만이라도 얼굴 한 번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그녀로부터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했고, 나의 애정공세는 그녀에게는 힘겨울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다가 눈이 오면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나는 그녀를 보러 갔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다. 첫눈이 오는 날, 그녀의 집 앞에서 밤 늦게까지 기다렸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홀로 그 날의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퍽 쓸쓸했다. 올해 초에는 새해 선물을 준비하여 가까스로 전해 주기는 했지만, 역시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나는 사랑할 때 사랑을 몰랐던 바보였다. 승룡이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길 줄 모르는 순수한 바보였고, 나는 뒤늦게 깨달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어리석은 바보가 된 것이다. 영화를 보며 바보 같은 승룡이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엉엉 울었다. 나의 어리석은 사랑 때문에 울기도 했나 보다. 언젠가 다시 사랑이 오면, 그 때에는 바보 같지 않기를...

- 2008. 3. 7


2년 전, 썼던 영화 리뷰를 공개글로 바꾸며 드는 생각은
내가 인생을 참... 둘러 가고 있구나, 하는 회한이다.
대중가요 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인생길을 둘러가는 것 같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아 헤맨다.
연인을 떠나 보내고 나서야 사랑을 배우고
젊음이 속절없이 지나간 뒤에야 젊음의 소중함을 발견하다니.
80세의 지혜로 18살까지 서서히 젊어지는 인생이라면 좋으련만. 허허.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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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육신 :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성령에 의해 마리아의 태내에서 사람으로 잉태된 일. (네이버 국어사전)

(당신이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는 글입니다.
교양 하나 쌓는다는 생각으로 '성육신'에 대해 알아 두는 것도 좋을 거예요.
저의 이 말에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간혹 소통의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럴 때엔 예수님의 성육신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은 저 높은 곳 하늘 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친히 인간이 되셨다는 점에서 소통의 비결이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게지요.

신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무력한 어린아이로 오신 예수님.
그렇기에 슬픔과 기쁨, 고통이 있는 그야말로 인간의 삶을 사셨지요.
완전한 신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

소통은...
'완전한 나'를 추구하면서도
'완전한 그'가 되어보기를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 나는 그의 개성과 고유성을 파악하고 있는가?
- 그것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있는가?
-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나의 개성에 맞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고통과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제가 다른 이의 삶까지 직접 체험할 순 없지만,
성육신의 본질만큼은 묵상하고 실천하려 노력해 보는 겁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통해 자기다움과 소통의 원리를 모두 알게 됩니다.

나의 자기다움을 포기하고 다른 이를 섬기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자연스럽지 못하니 오래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요.
처음에는 어느 한 쪽이 편하고 좋을 순 있지만, 한 사람은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소통은 답답한 것이 아니라, 시원한 것이지요.
가슴이 시원한 청량함과 깃털같은 가벼운 마음이 소통의 표지겠지요.

나의 자기다움을 추구하다가 다른 이의 연약함, 고유함, 기질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온전한 소통을 방해하는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자기다움이 만나 서로를 더욱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 소통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나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나에 대해 알아 주기를 바라고, 그것이 사랑의 표지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주고 이해해 주기란 무척 힘듭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니까요. 참으로 많이 다른 점을 가진 고유한 개별적 존재들이니까요.

종종 나에 대해 말하기보다 먼저 그에 대해 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겠지요.
그가 자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해도, 나와 생각이 달라도 사랑과 오래 참음으로 들어야지요.
그래요. 필요한 것은 사랑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입니다.
대화 그 너머의 마음을 느끼려는 노력, 상황 그 너머의 진짜 문제를 이해하려는 노력.

당신은 주도적인 사람을 꿈꾸지 않습니까?
상황이나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책임감을 갖고 헤쳐 나가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보보님! ^^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보보 이희석 Dream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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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스물 한 살 나에게 사랑은...
가슴 떨리는 감정이었고, 두근거리는 설레임이었다. 
감정과 설레임이 잦아들면 사랑이 식은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사랑에는 배려도, 책임감도 없었다.
설레임과 떨림을 주는 여인과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믿었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다.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스캇 펙의 명저 『아직도 가야할 길』 덕분이다.
사랑은 선택 가능한 길이고, 감정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
사랑이라 불릴 만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사랑하지 않으렵니다"라고.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까지도 사랑이었다. 
사랑은 분명 가슴이 시키는 것이지만, 책임과 배려로 완성하는 것이다.

스물 한 살, 나에게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아야 하는 초능력과 같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면, 내가 원하는 것 정도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치사하게 일일이 얘기하지 않아도 나의 기대를 채워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는 때로 소통의 어려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자기 성격대로만 대한다면, 그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사랑의 방식을 파악해야 한다.
어떤 이는 '함께 하는 시간'으로, 어떤 이는 '상대방의 신뢰'로 사랑을 느낀다.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겠지'라는 비합리적인 기대를 거두고
지혜롭게 나의 속내를 보여 주어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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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친구와 함께 마포에 있는 이모네 가게로 갔다.
이모는 고깃집을 하는데, 친구와 함께 찾아가기는 처음이다.
2008년 가을, 외출나온 동생(군 복무중)이랑 함께 이모네서 고기를 먹었고,
2009년 겨울, 이모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것이 최근 일이다.
이리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내가 자주 찾아뵙는 것은 아님을 알리는 게다.
그런데도, 묘하게도 나는 이모가 무척 편하고 좋다. ^^

'이모가 편안하고 좋은 것은 당연하지. 엄마랑 다른 없는 사람이 이모인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엄마의 친자매가 아니라 사촌 여동생이고, 이모와는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살았기에
최근에 저렇게 두 번 뵌 것이 이모와 나와의 거의 첫 만남이기 때문이다. 
'거의'라고 한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결혼식 등 가족 잔치 때에 
많은 이모, 삼촌들과 함께 만났던 기억은 있기 때문이다. 

우정은 반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는 쌓일 리가 없고,
같이 어울려 다니며 함께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함께 떠들어야 쌓이는 법이다.
이것은 인생사도 마찬가지여서 잔치 때 함께 결혼을 축하는 것보다는
이모와 함께 밥 한 번 먹는 것, 이야기 한 마디 나누는 것에서 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친구와 만나 이모네 가게로 들어가기 전, 지갑을 들여다 보고 친구에게 말했다.
"종준아, 잠깐만! 저기 편의점에 잠깐 다녀오자. 현금을 좀 찾아야겠다.
카드 결재를 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아. 안 받으실 것이 뻔하거든."
나는 모처럼만에 찾아 뵈었으니, 고깃값을 꼭 내고 싶었다.
그래서 현금으로 책에 끼워서 드리든, 이모 주머니에 넣고 달아나든지 할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모의 입장을 전혀 고려치 못한 그저 내 생각이었다.)

고기는 퍽이나 맛있었다. 목살의 두께는 내가 먹은 고기 중 최고였고, (친구도 동의했다. ^^)
안창살의 부드러운 맛은 캬,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절대, 소주 먹고 난 뒤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모는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사랑을 내놓으셨다.
"어, 석이 왔어? 뭐 먹을래? 일단 쇠고기부터 순서대로 내줄께. 많이 먹어라."
"네. 이모. 그럼 안창살부터 먹을께요."

안창살 뿐 아니라, 곧이어 목살 2인분이 나왔고, 찌개와 계란찜 그리고 공깃밥 두 개가 나왔다.
마지막은 오리구일로 할래?, 다시 이모의 권유에 우리는 오리구이까지 먹었다.
배만 부른 게 아니라, 마음이 어찌나 포근하고 따뜻해는지... 정말 엄마 같았다.

2시간 동안,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사이다와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일어났다.
"이모, 나 이모에게 부탁 하나 해도 돼요? 이모 들어주실거죠?"
당황하실 만한데, "그래. 말해. 이모가 들어줄께" 하신다.
"들어준다 하셨으니까 말할께요. 오늘 고깃값 계산하고 가려구요. 그래야 다음에 또 오지요."

혼만 났다. 그러는 거 아니라고. 이모가 먹이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왜 그러냐고.
그 말을 듣는데, 아차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다. 서운하실 것도 같았다.
입장을 바꿔, 내 누이의 아들이 찾아왔을 때의 반가움을 상상해 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돈은 다시 내 주머니로 집어넣어야 했고, 준비한 두 권의 책을 전해 드리고 나왔다.
이모의 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하하, 사실 내 책이다. 호호. (이거 부끄럽구만.)

다음에는 선물을 하나 드리고 싶다. 내가 이렇게 고마워함을 이모에게 전하고 싶다.
거리만 가깝다면(선릉에서 마포구청역까지는 쬐금 멀다) 자주 갈 텐데 그게 어렵다.
자주 가야 이모도 포기하고(^^) 고깃값을 계산하도록 허락하실 테니 말이다.
친구도, 나도 이모의 사랑에 기분 좋은 식사와 대화 시간을 즐겼다.

생각해 보면 이모의 언니들도 참 그렇게 나를 따뜻히 맞아준다. (그 집안, 뭔가 있나 보다.)
모두 엄마의 사촌 여동생들인데, 이모들은 만나고 나면 엄마가 떠오르곤 한다.
'엄마, 잘 계시죠? 엄마 생각하면 잘 살아야 하는데, 좀 더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부끄럽네요. 그래서, 이렇게 엄마 동생들을 만나게 하시나 봐요.'

플래너를 뒤적여 본다. 또 언제 한 번 갈까, 날짜를 꼽아보기 위해.
선물은 뭐가 좋을까? 일단 손편지 하나는 꼭 써야지, 라는 것으로 정했다.
선물은 자문을 구해야겠다. 근데, 누구에게 구하지? 하하. 어쨌든 기분좋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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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최고의 상태로 돕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
팀원이 나와 다른 업무 스타일로 일하더라도, 속도가 느려 내가 끼어들고 싶어도,
혹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것이 팀원의 성장에 필요한 것이라면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랑의 격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서로의 다른 점을 바라보기 시작한 연인들이
더욱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기 욕심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하나님과 가까워질 때, 나는 비로소 사랑을 지닌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바꾸시어 보다 지혜로운 결정, 누군가를 섬기는 결정을 선택하게 하신다.
거의 모든 경우, 내가 할 일은 정의와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했다.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에는 사랑과 정의로 결정하는 것의 유익을 잊어 버리거나,
혹 기억하여 그런 결정을 하더라도 결정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힘겹다.
그 때 나는 느낀다. 사랑이 내 안에 없었던(혹은 많지 않았던) 것이구나, 하고.

생각해 보면, 좋은 성품이 내 삶에 드러났을 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찹으로 탐스럽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내 삶에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랄수록, 좋은 나무가 되도록 힘써야 함을 떠올린다.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마태복음 7:17

사랑의 성령의 첫번째 열매요, 은사 중 제일의 은사다.
요즘 나는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아니, 사랑이 필요한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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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누고 영혼을 교감했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간다.
쌓이고 쌓여 우정이 되고 사랑이 된다.

마음이 닫히고 서로를 공감하지 못했던 시간은
흘러가기라도 해야 할 텐데 고여 썩는다.
쌓이고 쌓여도 가슴이 답답하고 영혼은 외롭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다
가슴 속에 공감에서 오는 충만함, 소통에서 오는 기쁨,
표현에서 오는 후련함, 경청에서 오는 배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가슴 답답한 일이다.
오해에서 오는 실망, 단절에서 오는 절망,
희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연인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할 때,
생애 처음으로 독신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남자를 (혹은 여자를) 두려워하게 되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이 슬퍼진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슬픈 일이다.
우리 모두 삶의 파트너에게 슬픔을 안기지 않도록 노력하자.
파트너에게 가슴 벅찬 사람이 되도록 한껏 애쓰자.

파트너가 힘들어하는 나의 어떤 모습을 이겨내고
그(녀)가 바라는 어떤 모습이 되기 위해 힘써 살아가자.
자신과의 이 선한 싸움은 이기지 못하더라도 싸움을 거는 것부터가 멋진 일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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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 최승호 <오징어 3>

내 연인을 숨 막히게 했던 전적이 있다.
사랑은 구속이 아닌 자유를 주어야 함을
그렇게 실패의 경험 후에서야 깨닫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슴에 새긴다.
사랑은 자유로운 친밀함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한 쌍의 매가 보여주는 자유로움.
오징어 부부가 상대의 뜨거운 심장을 껴안는 친밀함.

사랑은 배우자의 꿈을 꺾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도와야 한다.
배우자가 잠시 길을 잃어도 그것 또한 꿈을 향한 과정임을 이해하고
신뢰하며 기다려야 한다. 자유로운 실험과 모색을 격려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퍽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배우자'를 통해 다짐해야 한다.
"그래, 저 사람을 통해 사랑과 기다림을 배우자!"

일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그 사람이다. 스타일이 곧 그 사람이다.
스타일의 독재는 저마다가 지닌 고유성을 망친다.
와우팀장으로서 어려운 일은 그의 방식을 존중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가장 적절한 때에 피드백을 던지는 일이다.

통제하려는 마음에 조급하게 피드백하면 상처를 준다.
서로간에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 발생하는 일이다.
때를 알지 못하여 지체하다 너무 늦은 피드백을 하면 무용지물이다.
그가 마음을 다칠까 두려워하다가, 혹은
나의 인기를 생각하다가 발생하는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 그 이상이다.
꿈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고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랑을 하기 위해, 혹은 사랑을 배우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

결혼하는 마음, 이것이 와우팀장이 가져야 할 마음이다.
그래도 결혼은 어떤 '여인'과 해야 할 텐데.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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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노는 것은 쉬운 일이다.
공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돈 버는 것은 좀 더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며 사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장승수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맞는 말로 여겨지지만,
돈을 벌 일도 없고, 사랑하며 살 일도 없는 학생들에게는
"공부가 가장 어려운 일"일 게다.

(학생들은 사랑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살 일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그와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노는 것이 쉽다는 말도
공부하다가 놀거나, 일하다가 노는 것을 말한다.
놀기에 지속성을 더하면 이것도 권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놀기, 공부하기, 돈 벌기, 사랑하기 모두를
적절한 조화로 삶에 조각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구나, 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곤란한 결론이다.

(좋은 통찰을 지녔으면서도
삶의 힘겨움을 강조하고 인내를 강조하는 고난주의 책이 있다.
나는 희락주의자다. 이것은 힘겨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지혜와 건강한 생각으로 즐거움으로 전환시키는 정신이다.)


사는 것이 힘든 일이구나, 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묘하게도 힘들지도 않고, 절망이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노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고
공부는 놀이에 즐거움과 신남을 더하는 일이다.
돈벌이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스릴 넘치는 놀이다.
사랑하며 살기는 함께 놀고 공부하며 돈벌이에 뛰어드는 일이다. 

사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다만, 이 과정이 힘들 수도 있음을,
그 힘듦은 세상이 불공평해서 내게만 그러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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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보보는 2월 4일부터 3월 3일까지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일정 중 2/3는 브라질(상파울로, 리오데자네이루, 이과수 폭포)에서 5기 와우팀원들과,
1/3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홀로 여유롭게 보내었지요.

브라질 여행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개인사가 되었고,
팀원들과의 소중한 이야기를 공유하게 된 아름다운 추억이었고,
여행의 순간 순간마다 삶의 지혜를 얻은 인생수업이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와우팀원들과 함께 진행된 3차례의 수업과 강연이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며 저는 팀원들의 삶에 감동하며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배웠습니다.
보보의 해피레터 11편은 브라질 여행 중에 느꼈던 몇 가지 단상입니다.
팀원들에게서 배우고, 여행을 통해 배웠던 것에 대한 소박한 나눔입니다.

#1. 지금 만나고, 지금 말하고, 지금 행동하라
눈물 흘리며 들었던 이야기 하나.
브라질로 이민을 온 엘라는 타국에 계신 어머니께 때마다 용돈을 보내 드렸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하니 마음이라도 정성스레 전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엘라는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다 엉엉 울음을 터트린다.
어머니의 서랍에서 나온 양말 뭉치 때문에.

양말 하나 하나에는 그녀가 보내 드린 달러 뭉치가 들어 있었던 게다.
하나도 쓰지 않고 고이 모아 두셨나 보다. 꽤 많은 돈이었다.
그 때가 생생히 기억나는 듯, 엘라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말했다.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에겐 함께 해 주는 딸이 필요했던 거였어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 『인생수업』 中에서



#2. 존재하는 법 VS 일하는 법
브라질로 떠나기 며칠 전에 접했던 다소 울적한 기사 하나.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 연간 노동시간이 최고로 많다는 기사였다.
2위를 현격한 차이로 따돌린 압도적인 1위였다.

브라질 여행을 하며 느낀 점 하나.브라질 사람들은 시간을 느긋하게 보낸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서는 매 시간마다 어떤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여유로웠고, 미래를 향한 생각은 낙관적이었다.
근거 없이 미래를 낙관하며 태평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리석다고 한다면,
목적 없이 분주히 살며 오늘의 미소와 행복을 잃어버린 것 역시 어리석다고 응수하겠다.

나는 균형을 말하고 싶은 게다.
생산성 있는 삶과 의미 있는 삶의 균형,
일하는 법과 존재하는 법의 균형.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이고 성공적이어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립니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일하는 법은 알지만, 존재하는 법은 잘 모릅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3. 좀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단상들
나는 결혼 생활을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생각한다.
- 점점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
- 서로의 상처를 깨닫고 이해하며 치유해 나가는 과정
-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수용해 나가는 과정
(과정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완성의 단계가 없음을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에게 위로와 지속적인 용기를 주기를.)

독립적이지 못하면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의존함이 지속되면 상대를 구속하게 된다.
자유와 존엄성에 압박을 주게 된다.
홀로 잘 살아가는 동시에 서로에게 의존하는 상호의존성을 발휘해야 한다.
두 개인이 모두 독립성을 가져야만 상호의존성에 이를 수 있다.

좋아함은 기쁨이지만 사랑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상대를 구속하려는 태도, 배우자에게 배우기보다는 상대를 교정하려는 시도,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는 시각, 이 모든 것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배우자를 보며 ‘당신과 나는 참 다른 존재군요’라고 느껴지는 순간은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다양성과 조화를 배우는 축복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알고 다름이 아름다운 조화의 핵심임을 배워 간다면,
틀어졌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다.
머지 않아, 내가 받은 상처만큼이나 나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았음을 깨닫게 되면 이해가 시작되고 치유가 진행된다.

결혼한 상대를 배우자라고 부른다.
서로 서로 배우자는 의미로 이렇게 부르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결혼 생활이야말로 인생 수업의 장(場)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아껴줄 수 있고,
아껴줄 수 있다면 사랑이 더욱 아름다워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툴 때면
당신은 상대방이 잘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스스로 마음을 닫고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에 당황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4. 자신의 자랑스러운 개인사를 칭찬하기
45년 전의 어느 날, 한국 최초의 브라질 이민자들이 배를 탔다.
새로운 땅에서의 삶을 꿈꾸며 한 달이 넘는 뱃길을 달려 브라질에 이르렀다.
긴 시간 배를 타면서, ‘한국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겠구나’라는 절박함을 느꼈으리라.

절박함으로 도착하였지만, 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한국어로 된 포르투갈어 사전도 없던 시절, 날마다 온 몸으로 부딪쳐가며 언어를 익혔다.
낯선 땅에서 맨손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시작한 것이다.

45년 동안, 한국인들은 브라질 의류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 냈다.
의류 소매업계의 40%를 한국인이 장악했고, 경제적인 성공을 일궈 낸 이들도 많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성공은 지난 시절 그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들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주 감동에 젖었다. 아니, 전율했다.

가장의 사업 실패로 인한 가족 전체의 이민 결정을 따라 브라질로 온 소녀는 이제 중년이 됐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이민을 떠난 어느 부부의 아들, 딸들은 이제 서른 살 어른이 됐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국의 브라질 이민사도 튼튼해졌다.

젊은 날들을 오롯이 이민 생활의 정착과 성공을 위해 바친 그들의 삶은 감동이었다.
자신의 열정과 꿈보다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홀로서기에 바쳐진 젊은 날들의 희생은 고귀했다.
중년 즈음에 느껴지는 자기 상실감을 느끼기에는 지난 날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나는 그들이 자기 삶의 훌륭한 대목을 진정 스스로 흐뭇하게 바라보기를 원했다.
아름다운 자기 생의 모습을 바라 보며 스스로 칭찬하고 사랑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얻은 힘으로 앞으로의 날들을 더욱 찬란하게 빚어가기를 바랬다.
그들 모두는 자기 삶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챔피언이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좋은 점을 깎아 내리거나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헌신적이고, 베풀고,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자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자선 단체 대표에서 성직자들까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까지,
자신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PS] 들은 바에 의하면, 브라질로 이민을 간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성공 뒤에는
사람을 피부 색깔로 차별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브라질 국민들이 있었다.
또한, 101년 전에 먼저 브라질 땅을 밟아 동양인의 인식을 가꾸어 준 일본인들이 있었다.
먼저는 브라질 국민들에게, 다음으로는 일본인들에게 고마움이 든다.
역시, 우리는 서로 얽혀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는가 보다.


#5. 삶의 배움을 얻다
덩치가 큰 그는 비행기 좌석을 두 개에 걸쳐 앉았다.
몸이 아주 불편하여 거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데에만 10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선반에서 짐을 끄집어 냈다. 작지 않은 가방이었다.
나는 그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도와 드릴까요?"
그는 단호함과 다정함을 섞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나를 쳐다보며) 고마워요."

그는 어느 친절한 청년의 호의를 거절했다.
자신이 들어야 할 삶의 무게는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그 무게를 포기하면 자신이 점점 연약해진다고 믿는 것처럼.

그는 자기 가방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매고,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으며 비행기에서 내려 끝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걸었다.
그의 곁에는 아내가 있었지만, 아내도 그도 각자 자신의 짐을 들고 있었다.
나는 호의를 베푸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진정으로 그를 돕는 데에는 실패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6. 넓은 가슴으로 다른 이들을 이해하기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샤워를 하고 난 후,
전신타월로 몸을 감싸는 기분은.. 참으로 좋다.
전신타월은 몸에 묻은 물기를 순식간에 닦아 내어 한기를 느끼지 않게 한다.
뽀송뽀송한 큰 타월이 내 온 몸을 감쌀 때의 포근함이 좋다.
몸을 감싸고 나와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울 때의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다.

좀 유치한 표현이긴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전신타월과 같은 사람이고 싶다.
친구와 아내의 눈물을 닦아 주고, 편하게 나에게 기댈 수 있는 넓은 가슴의 사람이 되고 싶다.
항상 뽀송뽀송한 기운을 전해 주어 그에게 살아갈 힘을 전하는 사람이고 싶다.
살아가다 다툴 때에라도 나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태도를 따지기보다는
그저 넓은 사랑으로 그의 눈물을 이해하고 싶다.

“우리가 마음을 닫고 편협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전화를 걸지 않는지,
왜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반면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오해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7. 삶의 목적을 기억하기
브라질에서 보낸 일정은 마치 짧은 인생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보름이 넘는 일정이니 꽤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목적보다는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에 온통 관심을 빼앗겼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들이었다.
구경할 것도 많았고, 새롭게 듣게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았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내게는 열흘도 더 남아 있었다. 안심할 만했다.

그 짧은 브라질 일정에서도 친해진 사람들이 생겨났다.
내가 해야 할 책임도 새롭게 생겨났다. 두 번의 강연 계획이었는데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즐겁고 영광스런 일이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었다.
이렇게 새로 떠 맡은 일을 하는 사이,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는 사이에시나브로 여행의 일정이 2~3일만 남게 되었다.

인생은 왕의 명령을 받고 외국으로 파견된 사신의 역할과 같다.
모든 것을 둘러보더라도 왕의 명령을 받들지 못했다면,
고국으로 돌아가서 왕에게 전해 올릴 이야기를 갖지 못한 것이다.

구경도 하지 말고, 사람들과 관계도 맺지 말자는 게 아니다.
왕의 명령을 완수해야 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의 목적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삶은 목적을 어지럽히는, 그럴듯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기에.

이번 여행의 목적은 와우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또한, 브라질 와우팀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A님과
커피 한 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강연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먼 길 오신 김에 강연을 해 주면 어떠한지요?’라는 제안에 화답하여 진행된 것이니.
새롭게 맺은 관계는 뜻밖의 아름다운 선물이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니었다.

일정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에야 A님과 차 한 잔의 여유를 갖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목적 하나를 놓친 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너무 늦지 않은 즈음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우리는 즐거운 대화 시간을 가졌다. ^^

나는 이 글을 벤쿠버의 한 호텔에서 신나게 작성하고 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떠오른 단상들이 술술 쏟아져 나와 반가움으로 글을 썼다.
3월 2일 새벽 4:49분을 지나고 있다. 새벽 미명이 밝아오기 전이다.
내 인생에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기억될 여행이.. 이렇게 저물고 있다.

부디 나의 하루 하루가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길.
날마다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까지도 특별하게 처리하여 빛나는 순간들로 창조해 나가길.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오늘 하루를 잡아 빛나는 일상으로 빚어 내길.

여행의 마지막 순간이 되니,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얼마나 열심히 여행했는지, 얼마나 웃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용기를 내어 나 자신으로 시간을 보내었는지.
여행은 꼭 삶을 닮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여행은 인생 수업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더 진실해지고,
정직해지고 더 진정한 자신이 됩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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