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살아낸’ 자코메티>
- 자코메티 전시회를 다녀와서 (1/3)


1.
전시장에 들어서면 브레송이 찍은 사진 한 장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가 연보를 만난다. 비 오는 날 자코메티가 코트를 머리까지 올려 쓴 채로 걷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브레송답게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을 찍은 사진이었다.)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행을 시작한 자코메티! 다른 행인은 없었다. 약간의 쓸쓸함, 왠지 모를 처연함, 왜 우산이 없을까 하는 궁금함... 그리고 걸어가는 자코메티! 



2.
작가 연보에서부터 감동했다. 1926년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업실에 정착했다. 연보는 이후 20년을 소개하지 않았다. 곧바로 1946년으로 갔다. 길고 날씬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1946년으로! 20년 동안 이어졌을 작업실에서의 수련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자코메티의 모델이자 자코메티 평전을 저술한 ‘제임스 로드’의 글을 여럿 읽은 덕분이다.)


나에게 예술가란, 외부의 명성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 기준을 향한 끝없는 수련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다. 기꺼이 받아들이는지, 필연으로 자기를 설득하는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예술을 향한 끝없는 정진이니까. 과정이 있을 뿐 완성은 없다. 자코메티는 제임스 로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림이란 그리면 그릴수록 점점 더 끝내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3.
표현 양식을 다듬고 벼리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겠다. 천착하고 수련해야 하리라! 흉내로는 스타일에 이를 수가 없으니까. "스타일은 흉내와 더불어 죽는다. 반면 양식은 흉내내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고해진다." 철학자 김영민 선생의 말이다. '단독자적 체취'가 묻어나야 스타일이다. 스타일이 곧 그의 실력이자 존재다.


20년을 건너 뛴 연보를 보면서 음미한 생각이다.


4.
자코메티는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나무, 바위, 동굴 등 무생물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며 친구 삼았다는 전시회 벽면에 새겨진 텍스트를 읽으며 반가웠다. ‘아, 이 동질감!’ 묘한 공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나보다 더 내성적인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성적’이라는 말에서 편안함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이 단어가 적잖이 싫다.


5.
아버지 ‘지오반니 자코메티’는 저명한 화가였다. 아들을 경제적으로 든든히 후원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가르침도 풍요로웠다. "화가란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을 공부하는 건 곧 잘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다." 아버지의 말이 내게도 따뜻하게 들렸다.


자코메티 여섯 가족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다른 가족의 시선이 카메라를 향하는 것과 달리 어린 알베르토와 어머니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평생 자코메티의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였다고 한다. 자코메티는 ‘부모 제비뽑기’에서 운이 상당히 좋았던 셈이다.


6.
"우리는 모델을 우리가 아는 대로가 아닌 우리가 보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 단순히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 자코메티


감각한 대로 표현하기란 얼마나 어렵던가! 선입견과 소문에 의해 왜곡된 인상을 지워 버리고 지금 눈앞의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일 그리고 내가 보았던 그대로 표현하는 일! ‘감각한다는 것’ 그리고 ‘표현 양식’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임을 자코메티의 생각을 통해 다시금 확인한다.


7.
이사벨! 자코메티의 여러 뮤즈 중 캐롤린과 함께 가장 치명적인 여인이다. 자코메티는 이사벨에 대해 “남자를 삼켜버리는 여자”라는 후일담을 남겼다. 매혹적이지만 인격적이지는 않은, 그래서 만나면 안 되는, 엮이고 싶지 않은, 그래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여인들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 예술가의 뮤즈는 두 종류인 걸까. 선한 쪽과 악한 쪽!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뮤즈는 선악과는 별개로 강렬한 성적 욕망을 안기는 뮤즈가 아닐까, 하고.


8.
"나에게 숭고함은 예술 작품 속이 아닌 정확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 있습니다." - 자코메티


이번 전시에서 가장 울림이 컸던 말이다. 마음속의 생각과 공명한 것이다. 읽자마자 내 안에도 예술 세포란 게 있다면 그것들이 모두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당장 달려가 내 작품에 매진하고 싶을 정도였다. ‘작품’이라고 표현할 정도까진 아닌 글이지만, 이럴 땐 ‘누구나 예술가’라는 의심쩍은 슬로건으로 나를 둘러싸고 싶어진다.


아래에 자코메티와 공명한 생각을 적어 둔다.


‘예술가들은 세상 도처에서 숭고함을 발견한다. 세상에 깃든 숭고미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기 위해 정진한다. 표현 기술이 부족하다 싶을 때마다 끊임없이 기술을 수련한다. 발견이 먼저고 표현은 나중이다.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깊이 감각하고 창의적 양식으로 표현하리라. 역설적이게도 감각이 깊을수록 표현은 힘겨워진다. 표현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치열함 역시 (근대의 관념이긴 하지만) 예술가의 모습이리라. 가까스로 표현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걸 예술 작품이라 부른다. 정작 예술가에겐 여전히 미완성인, 그래서 과정에 불과한 오브제인데 말이다.’


외고 있던 자코메티의 말 몇 마디 중 하나가 떠올랐다.

“이거 정말 제대로 안 되네요. 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끝날 수 있는 일도 아닌데요.”


9.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만을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준다." - 장주네


한쪽 벽면에 쓰인 글을 그대로 적었다. 우선 비문이다. 발언자 표기도 띄어쓰기가 잘못 됐다. 장 주네(Jean Genet)는 저명한 소설가 답게 걸출한 자코메티론을 남긴 인물이다. 인용문 만으로는 의미 전달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전후 문장을 옮겨 둔다. (이미지 참조)


10.
“형태가 아닌 기운을 그리는 예술가”


흔히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예술이 반드시 작품인 것은 아니다. 작품이 빚어낼 분위기까지 창조하려고 애쓰거나(자코메티, 이우환) 작품과 공간의 관계마저 고려하는 예술가들이 존재한다(루이스 칸의 솔크연구소). 어원적 의미로도, 예술은 작품보다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감각’한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창의적 ‘행위’가 예술이다. 그것이 물체든, 영감이든, 기운이든, 관념이든 어떻게든 감각한 대로 표현하려고 정진하는 이들! 이번 전시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자코메티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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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마음과 엉덩이로 바라고 바랐던

아직은 되지 못해 여전히 동경하는

그래서 오늘의 나를 추동하는 오랜 꿈

여기저기 자처하나 알고 보면 아닌

 

<사람>

때로는 숨소리 들릴 듯이 가까이

가끔은 마음이 그리워하도록 멀리

손으로든 마음으로든 연결되어야 벗

동물이지만 동물같은 삶은 아니어야

 

<하늘>

행복한 자들은 미소로 마주하고

지친 이들은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만인의 거울이자 나만의 창문

그리운 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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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 프랑스 태생이지만 음악적 고향은 독일.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관심. "베토벤은 정신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고 또 가장 많이 연주하는 작품이죠."(월간 객석. 2012년 10월호)


2.

그는 내게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꿈을 이뤄가는 낭만주의자다. 다음의 인터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출처는 월간 객석)




3.

꿈을 이뤄가는 낭만주의자의 면모가 보다 또렷하게 보이는 대목도 있다. "만약 한국에서 연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단연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싶어요." 월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터뷰는 2012년 9월 파리에서 진행됐다.)


그리고 5년 후 그는 자신의 바람을 이뤘다. 2017년부터 2020년에 걸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게 된 것!


2017년은 베토벤 서거 190주년이고, 2020은 그의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다. 4년에 걸친 연주회인데, 두어 번은 찾아갈 생각이다. 금호아트홀 측은 4년간의 '대장정'이라 표현했지만, 조금 멋적다. 이 표현은 올해 9월 일주일 동안 베토번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백건우 선생에게 더 어울리는 듯.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7번. 다니엘 바렌보임 연주>


4.

6월 1일 금호아트홀에서 그의 두 번째 연주회를 감상했다. (5월 25일 첫번째 연주회는 일정상 가지 못했다.) 피아노 소나타 5번, 6번, 7번, 23번이 연주됐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악장에서 감동했다. 23번에서 잠시 지루했을 뿐이다. 아르투르 슈나벨의 연주를 CD로 들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감격적이었다. 두 연주자의 실력차라기보다는 '아우라'가 빚어내는 차이가 아닐까 싶다. (벤야민이 말한 그 아우라 말이다.)


5.

그나저나 클래식 문외한의 이 감흥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1) 우선 말해두고 싶은 것은 사람마다의 수준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 감흥의 깊이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저 예전의 무감각했던 클래식 감상에 비한 개인적 성장이리라. 2) 클래식이 주는 감동은 흥분보다는 고요에 가까운 희열이다. 다소 관조적이기도 하다. 개인의 기질 탓이겠지만, 나는 클래식을 들으면 사색에 빠져든다. 3) 결국 음악에 조예가 없는 나의 감동은 화성학적 감동이 아니다. 음악이 불러오는 영감과 정서적 고양에 따른 감동이다. 이처럼 관련 분야의 전문가 뿐 아니라 대다수의 인류에게 다가선다는 점이야말로 예술의 대가들이 지닌 저력이리라.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피아노 소나타 제5번 c단조, Op.10/1
Piano Sonata No.5 in c minor, Op.10/1
Allegro molto e con brio
Adagio molto
Finale. Prestissimo
 
피아노 소나타 제7번 D장조, Op.10/3
Piano Sonata No.7 in D Major, Op.10/3
Presto
Largo e mesto
Menuetto. Allegro
Rondo. Allegro
 
 
INTERMISSION
 
 
피아노 소나타 제6번 F장조, Op.10/2
Piano Sonata No.6 in F Major, Op.10/2
Allegro
Allegretto
Presto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f단조, ‘열정', Op.57
Piano Sonata No.23 in f minor, ‘Appassionata', Op.57
Allegro assai
Andante con moto
Allegro ma non tr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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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Song" : Nat Adderley [Work Song] (1960, Riverside)

코넷 연주자 냇 애덜리(Nathaniel Adderley, 1931~2000)의 "Work Song"은 도입부의 코넷 선율이 “이제 우리 함께 일하자”는 권면처럼 들리는 곡이다. 그냥 일하자가 아니다. 신바람 나게, 명랑하게, 춤을 추면서 일하자는 권면!

만약 곡의 제목이 “Play Song"이었다면 나는 이 곡을 덜 좋아했을 것이다. 놀면서 콧노래를 부르기란 얼마나 쉬운가! 일하면서 흥얼거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이 곡이 좋다. 일과 재미의 변증법적 통합을 시도하는 것 같아서.

냇 애덜리는 하드 밥의 대표주자 캐논볼 애덜리의 동생이다. 형은 동생의 곡을 즐겨 연주했다. 나는 캐논볼 애덜리 퀸텟에 동생이 피처링한 연주곡을 좋아한다(아래 첫번째 영상). 코넷과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합작품이어서가 아니다. 좀 더 경쾌하고 흥겨워서다. (맨 아래 영상은 형제가 1963년에 협연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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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을 참느라 혼났다. 좁은 작업실을 서성였다가 책상에 앉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세나절 동안 모차르트를 듣다가 벌어진 일이다. 아침에 피아노 협주곡 21번으로 잔잔한 울림을 느꼈다가 오후에는 피아노 소나타 12번 2악장을 듣다가 아름다운 고요함에 전율했다. 사실 눈물이 찔끔 났다. ‘아! 모차르트의 감동이 이런 거구나.’


모차르트 평전을 쓴 필립 솔레르스는 “아주 젊은 모차르트의 작품에는 사람들은 만족시키는 모든 것들이 있다”고 썼는데, 이 과장스러운 표현에 동의하게 된 날이다. 모차르트 감상이 처음은 아니다. 여러 장의 모차르트 CD를 차에서 듣기도 했고, <돈 조반니>를 시청하다가 졸았던 경력도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로 눈물의 감동을 경험한 날은 없었다.


어느새 저녁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듣자고 선택한 곡은 바렌보임이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 8번>이다. 오늘 왜 이럴까?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어 또 책상에서 일어나야 했다. 달랠 방도도 없다. 글을 쓰기엔 내가 차분하지 않고, 감동을 전할 연인도 없으니. 녀석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는 날이다. “박상, 통화 돼? 나 대학생 때 잠깐 피아노 배웠던 거 기억하냐?”


“글세, 잠깐만…. 아, 그래. 손톱만큼 배우다 말았잖아. 학원에 꼬마 애들 밖에 없어서 쪽팔린다고.” 기억하는구나, 역시 박상이다. “다시 피아노를 배워볼까 싶어서 오늘 좀 알아봤거든. 위드피아노라고 있어. 성인들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야. 지점이 많은데 홍대에도 있고, 분위기가 꼭 카페처럼 근사해.” 뜬금없는 말에 친구가 묻는다. “잠깐만! 그런데 갑자기 웬 피아노야?”


“모차르트의 위대함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 왜 그런 거 있잖아. 괴테나 니체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독서가들이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이랄까.” 한때 헬라어도 배우고 싶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독일어도, 헬라어도 한 마디도 못하는 걸 알면 피아노 교습을 말릴지도 모르니까. 자자, 진정하자! 나는 지금 흥분했다. 한숨을 쉬어보자. 휴우.


(아참! 이건 알리고 가야겠다. 전화 통화가 실제로 이뤄진 건 아니다. 박상은 이럴 때(흥분, 분노, 셀렘을 느낄 때)마다 떠오르는 친구지만, 이미 세상을 떠났다. 녀석이 살아 있다면 오늘은 분명 전화통화를 했을 날이다.)


여느 때와 달리, 친구 생각에도 나는 지금 우울하지 않다.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피아노 소나타 11번 1악장>이 위로하기 때문인 것 같다. 모차르트가 속삭인다. ‘슬퍼하지 말고 명랑하게 살아가세요.’(내 나이가 모차르트보다 많다.) 이 젊은 음악 천재는 1악장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나를 경쾌함으로 초대했다. 신난다. 외출 시간이 코 앞이라 3악장까지 듣진 못했지만, 나는 이미 행진할 준비가 됐다(3악장이 그 유명한 ‘터키행진곡’이다).


내가 다시 피아노를 배울 가능성은 낮다. 유투브에서 어느 아마추어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연주는 전혀 '모차르트'가 아니었다. 처음 들을 때에는 피아노 소나타 8번이 아닌 다른 곡인 줄 알았다. 그도 꽤 오래 배웠을 텐데 나의 시청 소감은 간단했다. ‘직접 연주로 모차르트를 만나기는 쉽지 않겠구나.’ 내 둔한 귀를 훈련하는 게 빠를 것 같다.


"이번 생에는 글렀어"는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윤회를 믿지는 않지만 재밌는 표현이다. 그래, 이번 생에서의 나는 연주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좋은 감상자가 되기에는 늦지 않았으리라(고 믿어볼란다). 당분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매일 하나씩 감상해야겠다. (2017.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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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
—침대의 필요
(시인 김선우)


그런 날 있잖습니까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 속의 사람이
나를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릴 때

그런 날은 열 일 제치고 침상을 정리합니다


날 선 뼈들을 발라내 햇빛과 바람을 쏘이고
가장 좋은 침대보로 새로 씌우죠


이봐요, 여기로


거울 앞으로 가 거울 속의 사람을 마주봅니다
거울 속으로 손을 뻗지 말고
여기서 손짓해 거울 밖으로
그를 꺼내야 합니다


어서 와요.


정성 다해 만져줘야 할 몸이
이쪽에 있습니다.


- 《문학동네》 2016년 가을호


*


감정적으로 힘들거나 피로감을 느끼는 이와 함께 읽고 싶은 시다. 거울 속 얼굴은 왜 사나워졌을까? 시인은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짐작해 본다. (아마도 격무에 시달려) 몸이 피곤해서, (아마도 누군가로 인해) 감정이 격해져서, (때때로 누구나 그렇듯이) 삶이 고단해서, 이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이유를 서술하는 대신 대책을 내놓는다. 이것이 김선우 시의 힘이다. 원인분석 대신 대책모색의 긍정성! 거울 속의 그에게 왜 그랬냐고 탓하지 않는다. 거울 속에 있는 만지기 힘든 내면적 자아의 원인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보듬을 수 있는 실체적 자아에 집중한다. “몸이 이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손짓한다. 가장 좋은 침대보로 침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으르렁’에게 ‘어서 와요’라고 하고 부른다. ‘으르렁’이 부드럽게 바뀌어가는 모습을 시정으로 느낀다.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 다름 아닌 ‘몸’을 정성 다해 만져 주고 있으니! 행복은 마음에만 있지 않고 몸(의 활동)에도 있으며, 두뇌 발달에는 독서와 사유만이 아니라 운동이야말로 도움 됨을 최신 과학이 증명해 낸, 바로 그 몸을 말이다. 시인의 대책은 시쳇말로 과학적이다. 예술적 직관은 종종 과학을 선취하는 법이다.(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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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은 내게 위로자요, 때로는 눈 밝은 안내자다. 망각했던 것들을 일깨워 삶의 모양이나 방향을 제안한다. 추구할 만한 가치와 달려갈 푯대를 보여주어 나를 추동한다. 그러한 일급의 예술을 보았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2.

영화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힘겨운 삶 그리고 그들을 섬세하게 돕지 못하는 관료조직의 고루한 위선을 보여준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예순 살 정도의 목수다. 성실하게 살아왔고, 자신에게 떳떳했다.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그만두게 됐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야 하지만 복잡한 절차가 번번이 그를 가로 막았다. 컴맹, 넷맹인 그에게 정부 기관들은 사전 신청을 하지 않았음을 타박한다.

 

블레이크는 절망의 순간에 우연히 자신보다 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케이티를 만났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케이티에게 희망과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블레이크에겐 자녀가 없다. 자녀를 낳았다면 케이티와 비슷한 연배의 딸이 있었으리라. 둘의 관계가 때때로 부녀지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블레이크는 조건 없이 케이티를 지원한다. 어느 날 케이티가 말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할 거예요.” 새 삶을 꿈꾸는 그녀에게 블레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응원하겠소.”

 

3.

케이티는 런던에서 집세가 없어 뉴캐슬로 쫓겨왔다. 새로 얻은 집은 허름하다. 전기를 들일 돈도 없다. 어두워지면 촛불로 실내를 밝혀야 했다. 블레이크는 슬쩍 전기요금을 두고 갔다. 어느 날, 케이티는 욕실 벽을 청소했다. 타일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사실 집 안 구석구석이 보수와 수리를 요구했다. 떨어진 타일을 들고 욕실을 나올 때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했다. ‘울지 마, 케이티! 다시 씩씩하게 일을 시작하고 구직을 위해 노력하면 돼.’

 

그때 딸 아이가 타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엄마에게 왔다. 엄마를 걱정하는 아이. 딸을 사랑하는 엄마. “내일 아침, 기분 좋게 목욕하게 해 주고 싶어. 먼저 자. 엄마도 곧 따라가서 잘게.” 아이가 돌아가자, 결국 케이티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내 가슴도 먹먹해졌다.

 

4.

케이티와 다섯 살,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의 두 아이 그리고 블레이크. 이들은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한번은 무료 식료품 보급소에 함께 갔다. (케이티는 보급소를 이용할 자격이 있을 만큼 가난했다.) 점잖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받아들던 케이티는 갑자기 캔 하나를 따서 음식을 짐승처럼 입에다 넣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도둑질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정신을 차린 케이티. “죄송해요. 너무 배가 고팠어요.”

 

기다리고 있던 블레이크가 달려와 그녀를 다독였다. “부끄러워할 거 없어. 자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한 마디의 질책도 없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울고 말았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저리 이성을 잃을까?’ 앞선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5.

블레이크가 변기도 고쳐주고 전기요금도 보태주어 고마웠던 케이티였다. 그 날도 블레이크는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러 왔다가 저녁 시간이 되었다. “저녁 먹고 가세요.” 아이 둘에게 식사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블레이크에게도 접시가 돌아갔지만 케이티는 사과 하나를 먹을 뿐이었다. 블레이크가 눈치를 챘다. “자네가 먹어. 난 괜찮아.” 식탁에 앉으며 케이티가 대답했다. “제 최소한의 성의예요.”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말없이 음식을 먹어 준 블레이크가, 나는 정말 고마웠다.

 

6.

몇 주가 흘렀다. 그 동안 블레이크는 보조금을 받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고, 케이티 역시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그녀에게 검은 손이 뻗쳤다. 한 남자가 매춘을 소개한 것이다. 케이티는 딸 아이의 떨어진 신발도 사주지 못하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위험한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만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블레이크가 업소에 가서 케이티를 만난다. “이런 일까지 하지 않아도 돼.” “제발 가 주세요.” 갈등의 클라이맥스 장면이다.

 

관객인 나로서도 긴장이 고조되었다. 블레이크의 선의와 케이티의 자존심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타협을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살려는 블레이크도 이해되었고, 마트에서 여성용 패드를 훔치기까지 전락한 자신의 삶을 구원하려는 케이티도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보인 갈등도 이해되었다.

 

그것은 반목이 아니었다. 갈등은 때때로 애정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모든 갈등이 애정일 수 없고, 갈등이 항상 애정을 만드는 것도 아니지만) 애정이 없으면 대체로 갈등도 없다. 친구와 이 장면에 대해 얘길 나눴다. 영화의 전개와 블레이크의 캐릭터 상으로 보면, 어쩔 수 없이 빚어진 장면이지만, 영화에서 벗어나와 지혜로운 행동으로 따져 보았다. 우리는 블레이크가 모른 척 했어야 했고, 적어도 그 업소가 아닌 다른 상황에서 넌지시 당부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7.

영화가 진행되는 곳곳에서 이 시대의 고질적인 문제를 절감했다. 정부는 매년 새로운 약속을 하지만,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실업’ 말이다. 내가 알기로, 아직까지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시간을 내어 ‘실업’이라는 21세기의 재앙에 관해 조사하고 좋은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레이크는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전했고 도우려고 애썼다. 그는 현실적 문제를 무시하는 순진한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오지랖 넓은 낭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저 의로움과 자존감을 추구하는, 하지만 가난한 시민이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는 보조금 지급 상담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끝내 자존심을 읽고 말았던 계기와 자존심을 잃고 난 이후의 결말에 대한 언급은 영화를 감상하실 분들을 위해 삼가겠다.

 

이 영화는 관람할 때에나 보고 나서나, 가슴이 아팠다. 분명 슬프고 아픈데도 영감과 감동을 얻었으니 행복감도 느끼게 만들었다.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이라니! 시종 잔잔하고 섬세하게, 세상의 어두운 한편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모양새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어떤 이는 고통을 겪으며 '고통 앞에선 모두가 하나'라는 연대의식을 회복한다. 눈물로도 내일을 그린다. 내가 그렇다. 한동안 뜸했던 재능 십일조 강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고작 1월인데, 2017년에 본 최고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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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행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

약속 시간을 기다리면서 선물로 챙겨 온 시집을 펼쳤다. 몇 편의 시로부터 미소와 깨달음을 건네 받았다. 그 중 한 편이 정희성의 <태백산행>이다. 시는 한 폭의 그림이요, 한 소절의 노래인가 보다. 시집에서 그림 몇 점(길 나서는 사내, 태백산에서의 대화들)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중년 부인이 투덜대는 소리가 귀에 울린다. 태백산을 울린 "좋을 때다"라는 말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의 현재에 침투한 느낌도 들었다.


지금이 좋을 때다.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행동하려던 참이었다면, 오늘이 맞춤한 날이다. '아, 잊고 살았구나! 지금이야말로 참 조오흘 때임을' 이라고 탄식해도 괜찮다. 오래 머무르지만 않는다면, 탄식과 후회가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폭발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지금이 좋을 때임을 알고 있었다. 좋은 앎은 새롭지 않아도 자극과 감동을 주는 법이다. 삶에 밀착된 앎, 삶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앎! 이것이 좋은 앎이 아닐까.


아름다운 예술이 좋은 앎마저 선사하니… 마음이 춤을 춘다.


Posted by 보보


* 1) 예술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대중영화와는 다르니,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어떻게 다르게 감상해야 하나, 저도 고민 중입니다. 2) 물과 기름은 섞이지 못하는 법이죠. 마법을 부린다면 또 모르겠지만! 깊은 외로움과 희망도 잘 섞이지 않을 겁니다. 평범한 의식과 사유로는 말이죠. 지혜와 예술은 그 일을 해냅니다. 예술과 지혜가 삶의 마법인 셈입니다. 3) 9월말에 개봉한 영화라, 전국에서 세 극장(부산, 광주, 서울)에서만 상영 중입니다. 


1.

인생 영화를 보았다. <태풍이 지나가고>가 ‘올해의 영화’라면 <다가오는 것들>은 ‘인생 영화’가 될 것 같다. 잔잔한데, 강력하다. 괴로운데, 희망적이다. 분명히 잃었는데, 새로운 걸 발견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결론적 사건은 없는데, 이 영화를 본 것이 하나의 사건이었다. 엔딩 크레딧은 올라가는데, 눈물이 흘러 내렸다.

  

2.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은 없다. 그것은 죽음이니까! 살아 있다면 ‘많은 것’을 상실했을 뿐이다. 영화는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느끼는 이들의 절망과 좌절을 위무한다. ‘모든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잃었을 뿐이라는 말은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전달되지 못하는 바람에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영화에 서투른 충고는 없다. 부드럽고 아름답고 따뜻하게 삶의 진실을 건네는 영화다. 

 

3.

그리고 ‘남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것은 가족, 자유, 희망이다. 전혀 시시하지 않은 것들인데도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있노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다. 영화는 괜찮은 위로의 차원을 넘어선다. 부드러운 치유의 영역까지 나아간다. 고통은 삶의 일부다. 고통을 당하는 우리에겐 위로를 얻을 안식처가 필요하다. “고통의 상처에서 얻은 지혜만이 진정한 안식처”다. <다가오는 것들>은 그 안식처로 안내한다. 깨달음과 지혜가 곧 안식처다.


4.

베스트 장면은 수없이 많다. 나탈리(이자벨 위페르)가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자신의 상실과 새롭게 얻은 것에 대해 제자에게 말하는 장면("딸은 독립했고, 남편과 엄마도 떠났지"로 시작되는 말), 가족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다. 관계의 상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려는 그녀였지만, 이제 곧 헤어지게 될 남편의 별장에서 흥분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뒤를 따라 뛰면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분노가 맺힌 그녀의 걸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흔들리는 화면, 고뇌하는 나탈리!


5.

상실이라는 사건과 그로 인한 외로움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데도, 영화는 희망적이다. 이것이야말로 <다가오는 것들>이 이뤄낸 미학적 아름다움이다. "나 힘들어!"와 "내일을 희망해"라는 양극의 감정이 부딪칠 때 빚어지는 긴장감이 영화를 떠받든다. 이쪽으로 치우치면 신파가 되고, 저쪽으로 치우치면 순진해진다. 시계추처럼 오가면서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을 때에 아름다운 미학이 된다. <다가오는 것들>이 그렇다.


6.

영화는 다소 지적이다. 여주인공이 철학 선생이기에 그렇다. 첫 장면에서 가족은 샤토브리앙의 묘를 찾아가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상황마다 레비나스, 아도르노, 쇼펜하우어, 루소가 등장한다. 학교 장면에서는 알랭의 <행복론> 읽기가 과제로 주어진다. 그녀의 외로움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제자 역시 철학책을 써낸 인물로 지적 논쟁을 즐긴다. 개인적으로는 가슴에 남는 지적인 열망(말초적인 호기심과는 다른)이 남기는 영화였다.


7.

(나탈리가 엄마에게 받아 키우게 된) 고양이의 이름이 ‘판도라’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에 들어 있다. 불의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온갖 고통이 쏟아져 나왔지만, 희망만은 간직한 '판도라'의 상자! 영화의 내용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름이다. 영화 제목은 ‘다가오는 것들(Things to come)’이다. 영화 내용으로 제목을 짓자면 ‘떠나버린 것들’이어야 하지만, 영화는 상실을 치유하면서 시선을 돌린다. '다가오는 것들'에게로! (아, 이토록 아름다운 희망이라니!)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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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이병률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천지사방 마음 날리느라
봄날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이병률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p. 125, 문학동네


*
소망하여 만나자 했으면서도
만남 이후 겪을 격정적 슬픔이 두려운 그 날.
그런데도 만남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인연
집을 나서면서도 만나지 않길 바라는 슬픔.

바람과 절망을 뒤섞어 예술로 빚어낸 시.
예술이 불러온 소용돌이에 나는 울고 말았다.
지하철에서, 내 방에서,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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