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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11시 콘서트>를 아시는지요? 매월 둘째 목요일 오전 11시, 첼리스트 송영훈의 해설과 함께 진행되는 클래식 콘서트입니다.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명곡 위주의 선곡, 전문가의 해설, 그리고 착한 입장료 덕분에 인기가 높은 문화 공연입니다. 전석이 2만원으로 똑같으니 예매순으로 앞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3층만 1만 5천원이지요. 


<11시 콘서트>가 높은 인기를 끌자, 주말 버전이 탄생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토요 콘서트> 말입니다. 가격과 시간대, 행사 목적이 모두 같고 요일만 다릅니다. 해설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김대진 선생이 맡았습니다. 나는 두 개의 콘서트에 지난 해 부터 관심을 가졌었지요. 그러다가 이번 5월에 독서카페에서의 문화번개로 <토요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토요 콘서트>를 관람한 목적은 분명합니다. 클래식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과 주말 오전을 색다르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인들과 함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클래식 콘서트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참여했을 테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했지, 그 체험이 어떤 것이냐는 둘째 문제였습니다. 


폼 좀 잡아 보려는 목적도 있긴 했지요. 하지만 그리 중요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공연 초반 내내 나는 졸았으니까요. 잠을 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만큼, 세션 1의 45분 동안 쌔근쌔근 숨을 내쉬며 잤습니다. 생각해 보니, 문화 공연을 관람할 때면 나는 늘 초반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후반부에 몰입했던 것 같네요. 


뮤지컬 <모차르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역시도 세션 1은 졸음에 시간을 할애했고, 세계 4대 뮤지컬이라던 <미스 사이공>은 90퍼센트를 휴식에 투자했습니다. <맘마미아>, <명성황후>, <에이지 오브 락>처럼 졸지 않고 보았던 뮤지컬도 있긴 하나, 분명 나는 자주 졸음에 빠집니다. 비싼 돈을 내고 라이브 뮤직을 들으며 빠져드는 고품격 단잠을 즐긴 셈입니다. 


손꼽아 보니, 나도 문화 생활을 꽤나 즐겼네요. <민들레 바람되어>, <수상한 흥신소>, <마술가게> 등의 연극을 보기도 했으니까요. 최근 한 해가 아니라, 제 생애 전체를 뒤적여서 끄집어낸 경력이긴 하지만 말이죠. 다행하게도 연극을 볼 때에는 졸지 않는 편입니다. 소극장엔 등받이가 없으니 기댈 곳이 마땅치 않아 졸 수가 없긴 하지요. 문득 의문이 듭니다. 


(가끔씩이긴 하지만) 나는 왜 문화 공연을 관람하는가? 


폼 나니까. 정말 폼이 안 나는 이유지만 사실입니다. 클래식 음악회를 가는 이유는 내 삶에 어떠한 품격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클래식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도 있지만, 고품격 문화를 향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보다 큰 이유입니다. 향유하는 법을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사실입니다.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서는 내 삶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19세기 영국의 지성, 매튜 아놀드는 예술의 효용을 '삶의 비평'에서 찾았습니다. 예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인생살이를 성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연극이나 영화의 스토리는 내 삶의 비평 도구로서 충분한 역할을 해 줍니다. 배움을 얻고 어떤 주제나 인생이나 누군가에 생각하게 되니까요.


뮤지컬의 매력은 거대한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실시간 연기를 통해 예술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우라는 (수많은 곳에서 동시 상영될 수 있는) 영화와 같은 복제 예술품에서는 사라져 버리니까요. 연극도 실시간의 예술이지만 뮤지컬과는 스케일이 다르구요. 뮤지컬에서도 얻는 게 있지만, 투자 대비 효과 면에서는 연극이나 영화가 더 좋습니다. 

 

내가 문화 예술을 관람하는 목적이 정리되었네요. 영화와 연극의 스토리를 통해 내 삶을 스스로 비평하는 것. 뮤지컬을 통해 예술 작품의 아우라를 체험하는 것. 클래식 공연을 통해 폼 한 번 잡아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종종 찾는 대중가수들의 공연은 내 삶에 흥을 더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나는 클래식 공연보다 가요 콘서트가 더 좋습니다. 

 

세계 최고의 베토벤 전문가의 연주회와 소녀시대의 콘서트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두번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소녀시대를 선택합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신이 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졸지는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언젠가 베토벤 연주회를 소녀시대처럼 즐길 날이 올까요? 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예술 작품이 음악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도 클래식을 들으면 정신이 고양되고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빈도가 가요나 재즈를 들으며 흥겨워지거나 삶의 열정을 회복하는 횟수에 비하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선은 내 삶을 비평하거나 즐겁게 해 주는 예술에 초점을 맞추렵니다. 물론 클래식을 통해서 삶을 비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 둔 채로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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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누구나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범하며 삽니다. 그러니 자신의 불찰을 곱씹으며 정서적 자살을 시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다른 이가 힘겨워하거나 마음의 불편함을 느낀다면 괴로운 일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후회도 하겠지요.

 

지난 주에 제가 그랬습니다. 6개월 동안 진행되는 독서세미나의 첫수업 날이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읽고서 토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은 세 번째 진행하는 수업으로, 앞선 두 번의 수업 모두 참가자 분들이 무척 흡족해 하셨지요.

 

하지만, 이날의 참가자 한 분은 실망을 느끼셨습니다. 내가 일방적인 해석을 강요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메시지의 잉여'가 아니라 '해석의 잉여'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학습목표 중 하나인데, 그것과는 정반대의 피드백을 들었던 것입니다.

 

수업 중에 제가 던진 멘트에 그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닫히면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란 무척 힘든 일이니까요. 그에게 죄송할 뿐입니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불찰이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이튿날, 나는 사과의 메일을 전했습니다. 다행하게도 그는 사과를 기쁘게 받아주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고, 그날의 내 모습에 아쉬움이 듭니다. 이때 기억해야 한 것은 실수와 잘못을 범하는 일은 흔한 인간지사라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비극적인 일은 흔한 일이니,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슬픔을 기쁨과 함께 저울에 달아보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슬픔이나 기쁨 어느 한 가지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니 슬플 때에도 기쁨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라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불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덮어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일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겠지요. 후회와 미안함의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 그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힘들고 진지하게 산다고. 혹은 자신에게 가혹한 것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친 불찰이라면 얼마든지 스스로에게 가혹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죠.

 

나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가혹함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불찰을 향한 시선일 뿐입니다. 엄격한 자기 직면의 태도와 함께 푸근한 자족의 태도도 가지고 있습니다. 잘 해낸 대목을 가려내어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태도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엄격한 시선과 푸근한 시선이 모두 필요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바라보는 정직한 시선이 없으면, 어떤 일의 공적을 자신에게만 돌리기 십상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하늘의 도움을 받은 과정들은 잊고서 스스로를 낫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나는 두 가지 시선을 모두 가지려 노력하지만 기본적으로 엄격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에 더 노력하고 싶습니다. 스스로와 타협하는 것이 제 특기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조금 나아진 듯 하나, 노력을 멈추고 싶진 않네요. 해마다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싶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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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내 안에는 두 가지 욕망이 있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내 삶에 '자유와 여유'를 조각하고 싶은 욕망. 이것은 서로 다른 욕망이다. 욕망의 모양과 성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배타적이다. 하나의 추구가 다른 하나를 방해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생산적인 삶과 자유로운 삶을 모두 구현하고 싶다. 다시 말해, 성공을 거머쥐고 싶고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다행하게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탁월하게 해 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안타까운 일은 세상이 나의 재능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욕심과 조바심이 탄생한다. 어서 빨리 무언가를 해내어 인정받아야 한다는 서두름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노트북 앞으로 몰아간다. 열심히 일을 해야지! 그래야 실력도 쌓여가고 돈도 벌 테니까, 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치열하게 산다. 아니 매일을 그렇게 산다. 욕심과 조바심의 긍정적인 효과다. 나의 딜레마는, 나의 성공 욕구를 스스로 제어하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는 하루'가 일주일 내내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내가 꿈꾸는 낭만적인 삶에서 점점 멀어진다.

 

성공이 나의 행복을 전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일에 몰입하며 무언가를 성취할 때엔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성공을 향한 욕망에 고삐를 채우지 못하면 종종 내 삶을 일로만 채우게 된다. 그 때 나는 불만과 피로감이 쌓여 행복하지 않다. 기쁨이든 불만이든 감정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들쑥날쑥 하긴 해도 감정은 솔직하다. 그러니 행복에 관한 지혜를 찾으려면 세상을 떠도는 엉터리 관념을 믿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좋다.

 

행복과 성공이 서로 상관없다는 말은 엉터리다. 성공의 측정 기준으로 돈, 명예, 지위 등을 들 수 있겠지만 돈을 대표적인 기준으로 둔다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일정 수준까지 행복과 성공은 연관이 많다고. 다니엘 카네만 교수의 행복 연구 결과를 보자. 연봉이 9만 달러 이상인 사람( 1)연봉이 2만 달러 미만인 사람( 2 3백만 원)에 비해 두 배 이상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돈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봉 5만 달러를 버는 사람과 9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 간에 행복의 차이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성공이 행복을 보장할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다. 요컨대, 성공은 어느 수준까지는 행복을 돕는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성공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내가 일을 할 때 느꼈던 기쁨과 지나치게 많은 일을 했을 때의 불만과 일치한다. 진솔하게 감정을 살펴보라고 한 까닭이다.

 

행복과 성공을 모두 만끽하고 싶다면, 행복과 성공으로 이르는 길이 서로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성공하려면 한 곳을 향해 힘차게 올라가야 한다. 오직 앞만 보며 부지런히 힘을 내야 한다. 객관적인 기준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공에 이르면 달콤한 결실이 주어진다. 세상의 일부로부터 박수갈채와 스포트라이트도 받는다. 힘써 추구할 만한 멋진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행복이 없을 수도 있다. 성공만 추구해서는 내가 행복의 3대 요소라고 부르는 건강, 관계, 의미를 얻을 수 없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 나오는 호랑 애벌레 이야기는 행복에 관한 한 성공은 허풍쟁이임을 보여준다.

 

호랑 애벌레는 열심히 기둥을 올랐다. 이제 곧 기둥의 정상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여기엔 아무것도 없잖아.” 다른 목소리가 꾸짖듯 대답했다. “조용히 해, 바보야! 밑에 있는 놈들이 다 듣겠어. 우린 지금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에 와 있단 말이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다른 목소리도 들렸다. “저기 좀 봐. 기둥이 또 있어. 그리고 저기도…. 사방이 온통 기둥이야!” 호랑 애벌레는 깨닫는다. 아래에서 우러러보았던 정상은 화려할 뿐 행복을 주는 곳은 아님을. 그리고 자신이 올랐던 기둥이 유일한 기둥도 아님을. 수백만 애벌레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꼭대기까지 오르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꼭대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묘사한 점은 아쉽지만, 이야기는 행복에 관한 통찰을 준다. 애벌레들은 수천 개의 기둥 중의 하나에 올랐을 뿐이고, 아마도 어떤 애벌레들은 다른 기둥을 선택했어야 한다고 후회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기둥에 오른다고 해서 후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다른 사람들을 따른 것이거나 남들이 좋다고 추천한 기둥이라면 말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기둥을 선택하여 올라야만 후회가 줄어들 것이다. 결국 자신의 직관과 감정에 따라 행복의 기둥을 선정해야 한다.

 

행복으로 이르는 길은 성공에의 여정과는 다르다. 성공이 속도와 집중을 요구한다면 행복은 균형과 여유를 요구한다. 삶의 다양한 역할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쉼과 교제를 위해 여유를 회복해야 한다. 행복을 연구한 학자들은, 퇴근 후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친구들과 식사하기, 성관계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이 행복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일상을 음미하고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작은 봉사를 행하는 것 역시 행복을 부른다. 이러한 일들은 속도를 늦출 때, 더욱 잘 해낼 수 있는 일들이다. 성공과의 긴장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행복을 꿈꾸지만, 이 꿈을 방해하는 것은 나의 또 다른 꿈이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꿈 말이다. 어서 책을 써서 나의 학생들에게 모델이 되고 싶고, 나도 글을 잘 쓴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들이 나의 자유와 여유를 앗아간다. 행복의 장애물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행복에 누릴 수 있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휘두르는 칼은 애꿎은 수고와 상처를 남길 뿐이다. 물론 행복과 성공을 방해하는 외부 훼방꾼도 많다. 하지만, 나는 먼저 내부의 적을 다스린 후에 외부 세계로 눈을 돌리고 싶다. 불평하든 개선하든, 그것은 그때의 일이다.

 

성공과 행복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면, 선택이 아니라 동시 추격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쫓지 말라는 속담은 한 마리만 잡아도 배부른 경우에 적용해야 할 말이다. 성공과 행복의 조화를 이룬다면, 많이 가질수록 좋다.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 일상적 행복을 포기한 채 어떤 일에 헌신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피해의식을 갖거나 탈진할 수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일상의 행복을 밀쳐 둔 헌신'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나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하나는 탁월한 성과를 올리는 비즈니스맨의 이미지다. 이와 관련하여 생산성, 효과성, 탁월한 성과, 모던한 감각, 현명한 성실 등이 떠오르기를. 이를 위해 전문성을 연마하고 내 일에 몰입하리라. 다른 하나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이미지다. 여유, 자유, 낭만, 행복이 내 삶에 가득하기를.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즈음은 가까운 곳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 느긋하게 풍류를 즐기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커피와 독서를 즐길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라마크리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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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참석 여부를 묻는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 얼른 회신하는 것은 행사 진행자를 돕는 일입니다. 참여 인원이 대략적으로 정해져야 장소 선정을 비롯한 행사 진행에 필요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회신을 미루다가 결국 때늦게 회신하거나 건너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회신을 미루는 걸까요?


나는 공동체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맥컬로우의 말을 들어 보시지요. "우리는 자신의 계획이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더 흥미로운 행사에 초대받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미리 참석을 약속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할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어려움을 준다."


나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과 자기 행복의 균형을 추구하지 않는 이기심은 아쉽습니다. 자신의 행복 가능성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어떤 공동체에도 헌신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이기심에 치우친 개인주의로 인해 사람들과의 친밀함을 놓칠 가능성도 함께 키워 갑니다.


물론, 회신이 늦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 행복의 가능성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생각을 할 때, 다른 사람도 자기 머릿 속의 그 생각을 알아줄 거라 여기는 바람에 회신하는 것을 생각치 못하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보다) 자기 생각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입니다. 


마음 속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도 무시할 순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 속의 생각을 잘 표현하여 오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입니다. 당신이 만약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시다면,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실천할 수 있는 가치란 걸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더 테레사와 같은 인격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타인을 배려하는 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조언입니다. 자기 실현을 위해 우리는 시간과 돈을 가치 있게 활용하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시간과 돈 그리고 자유를 나의 것처럼 존중하면 됩니다. 일상 속에서의 배려를 꾸준히 실천해 간다면 우리는 좀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참여여부를 묻는 전체메일이나 문자메시지엔 재빠르게 회신하기! 오늘부터 이 한 가지의 노력을 실천하는 것은 어떠세요? 일정을 미리 정해두려니 더 멋진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 아쉬움과 행복의 가능성을 우리들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인생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는 더욱 선해질 가능성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한껏 발현하는 방법은 작은 배려와 존중을 꾸준히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인격을 갖춘 사람을 꿈꾼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일을 행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실천하면 됩니다. 결국 일상에서의 실천이 없는 생각만으로는 꿈의 실현도, 타인을 위한 배려도 공염불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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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서른 셋 그녀와 나는, 친구 같은 사이다. 나이야 내가 조금 더 많지만, 오랜 시간 속마음을 나누고 허울 없이 지내다 보니 만나면 무척이나 편안하다. 그녀는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와의 관계를 두고 고민 중이다. 처음에는 호감을 갖고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단점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더 나은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뺏기고 있다.

 

그녀와 난 닮은 구석이 있다. 연애에 관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닮았다. 결혼을 로망으로만 생각하는 환상과 끊임없이 더 나은 파트너를 찾으려는 욕심이 그렇다.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마음속에 서현과 결혼하기를 꿈꾸는 마음이 있다"고. 여전히 마음속의 공주님을 상상하고 있는 마음인데, 그녀는 바로 이해하고 맞장구를 쳤다. "나도 그래요."

 

나처럼 환상과 욕심이 결합되어 나의 현실은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큰 실수를 저지른다. 결혼이란, 인생의 선물처럼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심하면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마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포함한 인간관계는 당연한 선물이 아니라, 배려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관계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벤트처럼 일회성의 순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습관과 태도로 굳혀질 정도의 평생에 걸친 노력이어야 한다. 고통이나 부담이 생길 때만 노력하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노력을 중단하는 식으로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관계'는 평생 노력할 만한 가치다. 좋은 관계는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선사한다.

 

그녀도 연애 초반엔 노력했다. 지금은 환상과 욕심이 생겨 노력을 일시중지한 상태다. 나는 그녀가 현명한 결정을 하리라 믿는다. 그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할 것이다. 다만, 좋은 인간관계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녀와 난 의무와 책임보다는 보상과 특권에 관심이 가지곤 하니까.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너그럽고, 쉬이 상처받지 않은 건강한 자존감은 그녀의 장점이다. 반면 앞서 말한 환상과 욕심이 그녀의 연약함이다. 이리 살아도 한 평생, 저리 살아도 한 평생이고, 나의 생각이 정답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녀에게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권하는 까닭은 혹시 나처럼 후회할까봐서다. 그녀의 행복을 생각하다 보니 잔소리를 하게 된다.

 

나는 환상과 욕심으로 30대의 4년을 진중한 연애 없이 보냈다. 결혼 대상자와만 교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는 바람에(이 점에서는 그녀와 나는 다르리라), 연애를 시작조차 못한 것이다. 20대에는 나와 꽤 어울리는 연인과도 결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적 파트너에 대한 나의 환상 때문이었다. 내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 중 하나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결혼을 현실과 로망의 조화로 받아들였고, 상대방의 조건을 좋아하는 것과 사랑은 별개라는 사실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고, 평생 그를 사랑하겠다는 의지이고,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노력이라는 나름의 사랑관도 생겼다. 문득, 이십여 년 전 좋아했던 노래가 가슴을 친다.

 

람들은 가끔 착각하지. 서로의 조건들을 좋아하고선 이게 사랑일 거라고.

때로는 자신을 숨기며 드러내는 모습을, 사랑을 위한 미덕이라 여기지.

자신의 거짓된 욕구를 위한 이별에는, 참된 사랑이란 미화를 하지.

그래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야.

 

이승환 3집 앨범에 실린 <사랑에 관한 충고> 라는 노래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만 필요한 것인데, 그녀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닐 것이다. 비슷한 사람끼리는 쉬이 알아보는 법이니까.) 좋은 것 중에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노력 없이는 주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사랑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사랑은 힘써 노력할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사랑이 넘치는 인생은 행복을 보장하니까.

나도 그녀도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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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오늘도 18분 동안 낮잠을 잤다. 낮잠에 익숙해지면서부터 난 단 18분의 시간에도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잠드는 시간 2~3분을 제외하면 15분 정도의 오침을 취하는 것이다. 15분 낮잠은 수개월 동안 지켜가고 있는 나의 건강 습관이다. 낮잠을 자면, 학습 능력이 좋아지고 심장 질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낮잠을 잘 자야 한다. 

 

낮잠은 15분 정도가 좋다고 한다. 30분을 넘게 자면 무기력해지거나 밤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자는 것이 좋다. 나는 안대를 하고 한다. 눈이 어두워야 잠이 쉽게 들기 때문이고 눈 피로 회복에도 좋기 때문이다. 수면에 들 무렵에는 청각이 예민해지기에 듣던 음악의 볼륨도 최대로 낮춘다. 낮잠에서 깨는 순간도 중요하다. 나는 눈을 뜨고서 스트레칭을 하며 마음 속의 화이팅을 외치며 일어난다.

 

2.

18분 후 울리는 알람 소리에 잠이 깨면서 생각했다. '18분으로도 이런 숙면을 취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효과다. 여느 때 같으면, 일어나서 제2의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오늘은 다시 잠을 청했다. 주말이기도 하고 졸리움에 그냥 나를 내맡기고 싶었다. 그렇게 잠을 더 청했다. 때로는 휴식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오늘 나는 3시간의 낮잠을 잤다.

 

3.

눈을 뜨니 4시 55분이었다. 다행이다. 프로야구를 시작하기 직전에 깼으니. 다만, 홀로 야구장에 가려던 계획은 변경해야 했다. 집에서 TV로 관람하는 것으로. 나는 마치 야구장에 있듯이 경기를 관람했다. 먹을 것을 즐겨가며 경기에 집중했다. 1:2로 내가 응원하던 삼성 라이온즈 팀이 졌다.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쳐주어 고마운 경기였다.

 

아쉬운 점도 있다. 경기 초반 박용택의 도루에 대한 심판 판정은 오심이었다. 명백한 아웃이었지만 심판은 세이프 판정을 내렸고, 박용택은 득점 주자가 되었다. 석연찮은 판정은 9회초에도 있었다. 박석민의 3루 쇄도는 세이프에 가까웠다. 하지만 심판은 아웃 판정을 내렸고, 게임은 종료됐다. 세이프였다면 경기는 동점이 되는 상황이었다. 아쉽다.

 

마해영 해설위원은 해설 도중 이렇게 말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즘 경기마다 좋은 장면을 잡기 위해 카메라가 많지만, 오심을 지나치게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인상적인 말이었다. 인생살이에서도 억울한 일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인생의 일부다. 지나치게 연연해하면 현재를 놓치고 다가올 일을 망칠 것이다.

 

4.

'오심'으로 인해 삶의 교훈 하나를 얻었지만 열 받긴 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수영장으로 향했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는 운동 만한 것도 없다. 아쉽거나 화가 날 때, 몸을 움직여 땀을 내는 것은 도움이 된다. 오늘은 25m 풀장을 14번이나 왕복으로 오갔다. 14번 왕복은 개인 신기록이다. 별로 힘들지도 않았는데, 열흘 동안 운동을 했더니 체력이 늘었나 보다.

 

수영을 다녀오니, 사랑하는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내와 함께 롯데월드에 놀러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잠깐 볼 수 있겠냐는 것이다.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반가웠다. 우리 셋은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벤치에 앉아 물, 커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여유로운 시간이었고, 편안한 만남이었다.

 

5.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아몬드와 쥐포를 샀다. 집에 와서는 쥐포를 안주 삼아 와인 두 잔을 마셨다. 치즈와 유제품 대신 쥐포를 먹어 보았는데 궁합이 나쁘진 않았다. 늦은 밤, 홀로 마시는 와인, 기분이 좋다. 버스커버스커와 이승철의 음악도 나를 취하게 한다. 기분 좋은 알딸딸함으로 이 글을 쓴다. 글을 쓰던 도중, 잠시 이를 닦았다. 마침표를 찍자마자 잠자리에 들기 위한 예비 동작으로.

 

오전 2시간 동안 일한 것을 제외하면, 여유롭게 보낸 하루다. 인터넷 서핑을 하고, 과일, 야채 그리고 견과류로 만든 샐러드로 여유롭게 식사를 즐겼다. 마음껏 낮잠에 빠져들었고, 프로야구 경기에 몰입하며 긴장감을 누렸다. 몸을 움직여 물살을 가르기도 했고 친한 후배와도 시간을 보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 중 하나는, 일주일 중 하루를 낭만과 우정 그리고 여유로 채우는 것이리라. 그리고 편안히 잠자리에 드는 것, 행복이다. 스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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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래이. 내는 겁쟁이 아이가. 당신 없인 못살것 같애. 그러니까 내 손 꼭 잡아 알았째? 우리 다음 생에 또 만나재이~"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입니다. 장군봉(송재호 분) 할아버지는 미닫이 방문을 닫고 테이프로 방문 사이 사이의 틈을 막습니다. 그리고 이미 잠들어 있는 아내(김수미 분) 곁에 곱게 눕습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그렇게 노부부는 한날 한시에 함께 세상을 떠납니다.

 

 

"여보 봐봐.. 당신이 배아파서 낳은 자식들이야. 참 많제?" (자식들 앉혀놓고 아내에게)

 

할아버지는 며칠 전 자식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마쳐 두었지요. 손자들까지 모두 불러놓고서 말이죠. 영문을 모르는 자식들의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나도 다를 바 없겠지요. 장군봉 할아버지의 혼잣말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우린 다시 부부가 됐다. 한때 '가족'이었는데 이제 '부부'가 됐다." 둘이 된 노부부는 영원한 둘로 남습니다. 한날 한시에 같은 여행을 떠났으니까요.

 

참 많이 울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아도 바로 그 장면에서 한없이 울 것 같네요. 부부의 사랑 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지지만,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향한 사랑까지 보여 줍니다. 친구 김만석에게 편지를 남겼는데, 자신들의 죽음을 사고사로 알려 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곤란한 일을 남기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말이죠.

 

세상과 자식들은 모릅니다. 부모의 사랑을. 사람들은 호상이라 말합니다. 그때, 친구 김만석 할아버지가 호통을 칩니다. "호상! 호상! 하지 말어 이것들아! 뭐가 잘 죽었다는 거야? 노인네가 오래살다 죽으면 호상이야!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야 한다 이거야! 니미, 호상은 무슨 호상! 군봉아, 사람들이 너보고 호상이란다 호상. 너보고 잘 죽었단다. 썩을 놈들!"

 

젊어서야 죽고 싶어도 자식들 때문에 죽지 못하는 부모님들입니다. 자식도 손 안에 자식이라고, 자녀들이 다 크고 나면 사정은 달라지나 봅니다. 자식들 걱정보다 아내를 더욱 걱정하나 봅니다. 어느 젊은 날 둘이 되었다가 셋, 넷이 되고 노년이 되면 다시 둘이 되는 인생. 그 즈음이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던 부부야말로 가장 귀한 동반자가 되나 봅니다.

 

"기나긴 세월 아내하고 나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혼자 남는게 두려웠다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가기로 했네. 긴 세월 우리는 늘 함께였으니까." (친구 만석에게 남긴 편지 中)

 

수십 년을 함께 해로하는 것, 큰 행복입니다. 그런 인생의 동반자와 헤어진다는 것,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입니다. 장군봉 할아버지가 겁쟁이인 것은 맞을지도 모릅니다. 아내 없는 삶을 감당할 용기도, 살아갈 희망도 갖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이해되는 겁쟁이입니다. 아마 나도, 장군봉 할아버지의 상황에 처한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만 같아서요.

 

그때 그 선택을 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현재의 삶에 집중해야겠지요. 나는 노년이 아닌 젊은 날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노부부의 사랑에 감동했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도 상기해야겠습니다. 나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으니, 외할머니가 곧 나의 어머니입니다. 어버이날에 고향으로 내려가 뵙고 온 것, 힘들게 낸 시간이었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더욱 자주 시간을 내야겠습니다. 부모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이 참 얄밉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다시 뵙는 사람이 됐다." (다 큰 자식들을 생각하며, 장군봉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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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운동을 하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나는 매일 2.5km를 뛰거나 수영으로 500m의 물살을 갈랐습니다. 사실 '날마다' 하는 건 아닙니다. 수영이나 조깅을 한 날은 7일 중 5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겐 의미 있는 한 주였습니다. 일주일에 5회 운동은 군 전역 후에는 처음 있는 일일 테니까요.

 

먹거리를 조절하고 꾸준한 운동을 실천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로만 알 뿐, 실천하지 않습니다. 나도 실천하지 않는 이들의 숫자에 한 명을 더해 왔습니다. 하지만, 5월 1일부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의 숫자가 한 명 줄었습니다. 2012년 5월 1일부터 '건강몸짱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거든요.

 

식생활 습관 개선하기, 매일 운동하기, 책상 앞에서 일하는 자세 교정하기, 쉼가 여가 즐기기 등이 주요 실천사항입니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식생활 습관의 교정입니다. 과일과 야채 그리고 단백질을 충분히 먹는 것을 기본으로 좋은 탄수화물과 식물성 지방을 적당히 먹는 것, 마지막으로 영양소가 낮은 고칼로리 음식을 최대한 피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식생활 습관에 이어 무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조화롭게 꾸준히 이어가려 합니다.

 

아직은 효과를 따져볼 시기가 아닙니다. 그저 하루하루 과정을 즐기며 꾸준히 실천을 이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시작할 때의 내 몸은 어떠한지를 기억해 둘 필요는 있겠지요.  만 나이 서른 넷이 되는 해, 급격이 늘어난 뱃살로 고민하던 중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12년 5월의 내 몸무게는 72.5kg, 키는 182cm입니다.

 

이런 아마추어적인 관찰로는 몸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종합건강검진을 예약했습니다. KBS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을 시청하며 종합건강검진의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배워 두었습니다. 나는 2013년 5월에 다시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것입니다. 그 때, 나의 전반적인 건강지수가 달라져 있도록 일년 동안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야겠지요.

 

우선, 이 프로젝트는 일년짜리 입니다. 우선이라고 한 것은 일년으로 그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년짜리'라고 한 것은 중간목표가 있어야 달려갈 초점이 분명해져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고요. 물론, 보다 단기적이고 자극적인 목표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2013년 여름에는 '십오년 만에 다시 쫄티 입기'와 같은.

 

사실, 처음에는 한달짜리라고 생각하며 시작했습니다. 빨리 무언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조바심 때문이기도 하고, 일시적인 프로젝트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관리는 단기간의 열심을 발휘할 이벤트가 아니라, 영원한 생활습관으로 관리할 자기경영의 필수교과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장기적 시각으로, 버려야 할 습관과 태도를 개선하고 유지해가야 할 것들을 계속하여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자기경영의 정수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 의미있는 성취,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하면서도 신체적 건강에 너무 소홀했습니다. 일주일에 2~3회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할 정도의 바쁨은 우리의 건강을 파괴하는 생활 패턴입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그런 정도의 바쁨은 직장 일과 자신의 나태함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카톡으로 채팅을 하고, TV를 시청하고, 무의미하게 인터넷 서핑을 하는 시간을 합칠 때, 매일 한 시간 이상이 되는 분들이라면 말이죠. 저 역시 더 이상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밀쳐두지 않기로 단호하게 마음 먹었습니다.

 

이 글을 쓴 까닭은 분명합니다. 글을 읽으신 분들도 운동을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정말 운동할 시간을 마련하기 힘들다면, TV를 볼 때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가 아니라 서서 시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저처럼 책상에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으신 분이라면 최대한 많이 몸을 움직이자는 말입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는 것도 좋겠지요.

 

누군가가 옆에서 재잘대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각하고 깨달아야 우리는 변화를 시도한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습니다. 결국 그 '때'가 와야겠지요. 하지만, 그 때란 것은 대부분은 충격과 함께 찾아옵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오거나 지인들의 질병 소식 등과 같이 말이죠. 건강관리, 오늘이 아니더라도 너무 늦게 시작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5월의 어느 날 새벽 5시 30분, 석촌호수를 거닐고 체조를 하시는 분들의 95%는 노인들이었습니다. 젊은 날에서부터 저 어르신들처럼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러지 않는 대부분의 젊은이를 나무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건강을 잃어가며 벌어들인 돈을 다시 건강을 되찾는 일에 쓴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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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가들은 자기철학을 가져야 한다. (사실, 누구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잠시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섬기는 리더라면 필히 철학을 가져야 한다.) 철학공부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의 철학은, 플라톤과 헤겔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 삶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힘을 말하니까. 학문 체계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삶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의 철학 말이다.

 

1인 기업가들이 자기철학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일상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일이 주어진다. 하지만 아직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한 1인기업가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하루 중 얼마의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할 것인지, 누구랑 점심을 먹을 것인지를 일일이 선택해야 한다. 점심 메뉴 선택은 그나마 쉽다. 1인기업가들이 맞게 되는 선택의 수준은 난이도가 높다.

 

나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내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나의 재능은 무엇인가? 지금은 어느 분야의 어떤 일에서 경력을 쌓아야 하나?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 어떻게 세상에 나를 알릴 것인가? 답변하기도, 선택하기도 어려운 하지만 중요한 질문들이다. 1인 기업가들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기철학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단박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재촉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약간의 답답함이나 의문과 같은 생각을 품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깨달음이든, 배움에 이르는 길은 그런 모호한 과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호함, 답답함을 견디면서 질문을 내려놓지 않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기 삶의 주도권을 확보할 것이다.

 

앞선 질문들로 끙끙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철학은 그런 과정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다. 자기철학을 가져야 우리가 꿈꾸는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선택과 자유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잠시, 역사 이야기를 해 보자.

 

당신이 만약 중세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자연스럽게 성공의 정의와 믿어야 할 신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되고, 종교적인 삶이야말로 최고의 삶이 될 테니까. 종교를 가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선택하느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선택의 괴로움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 자유의 양도 줄었다.

 

신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근대에는 '이성'이 대체했다. 사람들은 신학 대신 이성을 선택하여 르네상스와 계몽의 시대를 열었다. 이성을 통해 근대 과학의 발달을 이뤄냈다. 근대인들은 신과 이성 중에서 선택해야 했지만, 그나마 그들은 "진리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현대(19세기 중반 이후)에 들어서면서 진리에 대한 확신도 깨졌다. 사람들은 이제 진리의 절대성에 회의한다. 진리에 대한 확신을 믿는 사조를 일컬어 '본질주의'라 한다. 중세와 근대는 본질주의였지만, 현대는 본질주의마저 무너진 것이다. 이젠 진리를 주장하면 교양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객관적인 진리 대신 상대주의를 믿고 사는 사람들, 바로 우리 현대인이다.

 

상대주의란, 내가 옳고 너도 옳을 수 있다는 주의다. 우리의 세계관은 진리의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신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어느 종교를 믿을지 선택해야 한다. 그야말로 선택 잉여의 시대다. 여러분께 이런 골치 아픈 문제를 숙고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현대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이들이 1인기업가다. 그야말로 선택의 연속이다. 삶의 가치, 업무의 양, 일하는 시간, 만날 사람, 파트너와 고객, 마케팅 툴과 방식을 모두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많은 옵션은 양면성을 의미한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선택해야 하는 스트레스.

 

선택의 폭이 늘어나는 것이 반드시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철학이 없으면, 선택의 순간에 결정하기가 쉽지 않고, 그렇게 되면 다양한 옵션은 괴로움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변하려는 노력 없이는 1인 기업가의 자유를 만끽하기란 힘들다.

 

옵션이 많아진다는 것은 자유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러니 자유를 원한다면 선택의 순간에 꺼내들 자기철학이 필요하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사람일지라도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불안을 느낀다. 자기철학으로 자유를 적절히 규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나는 선택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점심 메뉴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원하지 않는 유형의 강연 제안은 누군가가 알아서 중간에서 끊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서로 다른 스타일의 구두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어울리는지는 매장 직원이 알려 주면 좋겠다고.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일해야 하는지는 신이 알려 주면 좋겠다고.

 

선택의 스트레스가 싫다고 하여 모든 선택의 주도권을 외부에 넘겨버리면 자유를 잃는 것이다.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선택권의 양적, 질적 주도권을 키워가야 한다. 그 비결이 자기철학을 갖는 것이다. 내가 결정해야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자기철학이 정립될수록 선택의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자유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조직에서 9시간 내외를 바치다가,

하루 24시간 전체를 경영하게 된다면

선택과 철학의 문제는 반드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1인기업가를 꿈꾼다면 지금부터 자기철학을 세우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기 바란다. 앞서 몇 개의 질문을 제시했지만, 스스로에게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다. 답을 구하기 어려운 질문일수록 당신께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장회익 교수의 말에서 찾아보시기를.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선 물음을 던지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이때의 물음이라는 것은 꼭 명시적인 질문의 형태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서 답답함을 느끼거나 찜찜함을 느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이미 어떤 모순이나 의문, 갈증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마음의 상태로, 이러한 해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깨달음이라는 단어 대신 자기철학을 넣어 다시 읽어보면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할 것이다. 골치 아프다면 우선, 성공에 대한 정의부터 스스로 내려보면 어떠신가? 당신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다음의 질문을 화두로 삼아 보시길. 당신이 고객은 누구인가? 그들에게 어떤 공헌을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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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이야기하는 남자>라는 아이폰 앱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매주 두 편의 글로 좋은 책을 소개하는 어플리케이션입니다. 책을 선정한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쉽거나 재미있을 책 그리고 유익이 가득한 책. 15년 동안 독서하면서 내게 도움과 울림을 주었던 책을 골랐습니다. 무엇보다 탁월한 이류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즐겁게 작업했답니다.

 

이류교사의 역할은 명저와 독자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훌륭한 지성을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독자에게 적절한 지성을 소개하려면 독자를 알고 또한 책을 알아야겠지요. 나의 지적 생산품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내게 책임이란, 좋은 책을 소개하기 위한 노력, 독자들의 피드백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www.zorbandemian.com 앱의 홈페이지 주소입니다. 아래 이미지로도 어떠한 앱인지 대강 알 수 있을 테고, 좀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될 겁니다. 구입도 좋지만, 홈페이지 한 번 들르셔서 요즘 제가 뭐하고 사는지 구경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일 하나씩 저지르면서 지내시기를 슬쩍 권해 봅니다. ^^

 

- <책을 이야기하는 남자>는 아이폰용 유료 어플리케이션(1.99$)입니다.

- 본 앱은 두 명의 필자가 매주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나의 필명은 '조르바'입니다.

- 독자 분들과의 소통의 문(트위터)을 열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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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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