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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명확히 파악하세요.
아마도 '명확히'라는 혹은 '파악'이라는 단어에
말문이 막혀 버리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 분들은 다음의 질문으로 바꾸어 생각하세요.

지금 당신의 마음이 끌리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이런 크고 작은 끌림에 반응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점점 더 명확히 알기 위해서
일단 도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의 질문 중 여러분이 대답하기 쉬운 것을 두고 생각하세요.
답변이 떠올랐다면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시도들을 해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관련 책을 찾고, 도움을 줄 만한 사람에게 질문하세요.
목표 달성 방법을 위한 지식과 노하우를 찾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세요.
노력한다는 것은 매일 한다는 것이고 집중한다는 것
입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집중의 힘'입니다. 매일 매일 당신의 목표에 집중하세요.
매일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집중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목표 달성이 늦어집니다.

중요한 목표에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집중하는 능력을 가지세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능력을 갖게 되면, 행복과 성공을 동시에 잡으실 겁니다.
자아 실현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시작하신 분들께 나폴레옹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맺습니다.

"전투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전투력을 집중시켜라.
그 어떤 것에도 힘을 분산시키지 마라." - 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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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삶을 이해하는 명상 (1)

오고 가는 이들에 대하여.

삶을 이해하고 싶다면
'오고 가는' 것에 대하여 사색해야 한다.

1978년 2월 15일, 나는 지구별에 왔다.
삶은 여행이니, 나는 '지구별 여행자'인 셈이다.

여행을 하면, 호스텔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국적과 나라가 다르지만, 우리는 하루짜리 친구가 된다.
다음 날이면, 우리는 각자의 길로 간다.

삶을 살면서도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들,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
우리는 함께 하는 동안은 즐겁게 어울렸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들의 삶의 지평이 넓어졌다.
사는 집의 평수도 함께 넓어지면 좋으련만 모두들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산다. 그리고 자신만의 고민을 지니고 산다.

삶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사는 곳도 흩어졌다.
만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친해도 자주 못 보는 아쉬움.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이들도 많아진다. 살아서는 다시 못 보는 그리움.

여행친구와 만나고 헤어지듯
우리는 삶의 친구들과도 만나고 헤어진다.
다른 것은 삶의 친구들과 조금 길게 만난다는 것.

이것을 허무하다고 생각해서는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나는 허무가 아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生)이 고맙고, 벗이 고맙다. 내 삶을 선사했고, 기쁨을 안겨다 주었으니.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언젠가 헤어짐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허나, 생은 헤어짐을 두려워 만남을 저어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2010년 9월 2일. 아침에 문자 하나가 왔다.
"석.. 오늘 아침에 옥한흠 목사님께서 소천하셨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 중 하나를 잡아 글을 쓴다.

며칠 전, 이윤기 선생님의 소천 소식도 문자로 받았다.
잠시 멍했다. 소천하시기 불과 며칠 전에 당신께서 번역하신 책을 읽었다.
당신께서 다녀오셨다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에 다녀온지도 불과 열흘 전이었다.

5월 8일, 소중한 친구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어버이날에 돌아가셨으니 매년 친구의 어머니 기일을 잊지 못하리라.
무엇보다 잊지 못할 일은 1992년 따뜻한 봄날에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기일이겠지.

만남도 헤어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렇다고 덤덤하게 만나고, 무심하게 헤어지는 것은 좋은 생이 아니다.
남 눈치 보지 않은 채 호들갑스럽게 만나고,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는 생을 살자.

어차피 헤어질 터이니 함께 하는 과정을 애정과 배려 없이 지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우리 삶이 메마르고 삭막해질 것이다. 영원히 함께할 이는 아무도 없으니.
영원히 함께 할 이에게 주려고 했던 그 모든 것을 지금 함께 하는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존경하는 동료를 만나고 헤어졌다.
앞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별의 슬픔을 겪어야 할까?
순간, 눈물이 난다. 두렵기도 하다. 이건 부모를 일찍 여읜 자가 지닌 선물이다.

어떤 이들이 하늘 나라고 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가 젊다면....나는 그이의 어머니가 겪게 될 (고통이라 할 만한) 슬픔을 상상할 수 있다.
곁에서 할머니의 아픔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열살이 넘은 아이를 남겨 놓고 떠났다면
나는 그의 자녀들이 겪게 될 슬픔과 외로움을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을 오롯이 경험하게 자라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을 향한 공감이고, 세상의 어두움에 직면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정말로 참 좋은 것이다. 허나, 어머니와 바꾸기에는 너무나도 허접한 것들이다.
헤어짐은 슬픈 일이지만, 우리에게 뭔가를 남기며 떠나간다. 이것이 헤어짐의 존재 이유다.

생과 사를, 만남과 헤어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있는 함께함의 시간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서로 사랑해야 한다.

지구별 여행자, 라는 책이 있다.
읽지 않은 책인데 소중한 형이 읽어준 덕분에 한 구절을 안다.
오고 가는 이들의 존재 의미요, 우리가 감사하고 혼신을 다해 사랑하는 이유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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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나의 음악감상실은 이렇게 멋지지는 않지만, 충분히 좋은 곳이다.



나의 음악감상실이 좋은 3가지 이유

밤 10시 남짓한 시각, 귀가하는 길.
지하철 역에서 노래 한 곡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겐 영원한 음악적 진원지가 될 8~90년대 발라드들.
그 중 유난히 입에 착 달라 붙고, 마음을 감성으로 적시는 노래가 있었으니.

"보고 싶었던거야 단지 그 마음뿐이었어
헤어졌던 그 이유와 상처는 모두 잊은 채 위~~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게 생각처럼 쉽진 안았어
니가 있던 그 자리엔 누구도 들어올수가 없었던거야
수없이 부서졌던 내마음 기도가 아마도 너를 울렸는가봐
힘겨웠던 지난날을 딛고 서서 다시 한번 시작해 보라고~ 사랑해!"

열창할 때 목에 핏줄이 붉어지는 모습이 그리도 멋있었던 김정민의 <애인>이다.
'오늘은 집에 가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러야지.'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끝내자마자 기타부터 잡았다.
노래책을 뒤적였는데 <애인>은 없었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와 김현식의 노래 몇 곡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애인>의 가사가 나의 마음을 두드렸고,
나를 과거의 추억 속으로, 후회스러운 장면 속으로 데려다 놓곤 했다.
<애인>의 가사 몇 소절은 그대로 나의 마음이었다. 인터넷을 뒤적여 <애인>을 찾았다.

방 안을 음악 감상 모드로 바꾸었다. 특별한 것은 없다.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나를 벌렁 던져 놓으면 된다.
마음 준비는 필요 없다. 자연스레 편안해지고, 점점 감상적이 된다.
볼륨을 좀 높여도 괜찮다. 내 집이고, 이 집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으니. 
지금부터 이 곳은 집이 아니다. 나만의 음악감상실이다.

'아! 좋다.'
이것이 행복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지 좋은 순간임에는 분명하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쉬이 대답할 수 있다.
1) 내가 꿈꾸었던 삶의 한 장면이고, 2) 자유를 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3) 나는 음악이 좋기 때문이다.

1) 집에는 언제든지 내가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 하나가 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늘 듣고 싶었던 음악을 방 안 가득히 채워 넣는다.
Jazz 곡이면 좋고, 유난히 듣고 싶은 발라드여도 괜찮다.
곡이 시작되면 나는 얼른 불을 끄고, 발랑 드러눕는다.
음악을 한껏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큰 대(大)자로 누웠다가
몇 분 후에 팔배개를 만들어 일자로 눕는 것이 좋다. 나에게는.
이것이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듣고 싶은 곡은 때마다 바뀌지만, 이 꿈은 늘 똑같다.
매일 이러지는 않지만, 자주 이런다. 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2) 어제 연구원 후배분(이지만 나이로는 형)과 함께 저녁 식사를 들었다.
이번 그리스/ 터키 여행을 함께 다녀온 사이다. (이렇게 말하면 서운해 하실 테지)
여행을 함께 다녀 온 사이 그 이상이다. 의형제를 맺기로 했으니. (허허, 이건 또 뭔지... ^^)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적합한 배우자가 어떤 이냐, 라는 주제가 되었다.
"너는 이번 여행에서도 내가 느낀 거지만, '자유'라는 가치가 참 중요한 것 같애.
그것을 존중하고.."
"이해해 주고"
"그래 이해해 주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여자를 만나는 게 중요할 거야."

그래, 나는 자유가 좋다. 자유의 뽕맛을 알아 그런지, 자유롭게 살지 못해 그런지
아니면 남들이 좋다 하고 수많은 피가 자유를 얻기 위해 희생된 것을 지식으로 배워 그런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홀로 자유롭게 천천히 사는 것이 좋다.

"행복을 재는 저울이 있다면 자유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 출처가 어디인지도 알지만 그냥 가련다.
그걸 찾아볼 시간이 없다. 지금까지는 시간을 만들어서 찾곤 했다.
인용할 책이 집에 있는 경우에는 확인하기 위해 임시저장을 해 두고
귀가하여 찾는다. 이러면서 글 등록이 늦어지고 때로는 수일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봐야 고작 표현을 바꾸는 것 정도다. 기억력이 좋은가 보다.
열에 아홉은,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지 의미를 왜곡하는 일은 없으니.
그럴 줄 알면서도, 열 중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서 벌인 일들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는 거다. 조금은 느슨하게, 조금은 덜 까다롭게.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으니
삶의 어떤 한 영역 만으로도 다른 방식의 삶을 시도해 보는 중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홀로 지내는 것을 잘 즐겼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홀로 지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하지만 그것은 보완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에너지를 얻는 근원은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다.
항상 함께만 있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기운과 사라지고 의기소침해 지는 것은 다르다.

40여일 홀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에도 나는 한국에 돌아오기 싫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달콤했고, 나는 함께함 없이도 꽤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즐기었다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이 글은 읽은 누군가가
'아! 보보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단정할까 봐 겁이 나서다.(^^)
홀로 여행하는 것, 혼자 있음이 좋은 것은 그것에 자유가 깃들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 때, 더욱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그나마 자기경영 강사로 살갈 수 있는 까닭인가 보다, 하며 감사해하고 있다.

혼자 있지 않으면 자유롭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물론이지"라고 대답해야겠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자유의 문제는 그야말로 상황윤리의 문제가 된다.
때(Time)와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tion)에 따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진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 변화를 잘 감지하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다른 이의 호불호에 민감하다여 배려를 잘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배려의 방향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사람은
민감이 아닌 예민으로 빠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노트북 콘센트를 꽂을 때, 옆테이블을 확인한다.
옆테이블에 콘센트가 있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없다면
나는 옆테이블에 가까운 콘센트를 남겨 두고 보다 나쪽에 가까운 곳에 꽂는다.
만사가 이렇다. 착하다고 생각하면 나야 고맙지만 그런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생각한 바가 있지만 다른 주제를 다룰 때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여기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모습이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글로 쓰니까 몇 줄 씩이나 되지만, 이렇게 사는 데에는 1~2초가 더 소요될 뿐이다.
늘 함께해 왔던 생각이기에, 별도로 생각할 필요 없고,
어찌 되었든 노트북 전원은 꽂아야 할 테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때, 남들을 배려하느라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을 의식하느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선을 의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배려하느라 나를 위한 시간을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피해의식은 없다. 수년 동안 이렇게 살아도 우울증이나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많은 도움을 받아 왔음을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문제라 함은,
자유 외에도 추구해야 할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대표적이다. 자유, 사랑...
참 추상적인 단어이니 사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말이다.

이 즈음에서 원래 글의 흐름으로 돌아가자.
나는 지금 '불끄고 음악 듣는 시간' 의 유익을 말하던 중이었다.
첫째 이유로 꿈의 실현을 들었고, 둘째로 자유롭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다. 음악을 듣는 시각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난 후다.
대체로 10시 30분~11시경이 된 이 시각에는 휴대폰이 조용한 시간이다.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완벽한 자유 시간이다.
그 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TV 시청에 보내거나
인터넷 포털 카페의 유혹적인 기사에 끌려 시간을 보내버리면 흘러가버리는 시간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하루를 잘 살았다는 느낌이 찾아들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컨트롤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좋은 것이다.

사족을 하나 달면,
삶의 작은 영역, 짧은 순간만이라도 스스로를 컨트롤하거나 상황을 이끌어간다면
조금씩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날 것이고 서서히 삶이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말을 붙이고야 말다니, 자기계발 강사라는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지혜롭게 살고 싶다면
스스로 자유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소중한 가치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로움도 좋지만, 함께 어울릴 때 경험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좋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나의 자유는 많은 부분 사라질 것이다. 아마도 처음엔 힘들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어 얼마나 잘 헤쳐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각오는 하고 있다.
친구들이 자기 아이랑 떨어지기 싫어 출근하기 싫다는 얘기를 하면, 부럽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힘겨움이 있음을 안다. 아이가 울어 밤새 잠을 뒤척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아이를 혼자만 봐야 한다며 아내가 우울해졌다는 친구도 있다.
어떤 친구는 아내와 번갈아가며 아이를 재워가며 겨우 겨우 지내는 친구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유 대신 사랑을 선택한 이들이 겪는 삶의 모습이다.
내가 사랑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사랑의 달콤함 뿐만이 아니라,
이렇듯 사랑이 가져온 삶의 모든 것들을 위해 기꺼이 자유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물론, 상황이 닥쳐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그 때, 나의 태도가 돌변한다면
부디 나의 아내가 이 글을 찾아 읽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유롭게 살기 힘든 까닭이 바로 이런 점이다.
자유 외에도 추구할 가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롭게 살기 힘든 다른 원인도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말이다.
자기 기준보다 세상이 기준을 따르느라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하리라.

3) 나는 음악이 좋다. 꿈의 실현이기에, 자유롭기에 라는 이유는 나에게서 오는 원인이다.
셋째는 순수하게 음악이 좋기에 나는 혼자만의 음악 감상 시간을 즐기는 게다.
꼬마였을 때부터 늘 음악을 들었고, 카셋트 테이프를 수집하였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내가 음악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소질과 관심은 종종 다르기도 한 것이었다.
나는 항상 음악과 함께 작업하고 종종 음악과 함께 잠든다.

블로그 포스팅 치고는 긴 글이었다. 읽어 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이 든다.
뭐 하나라도 드리고 싶은데 별 다른 게 없다.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맺는다.

하루 중 5분이라도 완벽한 자유 시간,
소박한 바람이라도 이뤄가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좋으실 거세요. 아주 좋으실 거세요.
자유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고, 꿈의 실현은 짜릿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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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얼마 전, 와우팀원 한 명이 이렇게 말하더라. 수제자가 되고 싶다고.
그는 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난 것처럼 보였고,
자신의 고질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이제는 인식을 넘어서서
실천하고 행동하여 새로운 삶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싶어 했지.
이제는 그에게 새로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때가 왔구나,
힘껏 따르겠다 하니, 나도 힘껏 무언가를 나눌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지.
지금까지의 내 노력이 그가 스스로를 사랑하도록 돕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가 사람을 더욱 이해하고 자신의 세계에 공헌하도록 돕고 싶다.

수년 전, 어느 날 나는 강연을 했고, 그는 청중이었어.
우리는 그렇게 만났고, 그는 나와 같은 교육자가 되고 싶다고 그랬지.
나처럼 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지.
부담 안 되냐고? 응 안 돼. 별로,부담 되지도 않아.
사실 그런 삶을 꿈꾸었으니 기쁘기만 해.
한 사람이 한 사람이 따른다는 것에 대하여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기에 부담 따윈 없지.
오히려, 나는 자신당당하게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어.

"잘 생각했어. 나를 힘껏 벤치마킹해 보시게.
내가 1인 기업으로서는 괜찮은 연착륙을 했잖우.
포트폴리오 인생으로 수입은 안정적이고, (하하하. 지출이 많긴 하지만)
지난 해, <1인기업 강사되기>라는 과정을 여러 강사들과 함께 진행하면서
내가 참 좋은 피드백을 받았어. 그러니 힘껏 해 보자구." 라고.

나를 따른다고 하지만, 나는 그가 또 하나의 이희석이 되길 바라진 않아.
내가 점점 나다워지기 위해 노력한 것을 벤치마킹하라는 뜻이지.
그도 점점 자기다워져야지. 그는 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가 되기 위해 존재하니까.

피드백 이야기를 할 때, 하나의 사실을 말하지 못했지.
그 때 한 참가자가 이런 피드백을 적어 주었거든.
"역시 이희석! 1인 기업 최고의 강사"
그 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견이 아님은 물론 알지.
그저 단 한 사람의 평가라는 것을 나도 알아.
하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으로도 어찌 고마운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두 사람으로,
세 사람으로 늘려가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할 일이겠지. 신나는 일 아닌가!

이렇게 나의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아서
팀원의 벤치마킹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한 건 아냐.
내가 할 수 있는 대목은 어디까지인지,
그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에 부담이 안 되는 거야.
결국, 그는 자기 길을 가야 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니까.
그의 벤치마킹이 향하는 방향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니까.

그런 차원에서의 벤치마킹이라면, 나도 부족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게지.
나는 최근 2~3년 동안, 나다워지기 위해 힘껏 노력해왔으니 말야.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나는 자주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어.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양인지를 자주 물어 보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려고 노력했지.
용기, 그래 용기라는 단어가 나는 좋아.
나를 직면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고,
내가 꿈꾸는 삶을 이루어가기 위해 세상과 조율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니까.

친구야, 나는 너에게도 소원 하나가 있지.
날이 더해지고 해가 더해갈수록 점점 너다워지기 바래.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으니. 그것만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없으니.
살아지는 모양을 알고 그것의 결을 따라 자신을 놓아 주는 것,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


사람들과 관계하는 자신의 성향을 알고
주위 사람들과 아름다운 파트너십을 만들어가는 것,
이 3가지가 너의 삶에 온전히 이루어지길 기도할께.


친구여, 행복하시게.
내 책에 서명하며 자주 쓰는 말이 있네.
"웃으며 살다가 다시 만나면
반갑게 악수하고 이야기 나눠요."
오늘은 자네에게 하고픈 말이라네.

201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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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소박한 삶』을 읽고.


한 번 갔던 레스토랑이나 바(bar)에는 가고 싶지 않다. 좀 더 멋지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에 가고 싶다. 뭐, 새롭게 생긴 곳이 없나?

요즘 내 친구와 시내에서 만나면 이런 고민을 한다. 눈앞에 수많은 레스토랑이 있지만, 우리는 식사 한 끼를 근사하게 해결하고 싶은 욕망에 아무 곳에나 들어가지 않는다. 큰일이다. 혹시 허영심이라는 불필요하고 가치 없는 놈이 내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아닐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 소비 수준이나 가치가 소박한 삶과 거리가 멀거나, 삶의 의미를 잃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참된 삶의 의미, 특히 소비가 인생의 목표인양 '비곗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서 한 번쯤은 내가 가는 길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현대인의 그릇된 소비 성향과 물질적인 것으로 비대해진 인생의 부조리를 일깨워주는 『소박한 삶』은 나에게 그런 필요를 채워주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소박한 삶』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며 살아왔다고 얘기한다. 소비는 현대인들의 당연한 여가 생활이 되어버렸다(우리는 기분이 좋거나 나쁘다는 것만으로도 카드를 긁는 합당한 이유가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미 '우리는 더 이상 소비를 하며 잃어 가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 (p.7) 레기네 슈나이더의 말대로 우리는 물건을 살 때마다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정말 필요한 물건일까? 잠시 동안은 마음을 달래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물건은 아닐까? 내 구매욕이 뭔가의 조종을 받은 결과일까, 아니면 내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서일까?"

지나친 구매욕은 그릇된 가치관에서 기인한 것 같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소유함의 정도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존재 가치와 소유 가치는 전혀 별개의 가치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광고 '선전대로 갖추어 입고 남들 앞에 나서고 싶어'하고, '쇼핑을 위대해지는 느낌과 결합시켜 고상하고 스케일이 큰 특정 그룹에 속한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이러한 쇼핑 중독증은 '새로운 유형의 가난한 사람들'을 탄생시켰다(p.66). 많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과소비로 인해 지게 된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독일의 200만 가계가 위험수위의 빚을 지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우리 나라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듯 하다. 이유가 과소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의 가계가 안고 있는 빚도 적지 않다.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지고 있는 카드빚의 심각성을 보도한다. 과도한 소비로 인한 개인의 빚 문제가 이제 사회 문제가 되어, 제도적인 조치와 함께 의식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저자는 무분별한 소비가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새로운 유형의 가난한 사람들은 카드사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삶의 질이 구매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현대인들이 깊이 깨달아야 할 시기이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숙해지는 것이라 말하면서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성숙한 소비 활동은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해내고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광고에 이끌리지 않는 것, 소비세계의 유혹에 맞서는 것이다. 광고가 떠들어대는 거짓약속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독일은 우리보다 일찍 '새로운 소박함'의 비전을 발견한 것 같다. 독일 국민들은 미친듯한 자신들의 소비 성향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 염증을 느끼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소비를 하면서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 나은 커피를, 더 나은 악세사리를 선택하기 위해 인생을 낭비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염증을 느끼지 않고, '새로운 소박함'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에는 여러 일반인들의 수기가 많이 실려 있다. 한 여성 동독인은 서독인의 소비 모습을 굉장히 불건전하다고 느낀다. 돈쓰는 것이 전부였던 삶을 살던 한 여성이 자신의 인생은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소박함의 기쁨을 통해 참다운 행복을 발견한다. 이전의 삶은 끊임없이 보이기 위한 삶이고, 주류에 끼어 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반인들의 수기를 읽으며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 의미 있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지막 장의 제목은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이다. 1장에서 현대인들의 소비에 대한 잘못된 태도와 삶의 방식을 고발하고, 2장에서는 소비 지향적인 삶으로부터의 구원 방법으로 '새로운 소박함'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그리고 나서, 저자는 묻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언인가? 그것은 큰 일보다는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소비하기를 포기하고 '속도에 대한 광기 어린 신념'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느림의 기쁨과 삶의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다. 정원의 꽃향기를 맡으며 자신의 인생이 의미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중년 여성 '잉고'의 말처럼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결정이나 사고 방식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가치나 원칙은 물질주의적인 것에 희생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고귀하고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해야 한다. 다소 시대 착오적인 제안처럼 들릴지라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정말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발견해야만 우리는 광고로부터, 그리고 이 시대의 망령인 소비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는 이미 충족되었기 때문에 광고는 인위적으로 욕구를 조작한다. 광고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자각하지 못했을 욕구를 일깨우는 것이다. p.42~43)

나는 오늘 시내에서 그 친구를 만난다. 오늘은 새롭고 고급스런 어떤 카페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냥 눈 앞에 보이는 아무 곳에 들어가서 적당한 가격의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멋진 식당을 선택하느라 낭비하지 않은 그 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성숙한 소비 활동은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해내고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광고에 이끌리지 않는 것, 소비세계의 유혹에 맞서는 것이다. 광고가 떠들어대는 거짓약속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 2002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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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나는 어제와 오늘, 결정 하나를 하지 못해
많은 시간을 우물쭈물하며 보냈다.
신속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오랜 약점이었지.
돌이켜 보면, 학창시절에 운동화 하나를 살 때에도 그랬잖우.
겨우 선택하여 구입한 운동화를 들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선택에서 밀린 다른 운동화를 떠올리곤 했지.
'혹시 그게 더 내게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 때, 옆에 있던 네가 "난 아까 그게 더 낫던데.."라는 말이라도 하면...
으악, 난 최악의 카오스로 빠져 들곤 했다. 물론, 너는 좋은 장난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말야.

결정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이후에도 20대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다행스럽게도 20대 후반부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할 때도 많다.
결정이 늦어지는 까닭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
1)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결정이 그에게 불편하진 않을까?'
2) '더 나은 기회를 놓치면 어떡하지?'

1번처럼 생각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 
자존감이 약하여 늘 다른 이들의 감정 상태를 살피는 것.
좋은 사람이어서 다른 이들의 형편을 늘 배려하는 것.
두 가지가 얽혀 있는 것이니 스스로를 너무 깎아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배우는 중이야.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마음은 더욱 건강해졌고,
배려 때문인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하기도 했지.

분명한 것은 나의 자존감이 아주 높아지고
나의 주견을 가질 만큼 지적 성숙함을 가지더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를 완전히 떨쳐 버리기는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제는 2번처럼 생각하느라 결정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직 결정하기에는 정보가 적어. 몇 가지를 더 확인해 봐야지.' 라는 생각 말야.
대학생 시절, 보고서를 쓸 때마다 겪었던 문제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난 늘 많은 자료를 조사하다 마감 기한이 코 앞에 닥쳐서야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지.
너무 늦게 착수한 바람에 막상 조사한 자료를 다 검토도 못한 적이 많았어.
지금도 마찬가지인 때가 많아.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두려워 늘 결정을 유보하곤 하걸랑.
이런 성향을 잘 컨트롤 한다면 보다 광범위한 시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편협함을 피할 수 있지만, 우유부단이나 결정을 미루는 습관에 빠지는 단점은 극복해야겠지.

어제, 나를 곤경으로 빠뜨린 것은 와우팀원의 교육 요청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와우팀원들 몇 명이 한달 전에 다가오는 삼일절 연휴에 이틀 과정의 교육을 요청했고,
(고맙게도) 늘 나의 강연을 듣기를 원하는 몇몇 팀원이 이 요청에 합세했어.
하지만, 나는 연휴 4일 전인 지금까지 결정하지 못했어.
늘 이런 것은 아닌데, 이번엔 결정을 계속 미뤘네.
그들에게 말한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 팀원들이 원하니까 한 번 하지 뭐. ^^
  그들을 돕는 것이 내 역할이니. (이건 의무감이 아니지. 즐거움이지.)
- 책으로 읽고, 워크숍 참여한 사람도 있는데
  내가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이미 다 아실 텐데.

나는 교육을 진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다. 묘하게도 나의 호불호는 없었어.
팀원들이 좋으면 나도 좋은 것이고, 그들이 싫으면 나도 싫은 것이었다.
늘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이번 일에선 그랬다.
이번 결정이 내게 퍽 어려웠던 이유는 앞서 말한 것 외에도 많다.

수업을 진행한다면 귀한 연휴에 교육을 진행한다는 미안함 비슷한 것이 있었지. 
나는 가족과 함께 할 만한 시간에 와우팀 행사를 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거든.
혹여나 가족이(특히 연인이나 배우자가) 와우팀을 싫어하게 되면
와우팀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니까.

2008년도에 내가 팀원으로 속한 공동체의 어느 한 분이
아내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단다. "난 당신 선생님 싫어요."
진심은 아니었을 터이고, 순간적인 서운함에 내뱉은 말이겠지만,
나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결심 하나를 했다.
와우팀원이 자기 연인이나 배우자로부터 저 말을 듣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이런 생각으로 인해, 나는 이번 연휴의 교육 진행이 퍽 부담스러웠다. 

반면, 수업을 안 한다면 교육 진행을 원했던 팀원들에게
아쉬움을 안겨 주게 될 터이니 그것 역시 싫은 일이다. 
와우수업 때에는 팀원들의 발표 위주로 진행되기에
팀원들 중에는 정식 나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거든.
많지 않지만 그들의 필요를 잘 채워주는 것도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이 두 가지의 경우를 두고 참 많이도 고민했어.
고민이 길어지는 까닭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하기 때문인데
이런 성향으로 인해, 정말 때로는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시원시원하지 않고, 모호하고, 답답하게 보일꺼야.
하지만 이런 내 모습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해야 함을 이제는 알아.
좋은 점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려는 신중함이고, 나쁜 점은 신속하게 결단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지.

얼핏 보면, 결정을 신속히 내리는 사람이 훨씬 쉽게 살아가는 것 같긴 해. 
허나, 그들은 많은 것을 성급하게 제외시키기 때문에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는 단점이 있지.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해 보지 못하는 게지. 
대부분 일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적절히 섞여 있는 것처럼
지혜는 서로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상황에 적합한) 중용을 발휘하는 것이라 믿어. 
그러한 중용의 미덕 안에 상황과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도 있는 것이고 말야. 

내가 할 일은 가능성을 고루 따져 보는 기질을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신속히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은 결단력으로 대체해가는 일이겠지.
그나마 20대 중반 이후로, 나의 결단력이 개선되고 있음이 희망적이다. 
우유부단함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자유로워지기도 했어.
중대사가 아닌 경우(가전제품 고르거나, 작은 물건들 구입하는 등의) 결정은 매우 빨리 하지.
일상의 작은 결정을 쉽게 내리게 된 것은 『소박한 삶』이라는 책 덕분인 것으로 기억한다.
보다 좋은 악세사리를 고르기 위한 시간이 내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한 이후,
나의 시간을 (결정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데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거든.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결정을 미루는 성향이 다시 도질 때마다,
어서 선택하고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생각하곤 해.
그의 묘비명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잘 자, 친구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2010.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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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선두 SK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 서재응은 빼어난 피칭을 보여주었다.
6.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팀이 2: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내려왔다.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승리의 여신은 그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8회에 등판한 기아의 세번째 투수 이대진이 2사 만루에서 사구를 두 개 내주었고
순식간에 경기는 동점이 되었고, 서재응의 승리는 날아갔던 것이다.
승리의 여신은 웃어주지 않았지만, 서재응은 이대진을 웃으며 맞이했다.
덕아웃에서 나와 환히 웃으며 이대진을 맞이하며 어깨를 다독였다.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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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김상현을 환호하는 서재응


22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도 선발 등판한 서재응은
팀 동료가 멋진 플레이를 보여 줄 때마다 활짝 웃으며 환호했다.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한, 양팔 벌려 환호하기도 볼 수 있었다.
그는 후반기 들어 에이스다운 성적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백만불짜리 치어리딩의 모습으로 팬을 매료시켰다.
나 역시도 서재응을 좋아하게 되었다. 감동적인 그, 참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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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응처럼 환호하기는 벤치마킹할 만한 멋진 일이다.
동료의 성공과 활약을 전심으로 기뻐하고, 동료의 실수를 허탄하게 이해하는 것은
나와 너의 Win-Win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서재응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허나, '나의 Win' 보다 '너의 Win' 을 먼저 추구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인격의 모습이지만, 인간적이지 않다. 몹시 어려운 일이다.
'나의 Win'만을 추구하는 것은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추구하고 싶진 않다.
그러니, '나의 Win'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동시에 상대의 Win을 위해 주변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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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0년 그리스 여행을 전후로 하여, 나의 인생이 달라지기를 소원한다.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것이고, 내가 보다 치열하기를 소망한다.

점점 나다워지는 과정은 괴테의 조언을 따르면 된다. "서두르지 말고, 쉬지 말고"

그래, 서두르지 않되 꾸준히 나의 길을 가자.


살면서 갖게 된 나쁜 습관을 끊임없이 덜어내면서 가자.

2010년 9월 1일은 1인기업가 보보의 시즌2가 시작되는 날이 될 것이다.

새로운 마인드로, 새로운 역동성으로 삶을 살아야지.

누구나 자기 내면 안에 새 삶을 창조할 가능성과 에너지를 지녔다.

자기 안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통로가 되는 것 역시 자신이다.

자기 가능성의 절연체가 되는 것 역시 자신이다. 나는 통로가 되리라.


1) 완벽주의를 벗어나자. '아직은 아니야‘ 증후군에서 벗어나자.

더 이상 준비하느라 세월을 허송하지 말고, 지금 내게 주어진 기회를 잡자.

지금 가진 지식과 경험을 글로 쓰자. 지금 가진 가능성에 힘차게 도전하자.

무엇이든 시작하고 확실히 끝맺음하자. 지금의 모습을 최대한으로 발현하자.


2) 진짜 실력을 연마하자. 더 이상 말이 앞서게 하지 말자.

날마다 3시간은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자. 내 이름이 브랜드가 되게 하자.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자.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의 시간을 정복하지 못하면

나의 하루는 긴급한 일들에 의해 정복당할 것이다.


3) 프로페셔널한 강사가 되자.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강연을 하자.

강연을 하기 전날에는 성실히 준비하자. 하나의 강연이 하나의 쇼가 되게 하자.

동시에 온전한 교육이 이뤄지도록 노력하자. 참가자들의 기대성과를 분명히 파악하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프로페셔널한 강사의 모습을 만들어가자.


4) 수입을 늘려가자. 어서 돈을 벌어 좋은 집에서 살고, 맛난 것 먹으며 지내자.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자. 언어 실력이 쌓이면 여행이 알차진다.

한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공부하자. 이것은 나를 흥분시키는 테마다.

2011년 브라질 여행을 준비하자. 브라질은 내 삶에 불쑥 들어 온 나라다.

매월 2권의 독서리뷰를 쓰자. 와우팀의 리더로서 삶의 모델이 되도록 노력하자.


여행은 자극과 열정을 주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동기부여된 것들을 일상 속에서 실천으로 이어가면 삶이 달라질 것이다.

여행 후에는 먹먹한 그리움과 일상과의 단절감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새로운 희망과 열정,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찾아오기도 한다.

여행 후에 오는 것이 자기 혁신이 될 때, 삶은 도약할 것이다.


나는 나를 혁신할 것이다. 혁신은 삶을 도약을 꿈꾸는 자의 자격조건이다.

누구나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다. 누구나 삶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보보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당신의 성장을 기원하며 응원 드린다.

우리, 함께(!) 자기 삶의 도약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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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고 싶었지만, 아직도 읽지 못한 책들이 있다.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등이 그런 책이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는 위시 리스트(wish list)였다.
꼽아 보면, 이 리스트는 더욱 길어질 것이다.

소원했지만, 이루지지 못한 일들의 목록들!
어떻게 이것들을 관리할 것인가?
중요한 문제다. 독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반이 이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내 안의 안일함을 걷어 내고
건강하고 생산적인 긴장감을 불어넣고 싶다.
오늘 변화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이 어제까지의 삶과 비슷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얻고자 한다면, 변화해야 한다.
어제의 나와 결별해야 한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이루지 못한 일들을 쳐다 보며 몇 가지의 지침을 세워 본다.

1. 다시 자문하기.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정말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내려 놓기.
몇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고,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못할 가능성이 높고, 못해도 삶의 질이 떨어지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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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획하기.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언제 실행할 것인지.
'언젠가'는 위험한 단어다. '오늘'이야말로 확실한 단어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은 필요할 때 찾기 어려운 것처럼
언제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소원은 실현하기 어렵다.

3. 지금의 역할과 가용 시간을 확인하기. 계획의 실현율을 높이기 위해.
계획은 항상 계획할 때의 포부와 열정으로 인해 현재 자신의 상황을 무시하기 쉽다.
오늘의 상황을 감안하지 못한 계획은 비현실적이다.
포부와 다짐은 잠시 반짝이기 마련이기에, 지금 자신의 '해야 할 일'을 체크해야 한다.
자신이 사용가능한 시간만큼의 소원을 계획해야 실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수 있다.

4. 반드시 해내기. 앞선 질문들을 통과한 소원이라면.
이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내가 간절히 원한 소원이고
욕심을 부린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기에 이뤄내야 한다.
게으름을 물리치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내고
사람들의 시선으로 인한 주저함을 이겨내면서 부단히 도전하자.

남은 2010년 하반기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원(혹은 꼭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다시 정리했다.
- 09월 : CFW 4시간 워크숍 개발하기, <예술인생> 원고 탈고, 독서리뷰 2편 작성.
- 10월 : 두번째 원고 탈고, 독서리뷰 2편 작성. 가을여행.
- 11월 : 와우친친 중간 프로파일 작성, 인문학 강좌 참석, 찰스 핸디 전작 독서, 독서리뷰 2편 작성.
- 12월 : 윌 보웬 목사님 방한 프로젝트 추진, 브라질 관련서 2권 독서, 독서리뷰 1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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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경청해 주신 여러분들께 고마움부터 전합니다.
강연의 절반은 청중이 만드는 것일진데,
여러분들처럼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마음을 만난 것은 저의 행운이겠지요.
부디, 강연 내용을 일상으로 잘 이어가시어 어제보다 아름다운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제 책을 즐겁게 읽고 있다는 재영씨와 곁에 있던 쌍둥이 자매님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

아래 내용은 강연 핵심 내용과 관련 자료를 정리한 것입니다.

* 하나의 기술을 지니려면
<인식 - 지식 - 연습>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 인식 : 콜라가 아닌 물처럼,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자!

* 지식 : 감정이 아닌 중립적 사실로 표현하며, 해결책에 집중하자!

* 연습 : 21일동안, 불평제로 밴드를 한번도 바꿔끼지 않고 지내보자!

* 감사는 행복해지는 연습이다. 주 1~2회 감사일지를 작성하자.

(보보의 관련 글 : http://zine.eklc.co.kr/Magazine_Contents.asp?MagTypeCd=FCS&MagNum_Idx=520&MagCont_Idx=987&GroupID=0&VCODE=CONTENTS)


제가 실천을 부탁한 3가지를 기억하시는지요? ^^
1) 3일 내에 불평제로 운동을 함께 할 사람들에게 강연 내용 전달하기
2) <KBS 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 : 습관> 시청하기
3) <사랑합니다 VS 짜증 나>를 식물에게 실험해 보기

3번 실험은 식물에게 미안하지만,
이번 실험을 계기로 식물을 더욱 사랑하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의미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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