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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에 대해 묻고 답하다

다큐멘터리 리뷰 (2/2)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같은 인물을 좋아하는 이들끼리의 정서적 공감대가 느껴졌지만(신형철의 책 제목이기도 한 ‘느낌의 공동체’라는 말이 어울렸다), 관객들끼리 활발하게 여담을 나누기에는 형식과 공간이 주는 무게감이 컸다. (콘서트나 상영회에 적합한 의자 배열도 정중한 분위기에 한몫 했으리라.) '관객들과의 대화' 시간은 주로 관객이 질문하고 사회자(사회학자 노명우 교수)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두 권의 손택 책을 옮긴이(김선형 교수)가 간간히 유익한 설명을 덧붙였다. 사회자와 생각이 다른 일부 독자들은 넌지시 자기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여러 의견이 어우러져 손택 이해에 도움을 준 시간이었다. 나 역시 사회자와 다른 생각을 가진 대목이 많아 마음속으로..

카테고리 없음 2015.06.02

다큐멘터리, 손택에 관하여

다큐멘터리 리뷰 (1/2) 1. 마음산책, 참 고마운 출판사다. 손택의 인터뷰 집 『수잔 손택의 말』을 출간하더니 이번에는 출간을 기념한 다큐멘터리 상영회라니! 손택에 관한 다큐멘터리이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미국 아마존에서도 DVD 판매는 없어서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던 터라(Audio CD만 있어서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상영회 소식은 무척 반가웠다. 한글 자막으로 이번 상영회를 준비했으니, 반갑고 고마울 수밖에. (참고로, 마음산책 출판사는 ‘마음산’과 ‘책’으로 떼어 읽는 게 설립 취지에 맞지만, 마음 + 산책으로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을 터이고, 나는 두 표현이 모두 마음에 든다.) 다큐멘터리를 본 직후에는 소감이 여러 가지였지만, 열흘 남짓 지나니 증발한 생각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더 기억을 ..

카테고리 없음 2015.06.01

2015년 성찰일지 (4)

1. 언제 삶의 비평이 잘 일어나는가. 사람마다 답변이 다를 이 질문을, 내게 불쑥 던진다. 2015년 4월 1일 포항 호미곶에서, 나는 대답한다. (구체적인 시간을 명시한 이유는, 세월이 흐르면 답변이 바뀌는지, 훗날에 확인해고 보고 싶어서다. 정확하게 나의 변화와 성장을 관찰하고 싶다는 뜻인데, 이를 위해서는 진솔하고 구체적으로 살피고 기록해야 한다. 삶의 비평이란, 정말 중요한 자기경영의 핵심개념으로, 삶의 어떤 대목이 마음에 들고, 어떤 대목이 불만족스러운지를 찬찬히 성찰하는 행위를 뜻한다.) 영화 관람, 특히 드라마 장르. 거의 모든 책을 읽는 순간. 시간의 흐름을 인식할 때. 누군가에게 고통을 안긴 날. 시도하지 못했거나 실패를 자초했을 때. 가장 진하게 삶의 비평이 일어나는 때다. (누군가의..

카테고리 없음 2015.04.01

탁월한 해석의 첫걸음

세상 끝에서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 보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오른 독수리는 지구의 중심에서 다시 만났다. 그곳이 델포이다. 사람들은 델포이를 옴파로스라 불렀다. 배꼽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를 지구의 중심, 델포이를 지구의 배꼽이라 생각했다. 옴파로스에 아폴론 신을 모시는 신전이 세워졌다. 신의 뜻을 알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신이 아닌 ‘피티아’라고 부르는 무녀와 사제들이 신전에서 그들을 맞았다. 피티아는 신과의 매개자였다. 신의 말씀은 그녀를 통해 인간 언어로 전환된다. 피티아가 중얼거리면 곁에 있던 사제들이 피티아의 말을 모호한 해석을 덧붙여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신도 피티아도 만나지 못한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다. 의뢰인도 해석을 덧붙일 ..

카테고리 없음 2015.01.19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

인식이 변화를 이끈다. 자기 인식 없이는 자기 변화도 없다. 자기 인식은 뒤통수를 치듯이 우리에게 접근한다. 노력과는 별개로 불쑥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자기를 인식하고 나면, 정말 뒤통수를 맞은 듯이 멍해진다. 자기 인식을 하는 순간 우리는 당황스러움, 부끄러움 그리고 얼마간의 절망과 허망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은 본인에게만 그렇다. 타자는 아무렇지도 않다. 오늘 인식한 나의 일면을 그들을 이미 쭈욱 알아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자기 인식은 그야말로 '나만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자기 인식은 '뒤늦은 인식'이다. 마치 뒤통수 같다. 뒤통수는 내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타자의 눈에는 아주 잘 보인다. 오히려 뒤에서 마음껏 나의 뒤통수를 관찰한다. 우리는 둘만 모여도..

카테고리 없음 2014.11.04

고통도 삶의 기념비가 된다

삶의 고통 혹은 충격은 사유로 가는 첩경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사유란 고요하고 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유는 폭력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그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인간은 대개 고통스럽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사유는 고통스럽거나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요? “주체에게 고통은 어떤 의미에서 기념비적이다. 주체 자신이 금 가고 무너진 기념비와 같다.” - 슬라보예 지젝 우리가 사유해야 할 사건은 알랭 바디우가 말한 의미에서의 ‘사건 Event' 입니다. 알랭 바디우는 자신의 주저 『존재와 사건』에서 ‘사건’을 “존재 방식의 변화, 새로운 윤리의식 등을 불러일으킨, 예측 불가능한 인생의 단절”로 정의했습니다. 최근에 존재의..

카테고리 없음 2014.02.10

친구에게. 병상에서 보내는 편지

잘 계신가. 친구. 친.구.라는 단어는 꽤나 맵고만. 두 글자를 쓰자마자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니 말야. 친구는 추상적 단어지만, 그 단어가 너의 모습을 생생히 불러온 탓이겠지. 새해 들어 여러 날을 감기몸살과 편도선염으로 고생했다. 그러다보니 내 거처가 병실이 되어버렸네. 사실 어디 병상이 따로 있겠나. 아픈 이가 몸져 누운 자리가 병상이지 뭐. 병상이라는 자리는 무엇보다 고통의 공간이더군. 몸이 아프니 다른 생각은 아무 것 나지 않고 그저 얼른 낫기만을 바라게 되더라고. 오늘로써 4일째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본의 아닌 칩거가 이틀 째 지속되던 날 밤, 네 생각이 나더라. 네가 시내 서점에 가고 싶다고 했던 12월 28일 말야. 그때가 10월 16일 이후로 맞은 첫 외출이라고 했잖우. 네 말을 ..

카테고리 없음 2014.01.05

언제고 나를 위로하는 노래

삶은 여행입니다. 오랜 시간 집을 떠난 여행! 그런 여행은 지나고 보면 추억이지만, 정작 여행을 다니던 그 순간에는 고생도 많이 합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한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르네요. 아름다운 삶이라고들 하나, 우리는 삶의 여정 곳곳에서 고됨과 슬픔을 만납니다. 2013년 11월을 힘겹게 보내고 계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위로나 힘을 건네 드릴 순 없겠지요. 그저 힘내시라는 말 밖에는요. "부디, 힘 내세요. 시간이 당신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랍니다. 시간은 위대한 치유자니까요. 시간이 당신의 힘겨움과 슬픔을 지혜와 강인함으로 빚어주기를 기원합니다." 멍하니 시간을 흘려 보내기보다는 좋은 사람, 좋은 영화, 좋은 음악을 들으며 보내는 시간도 가져보시길 ..

카테고리 없음 2013.11.18

다시 건강해지면 뭘 하고 싶어?

"다시 건강해지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암 제거 수술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아산병원 서관 4층의 야외 휴게소에서 산책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고요. 점심 식사를 마친 탓인지, 따뜻한 햇살 덕분인지 꿈결 속을 거니는 몽롱한 기분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지며 제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답변은 여행이었습니다. 어느 아름다운 곳으로 편안하게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뭐 이런 답변 말이죠. 잠시 생각하다가 말문을 연 친구의 답변은 제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일 하고 싶어. 다시 열심히 일을 해서 내가 얼마나 능력있는 사람인지 보여 주고 싶어." 의류 사업에 수완이 있는 그는 최근 3년 동안 다른 사업에 손을 댔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습..

카테고리 없음 2013.10.28

면회를 못 갔던 날들

목요일, 두일이의 수술은 끝났다. 그날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마음은 병원에 있는데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병원에 직접 가서 두일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쉬웠다. 하지만 친구 한 명이 병원에 있었으니 병원행을 참았다. 친구들이 너무 많이 가는 것도 부담이 될까 싶어서였다. 사무실에서 강연을 준비해야 하는데도, 집중이 잘 안 됐다. 이럴 바에야 가는 게 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허나, 그 날 병원에 가지 않았던 게 나았다. 적어도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1) 내가 가도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다. 고작해야 가족의 말동무일 텐데, 말동무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을 테니까. 2) 수술이 끝나고서 병실에 옮겨져 온 친구를 보고서 나는 울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른다. 곁에서 울음을 터트..

카테고리 없음 2013.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