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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떠나는 여행의 필수품

카잔 2011. 4. 8. 18:04

이십년 지기 친구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둘이서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지요. 친구는 같은 업종의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일터로 가기 전 일주일의 휴식을 갖게 되었는데, 며칠이라도 쉬게 되면 함께 여행 떠나자, 하며 기약했던 일을 자연스럽게 함께 실현했습니다. 친구는 설악산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훌쩍 던졌고 나는 그 말을 마음에 받았습니다. 대명리조트 설악에서 숙박을 했고, 아바이 마을, 설악산 울산바위, 영랑호와 범바위, 중앙시장에 다녀왔답니다.

우리는 자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남자들의 밤문화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개인의 의식 수준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우리의 대화는 주제를 가릴 필요가 없었지요. 마음이 통하고 서로를 배려하니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대립된 생각까지도 나누었습니다. 종종 다른 생각을 펼치기도 했지만, 친구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됨을 느꼈습니다. 한 번은 제가 "논쟁하려는 게 아니라 너와 내가 무엇이 다른지 드러내고 싶었다" 라고 말했더니 "논쟁해도 괜찮다"라며 답하더군요. 제가 자주 하기도 하는 말이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나는 친구가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함께 식사할 때의 메뉴 결정은 그에게 괴로움입니다. 내가 "뭐 먹을까?"라고 물으면 친구는 이런 식으로 답합니다. "글쎄, 넌 뭐 먹고 싶은데" "나? 아무거나" "나도 아무거나 괜찮은데." 그러니 저는 다른 식으로 말합니다. 메뉴판을 보며 "이 많은 것 중에서 내가 두 가지로 추릴 테니까, 둘 중에 네가 고르셔" 라고 말하면 그가 웃으며 메뉴를 고릅니다. 그가 메뉴 결정을 못하는 원인 중 하나는 함께 하는 이를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함께 하는 내내 친구는 나를 배려합니다. 나도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여행 내내 기분이 좋았던 까닭은 '배려'라는 단어가 늘 우리 곁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친구와 나는 다른 점도 있습니다. 친구는 늘 "뭘 하고 놀까?"를 묻습니다. 활동적인 그는 실내에 머물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산책이든 등반이든 구경이든 '바깥 활동'을 하려 합니다. 반면, 나는 자주 실내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사실은 홀로 있고 싶은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싶기도 하고 글을 쓰고도 싶습니다. 이것은 외향적인 친구와 둘이서 여행을 떠날 때마다 겪는 사소하지만 분명히 인식되는 힘겨움입니다. 함께 여행을 떠났으니 당연히 모든 것을 함께 하려는 친구와 하루 중 한 두 시간 만이라도 홀로 있고 싶어하는 나! 여기서 발생하는 미미한 긴장은 사실 예견했던 일입니다. 

몇 해 전, 베트남으로 또 다른 친구 P와 둘이서 6박 7일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말다툼이 전혀 없었는데도 나는 며칠 연속으로 24시간을 오롯이 함께 지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넷째 날엔가, 나는 "우리 하룻밤만 따로 잘까?" 라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매우 당황했고 자신이 뭘 잘못한 건가 싶어 힘겨워했습니다. 나는 얼른 말을 취소했습니다. P는 오랜 시간 외부 활동이나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면 에너지가 떨어지는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기에, 내가 자신을 불편하게 느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아닌데 말이지요. 결국 우리는 개인 시간 3시간을 갖기, 로 타협하여 그는 쇼핑을 떠났고 나는 카페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여행을 정리했습니다. 3시간 후에 만난 우리는 다른 반응을 보였지요. 그는 별 재미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고, 나는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후, 오랜만에 친구 K와 둘이서 속초로 여행을 온 것입니다. 함께 밥을 먹었고, 함께 돌아다녔고, 함께 잠을 자는 일정이었습니다. 나는 두 시간 정도를 홀로 지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와서 그런 말을 하기는 참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친구가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지요. 하지만 저도 일찍 일어나지는 못하여 '나만의 시간'은 30분 정도 밖에 못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요. 둘째 날 밤에는 원고 마감을 해야 해서 어찌할 수 없이 양해를 구하여 100여 분을 홀로 작업을 했습니다. 친구는 "천천히 해라. 나는 야구 보고 있으면 되니까." 하며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는 말을 던졌습니다. 덕분에 글을 써서 원고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나만의 시간'의 일종이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배려 그리고 나만의 시간과 같은 것들은 두 사람이 함께 오랜 여정을 떠나기 위한 필수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라는 연으로 만난 이들도 이 세 가지를 반드시 챙기어 인생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사랑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배우자가 이해가 안 되어 가슴이 답답해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순간을 소통의 단절 신호로 받아들여 대화를 멈춥니다. 하지만 사실 이럴 때야말로 의지를 발휘하여 대화를 시도해야 할 때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사라지면 부부 간의 애정도 식기 시작합니다.

배려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외적 형식입니다. 내적 내용물은 존중과 사랑이겠지요. 나는 존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외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대화하라고 입이 있는 것이고, 섬기라고 손과 발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배려 없는 사람과 잠시 동안 함께 할 수는 있지만, 오랫 동안 함께 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당신이 만약 '나는 파트너를 별로 배려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매우 감사할 일입니다. 파트너의 인격에 대하여 말입니다. 

나만의 시간은 내향적인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양이 다를 뿐, 외향적인 사람들도 개인 시간을 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개인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만으로 자신이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판단하기는 힘듭니다. 나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어, 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내향적이라고 생각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누구에게나 홀로 개인 시간을 가지며 자신을 돌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랑에도 휴가가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에서 질투심이 빠지면 우정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정과 사랑은 매우 비슷한 것이 됩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대화와 배려는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깊고 진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정이든 사랑이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려면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는 근원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힘을 내어 외향적인 사람들과 외부 활동을 함께 해 주고, 외향적인 사람들은 잠시 멈추어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개인 시간을 선물해 주는 것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친구와 나는 이것이 잘 이뤄진 것 같습니다. 좋은 여행을 다녀와 기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