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자기돌봄이 진실한 섬김을 낳는다

카잔 2014. 6. 27. 23:27

 

1.

일주일 만에 집에 왔다. 전국(全國)까진 아니어도 나라의 반(半)은 돌아다닌 느낌이다. 쏘다닌 거리도 만만찮지만, 그보다는 이곳저곳을 잇달아 다닌 탓이다. 교육과 병문안이 뒤섞인 일정이었다. 즐거운 여행만으로 채워진 일주일이면 얼마나 좋았으랴.

 

지금 나는, 평범한 날들이 어찌나 그리운지! 가족과 친구들 중 아픈 이들이 없고, 큰 성취가 없더라도 큰 상실이나 실패도 없는 보통의 날들! 내 몸 아프지도 않고 마음이 어지럽지도 않은 날들! 시간은 흐른다. 머잖아 다시 그런 날이 찾아들면 힘껏 안아줘야지.

 

2.

짬날 때마다 이병주 선생의 소설 『정도전』을 읽었다. (선생은 『정도전』『정몽주』『허균』 등의 역사소설을 남겼다.) 틈나는 시간에 밀린 일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럴만한 에너지는 없었다. 독서는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다. 충전되는 양은 책마다 다르다. 『정도전』은 에너지를 팍팍 안겨주진 못했다. 소설 『정몽주』는 감동 깊게 읽었지만, 『정도전』은 여러 가지로 아쉬웠다. 내 탓이 아닐 것이다. 나의 독서 집중력은 날카로운 편이다.

 

소설의 절반이 진행되는 동안, 삼봉의 유배와 비첩 소윤의 행적을 그렸을 뿐 별다른 서사가 없다. 이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이미 한영우 선생의 정도전 평전을 읽었고, 드라마 <정도전>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정몽주』는 달랐다. 이병주 선생은 『정몽주』에서, 포은의 시, 편지, 사신으로서의 행적 등을 소상히 다뤘는데, 소설 『정도전』에선 그렇지 않았다. 삼봉이 포은에 비해 역사적 기록이 많은데도 말이다.

 

책의 3/4까지 읽었는데 여전히 실망스럽다. ‘이병주’이기에 끝까지는 읽어볼 참이다. 아니,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몇 작품을 더 읽어보려 한다. 몇 해 전, 선생의 작품을 접하자마자 반했었는데, 그것이 주관적 감상일 뿐인지 아니면 선생의 걸출한 역량 덕분인지, 후자라면 어떠한 역량인지를 살펴보아야겠다. 2014년 하반기 독서목표에 끼워 넣을 정도의 큼직한 우선순위는 아니나, 나림 선생에겐 왠지 관심이 간다.

 

말이 나온 김에, 하반기 독서목표를 적어 둔다. 아래의 다섯 가지 테마다. 번호는 우선순위. 1) 四書五經 :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좌전. 2) 조선 역사. 3) 프랑스 문학. 4) 철학사. 5) 고대 그리스. 사서오경은 반드시 읽어볼 계획이고, 고대 그리스는 어느 정도 정리해 두어 관심사만 이어가리라는 생각이다. 세계문학은 한해 한 나라씩 정해두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공부할 나의 부전공 과목이다.

 

3.

6월이 저물어간다. 오늘이 지나면 사흘이 남는다. 훌쩍 흘러가버린 기분이다. 이즈음엔 상반기를 되돌아보며 성찰하고 싶지만, 병석에 누운 친구를 생각하니 사치처럼 느껴진다. 사치스럽다는 감정은 그와 나의 관계를 지나치게 연결한 데서 빚어진 과도한 책임감 탓이리라.

 

자기를 잘 보살펴야 진실한 섬김이 이뤄진다. 타인의 고통을 목전에 두었더라도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사는 존재다. 타인의 고통 앞이라는 이유로 자기 돌봄을 사치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거짓을 꾸민다. 누구나 밥을 먹어야 살듯, 누구에게나 자기 시간이 필요하니까. 성실한 자기돌봄이 진실한 섬김을 낳는다.

 

내 삶에는 거짓이 점점 줄어들기를 바란다. 진실이 더욱 넘쳐나기를 바란다. 용기를 내어,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6월이 가기 전 짬을 내어 성찰의 시간도 마련해야겠다. 매년 6월은 업무 생산성이 높아지는 달이지만, 올해 6월은 자주 병원에서 보냈다. 그 아팠던 순간들마저 찬찬히 돌아봐야겠다. 7월에는 병문안을, 더욱 잘하고 싶으니까.